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그리고 이건 시노노메 씨.”
여기서 전철로 40분 거리의 라이브하우스 티켓이다.
“뭐야, 여기도 일단은 엄연히 라이브하우스인데. 타 업장 티켓 이렇게 쉽게 받는 거 곤란한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노노메는 티켓을 챙긴다.
여자는 그 뒤로도 종종 라이브하우스에 왔다. 통성명한 것도 그 즈음이다. 라이브하우스에 오는 게 아니라 시노노메를 만나러 오는 게 아닌가 착각하기 직전에. 시노노메는 여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앞에 아즈사와라는 성이 붙는다는 건 몰랐다. 이름을 듣고 나니 어쩐지 입에 익숙하게 달라붙었다. 솔직히 통성명을 할 때에는 들통날 거라 생각했는데, 시노노메의 이름까지 듣고 나서도 아즈사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시노노메는 이쯤 되어서 확신한다. 그날 밤에 대한 건 기억하지만 상대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도려내듯 잊어버린 거라고. 이건 차라리 잘 된 일일까? 그렇다면 처음 재회했던 날, 스테이지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만 같은 착각은. 그건 정말 착각이었던 걸까. 만약 착각이 아니었다면 왜 그렇게 나를 쳐다봤던 걸까. 그래도 이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노노메는 가볍게 치워버리기로 했다.
아즈사와가 주문하는 드링크의 종류는 언제나 엇비슷했으나 그때마다 서빙하는 시노노메의 마음은 조금씩 달랐다. 아즈사와는 스몰톡을 싫어하지 않았다. 말주변이 대단히 뛰어나거나 특별히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건 대부분의 사람이 다 그런 거니까 큰 상관이 없다. 다행히도 시노노메는 제법 말재주가 있었고, 음악 취향이 달랐지만 각자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분명 즐거웠다고 생각한다.
아즈사와는 Leo/need 정도 되는 밴드에서 객원보컬을 할 만큼 실력이 있고 인지도도 있다.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 시노노메 역시 구태여 그 주제를 꺼내지 않았고. 주제를 일부러 피한 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냥 서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화에서 언급되는 것와 언급되지 않는 것의 경계는 명료했으나 그 방식은 각자 모호했다. 작정하고 숨기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흐름. 그건 아즈사와가 그날 밤을 대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날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날을 부정하고 숨기지 않는다. 하지반 구태여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시노노메도 말 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 부터 라이브하우스를 전전하며 공연했던 것. 파트너와 팀을 짜서 활동했던 것. 그날 스테이지에서 아즈사와를 봤으나 노래를 듣지는 못했던 것. 시노노메를 기억할지도 모르는 아즈사와와 관련된 모든 의문은 한꺼번에 궤짝에 넣고 봉해버렸다.
그런 아즈사와가 오늘은 Leo/need 의 공연 티켓을 가져 온 것이었다.
“그래도 한번 쯤 와서 보면 좋을 것 같으니까
…….”
“너도 나와?”
“음
…….”
“맞구나.”
시노노메는 씨익 웃었다. 원래도 레오니드 티켓을 받아오는데, 이번에는 객원 보컬로 참여하는 거라서 티켓을 더 받아왔단다. 아즈사와는 약간 부끄러운듯이 말했다.
“어려우면 안 와도 괜찮아요. 정말로.”
“아니 아니, 그런 건 예의가 아니지.”
여기 스태프 중에 레오니드 팬이 있거든. 같이 가자고 하면 좋아할거야. 반드시 가겠다는 약속은 안 했지만 어쩐지 확답처럼 들리는 것 같다.
“학교 공부랑 병행하면 힘들지 않아?”
“아직 2학년이라 할 만 해요.”
“그래도 꽤 본격적이잖아. 이번에도 리허설 전에 일 등으로 와서 연습할 거지?”
“연습량이 부족할 지도 모르니까
…….”
