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그것은 동화 속에 나오는 성 같았다. 정원에는 분수대가 있고, 분수대에서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목욕하고, 꽃이 만발해 있고. 안에는 순진무구한 아가씨와 엄격한 집사가 살 것 같은 곳. 하지만 분수대는 물을 흘리는 법조차 모르는 것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꽃 대신 만발한 건 황량한 석등이다. 정원에서 저택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그것들만큼은 파랗게 빛을 발광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화려하고 반듯한 저택이면 소문이 날 법도 한데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산에 설녀가 산다고만 했지, 아름다운 저택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저택의 주인이 설녀인거라면, 그게 그거겠지만.
정원 울타리 너머에서 잠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해가 지는 풍경은 어처구니없게도 아름다웠다. 쌓인 눈 위로 주홍색 빛이 스며들어서 반짝거리는 건 그렇게 희귀한 장면이 아닌데도. 마을에도 가끔 폭설이 왔다. 지붕이 무너지고 대문이 열리지 않고 그런 일이 있었다.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진 애들이라면 가리지 않고 차출해서 눈을 치웠다. 눈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허리까지 쌓인 눈 안에 아지트를 만들고 놀다가 애가 죽는 사고도 종종 있었다.
이 눈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밟힌 적 없이 깨끗한 눈이 뽀득뽀득했다. 밑바닥은 살짝 얼어붙어 있어서 그렇게 미끄럽지도 않다.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발자국이 패인 자리에 석양빛이 고여서 반짝거렸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눈이라기에는 너무 순박하고 깨끗해 보여서 기분이 이상했다. 마을에서 보았던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데도. 희고 붉고 그림 같은 경치에 그 저택은 그림처럼 있는 것이었다.
앞서서 재촉하던 토끼는 어느새 사라졌다. 에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석양빛이 너무 세서 눈雪이 부셨기 때문이다. 외투에 달린 모자를 빼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빛을 피해 저택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자는 석양을 등에 업은 채 표표히 서 있었다. 옷자락은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데 몸은 미동도 없이 꼿꼿하다. 눈이 내려도 눈에 젖지 않고 눈이 쌓이지 않는 기이한 집. 여자는 저택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정물처럼 있었다. 정수리 위로 들이치는 역광. 그건 어렸을 때 교회에서 보았던 조각상 같았다. 조각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온통 희었다는 것. 그리고 이 여자는 온통 검다는 것. 그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래, 여자는 온통 시커멨다. 사방이 희고 눈부신 이 정원에서 여자 혼자만 모든 빛을 흡수할 것처럼 시커멨다.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
석양이 빠르게 저물고 있었다. 역광으로 비추는 붉은 빛과 함께 여자도 점점 더 어둠 속으로 녹아들 것 같았다. 여자는 어둠에 더 녹아들기 전에 먼저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눈이 마주쳤을까? 에나는 여자를 보고 있었지만, 여자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는지는 모른다.
이제는 정말 해가 질 것 같은데. 정말 어디든 들어가야 하는데. 여기에서 하룻밤 묵게 해 달라고 하면 안 될까. 상황은 너무나 작위적이었고 고민도 뻔했다. 당연히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왠지 될 것 같을 때가 있다. 아빠도 이런 생각을 하며 산으로 갔던 걸까. 에나에게는 바로 지금이 그랬다.
길지 않았던 망설임을 끝내고, 정원을 가로질렀다. 파랗게 빛나는 석등을 따라 걸으면 순식간에 저택의 문 앞까지 도착한다.
가까이서 본 저택의 외관은 좀 더 기묘했는데. 지나치게 번쩍번쩍하고 새것 같았다. 세월의 흔적을 타지 않은 새 건물 정도가 아니다. 어떤 시간도 이 저택에 간섭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여자가 서 있던 돌계단에는 발자국이 하나도 없었다. 돌계단을 덮은 눈은 하나도 흐트러짐 없었고, 에나가 발을 내딛고 나서야 비로소 흔적이 남았다. 해가 떨어졌는데도 저택 밖으로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
노크하기 전에 문득 생각이 났다. 산에는 혼자 가지 말아라. 그곳에는 설녀가 산다. 머리는 잔뜩 풀어 헤친 백발. 눈은 겨울 호수의 밑바닥처럼 시커멓고 푸르다. 다가가지 말아라. 산에는 혼자 가는 게 아니다.
