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웅 하고 앰프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시노노메는 반사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놓고 무대로 걸어갔다. 이 라이브하우스에 처음 온 사람은 으레 앰프 찢는 소리로 신고식을 치르곤 한다. 연식이 꽤 되어서 다루는 데에 요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계단을 한번에 성큼 타 넘고 무대로 올라가면 앰프 옆 구석에서 작게 쭈그린 사람이 있다.
“거기 있는 마이크 쓰시면 안 되구요, 다른 거 갖다드릴게요.”
시노노메는 무대 안쪽 음향실로 들어가 마이크를 꺼내 왔다.
“아
……. 음
…….”
마이크를 앰프에 연결하는 동안 여자는 약간 우물쭈물하며 서 있다. 앰프나 연결단자를 망가뜨린 건 아닌지에 걱정하는 모양새다. 시노노메는 일부러 산뜻하게 말한다.
“단순 접촉 불량이에요. 앰프도 원래 좀 낡은거구요. 스태프한테 요청하시면 저희가 마이크는 세팅 해 드리고 있거든요.”
“아아, 네
…….”
“여기 처음 방문하셨어요?”
“네.”
“이름이?”
“아즈
……. 레오니드요.”
시노노메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밴드다. 주로 쓰는 공연장은 여기가 아니지만, 이렇게 타 지역으로도 공연을 올 만큼 이 바닥에서는 인지도가 있다. 고교 시절부터 드문드문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소문이 돌고 실력이 오르고 좋은 곡을 하니까 이제는 꽤 유명하다. 시노노메는 락이 주력이 아니라 잘은 몰랐지만, 지역 축제에서는 으레 이 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시노노메도 그런 공연에 참여한 적 있으니까 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이제 와서 하기는 다소 겸연쩍다.
“4시부터 전체 리허설인데, 일찍 오셨네요.”
“미리 와서 보충 연습을 좀 해 두고 싶어서요. 추가금 내고 스테이지를 빌리면 되나요?”
“아뇨, 딱히 그럴 필요는 없어요. 혼자 하시는거에요?”
“보컬만
…….”
보컬이 이렇게 생겼었나. 시노노메가 기억하는 보컬의 모습과는 좀 달랐지만. 목소리가 작고 소심하고 우물쭈물했던 것도 같다. 시노노메는 대수롭지 않게 녹음실로 여자를 안내했다.
“혼자 하시는거면 스테이지 보다는 방음부스가 나을거에요. 무대는 소리가 울리잖아요.”
“앗, 감사합니다.”
Leo/need 정도 되는 밴드의 보컬이면서 이런 것도 모르나? 그보다 이 사람, 아예 라이브하우스 자체가 처음인 것 아냐? 웬만한 라이브하우스면 방음부스 정도는 다 있을텐데. 의문투성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기로 한다. 보컬은 허리를 구십 도 가까이 꺾어서 인사하고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까지 조심스럽게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데 과하다. 여기 오는 밴드맨들이야 다 비슷비슷한 사람들이다. 스트리트 음악이나 락이나 기본적으로 흥미 내키는 대로 제멋대로 구는 녀석들이 많다. 이 라이브하우스는 그나마 좀 얌전한 편이긴 하지만. 요는 일단은 자유분방하고 경어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거였다. 밴드맨 답지 않게 지나치게 깍듯하고 정중한 경어가 이질적이었다. 동그란 안경이나 양갈래로 내려땋은 머리, 긴 스커트에 니트베스트 같은 걸 입은 옷차림은 더 이질적이다.
의문은 오후가 되자 바로 해소되었다. Leo/need 의 이름으로 예약한 밴드 멤버들이 하나 둘 씩 들어왔는데 그 중에서도 이 밴드의 보컬이 눈에 띄었다. 시노노메도 익히 알고 있었던 얼굴이다. 아까 그 사람이랑 왜 착각했던 걸까? 체구부터 머리스타일이며 옷 스타일까지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데. 분위기가 어쩐지 비슷해서?
시노노메는 사람 개개인에 그렇게까지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니까 착각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컬의 얼굴을 보자마자 Leo/need의 익숙한 목소리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이 보컬이 원래의 진짜 보컬이고, 아까 봤던 안경 보컬은 신입 내지는 객원 멤버일 것이다.
“이 라이브하우스는 처음이니까, 무대 구조 먼저 잘 파악해 둬. 어둡다고 대충 보면 지난 번처럼 또 다리 헛디딘다.”
