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오웬, 중앙 시장의 케이크를 먹으려면 일단 환전을 하셔야 한다구요.”
“왜? 조잡한 납땜 주화보다도 이게 훨씬 더 귀한 건데.”
“그야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마나석 같은 거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서쪽 나라에서는 어딜 가도 이런 거 주면 머리를 잔뜩 조아렸단 말이야.”
“서쪽은 그렇죠. 거긴 마법 과학이 발달해 있으니까 마나석의 가치를 아는 일반인도 많고요.”
“그런데 왜 여기는 안 되는데?”
“그야, 중앙은 그 정도는 아니니까……. 애초에 평범한 시민이 마나석 용도를 제대로 아는 일이 드물다고요.”
이걸로 세 번째 퇴짜.
‘오늘은 내가 하고 싶은 거 뭐든 하라고 했으니까, 현자님은 아무 토 달지 말고 얌전히 따라오기나 해.’
아침 식사 자리에서 보여준 오웬의 당찬 포부와는 조금 다르게 상황이 흘러간다.
오늘 하루만큼은 얌전히 오웬에게 헌신하기로 했기 때문에, 오웬의 명령대로 아무 토 달지 않고 얌전히 따라다닌 현자다. 아침 식사에서 제 몫으로 나온 팬케이크 위 휘핑크림을 오웬에게 덜어주었고, 마법관 주변의 고양이들로부터 거리의 소문을 수집하는 일을 보조했다. (검지와 중지에 힘이 다 빠질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고양이들의 턱을 긁었고, 엉덩이를 두들겨주느라 온 몸에 고양이 털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왕도 거리의 시장에서 북쪽에 사는 무시무시한 마법사의 괴담을 퍼뜨리는 일에 힘을 다 해 주었으며(오웬 왈 현자님이 바보같이 히이이익 소리를 내는 것이 제법 효과가 쏠쏠하다고 한다), 들개나 길고양이에게 시비를 거는 불량배들을 위협하는 일에 동참했다.
오전부터 바쁜 일을 모두 끝내고나면 하루종일 디저트 투어. 오전에 한 곳, 오후에 세 곳. 저녁에 두 곳. 하루종일 이렇게 먹으면 속이 아플 것 같지만 오웬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은 오웬을 위한 날이니까, 오웬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현자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추천받은 디저트 카페는 모두 리케와 네로, 샤일록의 깐깐한 교차 검증을 거친 곳이기 때문에 현자도 기대가 크다. 더군다나 오웬이 ‘현자님은 몸뚱이만 잘 챙겨서 와’라고 했기 때문에 지갑 걱정도 없다.
‘무슨 바람이라도 불었어요?’
‘뭐가?’
‘오웬에게 디저트를 사 준 적은 많지만, 오웬이 사 주는 건 처음이어서요.’
‘현자님은 가난뱅이잖아. 그 알량한 주머니에서 나올 수 있는 디저트 가짓수야 뻔하지.’
‘으에…….’
‘영광으로 생각해. 감동 받아 울어도 좋고.’
‘기뻐요, 오웬.’
‘……짜증나.’
그렇게 오웬만 믿고 따라 나선 디저트 투어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세 번째 퇴짜를 맞은 것이다.
오웬은 디저트 투어를 할 때 혼자 나서는 일이 좀처럼 없다. 옆구리에 반드시 한 명은 끼고 간다. 옆구리에 낀 사람이 하는 일은 지갑 보조다. 말이 보조인 거지 그냥 지갑을 탈탈 털리고 오는 자원 봉사에 가깝다. 그럼 대체 누가 좋다면서 따라나서겠나 싶지만, 마법사들은 좀 괴짜인 면이 있기 때문에 같이 따라나서기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 현자는 어느 쪽이냐 하면, 오웬을 설득하는 방법 중 하나로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오늘은 딱히 오웬을 설득하려고 따라 나선 건 아니지만. 그래서 오웬이 오늘 옆구리에 낀 현자님은 큰 도움이 못 된다.
제아무리 크고 귀한 마나석을 내밀어도, 120년 동안 3대째 왕도 시내에서 굳건히 버텨 온 꿀 케이크 전문점의 장인 그랜마 리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랜마 리지는 오로지 중앙 나라의 금화나 은화, 동화만 취급하니까. 서쪽나라라면 모를까 북쪽 화폐는 환율도 나빠서 안 받는다고 한다. 분노한 오웬이 당장이라도 진열장의 유리를 때려 부술 기세였기 때문에, 현자는 별 수 없이 제 얇은 지갑을 탈탈 털어 오웬 몫의 케이크를 주문했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는 맨 위의 문장으로 돌아간다.
