3. 쇠 비린내와 딸기우유
심야 방송 송출 사고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알리는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고, 숫자가 7이 되자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온 것은 성인 남성 둘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걸어서 나온 것은 한 명뿐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비척거리며 일행에게 끌려 나오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예약한 호텔의 복도는 별다른 장식 없이 소화기 하나가 놓여있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성인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엔 비좁은 탓에 그들은 이리저리 부딪힌 끝에 겨우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행을 부축하고 있던 남성은 문 앞에 도착한 뒤에야 자신에게 키 카드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금방이라도 쓰러지려고 하는 일행의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코트 주머니, 없음. 바지 주머니, 없음. 바지 뒷주머니,
……있음. 바닥에 엎어지지 않도록 적지 않은 무게가 나가는 몸뚱이를 적당히 안아서 받치고 문을 열었다. 방에 불이 켜지자 짐을 풀 공간도 없이 침대와 작은 책상 하나가 전부인 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안으로 들어선 그들의 뒤로는 문의 잠금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넌 아직도 네 주량을 모르면 어떡하냐.”
테스카틀리포카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방에 들어가자마자 데이비트를 침대 위에 내동댕이쳤다. 자기 몸도 혼자서 못 가눈 주제에, 신발 때문에 침대가 더러워졌다는 것을 알았다간 다음날 잔소리가 쏟아질 테니 귀찮아하면서도 신발은 벗겨내 방구석에 처박아버렸다. 그나마 벗기 편한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오늘도 자주 신던 부츠를 신고 있었다면 침대가 더러워지든 말든 내버려 두고 자게 했을 것이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선글라스를 벗어 협탁에 올려두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대가 살짝 기울어지며 등 뒤로는 던져둔 몸뚱이의 체온이 느껴졌다.
현재 그들이 머무는 곳은 거주지로부터 조금 서쪽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호텔이다. 언제나 그랬듯 그들의 상관으로부터 받은 임무 때문이다. 조사 지역은 인적이 드문 곳인 경우가 많긴 하나, 가끔은 이런 도회지에도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산맥 지대를 탐험한다면 적당한 곳에서 야영했겠지만, 아무리 그들이라 해도 도시에서까지 노숙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주로 선택되는 것은 목적지에서 가까우며 가격이 저렴한 비즈니스호텔이다. 결코 야경이 끝내주는 고급 호텔 따위는 고르지 않는다. “비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나?” 그것이 데이비트의 의견이었다. 테스카틀리포카로서는 지적하고 싶은 점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아직 큰 불편을 겪은 적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인지라 숙박 시설을 알아보는 것은 줄곧 데이비트가 맡는 것으로 되어있다.
오늘은 임무를 끝내고 도시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을 기념하여 와인바에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 물론 일이 이렇게 될 것을 테스카틀리포카는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 반복된 경험으로 학습된 결과였다. 그래도 이 녀석 나이가 몇인데, 이번엔 적당히 하겠지. 그런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는 기도에 가까운 바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문제는 데이비트의 사전에 ‘적당히’라는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전의 데이비트로 말할 것 같으면 하루를 1초 단위로 재가며 살아왔으며, 단 한 순간도 낭비할 수 없는 성질 탓에 정신이 흐려질 만한 행위는 일절 손댄 적이 없다. 그것은 약물이나 성적인 행위는 물론이거니와 알코올 또한 그와는 거리가 먼 물건이었다. 주량 따위 알 턱이 없었다. 아마 테스카틀리포카와 만나지 않았다면 영원히 알게 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으로 이주하여 처음 맞이한 날 밤, 그들은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여 조촐한 파티를 벌였다.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도록 조리된 칠면조 고기에 그레이비 소스를 뿌린 매쉬드 포테이토. 시원하게 터뜨리며 기분을 내기 위한 샴페인은 덤이었다. 위스키도 니트로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인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샴페인은 음료수나 다름없지만, 구색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며 챙긴 것이었다. 다만 아직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에 샴페인 잔 같은 것이 있었을 리 만무했고, 우스꽝스럽게도 그날의 샴페인은 머그잔에 담기게 되었다.
