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레아시스
2024-02-10 23: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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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식사

데이테스. 데이비트가 테스카틀리포카와 함께 식사를 하는 이야기.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쌉싸름한 초콜릿Como agua para chocolate>, 윤성희 <봉자네 분식집>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봉자네 분식집> 의 경우 원작의 마지막 문장을 오마주했습니다)
데이테스 원드로원라이 @Dt_od_ow 참가작입니다. 주제 '발렌타인', '고백' 을 빌렸습니다.

1월, 믹틀란
계란 프라이와 구운 베이컨과 옥수수 식빵 토스트, 차가운 우유


1분 정도 달구어놓은 팬에 베이컨을 두 줄 올린다. 베이컨을 가열하면 베이컨에서 기름이 나오니까 기름은 두를 필요 없다. 기름이 튀어오르니까 맨살이 많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을 경우 에이프런을 두르던가 외투 단추를 잠가서 맨살을 보호해야 한다. 베이컨이 어느 정도 익어 색이 변하면 옆에 계란을 깨어 넣는다. 예쁜 모양의 계란 프라이를 원한다면 계란이 어느 정도 익어 모양이 잡힐 때까지 계란을 건드리면 안 된다. 계란이 어느 정도 익으면 조리한 팬을 통째로 식탁에 올리면 끝이다. 계란 위에 장식으로 파슬리 가루를 조금 뿌리면 좋겠지만 데이비트가 기억하는 식재료를 조달하려면 NFF에 헬프콜을 해야 하는 오지 중의 오지 이문대 믹틀란에 그런 귀여운 장식품은 없다.
계란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토스터로 믹틀란 원생종 옥수수가루로 만든 식빵을 굽는다. 믹틀란의 메히코 시티에서 데이비트가 사용할 개인실을 현대풍으로 꾸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이 참은 테노치티틀란은 방에 가스(공급을 맡은 NFF의 여우 흉내를 내는 토끼가 고작 한 사람이 쓸 분량을 계속 공급하는 건 어떻게 봐도 이쪽이 손해 보는 장사 아니냐고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테스카틀리포카가 웃으며 ‘뭐, 젊은 데다 담당하는 분야도 병기로 한정되는 신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군’이라고 말하자 짜증을 참는 표정으로 지속적인 공급을 약속했다)를 연결하는 데 마지막 인내심을 소모해 버렸다. 그래서 이 방에서는 전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시계탑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설을 사용할 때 사용하는 에너지를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마술이나 냉동, 냉각보존마술 등의 꼼수를 써야 한다. 배보다 배꼽이 큰 수지가 안 맞는 짓이지만, 그래도 빵을 주식으로 삼는 문화권에 살던 사람이라면 토스터 속에서 특유의 기계음과 함께 솟아오르는 잘 구워진 토스트가 풍기는 고소한 향기를 맡으면 묘한 노스탤지어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익힌 베이컨과 계란 프라이가 든 팬 두 개와 토스트 두 장을 식탁에 옮긴 뒤 데이비트는 냉동보존마술을 걸어둔 우유팩을 가져와서 서로 다른 모양의 머그컵 두 개에 우유를 따랐다. 맞은편에 앉은 테스카틀리포카가 고양이처럼 하품을 했다. 창 밖에는 가느다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데이비트는 빗줄기 구경을 하면서 선 채로 자기 몫의 우유를 3분의 1 정도 마신 뒤 자리에 앉았다. 빠르게 베이컨을 토막내기 시작한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데이비트가 물었다.

“만족했나?”
“일단은 합격이다. 너는 레시피를 전부 기억하면 효율이 나쁘니까 레시피는 문장으로 만들어서 기억하고, 식재료가 익어서 재질이 바뀌는 걸 중점으로 기억해라. 섬유질이 하나도 없는 게 신경 쓰이지만 넌 젊으니까.”
“안 챙겨 먹어도 지금까지 탈 없이 잘 살았다만.”
“다시 말하지만 넌 어지간한 영양소 부족은 젊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나이고, 필수적인 건 영양제로 대신하면서 살았으니까 그렇지. 있는 시설을 놀리는 건 안 좋은 일이야.”