“오웬은 이전에도 중앙 나라 시장에 자주 출몰했잖아요. 그때는 환전같은 거 안 했어요?”
“몰라, 그런 거.”
“그때도 디저트는 먹었을 거 아녜요. 어떻게 주문했는데요?”
오웬은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를 접시에 내려놓고 손가락에 묻은 꿀을 핥았다. 한 방울도 놓치지 않을 것 마냥. 그리고 손을 깨끗하게 한 다음 쓰고 있던 군모의 챙을 슬쩍 들어올렸다.
“안녕, 나는 북쪽의 마법사 오웬. 이 가게에서 가장 달콤한 것을 모두 닥치는 대로 내놔.”
익숙한 표정이고 자주 봤던 표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무서운 건 아니다. 커피잔을 들고 있던 손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그걸 보고 오웬이 푸하하 짧게 웃었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알아서 주던데?”
그러니까 그냥 협박해서 삥 뜯었다는 소리다.
“애초에 금화도 은화도 전부 이 녀석들이 멋대로 만든 규율이잖아. 귀찮아, 그런 거.”
“그럼 그 정장이나 구두 같은 건 어디서 맞춘 건데요?”
“서쪽. 걔네들이 그런 건 잘 해. 거기 다닌 지도 400년 정도 되었나.”
용케도 옷 만큼은 제대로 (마나석으로) 지불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역시, 400년동안 마법사가 찾을 만큼 제대로 된 양복집이라면 모를까 중앙의 소상공인 그랜마 리지 씨를 상대로는 힘들지……. 현자는 남은 커피를 마저 다 마시고 지갑을 뒤적거렸다. 상대가 오웬인지라 혹시나 해서 예산을 조금 빼 두긴 했지만, 이 가게의 디저트는 하나같이 고급품이라 벌써 예산을 초과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오웬의 날>이니까 어떻게 무리를 해서라도 할 일을 모두 완수해야 한다. 지금 당장 수중에 있는 현금은 많지 않지만 방에는 예비로 빼 둔 용돈이 조금 있으니까 그걸 쓰고 어떻게든…….
“애쓰는 구나, 가난뱅이 현자님.”
“예?”
“얼굴에 다 보여. ‘나 빈털털이에요’ 라고.”
“그렇게 티 나요?”
“기사님이랑 똑같아. 뒤 마려운 개 표정 짓고 있어.”
“……뒤 마려운 개.”
오웬은 테이블 위의 냅킨을 한 장 집었다. 현자의 서를 기록하고 오웬과 함께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오웬은 의외로 손재주가 좋다. 오웬을 그렇게 무서워하는 히스클리프도 가끔 오웬이 즉석에서 보여주는 세공 마법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본다. 클로에가 브로치나 핀 제작 같은 섬세한 작업을 할 때 가끔 오웬이 옆에서 한 두 마디 힌트를 건네는 일도 있으니까. 지금도 그렇다. 몇 번 접힌 냅킨은 순식간에 새가 되었다.
“불쌍한 현자님을 위해, 내가 정의의 왕자님과 백마 탄 기사님을 불러 줄게.”
“네?”
보통 백마 탄 왕자님이나 정의의 기사님이라고 하지 않나.
“걱정하지 마. 금방 올 테니까.”
오웬은 냅킨 새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후 입김을 불었다. 새는 순식간에 생명을 얻은 것처럼 파닥파닥 날갯짓을 하며 멀어졌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현자. 오웬은 턱을 괴고 느긋하게 흐흐 웃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서 웃는 걸까? 오웬이 저렇게 웃을 때 좋은 일이 일어난 적은 없다. 민간인에게 해를 입힌다면 쌍둥이와 오즈가 즉각 바로 잡으려 할 텐데……. 현자의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테이블을 뒤덮으려 하는 바로 그때였다.
“아, 오웬이다!”
저 멀리서도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크고 상쾌한 목소리.
“정말이네. 그 옆에 현자님도 계셔. 역시 카인은 눈썰미가 좋구나.”
