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morrie
2026-06-17 20:36:18
8608文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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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의 사과나무

stzp

별이 충돌할 예정이라는 뉴스를 들었을 때 사무실 분위기는 평소와 비슷했다. 다른 곳에서는 일상이 뒤흔들리고 모든 뉴스를 도배할 정도의 소식이어도 이 도시의 ‘일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이 고작 일주일이라는 말을 들은 다음에도.

천문학계가 말이 안 되는 소식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기자회견 겸 설명회가 열렸다. 대표로 나선 천문학자가 열변을 토했다. 충돌할 예정인 것은 별이 아니라고. 무슨 복잡한 영문 철자를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듯한 혜성이라고. 어떤 수학적 공식에 따라 계산한 결과 블랙홀의 중력에 영향을 받아 궤도가 바뀐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게 되었다는 천문학자의, 칠판까지 동원해 마치 대학 강의를 연상케 하는 열성적인 강연이 끝나자마자 도시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이계인들이라고 해도 이 대지와 대기를 공유하는 생물이었으므로, 혼란은 인간종과 지성이 없는 일부 개체를 제외한 인외종에게도 전파되었다. 물론 사무실에도 도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있었다. 재프였다. 바닥을 뒹굴고 웬만한 힘으로 부서지거나 상하더라도 쉽게 고칠 수 있도록 형상 기억 처리된 벽을 때려가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에 비하면 레오와 제드, 두 어린 조직원은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정도였다. 엉금엉금 기어 크라우스의 바짓가랑이를 잡기도 했다. 보스의 능력이라면 오는 별도 박살 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크라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별이 아닐세, 재프 군.

세계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단 일주일, 정확히는 일주일보다 조금 적은 6일 15시간이었다. 소식이 뉴욕 현지 기준으로 오전 9시에 전세계에 동시 송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소식이 들린 당일 TV 토크쇼에 세계가 멸망할지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유명한 명언이 몇 번이고 나왔다. 사과나무 씨앗이 불티나게 팔렸다. 오후에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온 제드의 손에도 사과나무 씨앗이 들려 있었다. 재프는 그것을 보자마자 뭐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로 일어났다. 영민한 반어인이 익숙하게 그의 입을 막았다.

“적어도 싹은 트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크라우스와 그의 화단 한구석에 같이 심었다.

레오는 미셸라에게 전화했다. 못해준 것을 말하며 같이 하고 싶었다며 울었다. 술에 취해서. 재프는 옆에서 듣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레오는 숙취로 출근하지 않았고 제드는 공원에 나가 있었다. 체인도 인랑국으로 돌아가 사무실에는 재프 혼자였다. 소파에는 그랬다.

“별이 충돌한다는데요.”

재프가 여느 때처럼 넓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스티븐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언뜻 사무실의 풍경 같았다. 만년필 펜촉이 종이를 휘젓는 소리만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긴 했다. 멈출 수 없는 혜성의 흐름이 시시각각 몇십 광년의 속도로 지구로 달려오고 있으니까. 스티븐이 눈길도 주지 않고 대꾸했다.

“알아.”

서류를 넘기며 덧붙였다.

“그리고 그건 별이 아니야.”

“그게 뭐가 중요해요, 어쨌든 존나 큰 게 정통으로 부딪친다는 거잖아요.”

여기에. 하고 재프는 소파에 드러누운 채로 바닥을 가리켰다.

“중요하지. 별이 아니라는 거니까.”

“혜성도 별이잖아요.”

“그건 별이 아니야.”

“별이 뭔데요?”

“태양. 혹은 태양에 준하는 거대하고 뜨거운,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 혜성은 그렇지 않아.”

“결국 나리의 힘으로도 박살나지 않는 건 똑같잖아요.”

재프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평소와 똑같았다. 일주일, 아니지. 6일. 6일 뒤 박살 날 천장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제 말인데요.”

“소년의 집에 있었지?”

“그 자식이 그렇게 취하도록 마시는 건 처음 봤어요.”

“그럴만 하지.”

“저랑 하고 싶은 거 없어요?”

서류를 넘기던 손이 멈췄다. 스티븐이 서류 너머로 재프를 힐끗 보았다.

“너는.”

“전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거든요.”

“그럼 왜 묻지?”

재프는 눈을 감았다. 스티븐과 재프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이렇게 대화하는 사이에 불과한 관계다. 세계 평화에 봉사하는 조직의 상사와 부하 직원. 위기를 같이 극복한 만큼의 정은 쌓여 있는.

조금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같이 씨앗을 심지도, 술에 취해 울면서 전화하지도 않을 사이지만. 3년이나 알고 지낸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를 더 좁히고 싶은 건 아니다.

재프는 위 같은 복잡한 경위와 욕망을 상세하게 그려내지는 못했다.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더 중요한 사람을 만나야 하니까, 오늘 하루만 잘나신 몸이랑 데이트나 할까 했죠.”

“데이트?”

“아, 그게. 같이 노는 것도 데이트죠. 그냥 약속 없는 사람끼리 나가서 같이 뭐라도 하면 좋겠다~ 싶어서. 예? 세상이 끝장난다는데 그, 뭐냐. 일만 하고 있으면 또 좀, 예? 좀 그렇잖아요, 그게, 그러니까. 하하, 하하.”

생전 처음 들어봄다는 반응에 재프는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이런 농담은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지. 정말 충동적인 행동이었고, 세상이 좀 멸망한다는데 아직도 이렇게 빡빡하게 구는 게 원망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티븐 앞에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는 사적으로는 상당히 감추는 게 많은 사람이고 재프의 제안은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는 것이었다.

“그…… 농담임다! 저 약속 있거든요. 지금 당장 오라고 하니까 그, 가보겠슴다.”

“잠깐 기다려.”

꾸벅 허리를 90도 넘게 숙이고 문으로 질주해 도망치려던 재프가 얼어붙은 손잡이를 잡은 채 돌아보았다. 스티븐은 두 손으로 책상을 짚고 일어나 있었다.

“선약이 있다고? 오늘? 대체 누구랑?”

“예, 아, 뭐…… 이, 있어요. 그, 저기, 사만다랑.”

“나는 방금 식당을 예약하고 있었어.”

……엥?”

스티븐이 휴대폰을 들어보이며 다정하게 웃었다.

“사만다? 스티븐 A. 스타페이즈겠지. 고쳐 써 둬. 네가 제안해놓고 빠질 생각 하지 말고.”

재프가 스티븐처럼 스케줄러에 무엇을 써두고 고칠 리는 없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고 한들 고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티븐이 재프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재프의 터틀넥 셔츠는 활동을 중시해 형상 기억 소재에 비견될 좋은 원단을 사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화가 난 것처럼 무지막지한 악력으로 당기니 버티지 못하고 고무줄처럼 늘어나다 종국에는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재프가 날렵하고 흰 차의 조수석에 던져졌을 때 그는 이미 졸도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