기념할 만한 첫 건배 이후, 테스카틀리포카의 잔에는 샴페인 대신 블랙라벨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냄새만으로도 취할 것 같은 것을 생수처럼 마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데이비트는 이내 자신도 같은 것을 달라고 요구했다. 네가 마실 수 있다면 나도 충분히 마실 수 있다. 대충 그런 주장이었다. 안 될 이유는 없었다. 보아하니 샴페인 정도는 얼추 마시는 듯했고, 가득 채웠던 잔을 두 번 비운 뒤에도 얼굴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천천히 먹어라. 그런 소리를 하면서 테스카틀리포카는 기꺼이 잔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데이비트는 원샷으로 깔끔히 잔을 비웠다. 그 뒤의 상황은 예상 범위 내의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머리가 깨질 듯한 숙취와 함께 눈을 뜬 데이비트는 자신이 고작 한 잔으로 쓰러졌다는 절대적인 양보다는, 테스카틀리포카 혼자서 한 병을 비워도 멀쩡한 것을 자신은 요만큼도 따라잡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데이비트는 주량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될 리가 없다는 고집이었다. 마시다 보면 주량이 늘어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데이비트의 주량은 술을 처음 입에 댄 그 날 이후로 단 한 방울도 늘어날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전혀 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데이비트는 아직 인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못 마실 것이라면 술주정이라도 하는 편이 테스카틀리포카로서는 구경할 맛이 낫겠지만, 의외로 데이비트는 취하면 시든 화초처럼 쓰러져버리는 축에 속했다. 덕분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를 끌고 귀가하는 것은 언제나 테스카틀리포카의 몫이었고, 그것은 지금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결코 가깝다고는 할 수 없는 거리를 사람 하나 들춰 맨 상태로 걸어온 테스카틀리포카는 겨우 한숨 돌리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물었다. 아니다. 꺼내물려고 했다. 등 뒤에서 웅얼거리는 소리에 그는 담뱃갑을 도로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뭐. 왜.”
물이라도 달라고 하려는 것인지 듣기 위해 고개를 숙이자 불쑥 올라온 양손은 억세게 옷깃을 낚아챘다. 갑자기 가해진 힘에 순식간에 몸이 기울어지며 윗입술끼리 세게 부딪히고 입안에는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 아파할 새도 없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혀를 느끼고, 테스카틀리포카도 일단 입을 벌려주었다. 취객의 걸음걸이처럼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혀를 내버려 두다가 한 번 힘 있게 빨아들이자 끙끙대는 소리가 머리를 울리며 들려온다. 이어서 다리가 허리춤에 집요하게 매달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는 데이비트를 억지로 떼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옷이 구겨지도록 잡고 있던 손은 그새 침대 위로 힘없이 떨어진다.
“이제는 잊지도 못하면서, 나중에 후회할 짓 하는 거 아니다. 오늘은 그만 자라.”
그렇게 말하며 그는 여전히 멍하게 뜨고 있던 두 눈 위로 큼직한 손을 덮었다.
“자기가 뭘 하는 건지도 모를 녀석을 데리고 노는 건 내 취향이 아니거든.”
희미하게 열기를 띠던 눈은 손이 치워졌을 땐 굳게 닫힌 채였다. 가지런히 자라난 속눈썹은 아주 살짝 떨린 뒤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테스카틀리포카는 비어 있는 옆자리를 대충 비집고 드러누웠다. 얇디얇은 벽 너머에서는 뜨거운 밤을 보내는 옆방 투숙객의 소리가 들려온다. 적나라하게 전해지는 소리에 테스카틀리포카는 씻고 잘 기분도 사라지고 말았다. 어차피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는 간만에 집의 널찍한 욕조가 그리워졌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도~ 굿모닝! 아차, 지금은 밤이었죠?
이런 실수를~ (하하하, 하고 방청객이 웃는 소리)
어김없이 찾아온 트롤리의! 롤리롤리~ 롤리팝 시간!
오늘은 어떤 분이 찾아오셨을까요?
바로바로~ (따단, 하는 효과음)
샌프란시스코의 @#$% 씨입니다! 축하드려요~ (박수 소리)
저런, @#$% 씨는 많이 피곤하셨는지 이미 잠드셨네요.
@#$% 씨? @#$% 씨? 흠, 들리지 않나 보군요.
어쩔 수 없죠! 그렇다고 오늘 프로그램을 이렇게 끝낼 수 없으니까요. 그렇죠?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
그럼 오늘도 출발해볼까요? 고, 고, 고~!
오전 6시, 데이비트는
(이제는 이것이 숙취라는 것을 알게 된)두통과 함께 자신이 지난밤 저지른 짓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해야 했다. 손이 닿는 위치에는 핸드폰이 없다. 아마 여전히 코트 주머니에 들어있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서 벽에 걸린 전자시계로 지금이 오전 6시를 조금 넘은 아침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옆자리는 비어 있다. 방음이라곤 전혀 되지 않는 화장실에서는 희미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먼저 일어나서 샤워하는 듯했다.
그러는 데이비트는 신발과 겉옷은 벗겨져 있었지만, 다른 옷은 그대로 입은 채 잠든 상태였다. 샤워는커녕 양치도 제대로 못 한 입이 텁텁하게 느껴진다. 뒤늦게 온몸에 느껴지는 근육통을 무시하고 상반신을 일으키자 저 구석에 처박힌 구두가 보인다. 얌전히 정리해주는 서비스 같은 건 없었던 모양이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온 것은 데이비트가 침대에 걸터앉아 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한 뒤였다. 어중간하게 바지를 걸치고 있던 상태로 눈이 마주치자 테스카틀리포카가 한 손을 들고 인사해준다.
“여어, 어제 못한 거라도 마저 하려고?”