베이스가 입을 열자 주변에서 스태프들도 하나 둘 모여들었다. 아 맞다, 오늘 레오니드 공연이지. 여기는 스트리드가 메인이라 밴드는 잘 안 오는데, 그래서 그런가 좀 반갑네. 동료들이 한두마디씩 하길래 시노노메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나도 오랜만이다.
“그러고보니 시노노메도 A구에서 고등학교 나왔다 하지 않았어? 레오니드네 고등학교 근처.”
“그렇긴 한데
……. 솔직히 그때는 잘 몰랐지.”
“하긴, 그때부터 라이브하우스를 전전할 만큼 락에 미친 괴짜가 아니면 잘 모를 수도 있지.”
“미야모토는 어떤데?”
동료는 눈을 도륵 굴리더니 어깨를 으쓱한다.
“뭐
……. 적당히 좋아하지.”
“적당히?”
“보통 사람 치고는 좀 많이 관심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음악 같은 거에 커다란 꿈이나 열정은 없고, 그냥 듣는 거 좋아하는 거.”
“그런 건 그냥 팬이라고 하지 않냐.”
“아하, 맞다. 그렇지. 팬으로 정정.”
건너편에서 다른 동료가 부른다. 오늘의 특별 공연을 위한 핑거 푸드를 준비하려는 것이다.
“아 맞다, 오늘 케이터링. 나 먼저 음료 세팅하고 있을 테니까 네가 저 사람들 앰프 체크 좀 해줘.”
“뭐야, 그런 건 네가 더 잘 다루잖아.”
“오늘 사람 많이 올 것 같대. 할 거 많다.”
그리고 처음부터 세팅 넉넉하게 해 둬야 나중에 편할 거 아냐. 오늘 공연 본다는 스태프 많던데. 시노노메가 말을 덧붙이자 동료는 금새 납득했다. 공연장을 나와 주방으로 가는 길에 안경 보컬을 마주쳤다. 안경 보컬은 이번에도 주춤하면서 깍듯하게 목례했다. 대충 손을 흔들거나 하이파이브 따위를 하지 않아서, 시노노메는 자신이 라이브하우스가 아니라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리허설 시작할 거 같은데요.”
“네, 방금 연락 받아서
……. 지금 가는 길이에요.”
“그럼 고생하세요.”
“네에.”
안경 보컬은 오늘 라인업 중에서 가장 마지막 순서인데,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일찍 와서 따로 자율연습을 했다. 그렇게까지 음악과 자기자신에게 엄격한 인상인가 하면, 사실 상상이 잘 안 간다. 시노노메는 고교 시절 저런 타입의 사람들을 꽤 봐 왔다. 성실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이고 공부 잘하고 조용한 애들. 이렇게 시끄러운 스트리트 음악 라이브하우스나 밴드공연 같은 것과는 도무지 인연이 없어 보이는 애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같은 걸 할 것 같은 수수한 모범생.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돌연 입안이 텁텁해졌다. 시노노메는 고교 시절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와 클래식 음악을 하는 수수한 모범생과 전투적으로 음악을 했던 그 때가, 싫어도 생각날 수 밖에 없었다. 그 수수한 모범생을 떠올리면, 이번에도 또, 싫어도 자연히 연상될 수 밖에 없다. 제 분수에 맞지 않게 전투적인 스트리트 음악을 했던 모범생 파트너가 결국은 분수에 맞는 수수한 피아노를 치러 가는 결말로.
종종걸음으로 바삐 걷는 여자는 뒤로 하고 시노노메는 열심히 주방으로 휘적휘적 걸어가야했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다른 스태프들과 합류해서 음료와 생수통을 날랐다. 몸을 바쁘게 움직이면 생각을 덜 할 것 같아서였다. 당연하지만 생수병과 음료탱크 좀 나르는 일이 미치도록 고되지는 않았다. 음료를 나르고 스낵과 디저트를 쟁반에 옮겨 담는 동안에도 누추한 안심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오늘 공연이 락 밴드 메인이라 다행이라고. 자기가 좋아서 스트리트 음악 메인의 라이브하우스에 지원 해 놓고도, 비겁하게도 그런 생각을 해 버렸다.
