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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나마후 / 이런 작별도 있다 (sample)

2026 01 디페스타



1장


부친은 오 년 전에 사라졌다.

아직까지 원망하고 분노하는 건 손해라는 걸 안다.

지금이야 도태된 낭만꾼이라고 힐난하지만, 에나는 한때 부친의 그런 모습도 좋아했다.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나보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특별하다고 했어. 그리고 우리 아빠는 남들과는 좀 다른 말을 한다. 남들과는 좀 다른 우리 아빠가 나더러 세상에서 제일 특별하다고 했다. 그럼 나는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사람일지도 몰라.

오래된 이야기다.

코흘리개 유년기 시절에는 다들 그런 특별함을 꿈꾼다. 그 특별함이 그 남자를 생존 전선에서 탈락시키고, 아니, 자신을 스스로 도태시키고, 죽음으로 몰아가게 할 줄은 몰랐던 시절이다.

에나는 부친이 죽었다고 믿었다. 그편이 더 깔끔하고 편했다. 부친이 죽었다고 믿는 건 에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동생도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오로지 모친만이 부친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부친은 헛되게도 봄을 좇다가 실종되었다. 이 손바닥만 한 마을에서 실종되어 봐야 어디로 사라지겠나.

산에는 혼자 가지 마라.

노인들이 그렇게 경고할 때, 부친은 그저 딸의 손만 꼬옥 잡고 있었다. 난 이미 아빠랑 손 잡고 있는데, 아빠는 손을 더 세게 그러쥐는 것이었다. 그때는 산에는 혼자 가지 말라는 말의 강조라고 여겼는데, 지금 와서 생각보면 그건 반발이었다. 차마 딸 앞에서는 그런 티를 못 냈던 거다. 산에 혼자 가는 건 위험하니까.

부친은 그걸 알면서도 결국 산에 갔다.

직접 가는 걸 목격한 사람은 없지만. 부친이 실종된 걸 알았을 때 자연스럽게 그게 떠올랐다. 부친의 손을 잡고 있던 그 순간을. 산에 혼자 가지 말라는 노인들의 말에 반발하듯 딸의 손을 움켜잡았던 그때를. 그것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모친은 동네 청년들을 불렀다. 그들은 개를 몇 마리 풀어서 손바닥만 한 마을을 순식간에 뒤졌다. 그 때의 에나와 동생은 어린애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동생이 이웃집을 순회하며 부친의 행방을 묻는 동안 에나는 집에서 모친 곁에 있는 것만 할 수 있었다. 더운 보리차를 내밀어도 모친은 고개를 저었다. 대신 딸의 손만 꼬옥 잡았다. 그날 부친이 에나의 손을 그러쥐었던 것처럼.

엄마, 나 아빠가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아.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아빠가 산으로 갔다는 걸.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으니까. 아빠는 나에게 못하는 이야기도 엄마에게는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아빠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엄마에게는 더 많은 것을 말해줬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이 말을 해도 엄마가 크게 놀라지 않을 것 같아.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엄마의 얼굴이 너무 슬퍼 보여서. 엄마는 슬픔을 견디고 있어서. 산으로 갔을지도 모르는 아빠보다도, 지금 바로 제 앞에서 지극히 많은 것을 인내하고 있는 엄마에게 더 마음이 갔다. 엄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에나는 아무 말도 안 하기로 했다. 대신 엄마의 손을 꼭 그러쥐었다. 그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땀이 척척하게 배어 나왔다. 에나는 더운 보리차가 담긴 컵을 손난로 삼아 엄마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보리차를 쥔 엄마의 손등을 제 손으로 덮었다.

부친은 결국 찾지 못했다. 옆 동네에서 사람을 더 빌려왔지만 결국 못 찾았다. 부친이 산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청년들이 산에 올라가 샅샅이 뒤졌음에도 부친은 찾을 수 없었다. 오늘내일하는 노인들이 혀를 찼다. 설녀에게 잡아먹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과부가 된 모친과 에나와 동생을 안쓰러워하기만 했다. 부친이 사라진 것보다도 이게 더 화가 났다.