밴드 활동은 어디까지나 객원 보컬로만 참여하는 거라고 했다. 원래도 그들의 연습 현장에 곧잘 놀러가곤 했다는데, 거기서 몇 번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객원 보컬을 제안받은 거라고. 합류하게 된 계기는 다소 독특할 것 같으면서도 납득이 쉽게 간다. “레오니드라면 정식으로 가입하기를 권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아즈사와는 어디든 소속되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본업인 대학 생활에 충실하고 싶다고. 밴드에 참여하는 건 취미의 연장선 같은 거라고. 이 대목에서 아즈사와는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이건 비밀이에요.’
‘뭐?’
‘취미라고 하면 대충대충 하는 것 같은 인식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밴드에 민폐에요.’
‘
…….’
한 번도 밴드의 일원이라고 생각한 적 없단다. 밴드 멤버들은 아즈사와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아즈사와는 밴드와 자신을 칼같이 구분지었다. 밴드는 프로를 염두에 두고 있다. 소꿉친구 밴드는 그들에게 우정다짐이나 취미를 넘어 네 명의 공동목표다. 아즈사와의 목표는 국가고시를 합격하고 수의사가 되는 것. 음악으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다만 공연을 할 때 만큼은 그 공연을 무사히 끝내는 게 진지한 목표가 된다고 한다. 취미라고 대충한다는 오해를 받거나 무시당하는 것만큼은 싫어서.
“이 정도면 취미의 영역을 벗어난 거 아냐? 취미라는 것 치고 그렇게 일찍 와서 성실하게 연습하는 녀석들 본 적도 없어.”
“어쩌다 한 번 가끔 하는 거잖아요.”
“그래도 품이 꽤 들지.”
“노래도 두 곡 밖에 안되는데요.”
“그래도 무대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잖아.”
아즈사와도 그건 부정하지 않는다. 무대에 올라가는 것, 거기서 노래하는 것, 관객을 이끄는 것, 세션과 호흡을 맞추는 것, 모두 힘이 드는 일이다. 그런 일을 아즈사와는 취미라는 단호한 이름 하에 일년 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올해까지만이에요.”
“왜?”
“내년엔 3학년이잖아요. 아마 시간 내기 어려울지도.”
“레오니드도 동의한거야?”
“물론이죠. 애초에 그래서 하겠다고 한 거니까.”
그 순간 기타 리프가 허공을 갈랐다. “아, 공연 시작한다.” 아즈사와는 얼굴은 즐겁게 무대로 향한다. 이제는 시노노메도 익숙해진 얼굴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다정하고 슬프고 달지 않다. 유실물을 회억하지도 않는다. 그저 즐거운 채로 무대를 향할 뿐이다.
무대에 오르면 어떤 얼굴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시노노메는 객석에서 아즈사와를 본 적 없다. 딱 한 번 보았을 때. 그때 아즈사와는 노래하지 않았다. 시노노메는 객석에 앉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고. 지난 공연에서는 측면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지금 아즈사와는 정정당당하게 시노노메의 손에 티켓을 쥐여주었다. 지금도 시노노메는 측면에서 아즈사와의 얼굴을 본다. 아직 단 한번도 정면으로 본 적은 없는 얼굴을.
마음은 무심결에 흘러나온다. 낮고 느리게.
“난 아즈사와의 보컬 좋던데.”
그리고 고조되는 음향에 묻힌다.
“네?”
아즈사와는 시노노메 쪽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흘러내리는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가며 눈썹을 찡그렸다. 시노노메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흘러나온 것을 주워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 닿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시노노메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티켓 하나는 미야모토에게 넘겼다. 팬이라고 자청하는 녀석에게 안 줄 이유가 없다. 남은 한 장도 안 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반대로 딱히 줄 이유도 없었다. 미야모토는 한 명이니까. 남은 티켓은 결국 제 것이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제 것이었는데 그걸 제 것이라고 하는 과정에서 좀 지체된 감이 없잖아 있다. 미야모토와 함께 가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옆에서 시끄럽게 호들갑 떠는 녀석이 있으면 아무래도 생각을 덜 하게 되니까. 그래도 어쩐지 혼자 가고 싶었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서 정정당당하게 보고 올 셈이었다.
전철을 타고 가는 길에는 그날 밤 제대로 된 무대를 보지 못했던 비겁함에 대해 생각했다. 시노노메의 잘못은 아니다. 그래도 시노노메는 그 녀석의 비겁함을 제 몫으로 떠안아버렸다. 그 바보의 비겁함이 누구 몫의 비겁함으로 바뀌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건 무대 위에서 일어난다. 기록되는 건 무대 위.
