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에서 온 죽음의 신부 아가씨

*오웬 → 미스라 → 치렛타

*꿈의 숲 스팟 에피 4화
(미스라 심연 털려다가 치렛타 보고 지가 역관광 당하는 오웬 ....이라는 리퀘로 작성)
*모브녀 비중이 많으며 cp농도가 낮음에 주의
*모브녀에게 잔혹한 일이 일어남 아무튼 뭐든 ㄱㅊ은 사람만





죽음에 몹시 심취한 나머지 죽음의 신부가 되고 싶어 했던 여인이 있었다. 눈과 얼음으로만 빚어진 이 혹독한 땅에서도 봄처럼 아름다운 여자였다. 밀밭같이 부드러운 고수머리는 남국의 과실만큼이나 달큰한 향취를 풍기고, 두 뺨은 수박같이 물들이고, 꽃가루처럼 뭇 사람을 간지럼 태우는 여자. 그러나 이 땅에서 아름답기만 한 여자는 아무 쓸모 없었다. 모름지기 아름다운 여자는, 아름다운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될 수 없으니까. 고명한 집안의 여식이 아니니까 어느 고명한 집안 자제의 여자가 되어야만 그때부터 쓸모가 있어지고 뭐라도 되는 법이다. 주제에 과분한 몸뚱이를 갖고 태어난 여인은 아름답기만 하고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제 처지를 한탄하며 죽음의 이름을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당도한 죽음의 땅에서 절규한다.

“죽음이여! 부디 저를 거두어주십시오!”

그러나 죽음은 오직 죽은 이들에게만 관심 있었다. 죽음은 인간을 좋아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필멸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죽는 인간이기 때문에 죽음은 인간을 좋아했고, 죽은 자들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저를 거두어 달라는 신부의 절규에 죽음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모름지기 이 땅에 당도한 자들은 그 숨을 내게 주어야만 내게 속할 수 있노라.”

신부는 그 말을 듣고 죽음을 향해 입술을 맞추고자 하였다. 그러나 죽음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죽음은 이미 죽은 자에게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고자 하는 사람은 아직 그 목숨이 붙어 있으므로, 감히 죽음에게 입술을 맞추는 것은 허락되지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이 땅에 살아있는 상태로 온 자는, 몇 백년과 몇 천년을 헤아려보아도 이 여인 뿐이었다.

여인은 비탄에 찬 숨결을 뱉으며 간곡히 호소했다.

“죽음이시여, 저는 당신의 신부가 되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의 숨을 당신께 내어드리고자 하는 일인데 당신께서는 그 입술조차 허락하지 않으시렵니까?”

죽음의 대답은 변함없었다.

“내 입술을 맞추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신부가 되려 하다니, 오만하다.”

그리고 끝끝내 신부의 목숨은 거두지 않은 채 죽음의 호수 너머로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어때, 현자님.”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요?”

“글쎄, 현자님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글쎄요…….”

하하, 얼빠진 얼굴.

오웬이 노래처럼 쏜살같이 앞질러간다.

“오늘도 기분이 좋아보이는구먼.”

“현자에게 제 땅을 보여줄 생각에 신나는 걸지도.”

“아니면 미스라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그런걸지도.”

“정말 미스라의 이야기가 맞나요?”

“흐음…….”

현자의 물음에 쌍둥이는 서로의 팔짱을 끼고 잠시 사색하는 척을 한다.

“오웬이 하는 말에 하나하나 다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다는 게야.”

“오웬의 말 중에 절반은 거짓말이고.”

“나머지 절반도 진실이라고 장담할 수 없고.”

“그러나 절반이 진실일 수는 있단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마법사라면 모름지기 제가 주인공인 민담이 서넛 정도는 있기 마련이다. 브래들리도 브래들리 나름대로의 민담이 있고, 미스라도 미스라 나름대로의 민담이 있다. 하물며 아득할 만큼 몇 천 년의 세월을 산 쌍둥이의 민담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쌍둥이도 그들의 민담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함부로 마법사의 신부를 자처했다가, 그 마법사의 정인을 분노케 하여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갈기갈기 찢겨나간 불쌍하고 오만한 여인의 이야기.

그 민담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가공해서 탄생한 것일까.

쌍둥이는 그저 웃기만 했다.

‘잘 생각해 보게나. 너무나 아득한 시간을 살아 온 우리에게는, 민담을 장식하는 필멸자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도 일이라네.’