입장객이 많을 거라고 스태프 전원이 각오한 덕분에, 본 공연이 시작되고 난 이후로도 손발이 꼬이는 일은 없었다. 공연장의 열기가 워낙 뜨거웠기 때문에 푸드보다 음료가 더 자주 동났다. 그럴 때마다 시노노메는 자진해서 음료 트렁크를 갖다 날랐다. 공연은 어느덧 마지막 무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시노노메 오늘따라 뭔가 성실하지 않아?”
“바쁘잖아.”
“그래도 이제 큰 거 다 끝났어. 이따가 레오니드인거 알지? 미야모토가 같이 보자고 하던데.”
“아, 걔 그 밴드 팬이래.”
“오늘 객원 보컬 왔는데 엄청 귀엽대.”
시노노메는 동료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이끌려 공연장으로 끌려나왔다. 무대 뒤쪽으로 가니 미야모토가 반색했다.
“잘 왔다. 나 대타 좀 해주라.”
“대타?”
“레오니드 무대 찍고 싶어서
……. 음향 좀 봐줘.”
“바보.”
“리허설 듣는데 다시 반하게 되더라.”
“갔다 와.”
밴드맨들은 이미 무대 위로 올라가서 세팅 중이었다. 아 맞다 마이크. 이 밴드는 보컬이 둘이니까 마이크가 하나 더 필요했다. 마이크를 하나 더 꺼내 들고 올라가 세팅했다. 무대 조명이 확 쏟아지는데다가 공연장의 공기도 후끈해서 약간 더웠다. 객원 보컬은 시노노메가 세팅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마이크를 보는거야 아무래도 좋았다. 당연한 일이고. 그래도 시노노메는 어쩐지 불편했는데, 여자의 시선이 마이크가 아니라 제 얼굴 쪽에 가깝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고 그런 쪽으로 바보같은 착각이나 헛바람이 아니라 정말 불편한 착각이었다. 마이크를 스탠드에 꽂고 안경 보컬 쪽을 바라보면,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친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이 쪽에서 먼저 시선을 돌려버리게 된다. 와, 뭐지. 나 진짜 바보같다. 여자 처음 보는 남자중학생도 아니고. 시노노메는 불편함을 끊어내면서 무대 밖으로 내려갔다. 시선은 그제야 떨어진다.
리더가 먼저 마이크를 잡고 인사했다. 요즘 인디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인데다 공연의 마지막이다. 멤버들이 한명씩 인사할 때 마다 공연장이 떠나가라 들썩였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울렁거린다. 마치 파도처럼. 연주가 시작되고, 시노노메가 들어본 적 없는 보컬의 성량이 관중의 파도를 덮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노노메가 Leo/need에서 들어본 적 없었던 보컬의 성량이 시노노메를 파도처럼 덮쳤다. 시노노메는 이 보컬을 들어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때는 고등학생이었고 상대도 고등학생이었다. 그러니까 아마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졌을테다. 그래도 이 목소리를 알았다. 성량도 보컬도 호흡의 처리방법도 모조리 모르지만 이 목소리만큼은 기억한다.
시노노메는 이 보컬을 들어본 적이 있다.
뱃속에서 파도가 울렁거리는 기분이 되어서, 시노노메는 자리를 옮겨서 무대를 본다. 무대 옆 음향실에서는 측면으로 안전하게 볼 수 있다.
뜨거운 조명이 무대로 쏟아지고, 객석은 그것보다 훨씬 더 뜨겁다. 조명 아래에 계속 서 있으면 타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만큼 뜨거운데. 밴드맨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뜨거운 온도로 연주한다. 원래보컬 조차도 일렉기타에만 집중하고 있다.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보컬은 오롯이 객원 보컬만의 몫이었다.
시노노메는 무대를 정면에서 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었다. 측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동그란 안경, 양갈래로 내려 땋은 머리, 베레모, 에스닉한 니트.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 제멋대로 편하게 신은 스니커즈. 깍듯하고 성실하고 수수한 모범생. 파트너 외에도 한 명 더 알았다. 전투적인 스트리트 음악과는 전혀 관련 없어보이고, 이런 라이브하우스에서 너무 이질적이라 오히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그야말로 수수한 모범생. 시노노메는 그런 사람을 한 명 더 알고 있었다.
수수한 모범생 보컬의 노래는 몹시 전투적으로 시노노메를 뒤덮는다. 그건 파도가 아니라 해일이었다.
“소꿉친구 밴드래. 낭만 있지 않아?”
“낭만
…….”
