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뚝,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사위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방금 들은 게 아끼던 만년필촉에서 난 소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
“무슨 일인가, 스티븐.”
크라우스가 묻는다. 이목이 스티븐의 책상에서 크라우스의 입으로 옮겨간다. 크라우스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다시 스티븐에게로 돌아오며 무언가를 알려준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라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스티븐은 희게 질린 손을 내려다본다. 검은 잉크의 늪이 흰 종이에서 피 웅덩이처럼 천천히 번져나가고 있다. 습관적으로 늪에 묻혀 사라지는 글씨를 읽는다.
주체가 무엇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계의 언어로 쓰인 듯 낯선 글자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한 생각을 되돌린다.
가까워.
무엇이 가깝지? 의문을 던져도 이렇다 할 답은 나오지 않는다.
“스티븐, 오늘은 쉬는 게 어떤가. 그 건의 처리는 우리가 맡아두겠네.”
그 단단하고 굳센 목소리는 머릿속에 도달하지 않는다. 취했거나 겁에 질린 듯 같은 말만이 반복된다.
“가까워.”
소리를 내어 말하면 뭐라도 될 것 같아서 입을 연다. 스티븐은 세 번째가 되어서야 가깝다는 단어의 일상적인 용례를 떠올린다. 무엇이 가까운지 모른다. 다만 판단 불가능한 수준의 위협이라는 것만을 간신히 알 수 있다.
스티븐의 내부는 두 가지 낯선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부글부글 끓으면서 차갑게 얼어붙은 힘이 뒤죽박죽으로 싸우고 있다. 정반대의 힘이 맹렬하게 뒤섞인다. 제어할 수 없는 떨림이 몸을 뒤흔든다.
-이 사람, 앉은 채로 기절한 거 아녜요?
저편에서 울리는 미지근한 목소리가 스티븐의 머리를 울린다. 헉, 숨을 들이키자 밝은 사무실의 정경이 슬레이트를 친 듯 한순간에 암전한다.
이번에는 제대로 보라는 것처럼 어둠이 형체를 갖춘다.
스티븐은 그것을 본다.
창백한 두 팔이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는 누군가를 끌어안는다.
슬픔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 고통스럽지만 눈을 감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입이 열린다. 이번에는 제 의지가 아니다. 누군가 대신 말하고 있다.
“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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