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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ple) 아키코하, 앵콜요청불가





3장



「아즈사와 코하네입니다.」

사흘 전 받은 메시지는 연락처를 저장하지 않은 채 그대로다. 그날 이후 아직 아즈사와를 본 적은 없다. 원래도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꼴로 왔으니까 특별할 건 없다. 다만 메시지가 시노노메의 스마트폰에 부채처럼 방치되어 있어서 신경 쓰였다. 제가 방치했지만 신경 쓰였다. 그야, 부채니까.

‘말을 왜 걸고 싶었는데?’

따지는 게 아니라 시노노메는 정말 궁금했다. 자기한테 싫은 말을 한 사람이라면 보통 얼굴 보기 싫지 않나. 정말 오래전의 일이라 다 넘겨버리고 없던 셈 치고 말을 걸고 싶어질 수가 있나. 시노노메는 아주 보통의 사람이라 그런 거 알지도 못하고 이해도 안 갔다. 맥주 두 병을 비웠지만, 세 병째를 주문할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즈사와가 그 말만 안 꺼냈어도 한 병 더 주문했을 터였다. 시노노메의 속도 모르고 (알 턱이 없다) 아즈사와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술기운 탓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술기운 탓에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글쎄요, 딱히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 봤어요.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시노노메는 대꾸할 말을 고르기 어려웠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날 밤 그렇게까지 모질게 대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거칠게 내쫓을 필요가 있었을까. 이제 와서 그 말에 후회하는 건 아니다. 지나간 일에 대고 아쉬워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다. 시노노메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였다. 천진난만하고 무해한 마음가짐으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시노노메는 그저 할 말을 한 것뿐이다. 딱히 못 할 말도 아니다.

‘시노노메 씨는 어때요?’

시노노메가 신경 쓰는 건 그런 거였다. 그날 밤 실패한 공연 이후 아즈사와는 돌아오지 않았다. 예상대로의 일이라 별 감흥도 없었다. 그 뒤로도 시노노메는 언제나처럼, 평소처럼, 파트너와 활동을 계속했다. 비슷한 나이대의 또래 중에서는 그들보다 더 뛰어난 팀이 없었다. 괜찮잖아. 좋잖아. 지금 이대로 계속 해도……. 주변에서 누군가가 음악을 계속하거나 그만두거나 해도 시노노메는 음악이 좋았다. 노래가 좋았고, 무대가 좋았다. 시노노메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잘하는 게 그거였고 시노노메가 하는 것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게 그거였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댄스 실력이 늘었고 무대 매너도 능숙해졌다.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이는 것은 남들보다 확실히 소질이 있었을지도. 노래가 좋다는 데에는 이견을 들어본 적 없었으니까. 그 시라이시마저도 그건
인정했다.

그래, 시라이시. 시라이시에게는 한동안 경멸받았다. 여자애 한 명을 거의 울리듯이 괴롭혀서 내쫓은 거라고. 그건 비겁하고 비열하다고. 음향 사고를 낸 건 시노노메가 아니지만 굳이 정정할 생각은 안 들었다. 뭔가 그게 더 비겁하고 없어 보여서. 시라이시 역시 그런 시노노메를 경멸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소문내고 다니지는 않았다.

‘난 지금도 네가 잘했다고는 생각 안 해.’
‘그래.’
‘아직도 믿을 수 없어. 네가 정말 그런 짓을 했다는 게. 그리고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는지……. 다만 네가 그렇게 하면서까지 양보하기 싫은 게 있다는 건 잘 알겠어.’
‘그래?’
‘그래.’
‘그러니까, 난 정정당당히 실력으로 짓밟아 줄 거야.’

시라이시의 그 말만큼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 아즈사와가 떠나고 나서 한동안은 충격에 빠져 있었지만 시라이시는 결국 나름대로 납득했다. 그리고 빠르게 평소대로 돌아왔다. 팀을 결성하기 전까지는 활동 생각이 없었다던 말이 무색하게 곧바로 솔로로 활동했다. 시노노메와 함께 참전하는 공연에서는 특별히 더 전투적이었다. 거의 싸울 듯이, 잡아먹을 듯이 했다. 그리고 정말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그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열광했다는 전설의 밤. 고교 3년간은 거기에 목숨을 걸어도 좋다 싶을 만큼 몰두해 있었다. 3학년 겨울 학기가 끝나갈 무렵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그 전설의 밤을 뛰어넘었을까? 파트너가 정식으로 이별을 요청한 것도 그 무렵이다.

아주 예상 밖의 일은 아니었다. 아오야기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시노노메가 가장 잘하고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대이고 라이브였다. 반면 아오야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무대이자 라이브여도, 그가 가장 잘하는 건 바이올린이었고 해야만 하는 건 클래식이었으니까. 시노노메는 아오야기를 책망하기 싫었다. 지금까지 함께 어울렸던 건 진심이었다. 그 시간을 사랑했다. 면목이 없다고 어려운 표정을 짓는 아오야기를 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아오야기에게 물어본 건 다만 이것 하나다. ‘우리, 그 전설의 밤을 뛰어넘었을까?’ 아오야기의 대답은 이랬다.