“눈썰미가 좋다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게 저 녀석 밖에 없으니까 말이지.”
정의의 왕자님과 백마가 어울리는 기사님이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둘 다 평소에 입던 정복이 아니라 셔츠에 슬랙스, 얇은 재킷 정도만 걸쳐 간소한 복장이었다. 오웬은 턱을 괸 상태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으로만 흘끔 그들을 확인하더니 제 확신에 흐흐 웃었다. “거 봐 현자님, 금방 오잖아.”
“아서, 카인!”
“야호, 현자님 안녕. 오늘 처음 보네.”
현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인과 손뼉을 친 다음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제 의자를 오웬 쪽으로 당겼다.
“네, 오늘은 새벽부터 행사가 있어서 카인이 고생했습니다.”
“고생이라니 무슨. 이럴때라도 날 불러 주면 기뻐.”
지난 달 그랑벨 성 근위병들이 새로 들어왔는데, 한 달 간의 교육을 마치고 업계 선배들과의 조찬을 가지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카인은 전 기사단장이라 이런 행사에 연이 없을 줄 알았으나 아서 왕자를 가장 오랜 시간동안 곁에서 보필해왔고, 지금도 그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을 높게 사서 조찬에 초정받은 것이라고.
“행사 마치고 나니까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나서, 둘이서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아서 전하는 예전부터 이런 걸 좋아했거든. 시민들의 일상에 스스럼없이 뛰어들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고, 아이들과 놀고.”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변장이 서툴러서 혼났습니다. 그때도 카인이 옆에서 잘 보조 해 준 덕분에 살았어요.”
현자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도 선거철이면 높으신 분들이 시장에 방문해서 오뎅을 먹거나 한다. 이 나라는 선거가 없지만 아서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시장에 방문해 밀크티나 팬케이크를 먹는다.
자리에 앉은 아서는 냅킨 새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둘이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오웬의 마력이 담긴 이것이 날아오더라고요.”
“깜짝 놀랐어. 갑자기 이런 걸 보내오길래, 무슨 꿍꿍이가 있거나 장난을 치는 줄 알았거든.”
“너무하네 기사님은. 무턱대고 나를 의심하는 그 고약한 버릇은 여전하구나.”
“아니, 아니. 너는 이미 선례가 너무 많아.”
“하지만 오웬의 부름에 따라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현자님도 뵙고, 다 같이 식사도 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뻐요.”
“흐응…….”
해사하게 웃는 아서를 보고 오웬은 혀를 낼름 내밀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한 치 앞도 예상 못하고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거다. 오웬의 디저트 투어 보조 경력이 많은 카인은 이 합석이 오웬에게 어떤 의미일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아서는 잘 모를 것이다.
“아서, 말해두는데 오웬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아득하게, 훨씬 훨씬 훨씬 더, 많은 케이크를 먹을 수 있어.”
“그래? 잘 된 일이야. 잘 먹는 사람은 좋지.”
아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웬이 손가락을 튕겼다. 서빙하던 점원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타박, 타박 점원의 발소리에 맞춰 현자의 심장도 두근, 두근 했다.
“디저트 전 종류 하나씩.”
“정말이야?”
“역시나!”
아서와 카인이 동시에 경탄한다. 직원은 제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고 한 번 더 주문을 확인했다. 사람 말 못 알아 들어? 모든 디저트 종류별로 하나씩 가져오라니까. 오웬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현자님이나 기사님의 알량한 지갑으로는 터무니없는 주문일지 몰라도 중앙의 왕자님에게는 일도 아닐 것이다.
“아, 그리고 홍차랑 커피도 하나씩 부탁합니다. 찻잎은…… 남국의 다즐링으로.”
“커피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블랙으로 부탁해.”
“현자님은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음……. 그럼 군청 레몬 소르베로 괜찮을까요?”
“뭐야, 소르베도 있어? 그럼 그것도 종류별로 하나씩 줘.”
직원은 바쁘게 주문을 적어내려갔다. 3대째 이어져오는 케이크 명가 그랜마 리지의 디저트 전 종류 하나씩, 소르베도 전 종류 하나씩, 남국의 다즐링 티와 블랙 커피. 오전부터 이렇게 먹었다가는 점심 때 식사 배가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오웬은 그렇다 쳐도 현자님은 괜찮아?”
“네?”