부친은 겨울을 뒷전으로 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계절을 그리워하다가 겨울에 잡아먹혔다. 겨울에게 벌받은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에나는 에나대로 살 수 있었다. 아빠를 가엾게 여기며 아빠를 평생 그리워하는 딸로 사는 건 이 계절에 맞지 않다.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부친에게는 부친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나에게는 엄마가 있고 동생이 있으니까.

한 살 터울 동생은 머리가 좋았다. 에나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어도 에나의 말을 아주 잘 이해했고, 에나의 마음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그 짐작이 틀린 적도 없다. 동생은 모든 일에 적응이 빨랐다. 누나보다도 더 요령이 좋았다. 싹싹하고 말귀를 잘 알아듣고 야무지다. 좋든 싫든 다들 동생을 의지했다. 엄마도 동생에게 의지했다. 에나는 동생이 건방지다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끔 의지했고, 도움받았다.

그런 동생도 사라진 게 닷새 전이다.

에나는 부친이 실종되고 나서 엄마가 한 번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눈사람처럼 녹아내릴 것 같은 엄마를 지켜낸 건 엄마였다. 엄마는 지고한 인내 끝에 얼음처럼 단단해졌다. 그때는 에나도 동생도 어리고 약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엄마는 단단해질 수 있었다.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지금은.

동생이 실종된 걸 알았을 때 엄마는 침착했다. 하지만 에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머지않아 또 무너질 것이라고. 다시 눈사람처럼 녹아내릴지도 모른다고. 에나는 그런 엄마를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실종된 동생을 걱정은 한다. 허나 슬퍼만하기에는 좀 바빴다. 시간이 있다면 분노에 쏟고 싶었다. 개자식. 우리 집 남자들은 다 하나같이 개자식이야. 엄마가 한 번 더 무너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을 청년들이 한 번 더 개를 풀었다. 손바닥만 한 마을을 순식간에 뒤졌다. 부친이 실종되었을 때처럼 그렇게 열렬하진 않았다. 애가 둘이나 딸린 가장이 실종되면 큰 문제지만 엄마와 누나가 있는 한참 나이의 남자애가 사라지는 건 실종이 아니라 가출이라고 생각해서. 청년 중 눈치 없고 멍청한 녀석 하나가 실실 웃는 소리를 했다. 동생 여자 친구 있는 거 아니야? 들고 있던 빗자루로 그놈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갈 수 있는 곳도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산에는 혼자 가지 마라.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든 이야기를 짓고 전략을 만들었다. 산에는 혼자 가지 말라고. 하지만 에나가 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은 이것뿐이었다. 산이라도 가야 했다.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그거라도 해야 했다.

엄마, 나 걔가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아.

확신하는 단언은 낮았다.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대신 양모로 짠 목도리만 건넸다. 부친의 스웨터를 풀어서 만든 것이었다. 이제는 엄마도 아빠의 죽음을 아는 것이다. 아빠가 안 온다는 걸 안다. 아들의 귀가를 위해, 딸의 무사 귀환을 위해 남편의 스웨터를 거두어 목도리로 만든 것이다.

“엄마는 걱정하지 마. 아니, 물론 걱정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걱정할 거면 조금만 해.”
“걱정을 왜 하니? 걱정한다고 네가 안 간다니?”
“그건 아니지.”

엄마는 목도리를 손수 매어주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딸아, 내 딸아. 모름지기 걱정이라는 건 말이다.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나 하는 거란다. 내 손으로 해결이 안 되는데 뭐 하러 걱정하니. 뭐, 그래도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게 인간의 마음이라니까. 그러니까,

“적당히 걱정할 테니까 네 앞가림이나 잘하고 다니렴.”