“농담이라도 거절하겠어. 안 그래도 이미 온몸이 쑤시거든.”
“그러게 누가 마시랬냐. 피클 주스라도 주랴?”
“필요 없다.”
성의 없이 대답하고 테스카틀리포카를 지나쳐 욕실로 향하는 데이비트의 뒤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지간히도 이 상황이 재밌나 보다. 아무렴, 지금까지 데이비트는 취하면 곧바로 잠들어버려 이렇다 할 만한 에피소드가 없었지만, 드디어 놀려먹을 거리가 생긴 것이다. 데이비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의 온도를 가장 차가운 쪽으로 돌렸다.
10분 만에 데이비트가 씻는 것을 마치고 나왔을 때, 테스카틀리포카는 놀라운 속도로 말끔하게 나갈 채비를 하고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다. 챙겨온 짐이라고 해도 배낭 하나가 전부였다. 데이비트만 옷을 입으면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렇게 판단한 데이비트는 옷만 걸치고 곧바로 방을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머리나 제대로 말리라며 다시 자리에 앉히는 테스카틀리포카의 손에 의해 데이비트는 한 손에 코트를 쥔 채 꼼짝없이 머리를 내밀어야 했다. 너무 뜨겁지는 않은 더운 바람이 양쪽에서 번갈아 불어오는 것을 느끼며, 데이비트는 영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앉아 있었다. 씻는 시간 만큼이나 그 뒤의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게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느낀 것이다. 드라이기 바람이 멈추자마자 이 정도 말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냐며 불평했으나, 테스카틀리포카는 그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헤어 에센스까지 꼼꼼하게 발라준 뒤에야 방을 나서는 것을 허락했다.
도착한 로비는 소란스러웠다. 오늘따라 체크아웃하는 손님이 많은 것인지, 단체 예약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들은 태평하게 현장을 마주했다.
처음으로 느껴진 것은 지독한 피 냄새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가자 데스크 주위의 벽은 온통 피투성이에, 움푹 팬 바닥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고여있는 것까지 보인다. 인간의 몸에 흐르는 피는 약 5리터 정도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현장에는 온몸이 쥐어 짜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양의 피가 남아있다.
신고는 된 것인지 현장에는 경찰도 몇 명 있었지만, 한가운데에는 치우지 못한 채 흰 천으로만 덮인 시체로 추측되는 것도 있다. 발견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체크아웃이시죠? 키는 저한테 주세요. 사고가 좀 있어서요.”
구경꾼들 사이에서 현장을 유심히 둘러보고 있자니 호텔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건다. 상황이 정리되기 전까지 데스크 전산을 이용할 수 없는 관계로, 임시로 마련된 자리에서 수작업 체크아웃 처리를 해주는 듯했다. 데이비트는 이미 무시하고 넘길 수 없다는 눈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테스카틀리포카는 눈치껏 먼저 말을 꺼냈다.
“어떡할래? 다른 곳 찾기도 귀찮은데 여기 더 있을까?”
“그러지. 나는 여기도 제법 나쁘지 않았어.”
“솔직히 말하면 나는 별로다만, 며칠만 버텨주마.”
테스카틀리포카는 지난밤의 번거로웠던 기억을 생각하며 오늘은 본인이 키를 챙겨 나왔다. 바지 주머니에 적당히 꽂아둔 카드를 직원에게 내밀고 곧바로 주문 사항을 읊는다.
“이건 체크아웃하는 키. 그리고 성인 두 명으로 새로 예약. 아무 방으로. 대충 3일이면 되겠지. 아, 침대는 뭣하면 싱글이어도 상관은 없어. 기왕이면 더블이 좋겠지만.”
“예? 아
… 자, 잠시만요.”
추가 예약은 역시 수작업으로 어려웠던 것인지, 키를 받아든 직원은 급하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덩그러니 남겨진 두 사람의 주위는 뒤늦게 로비를 찾은 사람들로 점차 혼잡해졌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신경이 곤두서기 직전에야 겨우 다시 돌아온 직원의 손에는 새로운 키가 들려 있었다. 지금은 현금 결제만 가능하니 카드 사용을 원한다면 잠시 뒤에 다시 들러 달라는 직원의 말에 테스카틀리포카는 자연스럽게 지갑을 꺼내 들었다. 물론 데이비트의 지갑이었다. 지갑에 남은 현금을 털어 계산을 마친 테스카틀리포카는 키를 받아들고 시원하게 말했다.
“좋아. 그럼 밥부터 먹을까?”