……그렇다고 믿었다.
의식하지 않기로 했지만 정말로 의식을 하지 않았다면 분명 거짓말이다. 시노노메는 의지와 관계없이 아즈사와를 의식할 수 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그날 밤 제가 아즈사와에게 뱉었던 말을 의식한다. 그런 걸 떠올려버리고 나면, 아즈사와가 불편해졌다. 그동안 시노노메가 아즈사와를 먼저 찾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찾아오는 건 언제나 아즈사와 쪽이었으며 그때마다 시노노메는 무방비하게 발견당했다.
즐거운 얼굴로 무대를 보는 아즈사와를, 비트에 맞춰서 몸을 까딱거리는 아즈사와를 떠올리면 그날 밤의 공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불편하고, 어색하고, 어려운 공기가. 그건 시노노메를 스멀스멀 갉아먹었다. 그런데도 정작 라이브하우스에서 아즈사와와 마주치는 순간 이 모든 것은 까맣게 잊어버린다. 아니, 마치 잊고 싶었던 것 마냥 한쪽으로 치워버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먼저 말을 거는 자신이 있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솔직히 아즈사와를 떠올리며 불편해하는 것 보다 아즈사와와 대화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이 관계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아즈사와는 (아마도) 모르고 시노노메만 아는 또 하나의 관계는 아예 없는 셈 치고 그저 웃고 떠들기만 해도 괜찮은걸까. 이건 옳은 일일까? 시노노메는 자신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냥 덮어놓고 모른 채 하는 것이 힘들었다.
공연 중간에 들어가는 거라 객석이 만원이었다. 어차피 시노노메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순서다. 처음부터 끝까지 라인업을 훑고 감상할 여유를 부릴 자신이 없을 것 같았다. 초대 받아서 가는 거면 보통은 꽃다발을 사 들고 가겠지만 내키지 않았다. 시노노메는 아즈사와의 초대로 온 게 아니니까. 그날 밤 Vivids라는 팀으로 딱 하루 활동했던 아즈사와 코하네의 무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비트와 리프와 인파 사이를 무기질적으로 파고들었다. 대학 동아리 축제에서 으레 등장하는 대중 가요가 편곡된 것이다. 관중들은 아우성을 치며 팬스를 흔들었다. 이렇게 사람의 홍수 속에서 무기력하게 떠다니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무척 생경했다. 관중석에서 무대를 바라보기 보다는 무대에서 관중석을 바라보는 게 더 익숙했으므로. 맨 앞은 당연히 힘드니까 적당히 뒤로 빠졌다. 측면으로 선다면 무대가 보다 가까워지겠으나 기왕 마음먹고 온 거, 정면이 좋다.
자리를 잡고 나면 어느새 Leo/need가 무대에 서 있다. 락 밴드 공연이 메인인 이 공연장은 아즈사와도 익숙한 것 같았다. 다른 멤버들이 악기를 연결하고 점검하는 것처럼 아즈사와도 마이크를 연결하고 스탠드 위치를 조정한다. 밴드 소개를 하고 멤버들이 인사한다. 아즈사와의 인사는 심플하다. 코하네입니다. 오늘 일일보컬로 참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모든 무대 영상에서 똑같이 쓰는 코멘트다. 연주가 시작되고 아즈사와의 입술이 열렸다. 오늘 Leo/need가 공연할 곡은 총 다섯 곡. 그 중에서 두 곡을 아즈사와와 함께 한다. 비트에 맞춰 손을 흔드는 사람들, 고개를 까딱이는 사람들,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녹화하는 사람들. 그 틈바구니에서 시노노메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아즈사와는 여전히 시노노메가 모르는 얼굴을 한 채다. 양손으로 마이크를 꽉 쥐고는 성실하게 온 마음을 담아서. 간절해보이기도 했다. 그 눈부처에 관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 보였다. 오로지 세션과 무대와 아즈사와만 있다. 시노노메는 그곳으로 무참히 끌려가버릴 것만 같았다. 마른 들판에 불이 붙듯이, 모래가 파도에 쓸려가듯이.