테노치티틀란이 이문대 믹틀란에서 유일하게 현대풍으로 꾸며진 데이비트의 개인실에 아주 당연하게 작은 부엌을 조성해놓고 현대식 부엌에는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 공급원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서 테스카틀리포카를 불러 NFF와 교섭해서 가스까지 연결해준 게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다. 그녀는 조금 오래된 도시의 정령이기 때문에 데이비트도 어쨌든 인간형 지성체니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존을 유지한다면 당연히 자기 식사 정도는 만들어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대에는 자기 손으로 요리를 하지 않고 스케줄이 바빠지면 휴대식량과 영양제로 식사를 대신하는 타입의 독신자도 존재한다는 점을 미처 검토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런 귀여운 여동생이 최대한의 타협을 해가면서 만들어 준 부엌을 데이비트 본인은 양치질을 할 때나 사용하는 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진 테스카틀리포카가 “야, 그 현대건축을 부모의 원수처럼 싫어하는 녀석이 이렇게까지 신경 써 줬는데 요리를 안 하는 건 좀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냐? 딱히 내가 토치틀리한테 가스 비용을 선지급해 버려서 이런 얘기 하는 건 아니고” 라고 말한 것이 데이비트와의 말다툼으로 발전하고, 결국 하루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발 요리를 좀 만들어 먹으라는 합의점에 도달한 게 지난 주의 일이다. 이것이 오늘 아침에 데이비트가 믹틀란에 온 뒤 처음으로 요리를 하게 된 사연이다.
데이비트는 표정변화 없이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뭔가 딱딱한 것을 씹었다. 데이비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테스카틀리포카는 지성체의 속내를 읽어내고 추측하는 능력으로 몇 번이나 세계를 멸망시킨 인격체답게 데이비트의 속내를 바로 읽어냈다.

“내가 함부로 나 따라하지 말라고 그랬지.”

데이비트가 알고 있는 것 중 최대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만들기로 정한 뒤(테스카틀리포카가 이 동네는 향신료의 가짓수도 적고 자기가 기억하는 향신료도 믹틀란 환경에 맞게 변형돼서 자기 데이터에 있는 거랑 비슷하지가 않다고 몹시 투덜거렸다), 아침에 데이비트의 방에 온 테스카틀리포카가 먼저 시범을 보여줬다. 그때 테스카틀리포카는 계란을 한 손으로 깼고 ‘이거 따라하지 마라’ 고 말했는데 그게 꽤 멋져 보였다. 그래서 데이비트는 조금 뒤 자기 몫의 베이컨을 구우면서 계란을 깰 때 테스카틀리포카의 동작을 따라했다. 어찌어찌 성공하기는 했지만 계란 껍질 부스러기가 계란 프라이에 섞여 들어간 모양이었다.
사실 데이비트가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대놓고 짜증을 내지 못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객관적으로 잘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란프라이의 노른자가 터져 모양이 예쁘게 잡히지 않았다. 베이컨은 익힐 때 너무 많이 움직여서 군데군데 익은 정도가 조금씩 달랐다. 데이비트는 내심 좌절했다. 같이 굽기만 하면 되는데. 전날 백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만 해도 보란 듯이 요리를 성공시킨 뒤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요리 같은 거 마음의 만족이 조금 늘어날 뿐 비효율적이지 않으냐고 따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과물이 이 모양이면 할 말이 없다. 토스트는 토스터가 해주는 거니 체면치레는 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반 정도 먹은 베이컨을 얹은 토스트를 한 손에 든 채 쯧쯧 혀를 차는 테스카틀리포카를 무시하고 데이비트는 계란 껍질과 계란과 베이컨을 함께 삼켰다. 다행히 잘 구운 베이컨은 석회질 덩어리를 씹은 감각을 기억의 뒤켠으로 밀어낼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져서 그렇지 요리의 과정도 그 결과물도 나름대로 괜찮게 느껴졌다. 화학실험하듯 재질을 바꾸는 식재료를 관찰하는 것도, 구운 빵의 고소한 냄새와 바삭바삭한 식감도, 익은 베이컨과 어우러지는 계란의 맛도, (데이비트 본인이 체험한 기억은 아니지만) 꽤 그리운 느낌도 들었다. 데이비트는 이것도 끝이 좋다면 다 좋다고 생각해 버리는 인간 특유의 그것일까 생각하면서 치아로 난도질한 베이컨과 계란 덩어리를 삼켰다.
데이비트가 요리의 맛에 집중하는 동안 데이비트를 바라보고 있던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했다.