상냥하고 애교가 뚝뚝 넘치는 말이었지만 ‘이 이상 관여하지 말라’는 저의를 읽는 데 방해되지 않았다. 세상에게, 땅에게, 정령에게 사랑받느라 죽음에서 가장 먼 마법사들은 너무 쉽게 죽는 인간의 눈에 쉬이 서늘하게 보였다.

현자는 신중하게 가설을 세우면서 오웬을 뒤따라간다.

“제 생각은 이래요. 마법사의 신부를 자처하는 여인들은 이 지역 민담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니까 가공의 존재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빈자들이 죽음의 호수에 몸을 던지러 왔다는 이야기는 진실일 지도 모르죠. 혹독하고 살아남기 어려운 땅이라고 하셨잖아요. 미스라가 그 빈자들을 그렇게 매몰차게 내쫓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아하, 그러니까 현자님이 듣기에 신부는 가짜고 방문은 진짜라는 거지?”

오웬은 어느 새 뒤쪽에서 현자의 어깨 위로 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귀 바로 옆에서 꺼질듯한 목소리로 속삭이는데도, 체온이 없어서 그 기척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현자는 무방비하게 놀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음……. 어쩌면, 신부도, 진짜일지도요.”

오즈는 오즈의 신부를 자처하는 여인들의 민담에 대해 알려준 적 있었다. 그 누구와도 얽히지 않는 오웬에게 신부가 있다는 민담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미스라라면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일단 얼굴이 좋으니까. 그런 얼굴을 한 남자라면 마법사가 아니고 죽음의 신이 아니어도 뭇 여인들이 신부가 되고 싶어 줄을 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에. 그렇구나. 그럼 미스라가 신부에게 한 짓도 진실?”

“그건…….”

솔직히 말하자면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마법사는 변덕이 심하다. 그 중에서도 오웬과 미스라는 사고와 행동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기가 특히 어려워서, 현자는 늘 이 두 사람을 대할 때 애를 먹었다.

신부를 죽이지 않고 쫓아낸 미스라도 상상하기 어렵고, 신부를 죽이지 않고 쫓아낸 미스라도 상상할 수 있었다.

“오웬, 그냥 알려주면 안 될까요? 오웬의 수수께끼는 어려워요.”

“난 수수께끼라고 안 했어. 그저 시시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준 것 뿐.”

“그렇지만 지금 이건 수수께끼가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답을 알려주세요.”

“현자님은 솔직해서 편하네. 쉽고. 재미없고.”

“오웬!”

오웬과 실랑이를 하는 동안 어느 새 숲 한가운데로 진입했다. 오웬은 대답에 앞서 현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주문도 필요없이 간단하게 걸 수 있는 마법이지만, 구태여 어깨의 포자를 털어내는 수고로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도 몰라. 모르니까 현자님한테 물어 본 거고?”

“오웬……!”

“하지만 대답의 절반은 알려줄 수 있지.”

그리고 나무의 옹이가 빠진 자리에서 뭔가를 쑤욱 뽑아냈다. 가느다란 은실을 뭉쳐셔 만든 것 같은 덩어리는 꼭 실타래같기도, 누에의 고치같기도 하다.

“현자님도 궁금하면 볼래?”

“네?”

“내가 수호를 걸어놓았으니까 조금 맛봐도 죽지는 않을 거야.”

그 불쌍하고 멍청한 여자, 결국 여기서 죽었거든. 죽기 위해 죽음의 호수에 간다니 바보같지. 거긴 시체만 취급하는데 말이야. 오웬의 달콤한 음성을 배경 삼아 은실 덩어리를 보고 있으려니까 가슴이 울렁울렁해졌다. 누에 고치를 닮은 이건 여인의 마지막 기억이다. 이 숲의 방문자들은 제 몸뚱이를 바친 대가로 꿈을 얻는다. 몸뚱이야 어차피 금방 썩어버리지만 꿈만큼은 영원히 꿀 수 있으니까 제법 수지에 맞는 계산인 것이다. 기실은 그 꿈조차도 영원히 꿀 수 없는데. 몸뚱이가 완전히 썩어 없어지고 나면 그동안 꾸던 꿈마저도 딱딱하게 굳어서 고치의 형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민담의 부속품이야 차고 넘치게 많지만, 그 미스라에게조차 버림받아 여기까지 오게 된 기구한 사연은 흔치 않지.”

“그 미스라, 라는 건?”

“미스라 같은 금치산자에게 죽음을 구분짓는 기준이 있다는 게 미심쩍지 않아? 그 녀석, 사냥감을 잡아도 음미하는 방법을 모르는 걸. 일단 냅다 숨통부터 끊어준다는 점에서는 상냥할지도.”