그리고 에나의 이마를 검지로 톡 쳤다. 이마를 건드려지는 건 철 들고 나서 처음이었다.

부친이 실종되었던 그날. 더운 보리차를 엄마의 손에 쥐여주며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엄마는 이마를 톡 하고 쳤다. 간신히 참으면서, 간신히 웃으면서. 지금의 엄마도 간신히 참고 있을까? 간신히 웃는 걸까? 지금의 에나는 그걸 헤아릴 수 없다. 엄마를 헤아리는 것보다 더 급한 게 있으니까. 붕괴되기 전에 수복하러 가야 했다. 동생을 원위치에 되돌려놔야 했다.

동생은 성실했다. 그전까지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무릎에 흙이나 잔뜩 묻히고 뛰어다녔다. 부친이 실종되고 나서는 원숭이 생활을 그만뒀다. 그리고 차분해졌다. 성실해진 만큼이나 약간 건방져져서, 손위 누이를 누나라고 부르기를 관두고 이름을 불렀다. 버르장머리 없게도. 처음에 몇 번 그것을 지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 호칭이 누나나 에나나 그게 그거였다. 성실해진 동생이 약간은 기특해서 만족스러웠고, 좀 많이 달라져서 그만큼 불쾌했지만. 그런 걸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 무렵의 남매는 부친의 빈 자리를 수복하기에 바빴으니까.

부친의 빈 자리라고 해도 그 공석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가정의 생계를 꾸리는 건 모친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부친을 좋아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한가운데는 모친이다. 모두가 엄마를 좋아했다. 동생도 에나도 부친도 엄마를 정말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집의 한가운데는 엄마의 자리였다.

에나가 생각하는 간질거리고 욱신욱신한 것들은 전부 부친이 갖고 있었다. 부친은 가끔 해바라기나 모란, 사과처럼 낯선 발음을 했다. 장마. 벚나무. 뙤약볕. 아지랑이. 그런 부친은 세상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 같았고 에나도 그런 걸 좋아했다. 어린애들은 그런 걸 동경한다.

반면 에나가 생각하는 야무지고 단단하고 타당한 것들은 전부 모친의 것이었다. 부친에게는 없는 것이다. 부친이 갖고 있는 간질거리고 욱신욱신한 비밀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모친의 야무지고 단단하고 타당한 것은 모두에게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친이 집의 한가운데에서 중심을 잡았던 것이다.

에나는 생각했다. 실종된 게 부친이라 다행이라고. 사실 그런 부친이라 실종된 거겠지만. 모친이라면 그런 걸 좇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아빠는 밀죽을 먹는 주제에 해바라기 모란 사과 장마 벚나무 뙤약볕 아지랑이 이런 생각이나 하는 사람이라 사라진 거다. 아니, 우리를 버리고 도망친 거다. 밀가루같이 사는 게 질려서, 밀가루처럼 퍼슬퍼슬 날아 가 버렸다.

실종된 게 아빠라 천만다행이지.

엄마가 사라졌으면 그날 온 식구들은 다 같이 밀가루 행이었다.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퍼슬퍼슬 죄다 날아갔을 것이다.

엄마는 배웅하지 않았다. 배웅이 거창해 봐야 좋을 게 없다. 부담스럽고. 영영 못 돌아올 것 같고. 그래서 배웅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주방에 서서 잘 다녀오라고 했다. 일찍일찍 다니라고.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밤에는 추우니까. 한동안 못 돌아올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에나는 이 나이에 통금 시간이 어디 있냐고 입을 비죽거렸다. 한동안 안 돌아올 걸 알아서 그렇게 말했다.

