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안 봐도 뻔하다. 분명 샤일록의 바에서 술에 잔뜩 취한 녀석들끼리 킬킬거리다 나온 헛소리일 것이다. 당연히 질 나쁜 농담이다. 북의 땅을 제대로 밟아 본 녀석들이라면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팔 월이 되면 더더욱 기승을 부리는 중앙의 더위에 맛이 제대로 간 녀석들이나 할 법한 망상이다. 그야말로 자살하기 딱 좋은 망상. 100세 이하의 얼간이들이나 할 법한 순박한 발상이다.
헛소문과 악성 루머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오웬은 기왕이면 그런 소문이 더 멀리멀리 퍼져 나가서 중앙 광장 한복판에 광고로 내걸려도 좋겠다는 편이다. 딱 좋지 아니한가. 이 살인적인 더위에 정신 나간 얼뜨기들이 제 발로 북쪽의 땅으로 피서를 오겠다는 아둔하고 순진한 발상은 제법 귀엽기까지 하다. 꿈의 숲은 뒷전이고 사실은 북의 땅을 밟자마자 정신도 못 차리고 줄행랑을 칠 게 뻔하지만.
하지만 현자님의 입에서마저 그런 말이 나왔을 때,
“있잖아요 오웬, 꿈의 숲으로 데려가 줄 수 있나요?”
오웬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떤 얼간이가 진담도 농담도 구분 못하고 이런 헛소문을 줄줄 흘리고 다닌단 말인가. 마법관의 마법사들이면 당연히 이게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본인의 연고지가 농담처럼 쓰이는 것을 알고도 긍지 높은 오웬이 눈 감아줬던 건, 이 소문이 멀리멀리 퍼져 나가서 아무 얼간이나 한 놈 걸리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쿡 로빈 씨라거나 카나리아 씨라거나 아니면 마법관에 드나드는 이름도 모를 얼간히 일반 시민들이. 그러면 소문이 돌고돌아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하고 많은 후보 중에서도 계산에 넣은 적도 없던 현자님의 등장이라니.
오웬은 즐거움과 황당함 사이에서 길 잃은 표정으로 현자님을 내려다보았다. 오늘의 현자님은 편한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다. 이전의 현자가 여름에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오웬은 알지 못한다. 그야, 여름에 현자님을 보는 일 따위 없었으니까. 하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현자님과 함께 여름을 나고 있다. 현자님 뿐만 아니라 스무 명의 마법사들과 다 함께 옹기종기 붙어서. 평소의 오웬이라면 볼 일 없는 반소매 내지 민소매 옷이 복도에도 식당에도 마당에도 가득하다.
“현자님은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어?”
오웬이 군모의 챙을 눈가로 끌어내리며 음흉하게 웃었다. 챙에 가려져서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쩐지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성질이 괴팍한 북의 마법사가 그렇게 웃었을 때의 결과를……. 현자님은 장담할 수 있었다. 본인이 장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올거라는 걸 장담할 수 있었다.
“현자님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꿈의 숲으로 한달음에 데려가 줄 수 있으니까. 내게도 알려줘, 현자님.”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데?
오웬이 아주아주 작고 가늘고 달콤하게 물었다. 사냥감을 포착한 고양이가 몸을 씰룩씰룩하면서 동공을 키우는 것 같다.
“카, 카인이요…….”
그럼 그렇지. 오웬은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을 지워냈다. 현자는 오웬의 급격한 표정변화에 어쩔 줄을 모른다. 저기, 오웬. 제가 또 뭔가 잘못한 게 있나요? 저는 그냥, 엊그제 카인이랑 밤에 맥주 한 잔 걸치다가, 갑자기 그런 이야기가 나와서요……. 우물쭈물 변명하듯 설명하는 현자님의 동그란 머리통을 오웬의 군모가 푹 덮었다. 조용히 하라는 듯이.
사건의 진상은 이러하다.