“아하……. 그러게요. 그런 미스라가 예외 없이 규칙을 내세운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지도요.”

“아무튼, 그래서 이 고치는 아껴 둔 거야. 그 미스라가 그런 짓을 했다니, 거짓말 같잖아? 난 이런 거 좋아해.”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서슴없이 고치를 손수 반으로 가른다. 폭력적으로 찢긴 고치에서 여자의 비명 지르는 소리가 환청같았다.

죽음의 호수로 뛰어간 여인.

현자는 여인의 눈을 통해 미스라를 본다.

현자도 익히 알고 있는 미스라의 마도구에 여인이 키스한다.

기억은 거기에서 잠시 끊기고, 다시 화면이 전환되어 꿈의 숲이다.

수의 삼아 입은 새하얀 신부복은 온통 피로 물들어있고, 아름다운 고수머리는 험하게 찢겨 있다. 죽음에게 버림 받아서 이 숲으로 피난 온 여인은, 죽음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짖는다. 아름다운 신부복 뿐만 아니라 화장도 엉망진창이었는데, 여인의 품에서 거울을 꺼내어 제 얼굴을 비추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여인은 거울을 바닥에 내던지고 그 거울 조각으로 어떻게든 스스로 완결지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환상은 거기서 끝났다.

“어때, 현자님. 미스라가 무슨 말 하는 지 들었어?”

들었다면 내게도 알려주면 어때?

현자는 자신이 고치의 환각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오웬의 어깨에 뒷머리를 거의 파묻을 정도로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현자여, 무엇을 보더라도 그곳으로 끌려가지 말게나.”

왼손에는 스노우의 손이, 오른손에는 화이트의 손이 들려 있다. 현자는 퍼뜩 몸을 일으켜 양손에 들린 손을 맞잡고는 직전의 끈적한 환각으로부터 몸부림쳤다.

“후후, 장한지고.”

“호호, 기특한지고.”

“그래서 현자님, 어때? 대답해 줘.”

“오웬은 이미 이 고치를 본 것 아닌가요?”

“설마. 아깝잖아. 어떤 구경거리가 들어있을지도 모르는데. 기왕이면 현자님같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 대답을 듣는 편이 훨씬 즐겁잖아.”

쌍둥이가 동시에 나무랐다.

“오웬!”

오웬은 코웃음 치면서 다시 대답을 졸랐다. 좀 전의 달콤하고 상냥한 음성은 사라지고 음산한 재촉만 있다.

“나도 대충은 알아. 꿈의 고치를 만지면, 즐거운 소리가 나거든.”

“즐거운…….”

“꺅꺅 거리면서 비명이나 지르고, 푹푹 한숨이나 쉬고, 아니면 볼썽사납게 흑흑 울고. 그런 소리가 나지. 갓 만든 고치를 집어들면 꿈의 찌꺼기가 후드드득 떨어져. 그걸 가지고 안에 뭐가 있을까 가늠해 보는 거야. 그리고 현자님에게 보여주고 나서 정답을 알려달라 조르는 거지.”

…….”

현자는 제가 본 환상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 해야 할 지 가늠해봤다. 오래 전에 죽었다 해도 엄연히 고인의 기억이다. 악의와 저주로 빚은 골칫덩어리 오웬이라고 하지만, 현자는 악의도 저주도 없이 서늘함만으로 빚어진 오웬의 다른 모습도 이미 알아버렸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오웬이 정말 현자를 골탕먹이고 괴롭히려고 고치의 배를 갈랐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거짓말쟁이 오웬은 어떤 면에서만큼은 의외로 솔직했으니까. 오웬이 정말로 그 답을 알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직접 고치의 배를 갈라 열어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직접 확인하지 않고. 정말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

그러나 현자는 서늘함만으로 빚어진 오웬의 모습을 안다.

그래서…….

“그렇게 오래 된 민담은 아닌 것 같아요.”

“어째서?”

“신부가 미스라의 해골에 키스했거든요.”

미스라의 마도구는 스승에게 물려 받은 거라고 했다. 생의 감각이 마법사처럼 무디지 않은 현자라도, 최소 15년 정도면 아주 오래 된 일은 아니다. 민담이 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고, 최근이다.

“그리고 이건 제 가설인데요, 민담은 훨씬 더 오래 전에 만들어졌고 이 신부는 그 민담을 떠올리며 미스라를 찾아간 게 아닐까 싶어요.”