“나는 왜 괜찮은 건데?”
“너야 디저트를 밥 대신 먹는다지만 현자님은 아니잖아. 곧 있으면 점심인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으면 건강에 나쁘다고.”
“이 다음에 갈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판다고 했어요.”
주력은 샌드위치지만 팬케이크가 훌륭한 카페라서, 리케가 자신 있게 보증한 곳이다.
“아아, 그 카페는 저도 알아요. 오웬이 괜찮다면 다음 행선지도 같이 가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하아? 왕자님에게 선택권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오늘 하루종일 나한테 케이크를 대접해야 할 거야.”
“너 이 녀석…….”
“그래? 잘 됐다! 카인도 좋아할 거야. 그곳의 샌드위치는 속재료가 다양하거든. 베이컨이나 닭고기 뿐만 아니라 랍스터 토핑도 추가할 수 있어.”
아서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웃었다. 평소에는 왕자로서의 공무나 현자의 마법사로서 의뢰, 훈련을 소화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빴지만 오늘만큼은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시장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에게 이 말을 못했는데…… 사실 오늘은 말이죠,”
“<오웬의 날>이야.”
“<오웬의 날>?”
“그래, 현자님이 나를 위해 하루종일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정성껏 봉사하기로 한 날. 왕자님과 기사님도 합류해도 좋아.”
“난 아서의 기사인데, 왜 너한테 봉사해야 하는 거야…….”
“시민을 섬기는 것이야 말로 일국의 지도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난 환영이야, 오웬.”
“……전하가 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그리하여 현자는 백마가 어울리는 기사님의 수호 아래, 정의의 왕자님의 지갑에 힘입어 <오웬의 날> 전격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전 종류의 디저트를 순식간에 비우고 두 번째로 향한 카페에서, 오웬은 이번에도 팬케이크를 종류별로 주문했다. 아서도 오웬도 팬케이크를 좋아하기 때문에 리케에게 왕도의 괜찮은 가게를 자주 추천받곤 한다고.
“그 건방진 꼬맹이 녀석, 입맛 하나만큼은 제법 봐 줄만 하단 말이야.”
“그렇지? 리케는 맛있는 곳을 많이 알아서 나도 도움 받고 있어. 여기는 팬케이크 시트가 무척 폭신폭신해서 최고네.”
오웬의 팬케이크는 어마어마한 양의 휘핑크림으로 곤죽이 된 상태라 맛을 평가하기 쉬워보이지 않지만. 현자는 제 몫의 루꼴라 샌드위치에 열심히 집중했다. 루꼴라의 신선도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안에 든 치즈가 하이라이트다. 고소하고 따끈따끈한 치즈는 한 입 베어물때마다 죽죽 늘어나서 먹는 재미가 있었다. 카인은 베이컨과 닭고기, 킹크랩 샌드위치 3종을 나란히 쌓아두고 하나씩 해치워가는 중이다.
“그나저나 왜 오늘이 <오웬의 날>인거야? 현자님 오웬한테 빚 진 거 있어?”
“빚이 있으면 뭐 어쩌게. 기사님이 대신 갚아 주기라도 할 거야?”
“가능하다면. 난 현자님이 곤란해지는 거 싫으니까.”
“빚 진 것도 없고, 곤란한 것도 없어요. 그냥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렇다고 오웬만 따로 특별취급하는 건 아니고. 다가오는 1일은 오웬의 생일인데 하필이면 그 전날부터 현자가 장기 의뢰에 동행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마법사들의 생일에 장기 의뢰가 낀 적은 없었는데 어째 하필이면 딱 오웬 차례가 되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생일 당일에는 가능한 한 생일 주인공 옆에서 축하해 주고 싶은 게 현자의 마음이지만, 그걸 위해서 중요한 장기 임무를 취소하는 것도 어렵다. 결국 현자는 오웬에게 먼저 찾아가 실토했다고.
“‘미안해요 오웬. 그날 오웬 옆에 있어 주지 못해서…….’ 별 쓸데 없는 걸 가지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현자님은, 정말이지 형편없이 주눅 든 원숭이 같았지.”
“원숭이?”
“동남쪽에 주로 서식하는 영장류야. 서쪽 나라의 동물원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하지. 지난 중앙-서국 회의때 그 쪽에서 진상품으로 보내려던 걸 거절했어.”
“아하.”
