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나마후 / 유기물보관센터


시노노메는 주말마다 동네 유원지로 출근한다.

유산소 운동은 걷는 게 전부이고 근력 운동은 캔버스 짜는 게 전부인 시노노메에는 1학년 때 동기의 제안으로 벽화 작업을 했다가 3박 4일을 앓아누웠다. 그 뒤로는 봉사도 아르바이트도 벽화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유화 물감 냄새는 오래 맡다 보면 적응이라도 되는데 페인트 냄새는 그게 잘 안되었다. 하루종일 서 있는 것이 제일 고역이었다. 날이 더울 때 서 있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추울 때는 더 싫었다. 추위도 많이 타고 더위도 많이 타는 시노노메는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차라리 여름을 고르는 게 나을 만큼 추위가 싫었다. 수족냉증이 크게 한 몫을 하는 것도 있다. 말단부터 쉽게 얼어붙어서 손가락으로 페인트 붓을 잡는 것도 싫었다. 동기들은 그래도 날이 추울 때가 페인트 냄새가 덜 난다고 했지만 시노노메는 그렇게까지 타협해가면서 벽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경험이잖아, 경험. 돈을 벌면 얼마나 번다고.

동기들에게는 이런 말을 못 했다. 벽화 아르바이트는 페이가 꽤 좋았으니까. 그래서 그냥 집에서만 말했다. 하루종일 화실에 틀어박혀 있거나 제 방에 틀어박혀 있느라 허벅지 살이 물렁물렁하게 퍼져있지만, 하루종일 서 있는 벽화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이 허벅지를 개선할 생각은 딱히 안 들었다. 벽화 아르바이트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고 두 번은 안하고 싶었다.

그래도 사실은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는데, 회화 작업에 필요한 재료값도 만만찮은데다 교통비와 식비 뿐만 아니라 옷과 코스메틱, 다달이 나가는 프로그램 구독료가 슬슬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재료값과 구독료는 부친이 결제 해 주고 있으며 교통비와 식비도 받는 용돈이 있다. 하지만 옷이나 액세서리, 잡화, 화장품까지 커버하기에는 조금 빠듯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예산 관리를 야무지게 하는 동생은 고정 아르바이트가 두 개이고 가끔 단기도 나가서 제법 쏠쏠하게 번다고 했다. 마당발인 남동생이 다리를 놔 주어서, 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동생이 가끔 단기 아르바이트를 뛴다는 이 유원지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타 지역에서까지 찾아올 만큼 명성이 있었다고 한다. 대단한 퍼레이드나 어트랙션을 자랑하는 건 아니다. 그냥 이 정도 규모의 도시에서 변변한 유원지가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시노노메도 미취학아동때는 연간회원권을 끊어서 자주 놀러왔다. 지금은 쇠락한, 그저 그런, 사람도 별로 없는 동네 유원지. 주말에나 동네 주민들이 와서 탁아소처럼 쓰는 놀이터 수준이다. 동생이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들었을 때, 시노노메는 흔히 떠올리는 어트랙션 담당을 상상했다. 유치하고 우스운 멘트를 날리면서 기기를 조작하는 동생을 상상해 보았는데 퍽 어울렸다. 하지만 동생은 그게 아니란다. 이 유원지에서 가끔 하는 연극의 무대를 보조한다고. 라이브하우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생이 꽤나 천직을 잘 찾아갔다 싶었다.

그리고 시노노메도 이 일이 제법 천직이었다.

가족과 연인 단위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주말의 피크 시간대에, 시노노메는 커다란 마스코트 캐릭터 동상 앞에서 차양막을 치고 초상화를 그린다. 제 발 뻗을 곳 하나는 확실히 잘 찾는 동생은 누이에게도 꼭 그런 자리를 마련해줬다. 이런 점은 기특하다.

시노노메는 이 일이 잘 맞았다. 하루종일 서서 고개를 치켜들어야 하는 벽화 그리기를 생각하면, 이 일은 너무 좋았다. 겨울에는 파카에 담요를 두를 수 있고 여름에는 차양막 아래 아이스커피를 마실 수 있고. 앉아서 일할 수 있다.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피니와 미니 의상은 좀 유치하지만 머리띠는 귀여웠다. 핑크색 펭귄이 올라간 머리띠를 쓴 셀카를 SNS에 올렸더니 반응이 좋았다. 학원 동기부터 대학 동기까지 두루두루 놀러와서 2500엔짜리 초상화를 사 갔다.

전공을 살려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다양한 얼굴을 볼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정물이나 풍경화는 소스를 무한으로 찾아다닐 수 있지만 인물은 어렵다. 학교에서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따로 더 해보려고 찾았지만 역시 금액이 부담이었다. 누드 크로키는 고사하고 인물화 모델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그런 시노노메에게 공짜 모델이 무한으로 제공되는 이 일은 천직이다.