“죽음을 원하는 사람조차 거절하는 죽음의 신에게, 죽음을 빌러 간다고?”

“거기까진 모르겠어요. 어쩌면…… 민담의 이름으로 죽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죠.”

쌍둥이가 나란히 손뼉을 쳤다.

“서쪽 아가씨일까?”

“서쪽 아가씨라면 그럴 수 있지.”

“서쪽 아가씨는 낭만에 미쳐 있으니까.”

“목숨의 대가로 전설적인 비극에 영구히 박제된다면.”

“그 또한 괜찮은 낭만이지.”

오웬이 질색했다.

“쳇, 시시해.”

“시시하다고요?”

“이봐 현자님. 그런 거 말고 다른 기억나는 거 없어?”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까지는 기억할 수 없어요…….”

원하던 주제가 아니었는지, 오웬은 금세 심드렁해졌다.

“아~아, 재미 없어.”

“그러지 말고 현자여, 다른 이야기를 해 보는 건?”

“신부의 생김새에 대해 이야기 해 보는 건?”

“생김새라…….”

민담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었어요. 밀밭같이 부드러운 고수머리, 수박같이 물든 뺨……. 피범벅만 아니었다면 정말 꽃가루처럼 사람들을 간질간질하게 했을 것 같아요.

아 맞다.

현자는 민담을 현실로 끄집어낸다.

“루틸이랑 닮았어요. 머리 색도 그렇고, 특히 눈동자 같은 게…….”



꿈의 고치를 현자님에게 구경시켜 준 건 잘 한 일이다. 어떤 고치는 그 꿈이 지나치게 질척거려서 기분 나쁜 경우가 있으니까. 소싯적 오웬은 아무나 붙잡고 꿈의 숲까지 꼬드겨 내는 게 취미였다. 몸뚱이가 다 썩어빠지고 나면 고치를 주워다가 난폭하게 찢는 건 즐거웠다. 비명 소리, 우는 소리, 한숨 소리……. 이런 깜찍한 소리를 내는 주제에 배를 가르면 터져 나오는 꿈은 하나같이 시시하다. 시시한 건 최악. 그렇지만 최악이니까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때문에 오웬은 기꺼이 고치의 배를 갈라내며 시시한 환상에 하품 소리나 내는 것이었다.

하품 소리 내는 걸 그만 둔 건 몇 세기 전의 일이다.

오즈 때문에 쑥대밭이 되었을 때, 오웬의 숲은 방문자들로 문전성시였다. 삶을 포기한 빈자들이 꾸역꾸역 숲으로 기어들어와서, 나무 포자가 시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전까지 이 숲의 방문자들은, 이 숲에서 환상이나 좇기 위해 시시껄렁하고 수수한 마음을 안고 온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의 숲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시시껄렁하고 수수하지 않아도, 끈적하고 질척하고 깊은 우물같은 마음을 갖고 온 녀석들도 너무 많아서.

오웬은 나무의 옹잇구멍마다, 나무의 잔가지마다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고치들을 잡아뜯어 신나게 배를 갈랐다. 그리고 끈적하고 질척하고 깊은 우물에서 태어난 꿈의 고치들은……. 북쪽 마법사에게 평생 몰라도 그만일 것이었다.

뭐야, 그런 거.
알고 싶지도 않았어.
이런 몽실몽실하고 푹신푹신하고 보들보들하기만 한 몽상이라니.
깔보기라도 한다는 거야?

고치를 쥐어 뜯는 장갑은 시퍼렇고 시커멓게 물이 들어 있었다. 누추하고 볼품없는 유기체로 잔뜩 더러워져서, 오웬은 신경질적으로 양 손의 장갑을 몽땅 벗어던졌다. 그리고 제 번견들에게 명했다. 저 누추하고 볼품없고 더러운 덩어리들을 몽땅 먹어 치워 버려라. 한동안은 숲에서 누추하고 볼품없고 찌꺼기같은 몽상의 한숨소리가 비명 질렀다.

그 뒤로 오웬은 섣불리 고치를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더러워진 장갑이야 다시 깨끗하게 돌려놓으면 그만이지만, 장갑을 더럽히는 감각은 질색이야.

그러니까 꿈의 고치를 현자님에게 보여준 건 잘 된 일이었다. 현자가 그걸 열어 보고 바보같이 울면 그건 또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오웬은 장갑을 꼈으니까 고치로 장갑이 더러워지는 건 질색이지만, 현자님은 맨손이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것 같았고. 보여주고 난 뒤의 반응을 보아하니 실로 그랬다. 현자는 딱 두 마디만 했다.

