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레아시스
2024-02-10 23: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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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식사

데이테스. 데이비트가 테스카틀리포카와 함께 식사를 하는 이야기.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쌉싸름한 초콜릿Como agua para chocolate>, 윤성희 <봉자네 분식집>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봉자네 분식집> 의 경우 원작의 마지막 문장을 오마주했습니다)
데이테스 원드로원라이 @Dt_od_ow 참가작입니다. 주제 '발렌타인', '고백' 을 빌렸습니다.

2월, 믹틀람파
노움 칼데아에 항의용으로 갈 발렌타인 초콜릿


60도 이하의 물에서 초콜릿을 중탕하면서 온도를 50도까지 올린다. 온도계보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육안으로 보고 말해주는 게 더 정확하지만 나를 단순계측용 기계로 아느냐며 테스카틀리포카가 완전히 토라져버렸기 때문에 온도계를 사용했다. 녹인 초콜릿이 담긴 볼을 얼음물에 올려 초콜릿을 계속 주걱으로 섞으면서 온도를 27도까지 낮춘다. 온도를 확인하면 다시 따뜻한 물에 초콜릿이 담긴 볼을 올려 체온과 비슷한 정도로 온도를 올려주면 템퍼링이 끝난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올해 발렌타인에 팔아먹을 한정판 초콜릿 시제품을 만들다 남긴 화이트 트러플 쉘에 헤이즐넛 맛 가나슈를 채우고 건과일과 견과류를 번갈아 가며 집어넣는다. 템퍼링한 초콜릿으로 내용물을 채운 트러플 쉘을 코팅한 뒤 다진 피스타치오나 장식물을 올린다. 옆에서 지켜보던 테스카틀리포카가 전체적으로 투박한 느낌이라고 말해서 짤주머니에 넣은 채 중탕한 화이트 초콜릿도 뿌려 본다. 다 꾸민 초콜릿을 식힘망에 얹어둔 뒤에야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앞치마를 하고 팔을 걷어붙인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했다.

“‘노움 칼데아에서 나의 전 서번트에게 일을 과하게 맡겨서, 그쪽에 파견된 단말이 심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으니 다른 서번트도 기용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좀 부드러운 방식으로 항의하고 싶으니까, 발렌타인 시즌을 틈타 노움 칼데아에 쇼콜라틀을 선물할 생각이니 협력해줬으면 함’ 이라는 요청사항을 봤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맞춰 봐라.”
“그래도 순순히 도와줬잖나.”
“올해 사업을 고민 중이었으니까 겸사겸사 한 거지. 아무튼 완성해서 주면 그쪽에 있는 내게 전달해두마. 노움 칼데아에서 받아줄지는 장담할 수 없는데.”
“그거 기분이 좋진 않군. 초콜릿이나 먹어라.”
“너 최근 들어 좀 지나치게 솔직해진 것 같아서 몹시 걱정이야.”

데이비트는 데코레이션에 실패한 초콜릿을 테스카틀리포카의 입에 욱여넣었다. 피스타치오를 지나치게 많이 묻혔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생산한 쉘초콜릿과 데이비트의 감각으로 템퍼링된 초콜릿은 덜 굳은 것 외에는 흠잡을 것 없이 맛있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초콜릿을 씹으면서도 바쁘게 피드백을 내놓았다.

“나는 당연히 쇼콜라틀에 더 집중했는데, 견과류의 존재감이 더 큰 것도 괜찮겠군. 이런 느낌의 한정판도 추가할까.”
“한정판?”
“작년에 처음부터 크게 해보려다가 믹틀란의 새대가리가 끼어들어서 실패했으니까, 올해는 좀 작게 해 볼 생각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인 한정판으로, 이국적인 느낌도 확실히 살려서.”

데이비트가 믹틀람파에 온 해, 테스카틀리포카는 노움 칼데아를 상대로 초콜릿 장사를 해볼 생각으로 설비도 시설도 다 갖춰놨다가 황당한 방식으로 물을 먹었다. 데이비트가 생각하기에 그럴 것까지는 없었지만 테스카틀리포카는 포기를 모르고 올해도 리벤지를 꿈꾸고 있었다. 실패해도 쉽게 단념하지 않고 떨쳐일어나는 성품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걸 이런 데도 발휘할 필요는 없는데. 데이비트는 잠시 테스카틀리포카를 설득할 말을 고민하다가 망친 초콜릿을 하나 더 먹였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혼잣말을 하며 생각에 빠져 있다가도 초콜릿을 내밀자 선선히 입을 벌려 초콜릿을 받아먹었다. 자연스럽게 믹틀란 생활의 말엽이 떠올랐다. 아침 식탁에서 할 수 있는 건 음식의 맛만 보고 다시 뱉어내는 일뿐이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무렵의 테스카틀리포카. 일 이야기를 하다가도 배가 고파졌다며 키스나 섹스를 조르던 무렵의 테스카틀리포카.
그 즈음에는 아침에 테스카틀리포카를 보면 곤란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안 먹고 네가 제안한 일이더라도 나 때문에 무리할 필요 없으니 자거나 쉬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제안한 아침식사. 곤란하고 난감하고 착잡해지지만, 한 번도 잘못된 일이라고는 생각한 적 없는 ‘함께 하는’ 식사의 본질.
데이비트는 깨달은 것을 당연한 수순처럼 입에 담았다.

“믹틀란 때 말이다.”
“응?”

테스카틀리포카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데이비트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투로 말했다. 지나가는 말처럼. 대단치 않은 말투로 포장한 고백을 하듯이.

“사실은, 너와 함께 먹을 수 없게 된 게 아쉬웠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여상한 말투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