혈혈단신 혼자서 살아 온 오웬은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언제 태어났는지도 잊어버렸다고 한다.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몰라도 언제 태어났는지는 별을 헤아리면 알 수 있겠지만, 구태여 그렇게 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간단하다. 딱히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없었으니까. 필요한 것만 기억하고 쓸모없는 건 모조리 잊어버리는 건 강자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북쪽의 강자 오웬은 태어난 날을 세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딱히 필요하지 않다. 현자가 살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도 있는 법이다. ‘그걸 꼭 축하해야 해?’ 오웬은 시키지도 않은 일에 제 발 저려 풀 죽은 현자를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현자는 ‘제가 그러고 싶어서요.’라고 했다.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꼭 해 주고 싶어 한다니, 평생을 혹독한 땅에서 자고 나란 오웬에게는 터무니없이 말랑해빠진 마음가짐이다. 참견쟁이 남쪽 녀석들이나 할 법한 짓을 자처하는 현자님도 참 이상한 인간. 하지만 오웬은 그런 현자가 ‘나쁘지 않았다’.
“쌍둥이님께서 가르쳐주셨구나, 오웬의 생일을.”
“네, 그래서 기왕이면 당일에 다 같이 축하하고 싶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어서요.”
“그날은 남쪽과 동쪽의 합동 임무가 있죠? 동과 남의 경계지역에서 출몰한 수수께끼의 수인성 질병 조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꽤나 장기전이 될 것 같아서. 오웬에게 미안하게 되었으니까 오늘 미리 축하를 하려는 거에요.”
“그럴거였으면 우리도 부르지 그랬어. 기왕 축하할 거면 다 같이 모여서 떠들썩하게 하는 게 더 재미있을 텐데.”
“그러니까 싫은거야, 기사님.”
“어? 왜?”
마법관의 생일 파티는 생일의 주인공 의견이 절대적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 만찬 메뉴도 주인공이 좋아하는 것으로 준비한다. 음악 선곡도 라스티카가 주인공을 위해 작곡한 신곡. 의상 역시 생일 주인공을 기념하여 해당 인물을 모티프로 한 의상과 장신구가 들어간다. 모두가 주인공에게 환호성을 지르고 사랑과 축복을 담아 연호한다. 그래서 그 조용한 걸 좋아하는 파우스트 조차도 결국 샤일록이 준비한 <파우스트> 칵테일(알콜 도수가 무려 49도)을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어 시노와 함께 구두 밑창이 닳아빠질 때까지 탱고를 추었다. 그런 망신 같은 것, 오웬은 딱 질색이다. 생일의 주인공이 그런 거라면, 그래서 주인공이 그렇게 바보같이 헤헤실실 웃는 게 마법관 모두의 행복이라면, 그 행복, 송두리째 빼앗아 주마. 오웬의 생일날 생일의 주인공인 오웬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나보다 너희들이 더 신나서 시끌시끌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날 망가뜨릴텐데, 왜 내가 그걸 허락해야 해?”
애초에 이런 걸 축하하는 의미도 잘 모르겠다. 다만, 주인공인 날에는 원하는 걸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현자님과 함께 왕도 시내의 모든 디저트를 탈탈 터는 건 즐겁다. 예상치 못하게 왕자님과 기사님이 합석했지만 이 정도는 아직 봐 줄 수 있다. 왕자님은 상냥해서 지갑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웬에게 순순히 케이크를 사 준다. 기사님은 오웬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무른 아서를 보면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는데, 이것 또한 기사님을 골탕먹일 수 있으므로 좋다.
“다 같이 축하하면 그것도 무척 즐거웠겠지만……. 하지만 이렇게 넷이서 데이트를 하는 것도 저는 좋습니다. <오웬의 날>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뻐, 오웬.”
“……데이트.”
“어라, 카인은 모르나? 이렇게 다 같이 외출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걸 데이트라고 한다던데. 전 현자님께서 그렇게 알려주셨어.”
“……그렇구나.”
중앙 최고의 플레이보이 카인이라면 데이트의 올바른 뜻을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것의 올바른 정의를 내리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다. 현자는 난감한 표정의 카인과 눈빛을 교환하고는 허허 웃었다.
“그러게요. 이렇게 넷이서 같이 나오는 건, 지난 카인 생일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아요.”