후타바는 배웅하면서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후타바는 양친도 없이 조모와 단둘이서 살았다. 양친은 후타바가 어렸을 때 사라졌다고 한다. 후타바의 양친이 겨울을 배반한 사람들인지는 모르겠다. 겨울 속으로 사라진 건지 겨울 밖으로 사라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에나는 후타바를 보면 유년기가 떠올라서 가끔 불편할 때가 있었는데, 후타바 옆에 있으면 종종 간질간질하고 욱신욱신한 것이 기분을 침범했기 때문이었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잘라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후타바 옆에 있으면 그런 추억이 강제로 떠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후타바가 싫진 않았다. 좋아할 이유가 모자랄지언정 싫어할 이유가 확고하지 않았다. 그저 후타바 옆에 있으면 간질간질하고 욱신욱신하고 부친의 손을 잡고 있었던 때를 회억하게 될 뿐이었다. 그건 재채기가 나오기 직전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아무튼 후타바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양손을 맞잡았다.

“어머님께는 내가 자주 찾아뵐게.”
“너도 건강 잘 챙겨.”
“유키히라 선생님께도 말씀드렸어.”
“뭐를?”
“에나가 떠난다고. 그랬더니 어머님 잘 챙겨 드려야겠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에나도 너무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말라는 하는 후타바의 얼굴은 눈물과 걱정으로 얼룩덜룩하다. 누가 누구한테 걱정하지 말라는 거니? 난 후타바 네가 더 걱정돼. 난 내가 별로 걱정되지 않아.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대답 대신 발갛게 부은 후타바의 눈가를 슬슬 쓸어 넘기기만 했다.

“그리고 이거.”

후타바는 부스럭거리면서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기 딱 좋은 크기다.

“산딸기 말린 거야.”
“어디서 이렇게 많이 났어?”
“다 같이 모았어. 우리 할머니랑, 그리고 학교의 다른 친구들이랑.”
“고마워. 잘 먹을게.”
“추우면 안 돼, 에나. 항상 따뜻해야 해.”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후타바가 말하면 간질간질했다. 겨울을 못 견디고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건 오히려 후타바 같은 사람이다. 동생이 아니라. 그런데도 후타바는 이 혹독한 계절을 사붓한 마음으로 견뎌낸다.

나긋나긋하고 간질간질한 건 후타바다. 후타바는 드물게 말에 온도가 있고 점성이 있는 사람이다. 이 마을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기로 치자면 후타바가 단연코 1등이었다. 에나는 후타바가 너무 간질거려서 부친처럼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걱정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후타바는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반면 동생에게는 한 번도 그런 걱정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제가 동생에게 걱정을 받는다면 받았지. 제가 동생을 걱정한 적은 없었다. 동생은 이 마을에서 어울리기로 치면 1등이었으니까. 부친을 닮았고, 부친을 사랑해서 부친의 욱신거림을 기억하는 에나와 달리 동생은 그런 낌새가 없어 보였다. 누나가 보기에 동생은 엄마를 훨씬 더 많이 닮았다. 이 세상에 살아가기 훨씬 더 적합한 타입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동생이 사라졌을 때 몹시 의외였다. 그런 낌새도 안 보였던 애니까. 성실하고 약삭빠르고 똑 부러지고, 아무튼 누나보다는 더 나은 동생이라고. 싫어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더 배신감이 큰 걸까…….

지금도 사라진 동생이 어디서 뭐 하고 있을지 걱정되지 않았다. 그냥 괘씸했다. 낌새라도 보였으면 좋았잖아. 부친이 사라진 것보다 동생이 사라진 게 더 충격이다. 부친은 사라질 만한 사람이니까 사라졌다고 치자. 하지만 동생은 사라질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엄마가 또 무너지기 전에, 나 자신 마저 분노로 수몰되기 전에, 동생을 원위치에 놓아야 했다.

얼굴을 보자마자 흠씬 두들겨 패 줘야지.

건강과 안부를 묻기 전에 이게 먼저다.

에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을 밖을 향해 발을 내디딘다. 여행자의 기분도 낭만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완전히 화가 나 있다. 잔뜩 화가 난 상태로, 분노를 연료 삼아 동생을 응징하러 간다. 겨울을 배반한 아빠는 세상의 밖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가족을 배반한 동생은? 세상 밖으로 사라지면 곤란하니 원위치에 돌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따귀를 힘껏 후려쳐야지 싶었다.