어느 서늘한 밤에 현자는 편안한 반소매 옷을 걸치고서 마법관 앞마당을 산책하고 있었다. 최근 며칠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밤에도 푹푹 찌는 열대야가 계속 되어서, 저녁에는 다같이 샤일록의 바에 가서 술잔을 부딪치며 여름밤을 보내는 게 루틴이었단다. 샤일록의 바는 사시사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꽤 괜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날 밤은 오랜만에 서늘했던지라 현자는 밤 산책을 하고 싶었다. 바에서 맥주를 한 잔 받아와 슬슬 산책하다가 카인을 마주쳤다. 카인 역시 마침 오랜만에 밤이 서늘했던지라 야간 훈련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법관 실내는 오즈 덕택에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건물 밖은 아니다. (이건 순전히 아서의 취향이었는데, 건물 밖의 날씨마저 균일하다면 뭔가 생활의 감각이랄까 그런 것이 떨어진단다) 마법이 능숙한 사람들이라면 건물 밖으로 나가도 알아서 체온조절을 할 수 있지만 카인은 아직 그게 서툴러서, 일과 후의 자율 훈련에 날씨의 제약이 있는 편이다.
“아서나 다른 분들께 부탁하면 금방 도와 줄 텐데도요?”
“그러는 현자님도 딱히 도움을 요청하진 않고 있잖아?”
“음……. 그건 그렇네요.”
더위도 추위도 원래 살던 세계가 훨씬 더 흉포했던 현자에게는 이 곳의 고온건조한 기후가 오히려 더 낫다. 여름은, 습하지만 않다면 대체로 견딜 만하다. 카인은 그 말을 듣더니 동부 이야기를 꺼냈다. 숲이 우거져 있고 여름에 비가 자주 오는, 길면 한 달까지 부슬부슬 비가 내려 온 거리에 물안개가 피어오를 것 같은 거리의 정경.
“제가 살던 곳과 비슷하네요. 익숙한 기후에요. 전 그런 더위에는 약하더라고요.”
“하하, 조금 더 덥더라도 건조한 게 낫다는 거구나.”
나는 비 냄새가 좋으니까 습기도 싫어하진 않는 편이야. 풀벌레 우는 소리 위로 카인의 목소리가 다정하게 얹혔다. 그리고 다시 체온 조절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면 금방 도와 줄 수 있겠지만, 나는 기왕이면 그걸 목표로 삼고 스스로 해 내고 싶거든.”
과연, 성실하고 성실한 중앙의 기사다운 모범답안이다.
쌍둥이 선생님들께 체온 조절 마법의 요령을 전수받고는 있다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고.
“오즈에게 수업 받는 것도 있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체온 조절 마법은 북의 마법사들이 특기라고도 했고, 오즈 외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가르침을 받으면 좋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열대야의 고충에 대해 토로하다가 문제의 피서지 이슈가 떠오른다.
꿈의 숲이라면 꽤 괜찮은 피서지가 될 것 같지 않아?
그 말을 들으면 미스라가 바로 반박할 것이다. ‘경치로 따지자면 제 호수만큼 아름다운 곳은 없는데요.’ 하지만 즐거운 얼굴로 ‘일단 북쪽이니까 시원할 것 같고. 그리고 숲이니까 경치가 좋잖아.’ 같은 말을 하는 카인을 보면……. 정말이지 그 달콤한 제안에 홀랑 속아 넘어 가서 당장에라도 피서를 떠나자고 외치고 싶어진다.
바보가 바보에게 바보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군. 바보와 바보가 만나서 더 큰 바보 효과를 일으켰네. 바보의 파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구. 오웬은 응접실의 테이블 소파에 앉아서 킬킬 웃었다.
“사실 다음 주가 카인의 생일이라고 들어서요. 그리고 최근 며칠간은 정말 더웠으니까. 카인도 여름의 무더위에 지쳐있을 것 같았고…….”
“헤에, 현자님은 기사님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 했구나.”
“기특……?”
정말로 기특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난 걸 축하한다는 발상도 웃기는데 그걸 축하하려고 온갖 죽음이 득시글거리는 흉포한 숲으로 데려간다는 발상이 얼마나 기특한가. 꿈의 숲 땅을 처음 밟았을 때 현자님의 겁에 질린 표정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 얼굴이 취향이라 꽤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다. 오웬은 손에 쥐고 있던 케이크 포크를 흔들흔들 하면서 현자님의 순진무구한 눈을 들여다본다. 밤색 눈이 아주 말개서, 오웬의 눈동자도 그대로 비출 수 있었다. 한여름에 타오르는 뙤약볕의 색깔 같은, 폭염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여름에 태어나서 여름 그 자체를 의인화한 것 같은, 여름에 우는 벌레 만큼이나 시끄럽고 온도가 높은 색의 눈동자를.