이제와서 평가할 생각은 없다. 아즈사와의 노래라면 이미 Leo/need의 공연 영상으로 충분히 들었다. 더군다나 그런 평가는 아무 의미가 없다. 깨진 계란이나 헤진 골무, 젖은 골판지만큼이나 쓸모없다. 하지만 아즈사와는 무대에 올랐고, 노래를 시작했고, 시노노메는 억지로 그날 밤에 다시 내팽개쳐졌다. 머릿속에서는 멋대로 그런 말이 울려퍼지는걸 막을 수 없었다. 확실히 실력이 뛰어나고 관객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고. 솔로곡을 부를 때는 무대를 제멋대로 포식하면서, 듀엣을 하면 그 호흡을 맞추는 것도 절묘하다고. 분하게도 시노노메는 그런 감상을 했다.
취미로만 했다는 아즈사와. 그렇지만 취미라고 얕보이기는 싫으니까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노력’한다는 아즈사와.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시노노메같은 사람들은 싫어도 알게 된다.
두 곡의 노래가 끝나고 아즈사와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시노노메는 그날 밤에 여전히 갇혀있는 꼴이 되었다. 그날 밤 있었던 건 네 명. 이 중 세명은 이미 그 밤을 떠난 지 오래인 것 같은데. 시노노메도 떠난 지 오래되었는데.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그 밤으로부터 떠나버린 아즈사와가 무대에 올랐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시노노메는 다시 그 밤에 유폐당한다. 이제는 세 번째 곡이 시작되었다. 사실 밴드의 진짜 공연은 지금부터가 맞다. 가장 인기 많고 좋은 곡은 맨 뒤로 배치되니까. 하지만 시노노메는 여기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화장실에서 찬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그날 밤의 기억이 휘발되기를 빌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미야모토가 나를 찾아 뒤풀이를 가자고 할까. 아니면 아즈사와와 마주치게 될까. 이렇게 수많은 관중들 속에서 나를 찾아낼 방법이 있을까. 그런 생각들도 모조리 찬물에 쓸려가길 바랐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복도에서 아즈사와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이번에도 찾아내고야 만 것이다. 시노노메가 어디에 있어도, 아즈사와는 당연하다는 듯이 시노노메를 찾아낸다.
“시노노메 씨!”
모자를 벗은 아즈사와의 머리칼이 조금 헝클어져 있다. 이미 이마에 땀방울을 잔뜩 달아놓은 주제에 시노노메를 보자마자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온다. 시노노메는 이번에도 또 무방비하게 포착당하기로 했다. 아즈사와와 대면하면 그날 밤의 기억이 휘발된다는 법칙이 이번에도 똑같이 적용되어 다행이었다.
“진짜 올 줄 몰랐어요.”
“안 간다고 한 적 없잖아.”
“아까 공연할 때는 못 봐서, 그리고 원래 시노노메 씨 바빴던 것 같아서, 안 올 줄
…….”
“바보. 무대에 있는데 어떻게 나를 찾아?”
“찾으라면 찾을 수 있죠.”
“너 시작하기 직전에 도착해서 그냥 뒷줄에 있었어.”
“그렇구나.”
“공연 끝나고 나서 뒷풀이지?”
“음, 아뇨.”
공연 시작 전에 인디 밴드 프로덕션 사람들이 왔거든요. 복도에 아무도 없는데도 아즈사와는 속닥거렸다. 시노노메는 저도 모르게 상체를 기울여 아즈사와 쪽으로 고개 숙였다. 아마 꽤 진지하게 레코딩 제의를 할 거 같아요. 그래서 그냥 먼저 나오려고요.
“왜?”
“왜냐니
…….”
“도망치는 거잖아.”
“그게 아니라,”
전 정식 멤버도 아니고 객원보컬이잖아요. 제가 옆에 있으면, 그런 이야기는 아무래도 불편하니까. 가까이서 본 아즈사와의 얼굴이 약간 붉었다. 메이크업 탓인지 홍조인지 모르겠으나 당황한 표정이다. 시노노메는 빠르게 수습했다.
“바보. 그냥 농담이야.”