“이건가 보군.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
데이비트는 입안에 남아있던 치킨 랩을 삼키며 말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음식은 본 척도 안 한 채 해피밀 박스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번 시즌은 애니메이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만든 피규어가 해피밀 세트에 포함되어 있다. 세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꽃무늬 미니 트럭을 확인한 뒤에야 테스카틀리포카는 박스에서 나온 피규어들을 일렬로 늘어놓는 것을 마치고 소시지 머핀을 집어 들었다. 맥모닝 메뉴에 맞는 크기로 만들어졌을 머핀은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지나치게 작아 보였다. 아마 세 입 정도면 머핀 하나가 끝날 것이다. 그리고 베어 문 첫 한 입으로 정말 1/3이 사라지는 것을 데이비트는 눈앞에서 가만히 보고 있었다. 다음 한 입을 씹으며 테스카틀리포카는 마저 얘기해보라는 의미로 데이비트에게 턱짓했다. 데이비트는 어느새 반도 남지 않은 머핀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을 잇는다.
“피해자는 호텔 데스크 직원이야. 야간 당직이었겠지. 첫 번째 목격자는 투숙객인 것 같은데, 목격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이상한 형체로 발견되었다’라고만 되어있어.”
“이상한 형체라. 그냥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고?”
“그럴 수도 있지만, SNS에 올라온 얘기를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아.”
인간은 극단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면 그 상황을 부정하려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동의를 구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SNS에 글을 올리는 인간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트는 SNS에 올라온 지 몇 분 되지 않은 짧은 글을 하나 발견했다. 사진 첨부도 없이 지리멸렬하게 적힌 문장이었지만, 정황상 그것은 그 호텔에서 일어난 사건의 목격자가 적은 것이 분명했다. 데이비트는 해당 글을 테스카틀리포카에게도 보여주었다.
그건 더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래, 롤리팝. 롤리팝처럼 사람이 배배 꼬여 있었다고! 아아, 눈앞에서 그 끔찍한 모습이 사라지질 않아. 어쩌면 다음 타겟은 나일지도 몰라. 싫어!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아!
테스카틀리포카의 눈이 마지막 문장까지 읽는 것을 마쳤을 때, 머핀은 이미 뱃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먹기 좋게 식은 커피로 입가심까지 한 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롤리팝? 흠, 굳이 따지면 마시멜로에 가까운 거 아닌가. 그 왜 있잖아, 알록달록한 거.”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긴 하다만
… 네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해.”
데이비트는 식사 내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해쉬 브라운을 집어 들었다. 바삭하게 구워져 나왔을 겉면은 어느새 습기로 눅눅해졌다. 미동도 없이 감자를 삼키는 얼굴 근육으로는 맛이 어떤지 추측할 수 없다. 진흙 반죽이라도 씹는 것 같았던 얼굴은 식사를 마치고 입가에 묻은 가루까지 냅킨으로 깔끔하게 닦아낸 뒤 추측을 정리한다.
“이번 일은 인간이 범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 더 나아가서 마술과 관련 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 그렇다고 일반인이라고 하기는 어렵겠다만.”
“예를 들면?”
“마안 중에는 왜곡의 마안이라는 것이 있어.”
데이비트도 해당 마안 소유자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 특성 정도라면 알고 있다. 극히 희소한 최상급 마안. 현재까지 보고된 바에 의하면 소유자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축을 따라 하나의 물체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비틀어지는 원리라는 듯하다. 소유자의 체감상으로는 종이를 구기는 정도의 감각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몸 또한 종이처럼 구길 수 있다는 시점에서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힘이다.
“그거라면 구분은 금방 가능할 거다. 어쨌든 마안의 발동 조건은 보는 거니까. 시야에 닿는 곳에 인간이 없었다고 하면 배제돼. 뭐, 천리안이 각성하지 않았다는 가정은 필요하겠지.”
“그래서, 또 해킹이라도 하시려고?”
“그게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일 텐데, 가능할지 실제로 해보기 전까진 모르겠군. 식사가 끝나면 우선 숙소로 돌아가도록 하자.”
“흠, 그럴 바엔 그냥 어제 상황을 직접 경험해보는 게 낫지 않겠어?”
데이비트와 비교하면 테스카틀리포카의 말은 대개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주된 원인은 필요한 정보만 요약하며 살아온 데이비트의 특성 탓이다. 데이비트가 내뱉는 말처럼 지나치게 간결한 정보는 남이 듣기엔 맥락이 배제된 것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오히려 데이비트 쪽에서 테스카틀리포카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은 데이비트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테스카틀리포카를 쳐다봤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대충 봐도 죽은 지 얼마 안 지났잖아? 시간을 몇 시간만 돌리면 현장을 직관할 수 있는데 뭣 하러 빙 돌아가는 짓을 하겠어.”
“
…제물은 뭐지?”
“아마 눈 한쪽 정도? 양쪽까지는 필요 없을 거다.”