“절대 싫어.”
“예?”
일단 오웬의 연고지가 그런 바보같은 농담에 쓰였다는 것도 충분히 짜증난다. 그걸 눈 감아 준 건 아무나 한 놈 걸려서 바보처럼 당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하고 많은 녀석 중에 꿈의 숲이 어떤 곳인지 잘 아는 현자님과 카인이 걸린 것은 재미도 없고 시시했다. 오웬은 시시하고 재미없는 건 질색이다.
그때 두 사람이 앉은 소파 뒤에서 참전하는 소리가 났다.
“왜?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해사하게 웃는 중앙의 왕자님이, 강아지같은 눈망울로 오웬의 어깨까지 내려와 고개 숙인다.
“난 찬성이야.”
나도 그 곳이 늘 궁금했거든. 그리고 카인은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기사니까 기꺼이 그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었어. 생일 선물이나 축하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참인데 마침 잘 되었지 뭐야.
아서는 순식간에 오웬의 옆에 자리를 잡고 막 가져온 마들렌 꾸러미를 풀었다. 오웬은 미심쩍은 눈으로 아서를 곁눈질하면서 마들렌을 집어 먹었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라 소파에 부스러기 하나 흐르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기왕 이렇게 된 거, 피서에 앞서 답사를 가 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답사요?”
“네. 답사라는 말은 좀 무거운가요? 전 현자님의 표현에 의하면 ‘데이트’라고 할까요. 셋이서 데이트를 하는거예요.”
“아뇨. 데이트 보다는 답사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오웬의 오른쪽에는 현자님이, 왼쪽에는 왕자님이. 그리고 오웬의 품에는 그랑벨 성에서 가져온 마들렌 한 꾸러미. 양옆은 이미 점령당했고 앞은 디저트가 점령하고 있다. 오웬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어도, 어지간한 퇴로가 다 막혀 있어서 탈출 불능이다. 정작 숲의 주인인 오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왕자님와 현자님은 자기들끼리 벌써부터 천진난만하게 데이트 준비를 한다. 데이트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답사보다는 더 입에 잘 붙으니까 데이트라고 하자.
“현자님, 꿈의 숲 나랑 가 봤잖아. 정말 거기가 피서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가서 벌벌 떨고 울기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데. 현자님도 뇌가 아파? 두려움 같은 걸 못 느끼는 건가? 혹시 중앙의 기운이 옮았어?”
“아하하, 오웬이 보기엔 중앙이 그런 느낌이야?”
“끼어들지 마 왕자님. 난 지금 현자님한테 질문하는 거야.”
현자는 머뭇머뭇하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물론 나무나 포자들은 무섭지만요. 어쩐지 상냥하다는 기운이 느껴져서…….”
“기분 좋은 꿈을 꾸게 해 준다는 건 그냥 마비인데도? 그저 마취에 사로잡혀서 추락하는 취미가 있어?”
“아뇨. 그건 아니고요. 뭐랄까. 무시무시한 곳이긴 한데 그걸 보는 오웬이나 거기에 대해 설명하는 오웬한테서는 묘하게 상냥함이 느껴진달까.”
“나는 늘 상냥해, 현자님.”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아무튼, 저는 그곳이 싫지 않았어요. 그리고 기회가 있다면 제대로 마음을 먹고서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현자님도 거기로 도망쳐서 마취로 잡아먹히고 싶은거야?”
오웬은 영문을 모르겠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현자는 부드럽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뇨. 그냥……. 오웬이랑 한 번 더 가 보고 싶은 거에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아서는 오웬의 표정을 살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그래, 오웬. 오웬이 아끼는 숲이잖아. 나도 한 번쯤은 꼭 가 보고 싶었어.”
“왕자님도 현자님도 둘 다 악취미네. 피서라면 서쪽 관광지로 차고 넘치잖아.”