‘시노노메가 어떻게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고 생각해. 나는 만족했고, 즐거웠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끝까지 가 봤으니까.’

그 말을 듣고 시노노메는 끄덕였다. 유학 준비를 병행하면서도 티 한 번 내지 않고 제 고집대로 어울려 준 파트너. 아오야기는 정말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의 끝까지 다 해봤다.

교정에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BAD DOGS의 해체식은 평화롭고 다정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파트너를 배웅하고 나서, 시노노메는 아오야기에게 했던 질문의 화살표를 다시 제 쪽으로 돌렸다. 그 전설의 밤을 뛰어넘었을까?

그렇게 닿고 싶어서 제 모든 것을 불태웠지만 확신은 들지 않았다. 기준이 너무 불명확했으니까. 전설의 공연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분명 한정되어 있다. 그 전설의 밤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증명하는 건 수치가 아니라 피부에 와닿았던 열기의 기억이다. 그건 결국 감각이라서, 아무리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오래전에 끝나 버린, 이제는 모두의 기억에만 있는. 해가 갈수록 추억과 미화가 덧대어져서 더더욱 견고해지는, 점점 더 신격화되어 버린 전설의 공연. 시노노메는 그런 걸 좇고 있었던 거다.

그날 밤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주인공마저도 이렇게 말했다. 그쯤 하면 충분히 잘한 것 같은데, 과거의 전설을 좇는 건 그만두고 네가 할 음악을 찾아보는 건 어때? 그때의 시노노메는 아직 놓고 싶지 않았다. 그 전설의 공연을, 그 영광을, 다시 만들고 싶은 마음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그건 한참 뒤에나 가능했다. 아오야기가 클래식을 위해 유학을 떠나고 난 뒤에야. 시라이시가 미련 없이 자신의 음악을 찾겠다며 미국으로 떠난 뒤에야.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시노노메는 여기에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서성였다. 서성이면서 할 수 있는 건, 당연하게도 음악뿐이었다. 솔로 활동하기에는 무리인 실력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까 작곡만 계속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장비를 사고, 스튜디오 대여비를 내고, 작업물을 업로드했다. 아오야기와 했던 것처럼 팀을 결성하고 함께 활동할 사람은 구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일상을 보낼 수는 있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뭐였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런 시노노메에게 아즈사와는 도전장처럼 그 말을 던진 거다.

‘시노노메 씨는 어때요?’

어떻긴 뭘 어떤데. 보다시피……. 시노노메는 멀끔하게 수긍해야 했다. 취미로 한다는 네가, 그럴싸한 각오도 없고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만 할 뿐이라는 네가 훨씬 더 빼어나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중이지. 시노노메처럼 재능 없는 노력가들은 안다. 아즈사와가 얼마나 타고난 사람인지.

고교 시절의 시노노메는 몰랐다. 자신이 그렇게까지 재능이 없다는 걸 몰랐고, 그렇게까지 노력해도 부족할 줄 몰랐다. 노력하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으니까 죽도록 하면 닿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노력의 경험치가 짧았기에 가능했던 상상이다. 노력을 훨씬 더 많이 해 본 지금은 확실히 안다. 자신이 아주 평범하고 그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았고, 비참하고 비굴할 만큼 노력해 보았으니까.

그래서 지금 어떠하냐면…….
그게 최선이었을까?

만일이나 어쩌면 같은 말은 싫어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건 깨진 달걀이나 닳아빠진 골무, 젖은 골판지만큼이나 쓸모없다. 그러나 마음의 어느 구석에서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상상이 범람하는 건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날 밤 아즈사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면. 나름의 선망과 각오와 결의에 담금질하고 온 눈을 정면에서 마주 볼 수 있었다면. 그 애는 가능했을까? 지금쯤…… 그 전설의 무대를 뛰어넘었을까?

시노노메는 즉답할 수 있었다. 아니라고. 아즈사와는 처음 본 사람한테, 고의로 음향 사고를 낸(것이라 추정되는) 사람에게 그런 폭언을 들어가면서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 말을 들어도 기어코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런 말을 들으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 싶은 사람도 있다. 시노노메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사람이었고, 아즈사와에게 묻고 싶었던 거다(그 형태가 다소 폭력적일지언정). 그에 대한 아즈사와의 대답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였다. 그 대답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결정을 내리고 나면 행동까지는 금방이다. 시노노메는 아즈사와의 연락처를 저장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주도 공연 보러 와? 나 그날은 오프라서 자리에 없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답장이 왔다.

「시노노메 씨 출근 날은 언제예요?」

근무시간을 정리해서 타이핑하는데 그 밑으로 연달아 메시지가 또 왔다.

「그날 맞춰서 갈게요」

그날 맞춰서 간다는 건 공연이 없어도 그냥 온다는 뜻인가? 속을 모르겠지만서도 일단 답장은 보냈다.