“농담
…….”
“그래서, 이대로 귀가 할 셈?”
“시노노메 씨 말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후 그들은 공연장 인근의 중식집에 앉아있었다. 이 모든 흐름 중에서 시노노메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즈사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했는데, 시노노메도 거절 한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번의 거절할 틈이 있었고 핑계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무력하게 끌려나왔다. 이쯤되면 끌려나왔다는 말도 약간 이상하다. 열심히 따라 나온 모양새에 가깝다. 원래 이런 인상이었나? 좀 더 조용하고 남들에게 말 걸기 어려워 하는 타입인 줄 알았는데. 첫 인상과 달리 지금의 아즈사와는 허물없이 시노노메에게 먼저 말을 걸고 편하게 대한다. 중학생처럼 벌벌 떨던 그 작고 음침한 여자애랑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시노노메는 가끔 헛갈렸다. 그날 밤에 봤던 걔가 맞는건지.
그 생각을 하자마자 아즈사와가 먼저 연락처를 물어왔다. “시노노메 씨가 온다는 거 미리 알고 있었으면 좋은 자리 마련해 둘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 정작 시노노메는 그게 싫어서 뒷쪽으로 도망다녔다. 그런 속을 알 리가 없는 아즈사와는 무구하게 웃었다.
맥주를 한 잔씩 비우고 나니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그들은 대화를 멈추고 잠자고 교자를 먹는 일에만 집중했다. 먹는 속도는 시노노메 쪽이 조금 더 빨라서, 시노노메가 세 개를 다 먹고 난 뒤에야 아즈사와는 두 개째의 교자 입에 물었다. 요령이 없어서 만두 하나만 먹었는데도 립 메이크업이 다 지워졌다. 시노노메는 아즈사와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며 다 먹을때까지 기다렸다.
“배고팠나 보네. 거의 흡입 수준인데?”
“놀리지 말아요
…….”
“공연 시작 전에는 원래 속에 아무것도 안 들어가지.”
“시노노메 씨도 역시 그런 거 해 봤구나.”
시노노메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그날 밤에 대한 기억은 말끔히 날아간 채로, 이 분위기가 제법 안락해서 (왜 안락하게 느껴지는지는 모른다).
“원래 사람은 중요한 일 앞두고 다 긴장한다고. 나도 학교에서는 발표 직전에 물도 못 마셨어.”
“시노노메 씨 학교 다녀요?”
“그냥 동네 날라리인 줄 알았지?”
“
……그것도 그냥 농담인 거 맞죠?”
“응. 아즈사와는 농담에 약하네.”
그러면 아즈사와는 맥주 잔만 연거푸 들이킨다. 그리고 대뜸 미안해요, 하고 중얼거렸다. 대체 어디서 네가 사과해야 하는 거야? 시노노메는 킥킥 웃었다.
“왜 그렇게 주눅이 들어 있어. 노래는 그렇게 잘 하면서.”
스스로에게 자신감 좀 가져 보라고. 시노노메는 속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런 말을 하면 속이 없어질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프로 제안 받을 만한 밴드에서 노래하는 거잖아. 너도 그 정도 되니까 그런 데서 노래 하는 거라고.”
“레오니드는 맞는데 저는 아니에요.”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알맹이가 단호하다. 그렇게까지 딱 잘라서 말할 이유가 있나? 시노노메는 맥주를 한 병 더 주문했다.
“시노노메 씨가 아까 했던 농담 말인데요.”
“날라리?”
“아뇨, 도망친다는거요.”
사실 도망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거든요. 아즈사와는 맥주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주문한 맥주가 왔고, 시노노메는 교자 접시를 반납했다. 야키소바와 마파두부다. 음식이 나왔으므로 둘은 또 잠자코 먹기만 했다. 아까 아즈사와를 놀린 것이 무색하게 이쪽도 밥이 술술 들어간다. 시노노메는 그제야 저도 꽤 허기졌다는 걸 깨닫는다. 서너 젓가락 먹고 나면 건배를 하고, 또 서너 젓가락 먹고 나서 건배한다.
“아즈사와는 칭찬 받는 거 싫어?”
“네?”
“노래 잘 한다 했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아.”