아서는 마법으로 테이블에 놓인 브리오슈 꾸러미의 포장을 풀었다. 그리고 한 조각을 둥둥 띄워 오웬의 입가로 배달한다. 그리고 오웬의 귓가에 약간 속삭이듯이 고백했다.
사실 피서는 핑계일지도 몰라. 꼭 지금 같은 폭염이 아니더라도, 한파가 들이치는 한겨울이라도 오웬의 숲이 궁금할 거 같거든.
있잖아 오웬, 난 오웬이 궁금해. 오웬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아.
그렇지만 오웬은 오웬만의 긍지와 영역이 있겠지? 그러니 내키지 않는다면……. 거절해도 좋아. 이건 그냥 간단한 나들이 요청 같은 거라고 해줘.
하지만 그 말이 도리어 그를 자극시켰다. 오웬은 눈앞의 브리오슈를 거칠게 낚아채더니 한 입에 넣고 의기양양하게 내뱉었다.
숲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저절로 그런 소리가 나왔다. 오웬의 수호로 덜덜 떨릴 만큼 춥지는 않았지만, 피부에 닿는 공기부터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여름에는 눈이 내리지 않지만 그래도 추운 건 매한가지라고. 중앙과 인접한 국경 지대나 좀 시원한 피서지 느낌이다. 그 이상으로는 위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금방 고산지대처럼 추워진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오웬의 숲은 그보다 훨씬 더 춥다. 한겨울이었으면 눈이 더 푹푹 왔겠지만 지금은 그나마 싸락눈만 겨우 내린다.
이곳이 피서지로 괜찮아 보인다는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현자로 갓 소환되었을 당시는 겨울이어서 이 땅이 추운 것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했다. 겨울에 추운 곳을 가면 추운 게 당연하니까 둔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중앙의 폭염에, 무더위의 한가운데에 있다가 와서 그런가 뼛속까지 추위가 잘 스며들었다. 더워서 느슨하게 풀려있던 온 몸의 근육이 쨍쨍하게 경직된다. 오웬의 말이 맞았어. 꿈의 숲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태평하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카인은 루틸과 술을 먹다가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꿈의 숲이라면 좋은 피서지가 될 거라고. 루틸은 그 말을 어디서 들었냐니까 미틸에게서 들었단다. 베넷 바의 어른들 전용 술자리에서나 나올 법한 술주정 섞인 농담인 줄 알았는데 출처는 의외로 미틸이라서 놀랐다. 미틸은 어디에서 들었냐니까 브래들리에게 들었다고 한다. 브래들리가 청소년 앞에서 술주정을 부리며 그런 말을 했다고? 현자는 심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나 네로가 진정시켜줬다. 오후에 시원한 간식을 찾아 식당에 온 미틸이 브래들리와 빙과를 먹다가 나온 말이었다고.
‘미틸이나 루틸이나 카인이라면 모를까, 브래들리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건 그야말로 북의 마법사들이나 하는 농담 같은 거였구나.’
그리고 거기에 순진하게 걸려든 이 모든 사태의 당사자 카인은, 추위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설경에 감탄하는 중이다.
피서로 올 만한 곳은 아니다.
그리고 카인의 생일 준비를 위해 계획한 답사였는데 카인도 참전해버려서 이것 또한 의미가 없다.
하지만 아서는 고백했다. 피서는 핑계이고 그냥 오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리고 현자 또한 긍정하는 바이다. 카인의 생일은 더 성대하게 축하할 거고, 오늘은 그냥 이 꿈의 숲 답사에 성실히 임하는 편이 좋겠다고.
남들은 다 벌벌 떨면서 포자에 겁을 먹거나 숲의 바닥에 드러누워 안락한 죽음을 기원한다. 그런데 중앙의 남자들은 정말 피서를 온 것 마냥 화기애애한 꼴이, 오웬은 은근히 거슬렸다. 나뭇가지를 털면 눈이 쏟아지고 겨울 새가 날아오른다. 아서는 오즈에게 전수받은 지식을 총 동원하여 북쪽에 서식하는 생물을 카인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오웬은 그걸 못마땅해하면서도 팔짱 끼고 얌전히 들었다. 현자 역시 아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북쪽의 생물을 소개하는 아서는 오즈와 닮은 면이 있다. 차분하게 말을 골라가며 설명하는 뺨은 향수로 물들어있다. 유년기를 추억하고 있는 것일 테다.