설녀일까?
하지만 머리칼은 시커멨다. 눈을 자세히 본 적은 없지만 시커멨을 것이다. 뻐드렁니가 있을 것 같진 않다.
에나는 심호흡하고 문에 노크했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문이 열렸다. 방문자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다 열리지는 않았고, 상대의 얼굴만 겨우 확인할 수 있을 만큼만. 아주 그만큼만. 기다림이 필요 없게 바로 열린 것 치고 무척 조심스러운 너비로만 열렸다.
“…….”
문 안쪽에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음성도 없다. 방문자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을 셈인가.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저절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놀랐다. 동생을 찾아야겠다고 이 모든 난리를 피운 것이다. 그런데 한순간 동생을 잊고 있었다. 이 말을 하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동생을 찾고 있었다고.
“…….”
문 안쪽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저랑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앤데요. 머리가 등자 열매 색이고, 눈이 올리브색이요. 눈꼬리가 약간 처졌고, 눈썹은 올라가 있고…….”
“누구?”
음성은 텅 울리듯이 갑자기 떨어졌다.
“저……는 걔를 찾으러 온 건데요.”
“누구.”
아무래도 ‘누구’냐는 말은, 방문객의 신원을 묻는 게 아니라 찾고자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 말인 것 같았다.
“제 동생이 사라졌거든요. 혹시 여기에 있나 싶어서.”
“동생…….”
“친동생이요.”
여기까지 대답하고 나니까 여자는 또 말이 없었다. 이제 밖은 완전히 캄캄해졌다. 약간 조바심이 났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몰라서. 마을 사람들에게 다 물어봤는데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 혼자 산에 올라온 건데. 근데 지금 밖에도 어둡고 그래서.”
“…….”
“그래서 그런데 정말 죄송하지만, 하루만,”
“가족이네.”
오래된 우물 같은 목소리였다.
깊이를 모르고 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이끼가 있을 것 같고. 축축한 공기를 머금고 있는. 오래된 우물. 에나는 여자의 대중없는 말씨가 조금 어려웠다. 대화를 한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네, 아무래도 가족이 사라진 일이라. 저한테는 좀 중요하거든요. 걔가 없으면 집안이 잘 안 돌아가서. 그래서 어떻게든 찾아와야 하는데.”
”지금은 엄마가 주무시고 계셔서 어려운데.”
“……네?”
대화가 한 줄씩 밀린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처음부터 여자는 에나보다 한 마디씩 늦게 대화하고 있었다.
“저 필요한 거 많이 없어요. 눈만 안 맞으면 돼요. 민폐 안 끼칠게요.”
“그래도 중요한 일인 거지?”
이번에는 여자의 말을 알아듣는 게 어렵지 않았다. 원리를 파악하고 나면 그 뒤로는 무난하다.
“네. 모쪼록 도와주시면 감사합니다.”
에나는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를 걷어 올렸다. 안쪽에서 이 얼굴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했다. 어떻게든 눈을 피해야 했다. 해는 이미 졌다. 어디든 들어가야 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가엾고 여리고 약한 표정을 연기해 보았다. 이게 먹힐지 안 먹힐지는 나중에 가서 보더라도.
과연, 문이 조금 더 벌어졌다. 묵직한 돌문은 잔뜩 기름칠해 둔 것인지 끽 소리도 내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 열렸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한 손에 촛대를 들고 웃었다. 근육이 느슨하게 풀어진 얼굴은 교회에서 보았던 조각상처럼 자애로웠다.
“먼 길을 오셨네요. 천천히 쉬다 가요.”
목소리에는 조금 전 느꼈던 우물의 기색이 단 한 점도 비치지 않았다.
