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마리 아니무스피어는 생각보다 세게 닫힌 문에서 나온 소리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자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주위의 이목이 쏠려 있었다. 최악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러나 명백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티를 내며 그녀는 빠른 발걸음으로 복도를 빠져나갔다. 언제 따라 나온 것인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결코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저 이 수라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일이라면 이미 수도 없이 겪었으면서 왜 유독 오늘만큼은 조용히 넘어갈 수 없었냐고 한다면, 그건 곧 있을 ‘행성 정렬’ 때문이었다. 별의 운동을 관측하는 천체과에 있어서 이는 무엇보다 큰 행사다. 물론 그 자리에는 학과의 로드도 참석하게 된다. 즉, 천체과의 로드이자 아니무스피어의 당주, 그리고 올가마리의 친부인 마리스빌리도 얼굴을 비춘다는 뜻이다.
평소에는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정말 살아있는 건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의외로 이런 자리에는 성실히 참석하는 것에 놀라는 사람도 있으나, 올가마리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어떤 자리, 어떤 행사에서도 그의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시선은 분명 정면을 향하고 있다. 소통도 원활하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언제나 다른 곳에 있었다. 그건 올가마리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턴가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사실은 올가마리도 알고 있었다. 그건 분명 희망에 가득 찬 눈이었다. 이전과 비교하면 너무나 인자한 눈빛이었다. 그럼에도 올가마리는 여전히 아버지가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저 인정받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 사람과 자신은 근본적으로 어딘가 어긋나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잘해야 해. 이번에야말로 눈에 들어야 해.’
그런 생각을 하며, 올가마리는 벌써 일주일간 잠을 설쳐가며 연구에 매진했다. 이번 정렬 기간 동안 누구보다 가장 우수한 성과를 낸다면, 그때야말로 아버님이 나를 돌아봐 주실지도 모른다. 내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아닌, 바로 나를 봐주실 것이다. 마지막 남은 그 희망만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역시 후계자는 보다임이 되는 거 아냐?”
그랬기 때문에, 어디선가 들려온 한마디를 올가마리는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 어느 학생들의 무리가 있고, 그 중심에는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이제는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지는 천체과의 천재, 키르슈타리아 보다임이었다.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말이나 하며 여느 때처럼 야단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가마리는 그 자리에서 뛰쳐나온다는 꼴사나운 선택밖에 할 수 없었다. 올가마리가 후계자에 걸맞지 않다고 가장 강하게 확신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올가마리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나가는 모습을 본 것인지 재수 없는 천재 씨께서는 올가마리를 불러 세우려 했다. 그 목소리에 기분이 더욱 언짢아진 올가마리는 괜히 문을 세게 닫아버릴 뿐이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올가마리는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침대 위로 엎어졌다. 최고급 소재로만 만들어진 침대는 모든 충격을 흡수하며 올가마리의 몸을 가볍게 받아냈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리는 방에 홀로 남게 되자 긴장이 풀리며 오랜만에 졸음이 몰려왔다. 이대로 곧장 잠에 들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정말로 차기 당주로서의 면목이 없다. 올가마리는 애써 잠을 몰아내고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
“…뭐야, 이건?”
가방을 열자마자 튀어나온 건 처음 보는 목걸이였다. 푸른색을 띤 보석이 큼직하게 박혀 있지만, 마술적인 가치는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마력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기능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내 가방에…”
올가마리는 도서관에서 나오기 직전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분명, 급하게 나오느라 책상 위에 있던 물건을 가방에 몽땅 쓸어 담았던 것 같다. 정리 같은 걸 하고 있을 정신은 없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공부하는 데에 정신이 팔린 학생들로 가득했고, 책상은 그들의 정신 상태를 반영하듯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그렇구나. 남의 물건까지 집어 와버렸구나. 실례되는 짓을 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곳에 돌아갈 자신은 없었던 올가마리는 다음 날 제대로 사과하기로 하며 가방 깊숙한 곳에 목걸이를 담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