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레아시스
2024-02-10 23: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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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식사

데이테스. 데이비트가 테스카틀리포카와 함께 식사를 하는 이야기.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쌉싸름한 초콜릿Como agua para chocolate>, 윤성희 <봉자네 분식집>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봉자네 분식집> 의 경우 원작의 마지막 문장을 오마주했습니다)
데이테스 원드로원라이 @Dt_od_ow 참가작입니다. 주제 '발렌타인', '고백' 을 빌렸습니다.

5월, 믹틀란
토마토와 소시지를 넣은 원 팬 파스타와 오리엔탈 샐러드


전환마술을 이용해 가스를 전기로 전환해서 동력을 공급받는 미니 냉장고에서 꺼낸 토마토를 깨끗하게 씻은 뒤 꼭지를 떼어낸다. 꼭지 부분이 아래로 가게 뒤집고 잘게 썬다. 데이비트는 토마토 껍질을 싫어하지 않으니 껍질은 벗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손질한 토마토 절반과 정량보다 조금 많은 소시지를 한 입 크기로 자르고 양파를 채 썬다. 양파를 채 썰 때 눈물이 나는 것을 방지하고 싶다면 테스카틀리포카의 선글라스를 빌려 써도 좋다.
엄지의 첫 번째 관절에 검지를 붙여 만든 동그라미를 채울 분량의 1.5배의 파스타 면을 팬에 넣고 면을 삶다가 물이 증발하면 토마토 소스와 물, 다진 마늘, 앞에서 준비한 토마토와 소시지와 양파를 모두 팬에 넣는다. 파스타가 익는 동안 테스카틀리포카가 냉장고에서 씻은 양상추와 채 썬 적양배추와 당근, 로메인, 케일, 옥수수를 지퍼백에 한 번 먹을 단위로 밀봉해둔 것을 꺼내 오목한 접시에 담고 오리엔탈 드레싱을 끼얹는다. 식탁에 섬유질이 없으면 테스카틀리포카가 핀잔을 주기 때문에 항상 바닥나지 않게 마련해 두었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식탁에서 샐러드를 섞는 작업을 마치자 데이비트는 파스타가 들어있는 팬을 식탁으로 옮겼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두 사람 분량의 식기와 작은 접시 하나를 가져와서 식탁에 앉았다. 데이비트가 자리를 잡자 파스타를 덜어가려던 테스카틀리포카를 한 손으로 저지한 데이비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파스타를 자기 입에 가져갔다. 파스타와 양파와 소시지를 씹어 삼킨 데이비트가 뭔가 벅차오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싱겁지 않아
“믿고 있었다고, 형제.”
“그런 말은 좀 진심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원 팬 파스타라는 씻어야 할 식기가 혁신적으로 적은 문명의 이기를 알고 충격을 받은 데이비트가 다음 날 아침에 바로 그 레시피를 사용해 봤다가 맹탕 차의 친척 같은 싱거운 파스타를 만들고 테스카틀리포카와 함께 눈이 죽은 상태로 실패작을 처리한 게 며칠 전 일이다. 반년 가량 믹틀란에서 생활한 결과 테스카틀리포카가 이번엔 어떤 실패를 했느냐며 웃으며 다가오는 것보다 처음부터 별 기대 없었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것을 더 싫어하게 된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가 곁에 없을 때 원 팬 파스타를 몇 번 시도했는데, 아침에 식재료를 배달하러 왔다가 그 꼴을 보다 못한 코얀스카야에게 면을 먼저 삶으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기에 이르렀다. 긴 여정이었다.
데이비트는 지구를 파괴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옅은 미소를 띄운 채 테스카틀리포카에게 파스타를 덜어 주었다. 전체의 4분의 1보다 조금 적은 양이었다. 딱히 데이비트가 식탐을 부리는 건 아니고 테스카틀리포카의 육체의 스펙이 눈에 띄게 떨어진 탓이었다.

‘그게 말이야, 권능을 쓸 때 상대적으로 생명 활동과 관련된 우선순위가 낮은 부위를 조금씩 소모해서 소화기관이 조금 짧아졌거든. 소화능력이 예전의 3분의 1 이하가 됐다. 그러니까 이거 다 못 먹어. 미안.’

데이비트는 소스가 배어들어 약간 매콤한 소시지와 생각보다 너무 많이 익혀서 심이 씹히는 맛이 없는 파스타를 씹으면서 지난달 말엽에 아침 식탁에서 그런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꺼낸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제발 그런 말은 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태도로 해달라고 짓씹듯 말한 기록을 반추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토마토 소스를 조금 맵게 만들고 토마토를 많이 넣어 균형을 맞추는 레시피를 마음에 들어 했다. 덕분에 데이비트는 자기가 매운맛에 별 거부감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튼 상위맥락이 어찌되었건 테스카틀리포카는 남이랑 같이 뭘 먹을 때 깨작거려서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타입은 아니었다. 데이비트가 만드는 요리는 자연스럽게 1.4인분으로 줄어들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데이비트에 비해 적게 먹으면서도 쉴 새 없이 떠들어서 자신이 식기를 움직이지 않는 것을 눈치채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가끔 이런 식이라서 데이비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야. 샐러드도 제대로 먹어야지.”
“먹을 생각이었어. 너는 내 어머니 대신 내게 잔소리를 하러 온 건가?”
“저쪽으로는 포크가 안 움직이니까 말하는 거야.”

편식을 하는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과 그걸 고치고 싶어 하는 나이 먹은 사람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데이비트의 오늘의 스케줄은 조금 빠듯했으므로 이 상황극에 어울려줄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데이비트는 채썬 적양배추를 공들여 포크에 꿰면서 조금 염세적인 대답을 했다.

“어차피 예정대로라면 사용기한이 1년도 안 남은 몸인데 영양 균형 같은 건 상관없잖아.”
“있지. 네 계획은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어. 네 동지들이 성공하거나 노움 칼데아가 성공하면 너는 강제로 이 이후의 인생을 고민해야 하니까.”
“내 성공에 배팅했으면서 실패를 전제하는 건가?”
“기본적으로 비관주의거든.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해서 나쁠 건 없어. 알아들었으면 샐러드 먹어라.”

작은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테스카틀리포카가 어깨를 으쓱했다. 데이비트는 기계적으로 샐러드 볼을 비우면서 자신이 실패할 경우 저 육체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의지와 무관하게 1년이 경과하면 내구력이 다해 내용물이 12천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확정되어 있는 육체를 입고 남의 육체의 안위를 걱정하는 행위가 얼마나 희극적인지도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데이비트는 파스타를 다 먹기 전에 샐러드를 다 먹어 버렸다. 양치질을 할 때도 공들여 입을 헹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