“어릴때부터 취미로 하던 밴드였는데 어느 새 저렇게 프로급으로 성장한 거래. 사실 대형 기획사에서 이미 스카우트 제의가 왔는데, 학창시절을 좀 더 오랫동안 즐기고 싶어서 거절한거라는 소문도 있던데. 이런 게 진짜 낭만이지.”
“그래.”
“대답에 성의가 없잖아.”
당연하지. 밤에 잠을 거의 못 잤으니까. 심지어 아침 조깅도 빼 먹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구태여 할 필요는 없으니까, 동료가 그러거나 말거나 대걸레로 바닥만 열심히 북북 닦았다.
“우와, 다크서클 무슨 일이야? 밤에 잠 못 잤어?”
“가끔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오늘 퇴근 찍고 나면 곧장 가야겠네. 너 몰골 심하다.”
“그럴 예정.”
동료는 어젯 밤의 라이브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서 허우적거리는 걸 즐기는 모양새였다. 출근하자마자 보이는 스태프들은 다 붙잡고 다니며 어제 공연의 감상을 공유하기를 권했다. 귀찮은 녀석. 시노노메는 객석 끝의 바닥까지 다 닦고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사실 시노노메도 동료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의 Leo/need에 대해. 좀 더 정확히는 그 밴드의 객원 보컬에 대해. 보컬의 노래는 처음 들어봤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감이 왔다. 평상시의 목소리와 노래부를 때의 소리는 대체로 차이가 나는 편인데도, 그 보컬은 크게 차이가 안 나서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젯밤 공연이 끝나고 귀가해서 Leo/need의 영상을 닥치는대로 찾아봤다. 검색어를 몇 번이나 바꾼 끝에 객원 보컬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정보라고 해 봐야 별 건 없다. 밴드의 고교 동창이고, 닉네임은 코하네라는 것 뿐이었다. 아쉽게도 둘 다 시노노메도 익히 아는 내용. 언제부터 노래를 했는지, 이 밴드 외에 따로 활동하고 있는 팀이 있는지, 그런 것들은 찾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왔을 때 시노노메는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었다. 스마트폰을 끄고 욕탕에 들어가 삼십 분을 앉아있다 나왔다. 삼십 분 동안 공연에 대한 생각을 했고,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생각을 했고, 동경했던 뮤지션과 어느 날 밤의 공연에 대한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는 그날 있었던 음향 사고에 대한 생각까지. 그리고 문득 무언가가 몰려와서 후다닥 욕실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또 스마트폰을 붙잡고 몇 없는 객원보컬의 라이브 영상을 하나씩 해치웠다. 원래 보컬과 함께 부르는 것이 두 개였고 단독으로 부른 게 하나. 이번 공연에서 부른 곡을 포함하면 겨우 세 곡 뿐인데 스타일이 제각각이었다. 클래식 기타 위에서 속삭이듯 부르는 저음이거나, 애절한 락발라드 이거나, 그리고 아주 본격적으로 음역대를 마구 넘나드는 정통 락이거나.
“기존에 안 하던 스타일이라 놀랐어. 솔직히 엄청 좋았다.”
락커룸으로 미야모토가 불쑥 들어왔다.
“또 그 얘기냐.”
“오늘 다 그 이야기 하던데? 그 정도 밴드가 여기 올 일 드물잖아.”
“어라, 여기는 그럼 후진 라이브하우스다?”
“여긴 스트리트가 메인이라는 소리잖아!”
“농담.”
농담 좋아하시네. 넌 왠지 우리 앞에서만 실실 웃고 뒤에 가서 사장한테 이를 것 같단 말이야. 미야모토가 투덜거렸다. 그런데 너 왜 벌써 옷 갈아입는거야. 애들한테 레오니드 이야기 한번씩 다 했다가 쫓겨났어. 곧 퇴근할 사람한테 가서 하래.
……못난 녀석. 몰라, 그러니까 너도 한 마디 해. 아무 감상이라도 들어야겠으니까.
시노노메는 적당히 대답했다.
“곡 표현을 위해 과감하게 객원 보컬을 쓰는 시도가 좋다?”
“뭔가 생각보다 훨씬 더 성의 있게 말하네.”
“대답 해 줘도 말이 많다.”