우리 집 남자들은 다들 하나같이 개자식이야.

속눈썹이 조금씩 얼어붙기 시작했다. 뺨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견딜만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른다. 산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올랐다. 산에 들어온 뒤에는 뭘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정표는 산 뿐이었다. 그래서 막상 산에 도착하고 나니 갈 곳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어디로 가도 상관없다는 말이다.

산 안에서 보는 산의 풍경은 어디를 가도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활엽수들의 시체가 눈을 잔뜩 짊어지고 있고, 침엽수가 드문드문 보였다. 온 세상이 전부 하얀 와중에 침엽수가 있어서 그나마 덜 단조로웠다. 나뭇가지 밑에는 삐죽삐죽하게 고드름이 얼어있다. 나무 끝에 매달린 얼음 조각이 샹들리에 같았다. 바람이 불면, 샹들리에 알갱이들이 얼음 같은 소리를 냈다. 짤랑짤랑, 짤랑짤랑, 작은 종처럼 울었다.

산에는 혼자 가지 마라.

그러나 그러기에는 지금의 풍경이 너무 평화로웠다. 혼자 있어서 오히려 약간은 호젓한 기분마저 들었다. 동생을 응징하려고 산에 올랐는데, 그런 것 치고는 산의 풍경이 제법 낭만적이었다. 마을에서 본 겨울은 이렇지 않았다. 그건 그냥, 밀가루 같은 날들이었다. 하얗고, 둥둥 떠다니고, 퍼슬퍼슬 부유하고, 후우 하고 불면 날아가 버릴 것처럼.

나무와 나무 사이로 흰 새가 우짖으며 날아다녔다. 침엽수 근처에는 낮은 덤불도 보였다. 녹색 덤불 위에 빨간 열매가 장식처럼 콕콕 박혀 있었다. 먹어도 문제없는 것인지는 확신이 없어서, 몇 개를 따다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아서 후타바가 챙겨 준 산딸기를 몇 개 꺼내 먹었다. 가끔 눈토끼를 볼 수도 있었다. 온통 흰 눈밭 위로 흰토끼가 도망 다니는 걸 좇는 건 쉽지 않았지만.

해가 지기 전에는 어디든 들어가야 하는데.

해가 지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라던 엄마.

사위가 조금씩 잿빛으로 물들어 갈수록 마음이 다급해졌다. 다급한 마음을 재촉하듯이 눈토끼가 앞서서 달아났다. 이따금 이쪽을 뒤돌아보면서.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것 같았는데 이쪽을 안내하는 것 같기도 했다. 토끼의 인도 따위에 신경 쓸 이유도 없는데. 토끼 굴은 너무 작아서 내가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 저택은 그때 나타났다.

왜 그동안 모르고 있었는지 의문스러울 만큼 반듯하고 세련된 건물이었다. 꼭 오래된 동화에 나오는 성처럼. 마을에 있던 건 전부 집이고, 이런 걸 저택이라고 하는 걸 거다.

산에는 혼자 가지 마라.

노인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안다. 뻔하게 아무것도 없는 산에 뻔하게 갑자기 보이는 저택. 정원이 딸려있고, 분수대가 있는,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저택은 너무 편리해 보였다. 그리로 가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해가 지고 있었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어디로 들어가야 했다.

동생도 이랬을까.

산에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 이 산 너머에 다른 마을이 있는지, 거기에 사람이 살기는 하는지 모른다. 이 산 끝에는, 노인들 말에 의하면, 바다밖에 없다고 했다. 이 산은 에나가 아는 세상의 끝이다. 어차피 이 저택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동생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느새 발걸음은 너무 쉽게 저택을 향하고 있었다. 수상쩍은 걸 알면서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