“아아, 맞아. 그때 오웬이 꿈의 숲을 구경시켜줬지.”
“구경시켜 준 거 아니야.”
“방문했다는 걸로 고쳐서 말할까?”
“흥, 좋을대로 해.”
그 말을 끝으로 오웬은 마지막 팬케이크 접시까지 싹싹 비웠다.
이 뒤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빡빡한 카페 투어 일정. 중간중간 시장을 구경하거나 간단한 쇼핑을 하거나 했다. 아서는 시내에 오면 분수대에 동화 한닢 넣는 것이 루틴이라고 해서, 오웬은 선선히 이를 허락해주었다. 카인은 사정사정해서 오웬의 허락을 받아 새 만년필과 잉크를 구입했다. 이 만년펜이 이 잉크여야 필체가 그나마 단정해보인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길을 걷는 중간에 오웬의 입이 심심하지 않도록 사탕이나 초콜릿, 쿠키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대망의 다섯 번째 카페. 저녁 식사를 앞두고 마지막 행선지다. (저녁 식사 후에도 빙과 전문점이 하나 대기 중)
이렇게나 커피를 여러 잔 마시다가는 밤에 밤들 수 없을거라며, 카인은 지지난번 카페부터는 가벼운 레몬수를 주문했다. 아서도 연한 밀크티를 두어 잔 마신 뒤 말린 자몽을 띄운 꿀차로 바꿨다. 현자는 오웬만큼은 아니어도 디저트를 꽤 즐기는지라, 달지 않은 휘낭시에와 카눌레를 주문했다. 언제나처럼 ‘디저트 전 종류 하나씩’ 주문을 하려던 오웬을, 이번에는 아서가 제지했다.
“뭐야, 죽고 싶어?”
“아니, 아니. 잠깐만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오웬.”
“무슨 꿍꿍이인데?”
“약간 특별한 꿍꿍이. 하지만 오웬에게 절대 해가 되지 않을거라고 약…….”
“미쳤어?”
이런 별 거 아닌 일에 약속이라니. 중앙의 남자들은 다들 허파에 바람이 빵빵하게 차 있는 게 틀림 없다. 아니면 편도체에 이상이 있거나. 현자도 오웬도 동시에 얼어붙었다.
“맞다. 약속은 못 하지만……. 하지만 약속이었다고 해도 내게는 괜찮았을거야. 오웬에게 해가 되지 않는 건 분명하니까.”
그때 뒤에서 카인이 양 손 한가득 거대한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서 그랑벨 특별 요청으로 주문 제작한 <오웬의 날> 기념 케이크!”
웨딩 케이크를 방불케 하는 초 특대 사이즈의 3단 케이크다.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건지 각 단마다 화려한 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색소를 넣어서 검은 크림 위로 붉은색과 보라색 장식이 적절히 올라가서, 고급 실크로 만든 만든 야회복을 보는 것 같았다. 맨 윗단에는 커다란 초가 있다. 카인은 능숙하게 손가락을 튕겨 촛불에 불을 붙였다.
아서가 선창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카인이 따라 부른다.
“생일 축하합니다.”
현자도 따라 부른다.
“사랑하는 오웬의…….”
마지막 구절을 부를때는 가게 안의 모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게 되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뭐 해, 오웬. 빨리 초를 불지 않고.”
“이게 다 뭔데?”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고 초를 부는 거에요. 한 번에 다 꺼질 수 있도록 크게 불어야 해요.”
“쿠레 메미니.”
단 한 개 짜리 촛불이 순식간에 꺼졌다.
“에~ 재미 없다.”
“내가 너희들 구경거리라도 돼?”
마침내 점원까지도 이쪽을 쳐다본다. 뭘 쳐다보는 거야. 구경 났어? 썩 꺼져. 오웬이 낮게 으르렁거리자 히익 소리를 내며 카운터 뒤 주방으로 도망간다. 시선이 자꾸만 이 쪽으로 몰렸다. 오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웬, 화 났어?”
“오웬!”
현자와 아서의 불렀지만 오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왜 화 내는 거야?”
카인의 눈썹이 아래로 축 처졌다. 이해할 수 없는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아서는 잠자코 앉아서 무언가를 곰곰 생각한다.
“제가 오웬을 다시 불러 올게요.”
“현자님 혼자서?”
“괜찮아요. 그리고…….”