유원지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들 기분이 좋아서 방글방글 웃고 있다. 입꼬리도 눈꼬리도 느슨하게 풀려있고, 어쩌다 시노노메와 눈이 마주치만 머쓱하게 혀를 꼬면서 웃는다. 천방지축 광장에서 뛰어다니다 무릎을 깨 먹은 어린애도 의자에 앉으면 허리를 펴고 의젓해진다. 커플들은 손가락 끝을 겨우 잡고 머쓱해하면서도 좋아 죽겠다며 웃는다. 즐거워 보이는 피사체를 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정물은 동작이 없고 풍경은 표정이 없으니까. 인물화 경험치가 현저히 적은 시노노메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있잖아, 에나. 저 사람 하루종일 저기 서 있네.”
“그러게.”

그리는 데 15분 걸리는 초상화 주문을 5건 연속으로 처 내는 동안 분수대의 여자는 부동 자세로 서 있다.

“그…… 뭐라 하지? 행위 예술 있잖아. 저러고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움직여서 놀래키는 그거.”
“리빙 스태츄?”
“그래 그래, 그거. 인간 동상. 그런 거 하나?”
“그런 것 치고 몸에 금칠을 하나도 안 했는데?”

몸은 동상처럼 꿈쩍 않고 있으나, 머리칼과 치마는 바람이 부는 대로 흩날린다. 어떻게 봐도 사람이었다.

“그러게. 그냥 사람 기다리는 중인가?”
“그런 것 치고 상대방이 진짜 너무하네.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잖아. 바람 맞히는 것도 아니고.”
“그러게. 저렇게 미인인데 너무하네.”

미인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의자에 손님이 앉아서.

아무 이벤트도 없는 시즌인데 사람이 많았다. 핼러윈 야간개장이 끝난데다가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한 달이나 남았기 때문에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노리고 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이번 주의 시노노메는 기가 쏙 빨렸다. 야간 개장도 없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릴 줄 몰랐다. 아무 일도 없는 11월에.

부스를 접고 정리하면서 기지개를 켜는데 분수대 앞에 혼자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까 낮에 이야기했던 그 여자였다. 우와, 후타바. 아까 낮에 말했던 그 여자 아직도 그대로 있는 것 같은데? 시노노메는 무심코 동료를 불렀다. 불렀는데 동료는 이미 화장실에 가고 없었다. 여자는 낮에 보았던 자세에서 조금의 변화도 없이 장승처럼 서 있었다. 허리가 무척 꼿꼿하고 목도 일자로 잘 뻗어있고 고개도 앞으로 살짝 당겨 있는 모습이 대단히 바른 자세였다. 낮에 동료가 미인이라고 했던 말 그대로였다. 입고 있는 스커트나 코트도 옷감이 고급 같고. 꽤 댄디한 오피스 레이디의 분위기가 풍겼다. 이 유원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유원지의 사람들은 모두 기분이 좋아 방글방글 웃고 있지만 이 여자는 아니었으니까. 사람보다는 풍경이나 정물이었다. 표정도 없이 움직임도 없이.

시노노메는 의무적으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 곧 폐장 시간이라서요.”

여자는 답이 없었다. 흰자에 비해 검은자가 무척 큰 눈을 황망하게 뜨고는, 시노노메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길 뿐이었다.

“그, 저기, 일부러 보던 건 아니고요. 저는 저쪽에서 일하는 직원인데요.”

맞은 편의 초상화 부스를 가리켰다. 여자의 시선이 느리게 시노노메의 손끝을 따라가더니 부스에 떨어졌다.

“하루 종일 서 계시길래. 혹시 뭐 불편하거나 어려우신 점 있으세요?”

여자는 잠자코 있다가 조그맣게 말했다.

“몽타주 그려주실 수 있어요?”
“네?”

보통 이럴 때는 몽타주가 아니라 초상화라고 하지 않나. 시노노메는 교정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삼키고 서비스직에 알맞는 어투로 고쳐 말했다.

“나만의 캐리커쳐 갖기랑 초상화 부스는 금일부로 운영 종료되셔서요, 내일 주간 개장 시간에 맞춰 오시면 받으실 수 있으세요…….”

여자의 말간 눈동자가 뚫어져라 자기만 처다보고 있어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초상화를 그리다 보면 하루종일 하는 게 남의 얼굴 쳐다 보는 건데도. 여자는 기분이 전혀 좋지 않아보였고 방글방글 웃지도 않고 움직임도 표정도 없으니까. 그런 얼굴은 힘들었다. 시노노메는 마른 침을 겨우 삼키고 다시 안내했다. 혹시 뭐 다른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저희가 이제 10분 뒤면 폐장이라, 나가셔야해서요……. 여자가 물기 많은 눈동자로 물기 없이 말했다.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하루종일 기다렸는데 안 왔어요. 어디 안 가고 얌전히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