그러나 진심이었다. 기존에 안 하던 스타일이라는 표현은 중의적이다. 그 밴드가 기존에 하던 것과 다른 스타일이면서, 그 보컬이 기존에 하려던 음악과도 다른 스타일. 그런 의미로. 시노노메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쪽에서는 그 보컬이 구면이라는 걸 기억해냈는데, 상대방은 알아차렸을까. 어제 공연 직전 마이크를 세팅할 때, 무대의 조명보다 더 따갑게 쏟아졌던 그 시선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러나 곧 생각을 관두기로 했다. 알아봤다고 한들 앞으로 뭔가 더 달라질 건 없었으니까. 그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만약’이나 ‘어쩌면’ 따위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서는 그 보컬에 대한 생각도 관두는 편이 좋았다.
이런 결심이 무색하게도 ‘만약’과 ‘어쩌면’은 아주 구체적인 방법으로 시노노메를 찾아왔다. 문제의 안경 보컬이 라이브하우스에 찾아오는 형태로.
“안녕하세요, 드링크바 하나요.”
오늘은 Leo/need의 공연이 없다. 그리고 여자는 그 외에 딱히 소속된 밴드가 없다. 오늘 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연을 보는 것 뿐이다. 여자는 시노노메가 구면임을 구태여 숨기려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구면이라면 언제부터 구면? 지난 번 공연하던 날부터? 그것도 아니면 고등학생 때 부터? 시노노메는 가장 안전한 방식을 택했다. 몇 년 전의 사람은 기억 못할지언정 엊그제 봤던 사람의 얼굴은 곧잘 기억하는, 싹싹하게 사람을 잘 대하는 스태프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공연 보러 오신 건가요?”
“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보통의 경우 시노노메는 여기서 공연에 대해 코멘트를 한 두 마디 형식적으로 덧붙이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안경 보컬 앞에서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형식적으로 덧붙이며 산뜻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자신이 상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류는 19시 이후로 판매 시작이라서요. 지금은 커피나 소프트드링크밖에 안되는데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본 공연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오늘은 어디까지나 정기공연이기 때문에 스태프도 몇 없었다. 무대에는 리허설 대기가 세 팀 정도. 아무도 오지 않을 지루한 시간의 한가운데로 여자가 들어와 앉았다. 커피를 주문받고 샷을 내리는 동안 시노노메는 점점 더 착각에 빠졌다. 여자의 시선이 끈덕지게 등 뒤로 달라붙는 것 같다는 착각. 나는 너를 기억하고 있는데 너는 나를 기억하고 있느냐고. 몹시 도발적인 착각이었다. 음료를 서빙하면서 싫어도 떠올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시노노메는 카페에서 여자를 처음 만났다.
설령 서로 기억한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지.
시노노메를 간신히 붙잡는 건 이런 생각이었다. 서로 알아차렸다고 해도 현 상황에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니, 서로 알아차렸는지도 솔직히 의문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안심이 되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 일, 아직 모르는 일은 지금과 여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다만 시노노메는 떠 보고 싶었다.
“이런 음악도 좋아하세요?”
떠본다는 건, 확인해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쪽은 그날 밤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쪽은 어떤지 잘 모른다. 시노노메는 상대가 기억하고 있을거라며 멋대로 지레짐작하고 불편해 하기 싫었다. 그래서 차라리 확인이라도 해 보고 싶었다.
“이런 음악이요?”
“스트리트요. 원래 여기는 그게 메인이거든요.”
“아하
…….”
“뭐, 그렇다고 락을 취급 안 하는 건 아니고요.”
여자는 커피를 한 입 마시고 느릿하게 입을 연다.
“고등학생 때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라이브하우스는 안 다니고. 동네 숍에서 앨범만 몇 개 사 듣는 정도로요.”
그리고 시노노메도 익히 잘 아는 유명 아티스트의 이름을 나열했다. 개중에는 그가 동경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정도면 팬 아니에요?”
“그런가요?”
“일반인들은 그렇게까지 잘 안 듣죠. 요즘은 뭐 들으시는데요?”
시노노메는 확신한다. 이 목소리를 안다고. 이대로 계속해서 말을 건다면 나중에 가서 후회하게 될까. 여자가 눈 앞에 있으면 싫어도 그날 밤의 기억이 멋대로 재생된다. 그날 밤의 기억보다도 더 싫은건, 그리고 나서 남겨진 현재의 일이다. 지금과 여기에 아쉬움을 느껴버릴 지도 모른다. 일어나지 않았던 일, 확실히 알지 못했던 일, 그때는 알 수 없었던 일. 그런 일에 아쉬움을 느끼고 지금에 권태를 느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권태로부터 자유로운가? 그건 아마 아닐 것이다. 시노노메는 부러 여자와 시선을 맞춘다.
