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코하 크리스마스

앵콜요청불가...의 계속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도 둘은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 공연장 안에 고여있던 열기에서 곧바로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각자 좋았던 곡을 곱씹으면서. 아즈사와는 한번 무언가에 몰입하면 거기서 벗어나올때까지 좀 딜레이가 있는 편이다. 영화관에서는 크레딧이 다 끝나고도 한참을 좌석에 오도카니 있는다. 특별히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면 미간을 살짝 좁히고 입술을 뾰족하게 만든 다음 입안에 한참을 머금고 있는다. 침대에서는 행위가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웅크려서 호흡을 골랐다. 시노노메에게 있어 아즈사와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이런 습관이었다. 무언가를 한번 하면 무섭게 빠져들었다가, 아주 천천히 빠져나온다. 그건 꽤 정중한 느낌을 준다. 처음 둘이서 사운드 아트 전시회장에 갔을 때도 그랬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몰입하다가 서서히 일상으로 복귀하는 변화를 보는 게 재미있다. 그래, 그러니까 시노노메는 아즈사와가 ‘재미있었다’. 뭔가 새로운 걸 자꾸 갖다주는 맛이 있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우리 지난 달에 출사 나갔을 때, 내가 차에서 틀었던 거. 너 그때 좋다고 하지 않았어?’
‘약간 통기타 많은 듀오?’
‘응, 그거.’

아즈사와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집어들어 검색해보고는 노래 클립 몇 개를 재생했다. 맞아, 이런 느낌의 노래였던 것 같아. 그룹명이 독특하네, 그렇게 말하면서 얇게 웃었다. 크리스마스를 낀 공연이라 티켓팅에 자신이 없었지만 아무튼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따 낸 끝에, 12월 24일 저녁 공연이라는 대목에 성취를 이루어 낸 것이었다. 시노노메는 아즈사와의 옆얼굴을 슬쩍 보면서 오늘의 성과를 스스로 평가해보았다. 결과는…… 꽤 괜찮아보인다. 입술을 앙다물고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신중한 표정을 짓는 건 아즈사와가 깊이 골몰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시노노메 위로 제 손을 겹쳐 오면,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도 괜찮다는 신호.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다 콘서트장의 관객들이 계속 나오는 중이라 거리가 혼잡했다. 시노노메는 아즈사와의 어깨를 껴안고 인파를 조금씩 헤쳐나가면서 곧바로 택시를 잡았다. 지하철이 있는데 왜? 아즈사와가 물음표를 담아서 올려다보길래 짧게 대답했다. 춥고, 귀찮아.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줄행랑치면 오늘의 큰 일정은 끝.

시노노메도 집에서 뒹굴거리는 나태의 즐거움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인도어와 아웃도어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두 말 않고 아웃도어 파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깅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신 정도가 아니라 불안하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날이어도 집 안에서만 작업하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어서, 어떻게든 근처 카페로 나가서 작업을 해야 오늘 하루치의 일과가 완성되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밖에 어느 정도 사람이 적당할 때의 이야기고, 오늘 같은 날은 사정이 다르다. 크리스마스부터 시작해서 연말연시의 시즌이 되면 메신저 창이 바빠지고 모임도 많아지기 때문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오히려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그런 점은 아즈사와와 죽이 잘 맞다. 아즈사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꿋꿋하게 정통 인도어 파였으므로.

인도어 데이트의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호텔의 품위다. 그래서 여름부터 아주 괜찮은 5성급 호텔을 예약해 두었던 건데, 정작 아즈사와는 의외의 제안을 했다.

‘콘서트 끝나고 나면 아키토 집에서 홈파티 하는거지?’
‘그래?’
‘작년에는 바빠서 못했으니까, 올해는 맛있는 케이크를 준비하자.’

사실 작년 크리스마스는 연말 공연을 준비한다고 아즈사와가 무척 열심히 매달렸기 때문에 제대로 된 데이트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즈사와는 한번 몰입하면 성실을 넘어 집요한 구석까지 있으니까. 그때는 시노노메도 아즈사와에게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주는 데 필사적이어서, 이브는 물론 당일도 스튜디오에서 연습했다. 그래서 올해만큼은 좀 제대로 품위 있는 이벤트를 꾸려보려고 했던 것이다. 자쿠지 딸려있는 좋은 데 가고 싶지 않아? 슬쩍 떠봤는데, 아즈사와는 역시 홈파티에 대한 로망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자취방이 2LDK짜리니까 최악은 면한다 쳐도 호텔보다 못한데, 아즈사와가 벌써 크리스마스 케이크 예약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 별달리 대꾸도 못하고 그대로 알겠노라 했다. 위약금 수수료 30%는 고스란히 날리고, 호텔 체크인 대신 케이크 수령으로.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편의점에서 치킨을 사자는 건 아즈사와의 제안이었다. 택시에 타는 동안에도, 맥주를 고르는 동안에도 아즈사와는 마음에 들었던 곡의 특정 구간을 작게 되풀이하며 흥얼거렸다.