시노노메는 아즈사와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연락해 오는 이유를 가늠할 수 없었다. 좋게 끝난 사이도 아닌데 뭐 하러? 시노노메라면 그런 사람과 굳이 대면하고 싶지 않다. 좋지 않게 남은 기억을 구태여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고. 그런 시노노메에게 아즈사와는 그냥 한 번쯤 스트리트 음악을 하는 라이브하우스에 와 보고 싶었다고 했다. 시노노메에게 말을 걸어 보고 싶다고 했다. 이유도 없이 그냥 그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시노노메는 당연히 불편하다. 아즈사와를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그건 원래 특기다.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과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 나가는 건 시노노메에게 일도 아니었으니까. 아즈사와와 헤어지고 나면 눈감고 모른 체했던 이물감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반드시.

보통 상대방과 대화를 많이 하면 그래도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게 있지 않은가. 공교롭게도 아즈사와는 그 대상이 아니었다. 시노노메는 아즈사와와 만남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아즈사와를 모르게 되었다. 물론, 모르게 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시노노메는 앞으로도 아즈사와가 연락하고 말을 걸면 무심코 대답해 버리고 말 거였다.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아니, 자동으로. 시노노메를 정말 불편하게 하는 건 바로 이런 거였다.

시노노메는 아직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 일정표를 보냈다. OK 사인을 하는 이모티콘이 상큼하게 돌아온다. 아즈사와의 이미지와는 판이해서 그건 좀 웃겼다.

「목요일에 가도 되나요?」

언제는 꼬박꼬박 물어보고 왔나.

「편할 대로 해」
「좀 늦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일 끝나자마자 바로 갈게요」

시노노메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이제는 고민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안다)

「그래」

그리고 과연, 목요일 저녁 아르바이트가 거의 끝나갈 때쯤 되어서야 아즈사와가 왔다.

“드링크바 하나요.”
“곧 퇴근인데 그냥 거기 앉아서 기다려.”
“그래도 돼요?”
“공연 끝났는데 티켓값을 받는 것도 이상하지.”

주변에서 정리하던 스태프 몇 명이 히죽거렸다. 시노노메가 여자 데려왔다. 어디? 저기. 저 사람 나도 알아. 여기 올 때마다 둘이서 찰싹 붙어있던데. 할 거 다 하고 다녔잖아 저거.

복도에서 한 명이 장난스럽게 어깨에 팔을 걸쳤다.

“아키토 군 제법이잖아.”

시노노메는 이제 짜증도 안 났다.

“그래, 그래.”
“진짜냐!”
“몰라, 귀찮아. 알아서 생각해.”
“진짜구나!”

유니폼을 갈아입고 퇴근 카드까지 작성하고 나오니 아즈사와가 복도에 서 있었다.

“뭐야, 왜 벌써 나와 있어?”
“아까 동료분께서 알려줬어요. 시노노메 군 곧 나올거라고.”
“미안, 걔네 좀 시끄럽지.”
“다들 친절하시던데요 뭐.”

둘 다 저녁을 애매하게 먹어서 식당에 가는 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아즈사와는 부득부득 밥을 사겠다고 고집이었다. 괜찮으니까 다음에 사라고 말하려 했는데, 다음이라는 단어의 보편적 함의를 생각했을 때 썩 내키지 않아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래도 편의점 캔맥주 같은 건 너무하잖아요.”
“아니, 그냥 지금 맥주 말고 생각나는 게 없는데. 너는 있어?”
“아뇨…….”

그래서 편의점 캔맥주였다.

크고 작은 유명 라이브하우스가 밀집된 이 거리의 공원에는 평일 저녁에 버스킹 하는 뮤지션들이 꽤 있다. 라이브하우스를 갈 정도의 레벨은 안 되거나, 아직 주머니가 여의치 않은 학생들이 주로 그랬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공원에서 무작정 버스킹부터 했던 중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중학생? 애쓰네.’ ‘마이크만 잡는다고 다 뮤지션인가?’ 솔직히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는 말이다.

그들은 버스킹 장소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의 벤치에 자리 잡았다. 클래식기타와 노랫소리가 멀었다.

“시라이시랑은 그 뒤로 연락해 봤어?”

맥주캔 뚜껑을 따서 건네면, 가볍게 목례하고는 양손으로 공손히 받는다.

“아뇨. 용기가 없었거든요. ……좀, 비겁했던 것 같아요.”
“뭐가?”
“그냥……. 듣기 싫은 소리 좀 들었다고,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줬던 사람을 그렇게 모른 척 없었던 일인 척 흘려보냈다는 게.”
…….”
“시노노메 군, 뭔가 표정이 이상해요.”
“너도 알잖아.”

시노노메는 처음으로 아즈사와의 순진무구한 구석이 싫다는 생각을 해 봤다.

“그때 내가 했던 말 다 기억하잖아.”

다 알면서도 왜 여기서 나랑 이러고 있는데.

나랑 대체 뭘 하고 싶은 건데.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뱃속에 벌레를 풀어놓은 것처럼 속이 우글거렸다. 누가 국자로 휘젓는 것처럼 머리가 울렁거린다. 지금 고개를 돌린다면 아즈사와는 또 천진하고 무구한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얼굴이 보고 싶지 않았던 시노노메는, 캔맥주 리드만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