“락
……이려나요. 친구들이 밴드를 해서.”
여자는 시노노메와 시선을 맞닿게 받아주면서도, 결코 기대하던 답은 내어주지 않았다. 시노노메는 약간 얼 빠진 기분이 되었다. 대체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거야. 그는 무의식적으로 스트리트 음악이라는 대답을 예상 해 버렸다. 아니, 기대 해 버렸다. 둘이서 똑같이 그날 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고. 그러니까,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묻는 시노노메의 질문에 그쪽도 분명한 의도로 대답할 거라고. 맞추고 있던 시선이 점점 옆으로 비껴서 밀려간다.
“그럼 오늘은 어쩌다 스트리트에요?”
여자는 커피를 또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말갛게 대답했다. 시노노메가 떠밀어버린 시선을 다시 맞추어가면서.
“그냥, 여기에 다시 와 보고 싶었어요.”
처음 재회했을 때 심각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일상적인 대사가 편안하게 흘러갔다. 스트리트 공연을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했다. 과거에 즐겨 들었고 공연도 본 적 있다는 대목에서, 시노노메는 그녀가 그날 밤에 대한 기억을 아예 숨기려는 건 아닐 거라고 좋을대로 생각해버렸다. 기억은 그대로 하고 있구나. 그 상대가 시노노메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그건 시노노메에게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 모질고 싫은 말을 한 사람과 몇 년 만에 다시 만나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건 썩 유쾌한 감각이 아닐테니까.
공연이 시작되었어도 여자는 계속 이쪽에 앉아 있었다. 애인 데려오는 법이 어디있어. 동료 한두 명이 귀에 대고 이렇게 속닥거렸지만 손님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다며 일갈했다. 기껏 일찍 와 놓고는 왜 무대 맨 앞자리가 아니라 뒤쪽의 드링크바냐고 묻지 않았다. 어쩐지 실례가 되는 말일 것 같았으므로. 딱히 드링크바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맨 앞에 서서 공연을 보는게 싫은 사람도 있겠다 싶었다. 19시가 넘었으므로 여자는 맥주를 추가로 주문했다. 지난 번은 제일 큰 무대에서 합동공연을 한 거라 케이터링 포함이었고, 평소에는 푸드는 따로 주문해야 한다니까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별로 추천 안 해요. 가격에 비해 별로거든요. 시노노메는 저도 모르게 인근의 괜찮은 식당을 두어 개 정도 소개해줘버렸다. 정작 본인은 덮밥이나 우동만 먹느라 언젠가 가 봐야지 하고 맵에 저장해놓았던 식당이었다.
무대에서는 여느때처럼 평범하고 전투적인 스트리트 뮤직이 흘러나온다. Leo/need 같은 밴드는 넣지 않을 가사, 넣지 않을 리프, 다르게 쓸 창법. 부드러운 스커트와 그만큼 부드러운 가디건, 베레모 같은 옷은 배경음악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건 Leo/need의 객원 보컬이나 입을 법한 착장이다. 시노노메는 그게 싫지 않았다.
지금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둘다 익히 잘 알고 있는 노래다. 유명하고 오래된 곡이니까. 시노노메도 중학생 때 몇 번 한 적 있다. 음악인지 맥주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자의 상기된 얼굴은 즐거워보였다. 상체는 비트에 맞추어 조금씩 흔들리고, 낮은 콧노래가 보컬을 따라잡았다.
모르는 얼굴.
여자와 대화하는 동안 그날 밤에 대해 잠깐 잊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곧이어 스스로가 너무 속 편하고 비겁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상대방이 티를 내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뻔뻔하고 태연하게 대해도 되는 걸까. 이 사람은 정말 그날 밤에 대해 어떤 생각도 남아 있지 않은건가. 어쩌면 나 혼자서만 그날 밤에 고여있는 건 아닌가.
무대를 바라보는 여자는 시노노메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건 첫사랑을 반추하는 것만큼이나 다정하고, 슬프고, 달았다. 결국 제게로 돌아오지 못한 유실물을 추억하듯이
……. 시노노메는 그 얼굴이 불편했다. 여자의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뱃속에 해일을 심었다면, 여자의 모르는 얼굴은 뇌 속에 우글거리는 벌레를 풀어둔 것 같았다. 불편한 이유는 시노노메도 잘 알고 있다. 이쪽도 그런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으니까. 그런 표정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시노노메도 그런 얼굴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