멍청한 신부가 감히 죽음의 성물에 입을 맞추려 했다는 것.
신부의 얼굴이 죽은 북녘 대마녀를 닮았다는 것.

민담의 진실은 거기서 완결났다.

‘시시하긴.’

오웬의 감상평은 심플하다.

서쪽에서 온 신부가 멋대로 가져다 붙인 낭만에 전율하고 감동하는, 아둔할 만큼 성실한 현자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둔하고 성실한 현자는 제가 본 민담의 진실을 낱낱히 고발하는 짓 따위 하지 않았다. 고인에게 최대한 상냥하도록, 가시와 내장을 다 발라 낸 생선의 살점만 오웬의 입에 물려준다. 하지만 민담의 주인공 미스라를 잘 알고 있는 오웬에게는 역효과였다. 오웬은 현자가 주는 살점을 고분고분히 받아 먹는 게 안 되니까. 살점을 받아먹으면서도, 그 가시의 첨예함이나 내장의 쓴 맛을 충분히 상상하게 되는 것이었다.

‘미스라 주제에, 기분 나쁘게…….’

오웬은 미스라 때문에 기분 나쁜 게 아니었다. 미스라의 민담에서 찌꺼기처럼 흩어져 있는 진실을 충분히 짐작 가능해서, 그게 기분 나쁘다. 장면과 장면 사이 끊어진 맥락을 오웬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미스라와 알아 온 세월이 몇 백 년이다. 그 몇 백년의 세월이 그렇게까지 그들을 긴밀하게 연결시켜 주진 않았을 지언정, 서로가 싫더라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기를 강제하기는 충분하다.

예쁘장하고 어리고 어리석은 신부는 낭만에 잔뜩 취하여 호수로 간다. 그리고 호수에 일렁이는 죽음을 보고 첫 눈에 반한다. 이건 오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호수 괴담이다. 이런 괴담만 대여섯 종류로 각색되었다.

그리고 여기부터는 민담이 아니라 비교적 최근이 옛날 일.

예쁘장하고 어리고 어리석은 신부는 죽고자 하여 미스라의 마도구에 키스한다. 그리고 미스라는 그 입맞춤을 거부한다. 그에게 어리고 어리석은 인간 여자 하나를 죽이는 건 재채기보다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미스라는 여자를 죽이지 않고, 죽음 직전으로 몰아간다. 여자는 숨통이 끊어지기 전에 호수에서 도망친다.

그러니까 왜?
재채기보다도 쉽게 죽일 수 있으면서.
어쩌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오웬은 기분이 나빠졌다. 징그럽잖아. 미스라 주제에 감히.

민담의 진실을 확인하고 난 뒤에 마법관에서 마주친 미스라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나태하고 심드렁하고 나른했다.

오웬이 아는 미스라는 평생 그래왔다. 재채기보다도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남자. 거짓말과 간교와 술수로 똘똘 뭉친 오웬에게 현혹되는 일도 없이 주먹부터 꽂고 보는 남자. 재채기만큼은 아니어도, 뼈를 부러뜨리는 감각으로 오웬조차도 간단하게 죽여버리는, 불곰같이 무식한 남자. 오웬이 아는 미스라는 그런 남자다. 거리낌이 없고 망설임이 없다. 생각이라는 걸 안 하고 사니까. 설원에 부는 북풍처럼 통쾌한 맛이 있는 죽음의 풍미를 오웬은 높이 평가한다. 그 시원시원함은 빙산의 단면 같다. 최북단의 마법사라면 모름지기 그래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 미스라가 어울리지도 않게 사냥감을 놓치고 얼빠진 짓을 한다니.

징그럽고 기분 나쁘지 그지 없다.

‘불쾌하니까, 짓밟아버려야지.’

오웬은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오늘 아침부터 미스라를 자극시켜 꿈의 숲으로 유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둔하고 멍청한 미스라는 이번에도 곧이곧대로 오웬의 꼬드김에 넘어왔다. 곰처럼 무식한 녀석이니까, 동물을 잘 다루는 오웬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명치가 한 번 뚫리긴 했지만 이 정도면 꽤 순탄하다.

“꿈의 숲인가……. 오랜만이네요.”