오웬이 정말로 싫어서 화가 났으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굳이 현자가 보는 앞에서 가게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현자도, 아서도, 카인도. 마음 먹는다면 누구나 오웬을 쫓아갈 수 있도록. 오웬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현자는 오웬을 따라 가게 문을 열고 나갔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는데다가 공기도 차가워서 약간 썰렁했다. 하늘에서는 거대한 재앙이 희끗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장 한복판의 카페에서 오웬이 어디로 사라졌을지 짐작해보는 건 어렵다. 현자는 달에 대고 기도하듯이 두 손을 살짝 맞잡았다. 언젠가 리케가 알려주었던 방법을 떠올리며.
“오웬, 나타나주세요…….”
그리고 현자의 마법사는 제 현자의 부름에 틀림없이 응답한다.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라는 건 그런 관계니까.
“뭐야, 안 돌아갔어?”
“오웬!”
상대가 오웬인 것도 잊은 채 현자는 오웬의 손을 덥썩 잡았다. 차가운 가죽 장갑 안에서 오웬의 손이 작게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미안해요. 아까 놀랐죠.”
“뭐? 겨우 케이크 따위에 내가 놀랄 것 같아? 이 오웬이?”
“아뇨, 아뇨. 예고 없이 갑자기 그런 일을 해서…….”
“아서나 기사님이나 다들 하나같이 태평하고 허허실실 웃는 게 짜증나서 나온 것 뿐이야. 디저트 투어 그만둘래. 이제 질렸어.”
“오웬…….”
군모의 챙이 드리운 그늘 때문에 오웬의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현자는 고개를 좀 더 내밀고 오웬 쪽으로 성큼 한 걸음을 더 붙였다. 오웬은 당황해하면서 현자가 내딛은 한걸음 만큼, 딱 그만큼만 한 걸음 더 뒤로 제 몸을 물린다.
“아서도 카인도 어떻게 해서든 <오웬의 날>을 더 즐겁게 만들어 주고 싶었대요. 그래서 아까 저랑 오웬이 밀크셰이크를 먹는 동안, 두 사람은 작전 회의를 했어요. 생일의 주인공으로서 맞는 <오웬의 날>이라면, 역시 축하 의식이 있어야 할 거라고.”
“축하 의식?”
“지난 리케의 생일에서도 봤겠지만, 제가 살던 세계에서는 생일 케이크 위에 초를 붙여요. 생일 주인공의 나이에 맞는 숫자로. 오래 산 마법사들은 그러지 못했지만……. 그리고 생일을 축하한다고, 사랑한다고 다 같이 축복의 노래를 부르는 거에요.”
“나도 알아, 그딴 바보 같은 노래.”
“오웬은 싫었어요? 저랑 아서랑 카인은 모두 오웬의 생일을 이렇게나마 미리 축하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는데. 오웬을 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해요.”
“이상하잖아.”
“네?”
“현자님은 남쪽 마법사들 같이 참견쟁이에 물렁하고 무사태평하니까 그렇다 쳐. 하지만 두 사람은 뭔데? 자기 눈을 빼앗은 철천지 원수 앞에서 생일 축하한다며 실실 웃기나 하고. 또 기사단을 습격해서 제 기사도 빼앗아 간 나쁜 마법사에게 사랑과 축복의 노래 따위나 부르고. 다들 제정신이 아니잖아.”
“오웬…….”
말만 따지고 본다면 오웬의 말은 틀리지 않다. 현자가 보기에도 오웬은 무서운 북쪽의 마법사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고 마법도 혼자 배웠으며 그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마법사. 그건 오웬의 정체성이자 곧 긍지다. 그런 오웬이 이렇게 순순히 마법관의 공동 생활에 협력해 주는 것도 사실은 꽤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단단한 악연으로 묶인 카인, 오즈의 양아들과 다름 없는 아서와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지만.
“철천지 원수에 나쁜 마법사가 태어난 날이라면 축하할 게 아니라 두려움이나 분노에 어쩔 줄 몰라 해야 하는 것 아냐? 다 이상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틀림 없어.”
“하지만 오웬, 그러기엔 우리, 너무 오랜 시간동안 서로를 봐 왔는걸요.”
“뭐?”