“요리가 정신건강에 좋은 거 알고 있냐?”
“들은 적은 있다. 즉각적으로 성취감이 생기고, 자기가 이룬 성취를 바로 맛보고 피드백해서 자기발전을 꾀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의외구만. 필요없는 지식이라며 버렸을 줄 알았는데.”
“시계탑엔 정신상태가 나쁜 사람이 많거든.”

마술사 사회는 좁고 폐쇄적이다. 기본적으로 일자전승이므로 대부분의 인간이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가벼운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부터 일정 기간마다 의사에게 항정신병제를 처방받아 오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스스로 정신건강을 조금 개선해 보고자 취미생활을 고친 결과 요리를 좋아하게 된 사람이 꽤 많이 있었다. 기억해둬서 나쁠 것 없는 정보이니 16살 즈음에 기록에 넣었다. 데이비트는 거기까지 말하지는 않고 대답했다.

“내 정신상태를 걱정하고 있나? 그거라면
“아니 딱히? 지금의 네 경향성이 네 정신병에서 비롯된 거라면 난 그게 개선되지 않기를 빌어야 한다.”
……. 고맙게 생각해야 하나?”
“그건 아니고. 넌 네 나름대로 재미나게 살고는 있지만 즐길 수 있는 것도 안 즐기고 대강대강 사는 경향이 있어. 나는 절제되지 않는 싸움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신이지만 그래도 싸우는 동안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즐겨두는 게 좋지.”

테스카틀리포카가 윙크를 했다. 보기 좋았지만, 데이비트는 믹틀란 생활을 시작한 뒤 천천히 쌓여가고 있는 테스카틀리포카에 대한 기록에 근거한 말대꾸를 했다.

“내가 알기로 너는 뭔가 숨기고 싶은 게 있으면 묻지도 않은 주제를 끌어들여 장광설을 하는데.”
…….”
“아침 식탁에 네가 있으면 틀랄록이랑 이스칼리가 부담스럽게 생각할까 봐 이리로 도망 왔나? 보아하니 이스칼리가 움츠러들었군?”
“너같이 눈치 빠른 녀석은 진짜 싫어.”

테스카틀리포카는 우유를 무슨 메스칼처럼 들이켰다. 테스카틀리포카란 왕이 아니라 왕권의 상징물이고, 그가 왕으로 세운 존재의 권위가 침해당하는 것은 온 힘을 다해 막아야 한다. 그런 녀석이 식탁에서 상위존재를 보고 주눅 들어 있으면 오셀로틀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건 이스칼리가 어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고, 그 애를 타일러도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자리도 피하고 마스터 놈의 식생활도 개선해 볼 생각을 했다 이거지. 데이비트는 포크를 쥔 채로 웃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할 말이 궁해지자 토라진 듯 입술을 내밀고 마지막 남은 베이컨 조각을 포크로 학대하고 있었다.
데이비트는 말했다.

“담배도 피우고 가라. 이건 마스터로서의 명령이다.”
“오, 불경한 발언.”

그래도 테스카틀리포카는 데이비트가 조리도구와 그릇을 닦는 동안 그를 경애하는 소년소녀들이 아니라 그를 군수물품 창고쯤으로 취급하는 청년의 곁에서 담배를 한 대 다 태우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