숲 입구에서 들어올 때 까지만 해도 오웬을 죽일 생각으로 혈안이 되어 있던 미스라는, 오웬의 유도에 따라 깊은 곳으로 들어오면서 온순해졌다. 밤마다 재액의 달빛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란 나무는 흘러 넘칠 만큼 포자를 뿜어댔기 때문에 미스라조차도 나른하게 포자에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별한 오늘을 위해 오웬은 나무줄기의 양분과 포자의 농도에 공을 들였다. 그 미스라조차도 이 숲에 발을 들인 이상 오웬의 손바닥 안이다. 미스라가 제 호수를 사랑하고 호수를 돌본 세월 못지 않게 오웬 또한 이 숲을 오랫동안 드나들었으니까.

본디 꿈의 고치는 일회용이라, 한 번 배를 가르고 나면 그 환상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때 현자님 앞에서 소모했던 고치도 돌아오지 않는다. 잔혹하고 잔꾀가 많으며 총명한 오웬은 그 복제품을 비슷하게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사랑의 욕망이라는거, 뻔하잖아. 조악한 꿈을 조악하게 복제하는 건 간단하다.

오웬은 문제의 고치를 품었던 나무에 제 마력을 흘려 넣었다. 제가 기억하는 그 마녀의 얼굴도 적당히 모조해서 섞어 넣는다. 그러면 마치 누에고치처럼 포자가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미스라는 이제 사라진 오웬이 안중에도 없다. 분명 오늘 아침에 밤을 꼴딱 지새웠다 했으니, 지금 쯤이면 포자 덕분에 달콤한 꿈에 젖어 있을 터였다. 오웬은 나무가 낳은 포자를 미스라의 머리 위로 흩뿌렸다. 신의 은총 되는 향유를 머리에 붓듯이, 이 저주가 미스라에게 독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재채기보다 쉽게 사냥할 수 있는 주제에. 북쪽의 마법사의 긍지를 해치는, 격의 없는 소문이나 퍼뜨리고 다니는 녀석이라면 단번에 숨통을 끊어 버려야겠다고. 미스라를 죽일 기회를 번번이 놓쳐 왔던 오웬에게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세례자가 머리에 기름을 붓듯이, 심판자처럼 그렇게 저주를 부었다.

미스라는 바위를 베개 삼아 곯아떨어져 있다. 오웬은 나무 위로 올라가 미스라가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언제든 심판을 선포할 수 있도록 위풍당당하게 정령의 보고를 기다렸다. 미스라가 얼마나 누추하고 볼품없는 일에 마음을 줄 수 있을지.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가차 없이 그 목을 비틀고, 내장을 쥐어 짜고, 혈관을 뜯어 낼 작정이었다.

동면하는 곰 같은 얼굴은 돌맹이처럼 딱딱하다. 번개나 쇳물, 우박이 떨어져도 변하지 않을 얼굴이 오웬의 시험 따위로 변할 리는 만무했다. 오웬은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었다. 상대를 꼬드기는 게 그의 즐거움이고, 나자빠지기까지의 과정을 지켜 보는 것이 기쁨이니까.



죽음에 몹시 심취한 나머지 죽음의 신부가 되고 싶어 했던 여인이 있다. 눈과 얼음으로만 빚어진 이 혹독한 땅에서도 봄처럼 아름다운 여자였다. 밀밭같이 부드러운 고수머리는 남국의 과실만큼이나 달큰한 향취를 풍기고, 두 뺨은 수박같이 물들이고, 꽃가루처럼 뭇 사람을 간지럼 태우는 여자. 모든 사람들이 한탄할 만큼 아름다운 이 여자는 세상이 너무 쉬웠다. 아름다운 여자의 삶이란 너무나 간단하다. 인간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이 여자의 허영과 권태를 채울 수 없었다. 여자는 인간 세상의 권태를 벗어나 원시 마법으로 가득찬 북쪽 땅을 좇을 만큼 허영심이 있었다. 북쪽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여전히 여자에겐 모든 것이 쉬웠다. 여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건 결국 죽음의 신부 이야기였다.

여자는 자신 있었다. 봄처럼 아름다운 여자. 남국의 과실만큼 황홀하고 달큰한 속살을 가진 여자. 꽃가루처럼 간질간질한 여자.

여자는 이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영을 채우기 위해 죽음의 나라로 한 달음에 달려갔다.

“죽음이여! 부디 저를 거두어주십시오!”

그리고 죽음을 향해 입술을 맞추고자 하였다. 그러나 죽음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국의 과실만큼이나 황홀하고 달큰한 속살을 내비쳐도, 꽃가루처럼 살랑살랑 고수머리를 나부껴도, 죽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죽음은 이 곳에 오는 자들을 반기는 편이라고 들었는데.