“이런 풍의 노래를 무슨 장르라고 해?”
“보사노바.”
“보사노바…….”

아즈사와는 신중하게 시노노메의 말을 천천히 따라했다.

“이런 곡이 좋아?”
“평소에 잘 안듣던거라 색다른 느낌이랄까. 사운드 많이 없고 통기타만 있잖아.”

둘 다 기본적으로 화려한 EDM이 주력이니까 그럴만도 하다.

“아키토는 노래 듣는 폭이 넓네.”
“그냥, 이것저것 되는대로. 가끔 생각지도 못한 다른 구석에서 내가 원하는 사운드가 튀어나올 때가 있거든.”

아키토는 기타 칠 수 있으니까, 다음엔 우리끼리 집에서 불러봐도 재밌겠다. 그래그래,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패스. 시노노메는 아즈사와 품에서 치킨 바스켓을 빼앗아 들었다. 제 가방에서 열쇠를 찾아 구멍에 꽂고 돌리면서 아즈사와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이사 날짜 정확히 언제라고 했지? 다음주 금요일.

이사를 앞두고 조금씩 짐을 정리하는 중이라 방이 어수선했다. 청소는 멀끔하게 해놨지만 여름 옷가지나 이불을 정리한 박스들이 구석에 모여있었는데, 아즈사와는 가뿐하게 그 사이를 잘도 타넘고 안쪽까지 들어왔다. 아키토, 치킨. 시노노메의 손에서 치킨 바스켓과 맥주 봉투를 받아 들고는 냉장고에 맥주 먼저 집어넣는 일련의 동작은 언제나 물흐르듯했다.

난방을 잔뜩 해 두고 나가서 실내는 오히려 약간 더웠다. 아아, 재미있었다. 아즈사와가 작게 탄성처럼 내뱉고 코트부터 니트베스트, 셔츠까지 한번에 벗어던졌다.

“밖에서 훌훌 벗지 좀 마. 감기 들잖아.”
“이게 감기 들 온도야? 나 지금 엄청 더워.”

감기 들지 말라고 잔뜩 난방을 해 두었으니 아즈사와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아즈사와가 재빠르게 욕실로 들어가 씻는 동안 시노노메는 아즈사와의 벗어놓은 허물과 제 옷가지를 정리했다. 좌식 탁자 겸 식탁을 펴고 케이크에 포크를 세팅할 때쯤 되어서 욕실 문이 열렸다.

“어라, 이 팬티는 여기에 있었네.”

시노노메가 욕실 앞에 둔 실내복을 보고 아즈사와가 반색했다.

“너희 집에 없으면 우리 집에 있는 게 당연하잖아.”
“후후, 그게 아니라, 지난 주에 집에서 옷장 정리 다시 했거든. 그때 휩쓸려서 같이 버린 줄 알았는데 여기에 있을 줄 몰랐어.”
“환절기 다 지나서 한겨울에 옷장 정리를 해?”
“크리스마스에 뭐 입을 지 고르느라.”

혓바닥을 빼꼼 내밀고 그런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게 웃겼다.

“내가 쓰던 샴푸 얼마 안 남았던데, 이사하기 전까지 아키토가 계속 써.”
“그래도 돼?”
“짐 많으면 귀찮잖아. 샴푸통 하나라도 버리고 가는 게 낫지.”

사실 샴푸통 하나 버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지만. 시노노메는 순순히 아즈사와의 제안에 따랐다. 아즈사와가 쓰는 샴푸는 시트러스 향이 진해서 꽤나 청량감을 준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까 아즈사와가 정수리에 코를 박고 킁킁댔다. 자기도 정수리에서 똑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으면서. 머리에서 레몬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끼리 엉겨붙어서 레몬 향이 나는 맥주에 치킨을 물흐르듯 해치웠다.

아아, 살 것 같다. 아즈사와가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며 다리를 쭉 뻗었다.