“그렇다면 거절한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튀어나온 대답에 테스카틀리포카는 주위 시선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호탕하게 웃었다. 몸을 희생해서 계획을 진행하는 짓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그들이 정한 약속 중 하나였다. 물론 이유는 그 뒤의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함께했던 이문대는 1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는 만큼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결과가 어찌 되든 1년 뒤에 사라질 몸, 사라질 목숨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아껴두는 것은 낭비였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로 한 이상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체 손상은 목숨과 직결되는 치명적인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테스카틀리포카는 약속 사항을 처음 들었을 때 동의하지 않았다. 만일 목숨에 영향이 생긴다면 그대로 역할을 마치면 될 뿐이라고 했다. 이전의 그들이었다면 그렇게 대화는 끝났을 것이다. 데이비트의 대답이 조금만 달랐어도 지금과는 다른 결론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에게 하루라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해주길 원했고, 그런 이유로 몸을 소중히 여겨줬으면 한다고 했을 때 테스카틀리포카는 복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데이비트는 그 표정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신께서는 먼저 설명해줄 생각이 없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부루퉁해진 얼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달래줄 뿐이었다.
“농담이야. 이런 지루한 도시의 몇 시간을 돌리는 정도라면 머리카락으로도 가능해. 그 왜, 머리카락으로 분신을 만드는 녀석의 이야기도 있잖아? 머리카락은 때로 좋은 마술 재료가 되거든. 대신에 꽤 많이 짧아지겠지.
……뭐야, 그것도 불만이냐?”
“조금은.”
“흐음?”
조금 전보다는 표정이 풀어진 데이비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고른 뒤 대답했다.
“나는 네 머리카락이 꽤 맘에 들거든.”
“
…너, 요즘도 다른 인간들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고 다니냐?”
“그런 식이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하
… 아니다. 그래, 넌 원래 그런 녀석이었지.”
테스카틀리포카는 더 얘기해봤자 손해라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물론 식사를 마친 쟁반은 들지 않았다.
“다 먹었으면 가보자고. 더 지체했다간 그땐 정말 머리카락으론 안 끝날 테니까.”
데이비트는 쟁반을 그의 몫까지 챙겨 들고 뒤를 따랐다. 쟁반을 정리하며 분리 방식에 맞게 쓰레기를 버리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로비는 현장 수습은 되어있었지만, 여전히 투숙객과 취재진을 비롯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던 방송국 카메라까지 동원된 것을 보며 테스카틀리포카는 혀를 찼다.
“적당히 하고들 꺼질 것이지 구경꾼 한번 많군.” 그는 뒤에서 따라오던 데이비트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알겠어? 이런 귀찮은 일을 줄줄이 하고 나면 아무리 나라도 마력 소모가 크단 말이야. 끝나고 나선 마력을 보충받을 거니 준비하도록 해.”
“그래.”
사상 교차는 단순히 다른 시간대의 사건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대에서 발생하는 시간의 흐름 자체를 뒤바꾸는 것이다. 만일 현장과 관계없는 일반인이 있다고 해도 그를 배제하고 교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상태로 교체했다간 기자들에게 새로운 기삿거리나 제공하는 셈이 된다는 뜻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전 작업이 필수다. 이를테면 지금 테스카틀리포카가 귀찮아하면서도 국소적으로 펼친 마술 장벽 같은 것 말이다. 여전히 주위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지만, 그들에게 데이비트와 테스카틀리포카는 인식되지 않는다. 눈으로 보아도 그게 무엇인지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라고 하면 얼추 비슷할 것이다.
어느 중년 남성은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인지 로비에 멍하게 선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그 코앞에서 몇 번 손을 왔다 갔다 하던 테스카틀리포카는 마술 효력이 제대로 유지되는 것을 확인한 뒤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용 나이프를 꺼냈다. 한 뼘 정도 되는 길이의 칼날은 흠집 하나 없이 새까맣게 빛나서 얼굴을 비추면 주름까지 선명하게 보일 듯하다. 그는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적당히 모아쥐고 오른손으로는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나이프를 휘둘렀다. 칼끝이 보이지 않는 선을 허공에 긋는 것과 거의 동시에 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이 데이비트의 눈앞에서 흩날렸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북적이던 로비가 이미 텅 빈 모습이 되어있었다.
로비 중앙에 자리한 괘종시계는 새벽 4시 조금 전을 가리키고 있다. 정면에는 폴리스 라인이 걸리지 않은 말끔한 안내 데스크가 보인다. 데스크 안쪽에서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야간 당직 직원이 앉은 채 졸고 있다. 직원의 곁에 놓인 구식 라디오에서는 저속한 가사의 유행가가 흘러나온다. 데이비트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잠시 뒤, 4시 정각이 되자 시계에서는 빅 벤을 연상시키는 종소리가 울린다. 텅 빈 로비에 퍼지는 소리는 평소보다 유난히 크게 들린다. 이어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 사이로 성별을 구분하기 어려운 목소리가 말하기 시작한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도~ 굿모닝!” 과장되게 들릴 정도로 명랑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2분 남짓할 짧은 시간 동안 라디오 방송은 이어졌고, 멘트가 끝나자마자 누군가에게 팔다리를 잡힌 것처럼 직원의 몸이 서서히 움직였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공중에 떠오른 몸은 일정한 방향으로 틀어졌고, 조금 전까지도 의자에 앉아 있던 직원은 순식간에 비틀어 짠 걸레 같은 모습이 된다. 조금 더 유하게 표현하면, 그렇지, 테스카틀리포카의 말처럼 트위스트 마시멜로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 찢어진 피부와 근육에서 새어 나오던 피는 가속되며 주위로 흩뿌려졌다. 붉은 폭우가 쏟아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사방으로 튄 혈액은 데이비트의 구두코 바로 앞까지 떨어졌다. 데이비트는 구두가 더러워질 수도 있었던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 현장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눈은 이미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온몸이 비틀어지면서 가까스로 몸통에 붙어 있던 말단부는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추락한다. 처음에는 왼쪽 손목, 그다음은 오른쪽 발목.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머리가 목에서 분리되기 시작할 무렵, 공중에 매달렸던 몸은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전등에 묻은 피가 슬로우 모션처럼 흘러내려 피바다로 떨어지기 직전,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사상은 현실로 돌아왔다. 로비는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년 남성을 비롯한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그 누구도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은 보지 못한 듯했다. 피가 말라붙어 가루가 날릴 듯한 얼룩만 남은 현장을 보며 데이비트는 메마른 소감을 읊었다.