여자를 따라 들어간 실내는 어두컴컴했다. 밖에서 본대로 꽤 넓어 보였는데 불도 켜지 않고 새까매서 공간을 가늠 잡을 수 없었다. 여자가 들고 있는 촛대만이 유일한 광원이었기에 그 촛대에 필사적으로 따라붙었다. 그러면서 본의 아니게 여자에게 바싹 붙어버렸는데, 여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여자에게서는 젖은 장작 타는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복도를 걷는 내내 여자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에나도 말하지 않았다. 사실은 말할 여유가 없었다. 무척 긴장되었기 때문이다. 제 발로 이 집에 걸어들어왔지만, 잘 모르는 사람의 집에 혼자 들어오는 건 긴장될 만한 일이 맞다. 뒤를 따라서 복도를 걷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안내받아 도착한 곳은 일 층의 끝방이었다. 사실 끝방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체감상 꽤 오래 걸은 것 같으니 아마도 복도의 끝 쪽에 가깝지 않을까. 방의 내부에도 불을 밝히지 않은 건 마찬가지여서, 새카만 어둠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기, 혹시, 불을 좀…….”
“아아, 그렇죠.”
여자는 나긋나긋한 얼굴로 방의 초에 불을 붙였다. 불 하나만 붙였는데도 방 안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여자는 좀 더 안쪽으로 가더니 철제 난로에도 한 번 더 똑같이 했다. 이제는 방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제야 이 저택의 온도가 실내치고 꽤 낮았다는 걸 깨달았다. 난로에 불이 붙고 나니 비로소 긴장이 탁 풀리고, 얼어있던 긴장도 녹아내렸다. 여자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숄이 검은색이 아니라 진한 보라색이라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저녁은 드셨어요?”
“아뇨…….”
“짐 좀 풀고 계세요. 저희도 이제 식사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거든요.”
저희라는 말이 걸렸다. 저녁 식사 시간인데도 주무시고 계셨던 남의 어머니와 어색하게 한 식탁에 앉게 되는 것일까. 따로 주인의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선뜻 방문객을 맞아주는 걸 보면 사용인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큰 저택을 사용인 하나 없이 관리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게다가 저택의 불은 왜 몽땅 꺼 둔 것인가. 의문은 안내받고 난로에 불이 붙고 저녁 식사를 권유받고 나서야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 의문이 늦었다는 걸 안다.
“식당은 어디예요?”
여자는 에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고는 눈꼬리를 살짝 접어가며 웃었다.
“목욕으로 여독을 먼저 푸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식사하란 말인가, 하지 말라는 말인가. 식사 전에 목욕이나 하라는 건가, 아니면 식사 대신 목욕이나 하라는 건가. 무어라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여자는 방의 더 안쪽에 딸린 문을 열었다. 문 안에는 손님용 방 치고는 사치스러울 만큼 화려한 욕조가 딸려 있다. 여자는 에나를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직접 밀어 넣은 건 아니고, 들어가기를 종용하듯 지긋이 헝클어진 머리를 바라봤다. 에나는 약간의 수치심을 느끼며 군말 없이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고양이 발이 달린 세라믹 욕조를 실제로 본 건 이게 처음이다. 물 자국 하나 없이 반짝반짝한 수전을 돌리면 뜨거운 물이 콸콸 흘러서 욕조가 순식간에 가득 찼다. 옷을 하나씩 벗어서 세면대 옆 스툴에 놓고 조심스럽게 물에 몸을 담갔다. 욕조에 앉고 나서야 옆 선반에 놓인 이런저런 입욕제가 보였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단 하룻밤 눈을 피하고 싶어서 시도한 것 치고 지나치게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접대라는 자각이 있다. 이런 호사가 싫은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다만 마냥 좋은가 하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어렸을 때 그림책에서나 보았던 공주님의 호화로운 욕실(사실 진짜 공주님은 더 화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나의 식견으로는 이 정도 욕실만으로도 충분히 과부하였다)에 진짜 들어앉아 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그리고 불길했다. 불편했고.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으로는 지금 살갗부터 살 안쪽, 뼈 안쪽까지 데워주는 온수가 너무 좋았다.
목욕을 마치고, 처음 입고 왔던 제 옷을 다시 걸친 후 문을 여니 침대 발치에 깨끗한 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집주인과 비슷한 디자인의 검은 드레스였다. 에나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놓고 여자가 준비해 놓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머리칼을 수건으로 몇 번 더 탈탈 털어내고 화장대에 앉아 얼굴을 확인하려 할 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지금 준비를 다 끝마쳤다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의도된 타이밍 같았다.
“목욕은 즐거우셨나요?”
“네. 옷도 감사해요.”
“어울려요.”
에스코트처럼 왼쪽 팔이 내밀어졌다. 이런 대접이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면서도 마지못해 그 팔에 손을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