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도 밤도 없이 사람들은 희뿌연 겨울에 살았다. 생산할 수 있는 작물이라고는 밀밖에 없어서, 다들 그걸로 먹고 살았다. 밀가루빵, 밀전병, 밀떡, 밀죽……. 다들 그런 것만 먹고 살았다. 사람들은 얼굴이 전부 밀가루처럼 허여멀겠다. 밀가루 같은 사람들이 밀가루처럼 퍼슬퍼슬하게 살았다.
왜 계절이 멈췄는지는 모른다. 그건 그냥 자연재해니까. 자연재해에 이유를 따지는 것도 이상하다.
처음 몇 년간은 꽤 고생했다고 들었다. 에나도 오래 들어서 안다. 자신의 겨울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진즉 끝났다는 걸.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이 계절을 겨울이라 부르지 않았다. 계절이라는 말도 쓰지 않았다. 자연재해는 그런 거다. 어떻게든 빨리 적응하는 사람만 살아남는다.
산에는 혼자 가지 마라.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든 이야기를 짓고 전략을 만들었다. 산에는 혼자 가지 말아라. 그곳에는 설녀가 산다. 뻐드렁니가 뒤죽박죽 나 있어. 머리는 잔뜩 풀어 헤친 백발. 눈은 겨울 호수의 밑바닥처럼 시커멓고 푸르다. 설녀에게 다가가지 말아라. 호흡을 빼앗기고 혈색도 빼앗기고 차가운 몸뚱이만 남게 된단다. 설녀는 네 심장을 꽁꽁 얼려서 제 오두막 깊은 곳에 숨겨둔다. 그걸 빙과처럼 간식 삼아 먹는다.
에나는 십 년 전부터 이게 죄다 허풍이란 걸 알았다. 여덟 살이면 어느 정도 사리 분별도 되고 어른들 말귀도 대충은 알아듣는 나이니까. 하지만 마을 꼬맹이들에게는 이게 허풍이라는 말 따위 절대 하지 않았다. 굳이 가공의 설녀를 내세우지 않아도 될 만큼 산은 충분히 위험한 곳이 맞으니까. 얼음과 눈 밖에 없는 산은 들짐승도 없다. 설녀의 오두막 주변에는 눈으로 뭉쳐 만든 범이 어슬렁거린다는 소문만 있다. (당연하지만 눈으로 뭉쳐 만든 범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가끔 태양을 그리워했다. 너무 많이 그리워하진 않았다. 아주 가끔만 그리워했다. 지금은 없는 계절을 아주 가끔만 몰래몰래 회억했다. 너무 많이 그리워하던 사람들은 오래전에 진즉 미쳐서 죽었다고 한다. 너무 많이 그리워한다는 건 이 계절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만족하지 못하니까 그리워하는 거고, 만족하지 못하니까 도태되는 거다. 그건 떳떳한 일도 아니고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