“이젠 하다 하다 방송인가.”
“레퍼토리가 다양해서 지겹진 않은걸?”
“형체가 없는 것을 확보하려면 난이도가 배로 올라가.”
차라리 민간인에 의한 범행인 편이 처리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고 데이비트는 생각했다. 코언저리에는 헛것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쇠 비린내가 맴돈다. 머릿속에서는 라디오 방송 멘트가 다시 재생되며 이런 행위의 의도와 출처를 가늠해본다. 유일한 자비라고는 피해자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던 테스카틀리포카는 가벼워진 머리를 긁으며 다가왔다. 가슴께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은 목덜미만 겨우 덮을 정도의 길이가 되었다. 머리 모양이라는 것이 사람의 인상에 제법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데이비트는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건 해결 방안을 가지고 고심하는 것을 다 알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테스카틀리포카는 말했다.
“여기서 제안이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뭐지?”
“그런 건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지.”
내키지 않는 대답이었다. 데이비트는 가능하면 계획에서 불확실한 요소는 배제하고 싶어 하는 쪽이다. 그러는 테스카틀리포카는 사전에 언질 없이 계획을 진행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개성을 지적하는 것 또한 데이비트의 성미에는 맞지 않았다. 데이비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무런 정보 없이 테스카틀리포카를 따르는 경우와 따르지 않는 경우를 저울질한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럼 부탁한다.”
“설마 거저먹을 셈은 아니겠지?”
그 와중에 미리 대가를 요구한다. 그러고 보면 사상 교차에 대한 대가도 아직 받아 가지 않았는데, 그것과 이것의 대가는 별개인 모양이다. 아즈텍 신으로서의 테스카틀리포카라면 심장이나 가죽 따위를 지불하는 것이 마땅했겠지만, 글쎄. 지금의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데이비트는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
…한 달간 식사 당번 면제.”
“그리고?”
“
…,
……무사히 해결되면, 네가 원하는 만큼 하게 해줄게.”
“거래 성립.”
데이비트는 휘파람까지 불며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 얄밉게 느껴졌다. 교섭할 때만큼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상대였다. 데이비트는 그가 현대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그가 시장 경제에 발을 들였다간 많은 기업을 무너뜨렸으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기업의 존속은 국가의 유지에 이어지는 법이다. 어쩌면 그가 다음 멸망을 불러오는 날이 온다면, 그 시작은 창업에서 비롯될지도 모른다.
“하루면 될 거다. 너는 그동안 동네 구경이나 실컷 하고 있으라고.”
금방 뒤돌아 멀어져가며 테스카틀리포카는 한 손을 흔들어준다. 하루만 기다리라는 말을 끝으로 그는 호텔 밖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어디를 가는 것인지는 역시 말해주지 않았다.
그날 밤, 테스카틀리포카는 숙소에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무얼 하는 것인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데이비트는 순순히 그의 말을 믿고 기다려주기로 했다. 말없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때가 많아서 문제일 뿐, 그는 제법 난제를 해결하는 데에 능숙한 신이었다.
도시를 구경하라고 해도 막상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던 데이비트는 먼 지역에서 지내고 있을 친구들을 떠올리며 기념품이라고 할 만한 것을 산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이 또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홀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생각했다.
착실한 직원은 결국 새로운 숙소로 더블 베드가 있는 곳을 마련해주었다. 혼자 눕기에는 조금 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데이비트는 문득 혼자 잠드는 것이 상당히 오랜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나 잠든 사이 테스카틀리포카가 돌아올 것을 생각하며 비워둔 옆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그는 잠들 때까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다음 날 오전, 숙소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대기하던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가 호텔을 떠난 지 정확히 24시간이 지났을 무렵에야 노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양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 돌아온 테스카틀리포카였다. 오른손에는 아침 식사용 부리토가 들려 있었고
(데이비트의 몫에는 고수를 넣지 않았다고 했다.), 왼손에 있는 것은 카세트테이프를 넣을 수 있는 라디오였다. 설명을 듣자 하니 직접 특별제작한 라디오라고 한다.