“그나저나 카인은 추위를 전혀 안 타네요. 마법 걸었어요?”
“아니. 지금 이 옷만으로도 충분해!”
“네에?”
“나 원래 추위는 많이 안 타거든. 여름은 더위를 많이 타서 고생하지만……. 그리고 여름의 북쪽 나라는 지금으로도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것 같아.”
그야말로 여름을 빚어 만든 남자다.
“카인에게는 정말 여기가 피서지겠네요.”
“하하, 그런가?”
여름의 날씨만 따지고 본다면 북쪽도 꽤 체질일지도. 그런 말을 하면서 카인이 청량하게 웃었다. 배경은 눈이 잔뜩 쌓인 숲이고 사방이 삐죽빼죽한 침엽수인데도 카인이 웃으면 직사광선이 쨍 하고 내리쬐는 것 같다.
그 직사광선을 단호하게 물리치듯이 오웬이 입을 삐죽거렸다.
“아니, 전혀 안 어울려. 기사님은 속눈썹이 짧잖아.”
오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카인과 현자는 서로 마주보고 눈을 껌벅거렸다.
“속눈썹이 짧으면 체질이 아니야?”
아서는 무언가 기억났다는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치며 빙긋 웃었다.
“하하, 그렇지. 카인은 속눈썹이 짧으니까!”
“뭐……?”
아서는 북부 지방의 오래된 농담이라고 설명했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우스갯소리라고. 그 사람의 체모를 보면 어느 땅에서 사는 게 체질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속눈썹의 숱이 많고 길면 북에 살기 적합하다고. 그에 반해 눈썹은 숱이 너무 많으면 탈락. 눈썹은 적당히 가는 편이 좋단다. 생각해보니까 쌍둥이 선생님들도 둘 다 인형처럼 화려한 속눈썹을 가지고 있다.
“카인은 눈썹이 진하고 숱이 많은 데 비해 속눈썹은 심플하잖아? 그러니까 북부 체질은 아니라는 뜻이야.”
“아하!”
그나저나 오웬이 여기서 그런 농담을 할 줄 몰랐어요. 현자는 오늘 귀가하면 북부의 농담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오웬은 한 번 더 입을 비죽거렸다.
“기사님의 북부 이주 나는 절대 반대야. 일단 흙냄새랑 땀냄새 풍기는 개는 나한테 필요 없어.”
“개…… 취급이구나.”
갓난아기 취급과 개 취급 중에 그나마 뭐가 더 나을까? 카인이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끄응 하고 앓는 소리는 정말로 풀죽은 강아지를 연상케했지만 현자는 카인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으므로 말을 아낀다.
“하하,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하는 말이니까. 나도 오즈님께 그런 말을 들었어. 속눈썹이 길지 않으니까 여기는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그 말에 약간 쌉쌀한 애상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 애상도 오래 가지 않았다. 아서는 곧바로 얼굴을 부드럽게 녹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내 머리칼이 은빛이라 설원에 녹아들 것처럼 더 없이 어울린다는 말씀도 하셨지. 그러니까 뭐든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해도 된다는 뜻이야.”
요컨대 갖다붙이기 나름이라는 거다. 현자는 오웬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보니, 오웬은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북부 체질이네요.”
“하아?”
아니, 그렇잖아요. 일단 오웬도 머리에 은빛이 돌고. 옷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색이잖아요. 눈썹의 숱이 너무 많지 않은데다가 속눈썹도 촘촘하고 기니까.
현자의 설명을 듣고는 카인이 맞장구쳤다.
“그러네. 그야말로 뼛속까지 북부 체질인 오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나는 확실히 북부 탈락이겠네.”
“누구 맘대로 선생이라는 거야? 난 제자 같은 거 안 키워.”
“뭐, 난 카인이 중앙의 기사이자 마법사인 게 더 없이 어울리고 좋다고 생각하지만.”
“영광입니다 아서 전하.”
오웬의 반박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카인은 아서의 손등을 잡고 가볍게 키스했다.
“이제 할 거 다 끝난 거 맞아? 빨리 돌아갈래. 관람비는 홀 케이크로 받을거야.”