군모의 챙 그늘 밑으로 오웬의 눈동자가 보인다. 사람을 세 치 혀로 유혹해서 피까지 쪽쪽 빨아먹는다는 괴담이 있는, 북쪽 숲의 사악한 마법사 오웬. 누군가는 그 눈을 보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의 선혈같은 눈동자라고 하지만. 현자는 안다. 주문을 영창할때 그 홍채가 타오르는 불꽃의 색을 하고 있다는 걸. 왼쪽에 박힌 노란색 눈동자는 노을빛을 받은 황금밀밭처럼 보인다는 것도 안다.
카인이 그랬다. 싫은 이유를 대라면 백 개도 더 댈 수 있다고. 하지만 일단 지금은 현자의 마법사라는 이름 아래 같은 동료가 된 입장이니까, 싫어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실로 지난 여름 쯤 되어서는 카인도 오웬에게 허물없이 대하는 게 눈에 띄었다. 지금도 오웬이 싫냐는 물음에 카인은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건 아직 좀 멀었어. 그래도 그 녀석이 싫은 이유는 점차 줄어들고 있어.’ 그리고 요즘의 카인은, 카인 나름대로 오웬을 좋아할 이유를 찾아낸 것 같았다. 여전히 미워하기엔 서로 오랫동안 얼굴을 봐 왔기 때문이다. 서로의 눈동자를 오래 들여다 보았기 때문이다. 현자와 현자의 마법사라는 이름 아래에서 묶여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서로에 대해 많이 알아버렸고 서로의 눈동자를 오래 들여다 보았기 때문이다.
오웬이 무섭냐 하면, 역시 아직은 무섭다. 재앙의 빛을 받은 오웬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희게 빛난다. 재앙의 빛처럼. 그 하얀 마법사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주문의 결과를 안다. 트렁크에서 튀어나오는 지옥의 모습을 안다. 그러니까 오웬은 역시 무섭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오웬을 미워하거나 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생일을 축하하지 않을 이유도 못 된다. 사랑하는 오웬, 이라는 가사를 부르지 못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오웬의 탄생을 축하하고 축복하고 함께 기뻐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바보 같아.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사랑하면 안 되나요? 오웬도 저의 마법사인데.”
“건방지긴.”
오웬은 군모를 벗어 현자의 머리에 얹고는 난폭하게 챙을 훅 내리눌렀다. 으앗, 하고 현자가 새된 소리를 냈다.
“아, 저기 있다. 찾았어!”
“역시 카인은 눈썰미가 좋네.”
“뭐, 그렇다기 보다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현자님이랑 오웬 뿐이라 말이지.”
“아서, 카인! 케이크는 어쩌고요?”
“하하, 폐점 시간이라고 쫓겨 났어요.”
“아서가 작게 줄여줘서, 어찌저찌 케이크는 챙겨 나올 수 있게 되었어.”
케이크 상자를 슬쩍 들어 확인시켜주는 카인이 든든하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오웬? 이 다음 저녁 식사를 먹으러 가도 좋고, 아니면 남은 카페를 가도 좋아. 오웬의 선택에 맡길게.”
“…….”
아서의 물음에 오웬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찌그러뜨렸다. 아서도 카인도 대답을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오웬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끈기 있게 대답을 기다렸다. 오웬은 현자를 흘긋 보다가, 두 사람을 흘긋 보고, 마지 못해 대답했다.
“몰라, 너희들 알아서 해. 파티를 하든 춤을 추든.”
“야호!”
“그럼 마법관으로 돌아가 다 같이 <오웬의 날>을 마무리 짓도록 하죠.”
“네 생일도 아닌데 왜 네가 들뜨는 거야, 바보 같은 기사님.”
“누구의 생일이 되었든 간에 모두 기뻐하고 축복하는 날인 건 매한가지인 걸.”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닌데?”
“알아. 네 생일 당일에는 따로 파티를 한 번 더 할 거야. 그날은 나도 아서도 마침 비어 있거든.”
“벌써 피곤하네.”
오웬과 카인이 투닥투닥 말을 주고 받는 동안 아서가 현자를 돌아보고 말갛게 웃었다. 현자님, 그러니까 이거 ‘번개’라고 하는 거 맞죠? ‘번개 파티’라는 건 처음 해 봐요. 현자는 아서의 독특한 단어 선택을 구태여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아서를 마주 보고 마찬가지로 말갛게 웃었다.
“어서 하러 가죠, <오웬의 날 기념 번개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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