자세한 원리는 기업 비밀이라고 하며 알려주지 않았지만, 대략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라디오 방송인 것은 명백하다. 다만 데이비트가 지적했듯이 카메라나 구두와는 달리 방송은 포획할 수 없는 것이다. 포획할 수 없는 것은 제어할 수 없다. 제어하기 위해서는 발신원을 찾아내거나 모든 라디오를 수중에 두어야 하는데, 애당초 이런 괴상한 방송의 발신원이 존재하는지도 의심스러웠으며 모든 라디오를 관리하는 것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럼 다음 방법이라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 된다. 투명 인간에게 물감을 끼얹어 형태를 보이게 하는 식의 임시방편 같은 방식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 라디오였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설계로 만들어진 라디오는 문제의 방송을 포착해낼 수 있을뿐더러, 테이프에 녹음하여 일종의 봉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참으로 편리한 방식이었다.
“형체가 없어서 잡지 못한다면 형체를 만들어주면 되지.”
“그래서 고른 방식이 이건가. 너치고는 구시대적인 발상이군.”
“기왕이면 고풍스럽다고 해주겠어?”
설명을 끝낸 테스카틀리포카는 라디오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흔들었다.
“어떠냐, 전능신의 솜씨가. 유능하지?”
“그렇지. 넌 언제나 유능했어.”
흔치 않게 솔직히 칭찬해오는 말에 테스카틀리포카는 당황했다. 날 놀리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데이비트는 이런 점에서는 농담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더 곤란한 남자였다. 잠시 평정이 무너지던 표정을 되찾으며 테스카틀리포카는 참고사항을 몇 가지 덧붙였다.
“뭐, 설명이 길어지긴 했다만, 결론만 말하면 혹시나 누가 그 테이프를 재생하지 않는 한 그 녀석이 두 번 다시 세상에 돌아다닐 일은 없을 거라는 거야.”
“만약 재생한다면?”
“그땐 틀어버린 놈도 죽고, 다른 놈도 죽고, 많이들 죽겠지.”
“그렇군.”
시큰둥한 대답이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식기 전에 먹으라며 종이봉투에서 부리토를 꺼내 손수 포장을 뜯어주었다. 다행히도 부리토 속의 치즈는 갓 조리된 것처럼 기다랗게 늘어났다. 덤으로 받아온 살사소스까지 끼얹은 뒤에야 부리토는 테스카틀리포카의 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쨌든 이 방법의 가장 큰 단점은, 방송이 시작될 때 녹음을 누르고, 끝날 때 맞춰서 종료를 누를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다. 하지만 녹음을 제대로 하려면 방송을 직접 들어야 하지.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것처럼 말이야. 물론 그 방송을 들었다간 어떻게 되는지 알지?”
“대책은? 그것도 없이 얘기를 꺼낸 건 아니겠지?”
“당연히 있지. 방송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장벽을 만들어 줄 거다. 효과는 자신 있어. 당하는 인간이 그걸 신뢰할 수 있냐의 문제인데, 어때? 목숨을 담보로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해줄 만한 인간이 있을 거 같나?”
“그런 거라면 문제없군. 처음부터 내가 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럼 그렇지.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는 흡사 심연 속 악마의 부름처럼 들린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지옥의 불구덩이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지는 통로의 입구라는 것이리라. 어느덧 전생의 일처럼 여겨지는 안개 속의 모닥불이 데이비트의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듯했다.
“이번에 죽은 녀석은 새벽에 노려졌지만, 내 라디오를 이용하면 시간과 장소는 상관없어. 애초에 억지로 낚시해 올리는 거 같은 느낌이니까. 미끼를 무는 게 오래 걸리면 녹음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지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 원래 고생 끝에 보람이 오는 거야. 그럼 언제 할래?”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이지.”
“그렇겠지. 잘해봐라. 이 방을 나가면서 장벽을 쳐두마. 사람 없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보단 그게 확실하겠지. 그리고 너한테 씌우는 장벽은, 이거다.”
어느덧 빈 종이만 남은 부리토 포장을 구겨버리고, 테스카틀리포카는 재킷 주머니에서 작은 무언가를 꺼냈다. 분홍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그려진 포장지에 쌓인 막대사탕이었다. 그는 뜯기 어려운 포장을 요령 좋게 벗겨내는가 싶더니, 대뜸 데이비트의 입에 사탕을 쑤셔 넣었다. 반응할 틈도 없었다.
“이건 그냥 사탕이 아니야. 녹음기 정도는 아니지만, 하여튼 이것도 나름 공들여 만든 것이니 감사하도록 해. 결국 중요한 건 체액 전달이라는 건데, 천천히 오래 지속되게 하려면 이게 적당해 보였거든.”