여자는 조금 놀랐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아직 희고 발그레한 몸뚱이가, 감람나무같은 눈동자가, 밀밭같은 고수머리가 남아 있었다. 여자는 물러서지 않고 죽음의 손아귀로 손을 뻗어, 그 성물에 입을 맞추고자 하였다. 그러자 죽음이 진노했다. 아직 죽지 않아 그 목숨이 붙어 있는 주제에, 감히 죽음의 성물에 입을 맞추려 하다니. 죽음에 입 맞추는 것으로 제 숨결과 체온을 간단히 덜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 자체가 오만하며 건방지다. 죽음은 해골을 쥔 반대쪽의 손을 뻗어 여자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여자는 새된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죽음이시여, 저는 당신의 신부가 되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의 숨을 당신께 내어드리고자 하는데, 텅 빈 해골에게 입맞추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으시렵니까?”

죽음이 여자를 꾸짖었다.

“꽃의 흉내를 내는 얼굴을 하고서 여기에 입 맞추기를 유혹한단 말이냐?”

한낱 인간일 뿐인 여자는 죽음의 말을 알아 듣지 못했다.

“꽃처럼 보이시진 않습니까?”

죽음은 목덜미를 움켜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오만하고, 교만하고, 건방지다.”

여자가 비명 지르며 눈물 흘린다.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아귀에 힘을 더 세게 주었다.

……라도,”

수박같이 붉게 물들어 있던 얼굴은 이제 설원처럼 하얗다. 눈이 녹은 자리처럼, 여자의 사랑스러웠던 뺨이 눈물과 땀으로 젖어들어간다.

“꽃이라면 꺾여서라도…….”

꺾여서라도 신부가 될 수 있다면.

죽음의 신부가 되는 일이 입술 맞추기만큼 쉬웠다면, 여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권태에 탄식하였을 터다. 그러나 역시 죽음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죽음의 노여움을 사서, 꽃과 같이 목이 꺾일 수 있다면, 이것은 그 오래된 민담을 뛰어 넘는 낭만이 될 수 있다. 신부의 문턱을 넘기 직전의 여자가 싱그럽게 웃었다. 그러자 죽음은 여자에게서 손을 거두고, 바닥에 내팽겨쳤다.

“꽃이라고?”

죽음은 고수머리를 갈기갈기 찢었다. 남국의 과실만큼 달큰하고 황홀한 살갗도 찢어져서 신부복을 벌겋게 더럽힌다. 죽음의 징벌은 혹독했다. 여자의 실언을 몇 번이고 부정할 것 처럼. 가차없다. 감람나무 같은 여자의 눈은 그제야 공포로 물들었다.

죽음은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
죽이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 여자가 추하고 조악하게나마 죽음의 앞에서 꽃 행세를 했기 때문이다. 봄철의 꽃가루를 날리면 재채기를 할 거라고 오만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죽음에게조차 거절당한 여자는 그제야 허영을 뉘우치고 꿈의 숲으로 도망친다. 이제 권태를 느낄 새도 없다. 민담을 뛰어넘고 싶은 낭만도 없다. 진노한 죽음의 맨 얼굴을 본 여자에게 그보다 더 짜릿한 낭만도 없었다.



이런 이야기는 싫다.

그 목숨의 열량이 하루살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 계집에게 이렇게까지 진노하는 죽음이라니. 그러고도 민담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죽음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공평하다고 했는데, 이래서야…….

등줄기가 딱딱하게 굳는다. 기분이 너무 좋고 짜릿하면 오웬은 등줄기가 오싹오싹해졌다. 하지만 정도 이상으로 기분이 나빠지면, 등줄이가 딱딱하게 굳었다. 가죽 장갑은 이미 끈적하고 질척하게 더럽혀졌다. 고치를 직접 만진 것도 아닌데. 꿈의 편린도 오래 전에 다 날아갔는데. 오웬이 한 것이라고는 제 마력을 흘려넣고 그 마녀의 얼굴을 조악하게 본뜨기만 한 게 전부다. 어리고 어리석은 죽음의 신부 따위, 오웬이 알 바 아니다.
미스라에게도 그건 알 바 아니다.

미스라는 그 여자를 보고 있던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미스라가 보고 있던 것은…….

오웬은 구역질을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게 그 미스라란 말이지.