오웬의 축객령에, 세 사람은 얌전히 빗자루에 탑승했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카인의 생일 당일에는 비가 왔다.
꿈의 숲 데이트가 생각보다 꽤 즐거웠으므로 다 같이 피서를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으나, 결론적으로 아서도 카인도 현자도 기각했다. 일단 그 숲에 대규모로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어쨌거나 상대는 무시무시한 북의 마법사네 숲이다. 나무의 독소와 포자도 확실히 마음에 걸린다. 절반이 어린 마법사로 구성된 이 멤버가 단체로 가는 건 아무래도 어렵다. 그리고 오웬이 정도 이상으로 질색할 것 같으니까. 오웬을 괴롭히는 꼴이 될 거 같으니까 이 건은 취소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시끌벅적하게 미틸과 리케가 깜짝파티를 성공시켰고, 네로의 특제 베이컨 코스 요리가 오찬으로 나왔다. 현자가 준비한 선물은 호박색 비즈으로 장식된 검 모양의 참이었다. 성실한 중앙 제일의 기사가 중앙 제일의 마법사로도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루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려서 바깥 활동은 무리였으므로 다 같이 응접실에서 포커 게임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고, 술과 디저트를 먹으며 하우스파티로 끝냈다. 저녁 식사까지 끝마치고 다들 내일의 일정을 준비하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올라갔다. 남은 건 베넷 바에서 술을 재촉하거나 주방에서 안주를 재촉하는 녀석들 뿐. 현자는 어느 쪽인가 하면, 몸도 식힐 겸 하루를 정리할 겸 해서 밤 산책을 하는 쪽이다.
어두워지고 나니 비로소 비가 그쳐서, 걷기 딱 좋았다. 블럭이 깔린 길은 미끌거리지 않고 흙탕물도 튀지 않는다. 흙과 풀이 젖어서 은은하게 냄새가 올라왔다. 현자는 이걸 여름의 냄새라고 부른다. 익숙한 산책로를 걷다가 아서와 카인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딱 붙어서 대화를 하던 두 사람은 현자를 보고 손을 마주 흔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성큼성큼 현자의 양 옆으로 섰다.
“안녕, 현자님. 밤 산책 중?”
“네, 두 사람도?”
“네. 내일의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서는 뒷 말을 잇지 않고 운을 띄웠다. 카인이 쑥스러워하며 대신 대답했다.
“지난 주에 배운 마법을 복습해봤어. 오즈와 일정이 겹치는 일이 좀처럼 없어서, 아서가 대신 봐 주고 있어.”
“생일인데도 성실하네요.”
“뭐랄까, 하루의 루틴을 다 하지 않으면 잠이 안 와서…….”
오늘도 새벽같이 기상해서 아침훈련을 마치고 방에 들어왔다. 미틸과 리케가 카인을 깨우러 가는 길에 복도에서 카인을 마주치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뒤에서 갑작스럽게 누가 현자의 어깨를 잡았다.
“그래, 그런 바보 같고 꽉 막힌 게 중앙의 방식이잖아.”
“오웬……!”
“하하, 생일 지나기 전에 마지막 깜짝 파티야.”
“깜짝 파티면 나한테 하면 되잖아. 왜 애꿎은 현자님을 놀라게 하는 거야?”
카인이 가볍게 한숨 쉬었다. 오웬은 재액의 문장을 자랑하듯이 혓바닥을 낼름 내밀었다.
“그야, 기사님이 현자님 옆에 딱 붙어있으니까. 왕자님이랑 현자님은 기사님 때문에 당한 거라고?”
“전 괜찮아요 카인…….”
“나도 괜찮아. 오히려 마지막까지 오웬의 축하를 받을 수 있어서 즐거운 걸.”
생일 당사자는 카인인데 아서가 대신 고맙다고 한다. 카인은 아서가 가장 아끼는 기사이니까 제 기사를 축하해주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하는 건 별 문제가 안 되나? 아무튼.
“그러고 보니 제가 살던 세계에서는……. 8월 7일부터 가을이 온다고 했어요.”
“내일부터?”
“절기 상으로 그런 것이고 사실은 10월 7일까지도 계속 덥지만요. 체감 상 여름만 5개월은 될 거에요.”