“
……참고로 성분은?”
“물론 기업 비밀이다.”
말하는 것에 따라 혀가 움직이며 입안에서 사탕이 구른다. 조금씩 녹아 나오기 시작한 사탕의 맛은 바닐라
… 혹은 우유에 가까웠다.
“절대 깨물지 말고, 물고만 있어. 아주 천천히 녹이는 거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사탕의 단맛이 섞이며 몽롱해지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사탕에 환각제 성분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데이비트는 잠시 의심했다. 진실은 알 수 없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행운을 빈다고 하며 방을 나갔다.
테스카틀리포카의 말대로 사탕을 입안에서 굴리기만 하며 라디오 전원을 켜고, 신호가 잡히길 기다린다. 사탕이라고 하니 곧 핼러윈이 다가온다는 것이 떠올랐다. 별일이 없다면 그들의 이번 핼러윈은 집에서 보내게 될 예정이었다. 데이비트가 핼러윈 같은 기념일을 챙긴 것도 까마득한 예전의 일이다. 올해는 집 앞에 잭오랜턴을 장식해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사탕의 효력 탓인지, 데이비트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잭오랜턴의 모양은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으려니, 잡음만 들리던 라디오에서 돌연 소리가 끊어졌다. 미끼에 낚였다는 신호였다.
녹음 시작 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기억에 남아있는 멘트와 토씨도 다르지 않은 방송이 흘러나왔다. 원래대로라면 데이비트를 걸레짝으로 만들어야 했을 방송이 끝나고 약 5초 뒤, 데이비트는 정지 버튼을 눌렀다. 라디오에서 꺼낸 테이프는 끝까지 감긴 상태다. 희미하게 남은 데이비트의 감지 능력에 따르면 테이프에 담긴 것은 확실히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였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운이 손에서 느껴졌다.
한 손에 테이프를 든 채로 곧장 방문을 열자 문에 기대고 서 있던 테스카틀리포카의 등이 보인다. 갑자기 문을 열었음에도 자세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잘됐냐?”
대답 대신 카세트테이프를 들어 보이자 테스카틀리포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조금 굴곡이 있었던 사탕은 서서히 녹아내리며 완전한 구 형태가 되어있었다. 아직 다 녹지 않은 채 입안에 남아있던 사탕을 깨물자 사탕이 부서지며 안에 든 시럽이 나온다. 데이비트에게는 조금 달게 느껴지는 딸기 맛이었다.
“그래서 이건 어쩔 거지? 설마 이대로 보관하면 될 일이라고 할 건가?”
“보관한다는 것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지. 그 시계탑에 보내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만, 그건 별로지?”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로 전승과와의 연락은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데이비트는 이제 와서 그들과 다시 교류할 생각은 없었다. 좋지 못한 감정에서 비롯된 결론은 아니었다. 방식이야 어쨌든 그들은 선한 의도로 모인 집단이었으며 데이비트 또한 한때는 그 업적에 공헌한 적도 있다. 어쩌면 지금의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에게 남은 인간으로서의 미련으로 인한 것일 수 있으나, 데이비트 본인은 그 점에 관해 깊은 고찰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건 내 명계에 두는 거로 할 거야.”
평소보다 조금 부드러운 말투인 것 같다고 데이비트는 생각했다. 남미 이문대와는 달리 이승과 저승이 명확히 구분된 현대에서 명계를 자유자재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조금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지만, 그는 다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테이프를 받아 갔다. 이리하여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난 셈이었다. 데이비트는 마지막으로 신경 쓰이는 점 하나를 물었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 말인데.”
“어.”
“자라려면 얼마나 걸리는 거지?”
“그야 보통 인간들만큼 걸리겠지.”
“그런가.”
“뭐야, 그렇게 아쉬워?”
데이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테스카틀리포카를 가만히 볼 뿐이었다. 그 눈에는 조금이나마 불만의 기색이 있었다.
“그래도,” 머리카락 한 올까지 구석구석 살핀 뒤에 데이비트는 감상을 말했다. “지금 모습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
……그래.”
테스카틀리포카도, 이에 관해 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체크아웃은 내일인데, 어쩔래? 오늘이라도 돌아갈래?”
예정에 없던 체류였으니 문제를 해결한 이상 더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다. 이미 지급한 숙박비가 아깝다면 예약한 기간을 채우고 가는 것도 괜찮았지만, 테스카틀리포카로서는 이 지긋지긋한 곳에 더 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하루만 더 이곳을 돌아보고 싶어. 같은 풍경이라고 해도, 동행이 있으면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을 것 같거든.”
그의 파트너의 의견으로 인해 그는 귀가를 조금 미루게 된다.
“그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그는 자고 일어난 뒤 제대로 정돈하지 않아 아무렇게나 뻗친 머리를 더 헝클어뜨리며 머리를 벅벅 쓰다듬었다. 데이비트도 말리지 않았다. 어느새 해가 중천을 지나 서쪽을 향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