“그래서 벌써 휴식?”
“아니. 아직 케이크 남았잖아. 너무 많이 먹으면 배부르니까 일단 한조각만 먼저 먹을래.”
“그래. 스펀지 케이크니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맛있을 걸.”

케이크는 일단 한 조각만. 그 옆에 치즈 플레이트를 간단하게 곁들여 내 주니까 또 성실하게 오물오물 해치운다.

“와인이 안 달아서 좋아. 물리지 않고 계속 넘어가네.”
“케이크 픽업하면서 그 옆에 추천하는 걸로 같이 샀거든.”
“지금까지 먹은 딸기 케이크 중에 이게 제일 맛있어.”

아무래도 그렇겠지. 케이크가 맛있고 자쿠지가 예쁜 5성급 호텔을 기준으로 찾아놓았으니까. 지금도 아쉽지 않냐 하면 솔직히 그렇다. 시노노메는 뒤에서 아즈사와를 끌어안고 물었다.

“진짜 호텔 안 가도 괜찮았어? 나 예산 진짜 넉넉하게 잡아놓았는데.”

아즈사와는 목덜미가 간지럽다며 키들키들 웃더니 치즈 한 조각을 집어 시노노메의 입가로 가져갔다. 일단은 얌전히 받아먹는다.

“작년에 제대로 홈파티 못한게 아쉬워서.”

그 홈파티는 누구 때문에 제대로 못 한 건데. 애초에 시노노메가 아즈사와의 무대를 보고 싶다고 해버려서, 연말까지 계속 그걸 준비하느라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어정쩡하게 날려보낸 거다. 아즈사와는 한번 작정한 것에는 집요하게 성실한 구석이 있으니까. 시노노메가 걸었던 기대에 그 이상으로 응답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아즈사와는 그렇게 한 거다.

“이사 준비 해야 하는데 홈파티라 싫었어?”
“그럴리가. 오히려 왜 네가 호텔 안 가고 여기 온다 했는지 의아해서.”

아즈사와는 몸을 돌려서 시노노메와 마주 보았다.

“올해 아니면 여기는 못 오잖아.”

그 정도로 여기가 훌륭한 집이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정리정돈 정도는 습관적으로 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욕실까지 청소하지만 아주 평범한 보통의 맨션이다.

“그동안 많이 왔는데도?”

하지만 이해가 안 가더라도, 아즈사와가 좋다 하면 그렇구나 하고 납득은 할 수 있다.

“이 집에도 연말 인사를 하고 싶어서……?”

물음에 다시 물음으로 답하는 화법도 조금 특이하지만, 아즈사와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구나 하고 납득할 수 있다.

아키토 올해는 거기 연말 이벤트 나간다고 했잖아. 그럼 연말까지는 또 준비해야 하니까 여기서 데이트 잘 못할 것 같아. 그러니까, 미리 이 집에 연말 인사 하려고. 지우개나 인형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아즈사와는 이 집에 제법 친근하게 군다. 아키토만큼이나 나도 이 집에 신세졌으니까 나도 작별 인사 하려는거야. 그런 말을 하면서 꼬물꼬물 침대로 올라간다. 시노노메는 픽픽 웃으면서 와인잔으로 손을 뻗었다.

“벌써 치우려구?”
“지금은 안 먹을 거 아냐.”
“조금 있다가 다시 케이크 먹고 싶어질 수도 있잖아.”

그래도 액체니까 신경 쓰여서 일단은 주방에 놓고 온다. 침대로 복귀해서 마주 보고 앉았는데, 아즈사와가 작게 쿡쿡 거리면서 웃었다.

“왜?”
“쟤네 웃기지 않아?”

행거에 대충 걸어놓은 롱패딩 옆으로 아즈사와의 코트가 거의 포옹하듯이 안에 쏙 들어가 있다.

“넌 좀…….”

저게 웃기냐고 하면 잘 모르겠지만.

“난 좀?”

아즈사와가 눈을 가늘게 올려다본다. 저게 웃기냐면 잘 모르겠지만, 그걸 보고 웃는 아즈사와는 시노노메가 보기에 재미있다.

“웃음이 많다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다 괜찮은 일이다. 웃음이 많다는 말에 또 헤벌쭉 입술이 벌어지길래, 시노노메는 그냥 그 위로 제 입술을 덮어씌웠다. 입 안에서도 계속 아즈사와가 쿡쿡거리며 뱉는 한숨이 부서졌다.





딱히 상관없고 코하네가 흥얼거리던 노래는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