“그렇다기 보다는
……. 레오니드랑 절대 같은 급이 아니니까 면목 없는거죠.”
“그게 그렇게 신경 쓰여?”
건배도 없이 또 맥주잔에 입을 댄다. 할 말이 없거나 생각 중일때는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대고 보는 게 버릇인 것 같다. 맥주 한잔을 또 비우고 난 뒤에야 고백은 흘러나온다. 낮고 느리게.
“프로의 긍지에 민폐니까
…….”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시노노메는 가까스로 입에 있던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실력이 꽤 좋다고 해서 프로 같은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만한 각오가 있어야죠. 레오니드는 그런 각오를 했고요. 저는 그냥 어쩌다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거예요. 고등학교 친구들이거든요. 다들 무척 상냥하고 착해서, 방과 후에 노래방을 같이 가거나 했어요. 솔직히 보컬 제안을 받았을 때는, 무서웠어요. 레오니드는 프로 데뷔가 목표잖아요. 그런 곳에 취미 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들이는 건 무서워요.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그래서 지금 이런 거 불편해?”
시노노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즈사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선은 맞은 편의 시노노메가 아니라 더 먼 곳에 있다.
“아뇨. 그저 즐거워요. 재미있기만 해요.”
첫사랑을 반추하는 것처럼, 결국 제게로 돌아오지 못한 유실물을 추억하는 것처럼, 다정하고, 슬프고, 달콤한 시선.
누가 봐도 굉장히 멋있는 음악을 하는 친구들인데, 그만한 각오를 가지고 진지하게 임하는 친구들인데. 그런데도 방과 후 노래방이나 몇 번 갔던 제게 말했어요. 저랑 무대를 같이 해 보고 싶다고. 재미있게 하면 좋겠다고. 물론 저는 그만한 각오 같은 건 없지만요. 그러니까
……, 음악을 전공한다거나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거나, 인생을 걸지는 못하더라도 뭔가를 바치고 감내하고 그런 건 좀 무섭지만요. 그래도 일상을 재미있게 가꾸어 줄 수 있어서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레오니드는 저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 준 거죠. 그만한 각오로 진지하게 꿈을 좇는 사람들에게, 어디까지나 객원보컬이고 취미로 잠깐 하는 제가 같은 선상에 놓이는 건 싫어요.
아즈사와가 말을 마쳤는데 뭐라 대답할 말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시노노메도 역시 맥주 한 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아즈사와는 딱히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지 않아보였지만 뭔가 대답을 해야 했다. 맥주가 두 병째 바닥을 보이고 나서야 시노노메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좀 아깝긴 한데.”
“뭐가요?”
“너, 잘 해. 몇 년만 더 일찍 시작했어도 지금 프로 데뷔 하고 남았을 것 같은데.”
아즈사와는 시노노메를 마주 보고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서클렌즈를 착용해서 그런가 눈이 더 크고 말갰다.
“그렇지만 전 그만한 각오도 없는걸요. 노래나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진심이 되는 것도 아니고.”
“
…….”
시노노메는 꼼짝 없이 덫에 걸렸다는 걸 인정한다. 이 사태가 오기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던 건 순전히 시노노메 몫의 부담이다.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더라? 시노노메의 손목을 잡고 멋대로 그날 밤으로 부터 구조했던 아즈사와가 이제는 시노노메를 그날 밤의 코너까지 몰아넣는 꼴이었다. 그러나 시노노메의 비관적인 예상과는 달리
“후후, 그냥 해 본 말이에요. 몇 년 전의 일인걸요. 시노노메 씨는 어때요?”
“나? 뭐가 어떻다는 건데?”
“지금도 계속 좋아하고 있으니까 아르바이트 하는 거 아니에요?”
시노노메는 말문이 막혔다. 그때 아즈사와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아, 이치카한테 연락 왔어요. 잠시만요. 그리고 메시지를 작성하고 다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미련 없어요. 딱히 싫거나 아쉬운 것도 없고요.”
“
……내가 기억하고 있을 걸 알았어?”
아즈사와는 부드럽게 웃었다. 눈꼬리가 축 내려간다.
“아뇨, 그냥
……. 말을 걸어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