“그럼 현자님 세계의 사람들은 전부 속눈썹이 짧을까?”
카인의 농담에 다 같이 웃었다. 오웬만 빼고.
“카인 나이트레이 같은 사람들만 모아 놓은 세계라니, 그야말로 정말 끔찍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왜 그렇게까지 나를 싫어하는 거야…….”
“기사님만 싫어하는 게 아니니까 안심해. 난 여름도 싫어하거든.”
오웬은 모자를 고쳐쓰고는 툴툴거렸다.
”이것 봐, 지금도 비가 와서 내 옷을 망쳤잖아.”
실로 오웬의 흰 바짓단 끝에는 풀물이 들어있다. 구두 밑창에도 아마 흙이 묻어있을 것이다.
“오웬은 역시 북부 사람이라 여름에 약한 거야?”
“지금 북의 마법사에게 약하다는 말로 도발하는 거야?”
오웬이 화난 듯이 눈썹을 치켜뜬다.
현자는 오웬의 소매를 붙잡고 만류한다.
아서는 그저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말없이 관전한다.
카인은 ‘항복’ 포즈로 양 손바닥을 보이며 동작을 정지한다.
“여름에 약한 게 아니라, 여름이 약한 거야.”
이 계절은 이상해. 이 기후는 이상해. 태양도 정도 이상으로 뜨겁고, 벌레 소리도 전부 시끄러워. 풀 냄새도 흙 냄새도 비 냄새도. 어차피 북쪽으로 오면 다 죽어서 없어질 약한 것들이 기승을 부리니까, 여름은 약한 계절인거라구.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해봤지만, 평생을 북에서 나고 자란 마법사에게는 정말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싶다.
“기사님도 그래서 싫어.”
“나?”
“그래. 풀냄새나 풍기고. 흙냄새랑 비냄새 같은 거나 묻히고 다니잖아. 그리고 훈련하고 왔다면서 땀냄새 풍기는 것도 싫어.”
“윽, 그건……. 그리고 나 훈련 마치고 나면 바로 씻고 오는데도.”
“아무튼 싫어.”
그거 전부 다 북쪽에는 없는 냄새라 이상해.
북쪽에서 땀 흘리는 녀석들은 전부 약한 녀석들이야. 얼어 죽는 녀셕도 바보같지만, 땀 흘리는 녀석들은 더 바보라구.
그러니까 기사님은 평생 이 바보같고 얼간이 같은 여름에 살도록 해. 기사님 같은 얼간이가 북쪽이니 뭐니 터를 옮긴다는 말은 정말 최악이니까.
북쪽으로 이주한다는 말은 한 적도 없는데……. 카인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오웬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오웬은 그 표정이 흡족했는지 씨익 웃고는 카인의 턱을 붙잡았다.
“평생 중앙에서 썩으라는 말이야.”
자세나 말의 내용은 영락없는 협박이지만 목소리만큼은 아주 훌륭하게 달콤하다. 카인이 오웬의 말에 버벅대는 걸 보고 오웬은 한 번 더 흐뭇하게 웃었다.
“평생 중앙 악취나 풍기면서 고결한 기사님으로 살라구.”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방금, 뭐였을까요……?”
현자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건 축복이었을까, 아니면 저주였을까.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 아닐까요?”
아서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방금의 살벌한 대사를 생일 축하 멘트로 받아들이다니, 역시 중앙의 왕자님이 되려면 그 정도로 그릇이 넓어야 하는 구나. 현자는 새삼 아서의 포용력에 감탄한다.
“음, 그렇구나! 생각해보니까 중앙의 마법사로 어울린다는 말을 했었지. 고결한 기사가 되라는 축복도 있었고.”
그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금세 오웬의 말을 축복으로 이해하는 카인의 포용력에 한 번 더 감탄한다. 중앙의 사람들은 다 이런 걸까…….
“정말 그걸로 괜찮은거에요?”
“응? 다른 뭔가라도?”
“현자님, 어디 신경 쓰이는 거라도?”
강아지 같은 눈망울 두 쌍이 동시에 현자를 바라본다. 현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8월 6일까지 몇 시간 안 남았으니까 하는 말인데, 다시 한 번 더 생일 축하해요 카인…….”
“응, 고마워 현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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