오웬이 아는 미스라는 평생이 나태하고 심드렁하고 나른했다. 그가 흥분하는 건 호적수에게 덤벼 들 때 뿐이다. 재채기보다도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남자. 뼈를 부러뜨리는 감각으로 마법사도 간단히 죽여버리는 남자. 불곰같이 무식하고 거리낌 없고 망설임 없으며 생각도 안 하고 사는 남자.

하지만 이런 미스라는 전혀 미스라답지 않다. 오웬이 아는 한 미스라는 이런 표정을 짓지 않는다. 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분노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미스라는, 통쾌한 맛이 없고 시원시원함이 없다.

평생을 북에서 나고 자란 주제에.
어울리지도 않게 그런 마음을 품었다.
이래서야 마치…….

오웬이 여자의 꿈에서 몽실몽실하고 푹신푹신하고 보들보들한 몽상을 하는 미스라를 보았다. 그건 너무 볼품없고, 초라하고, 지리멸렬하다. 오웬은 거칠게 장갑을 집어던지고 제 번견을 꺼낸다.

“죽어.”

그리고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곤히 잠들어 있던 미스라는 개 짖는 소리가 나자 그제야 하품을 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네?”

“어서 죽으란 말이야.”

꿈에서 갓 꺼내진 미스라는 몽롱하게 중얼거린다.

“분명 여기에 그 여자가…….”

그 여자라 함은 어리고 아둔한 서쪽의 인간 계집이 아니다. 차라리 그 여자였으면 오웬도 이렇게까지 미스라를 치욕스럽게 여기지 않았을테다.

오웬이 날카롭게 으르렁거렸다.

“다 죽었고, 너도 죽을거야. 그러니까 어서 죽어.”

번견이 미스라의 목덜미를 향해 돌진하자 미스라는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번견이 한 번 뒤로 나자빠진다. 미스라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듯, 느릿느릿 멍청하게 눈을 꿈벅였다.

“아하, 그렇죠. 저는 당신을 죽이려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오웬이 익히 잘 아는 미스라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신부에게 진노하며 징벌하던 미스라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건 벌써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니까.

천 년도 더 넘게 살아온 마법사에게 겨우 십 수년 전에 지나쳤던 인간 따위, 기억하는 것이 무용하다.

포자가 눈처럼 휘날리는 숲에서, 미스라와 오웬이 공격을 주고 받을 때 마다 고치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절규하고 비탄하는 즐거운 소리가, 지금의 오웬에게는 전혀 유쾌하지 않다. 결국 오웬이 먼저 숲 밖으로 나왔다.

“하하, 도망친다.”

미스라는 지지 않고 오웬을 추격한다.

미스라에게 죽는 건 익숙하다. 솔직히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오웬은 죽는 게 특기니까, 미스라에게 한 두번 더 죽는다고 해서 크게 굴욕일 일도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절대 죽고 싶지 않았다.

저런 너저분하고 누추하고 추레한 마음을 품은 적 있는, 형편없는 남자에게 목숨을 빼앗기는 일 따위 절대 사양이다.

죽어도 싫어!
너에게만은 죽기 싫어!

오웬은 그렇게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쏜살같이 도주하는 것이었다.

두 대의 빗자루가 공중을 난폭하게 가로지른다. 오웬은 빗자루의 머리를 앞으로 숙이게 해서 속도를 붙였다. 설원을 찢는 바람이 통쾌하지만, 오웬의 마음은 조금도 통쾌하지 않았다.

몽실몽실하고 푹신푹신하고 보들보들한 마음이라니.
꽃가루를 날리면 재채기를 할 것 처럼 간질간질한 심상이라니.
그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안 어울린다.
최악이야.

미스라는 본인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멍청하고 아둔하니까. 그러나 미스라보다 똑똑하고 교활한 오웬은 잘 알았다. 그는 남의 마음을 엿보고 괴롭히고 훼방 놓는 게 특기인 마법사다. 그런 주제에 미스라는 본인의 마음으로 오웬의 마음을 더럽힌 것이다. 그런 주제에 본인은 멍청하고 아둔해서, 낮잠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가붓하게, 그런 마음을 툭툭 털어 던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나 평소의 통쾌하고 시원한 살의를 펼치는 것이다. 뻔뻔하고 편리하기 그지 없다. 비겁하다. 오웬은 그 뻔뻔함이 죽도록 치욕스러웠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절대 너에게 죽지 않을 테다. 제 마음을 더럽힌 상대에게, 북의 긍지도 없는 사내에게 짓밟히는 건 죽어도 사양이었다.

비겁해.
평생을 북에서 나고 자란 주제에.

어울리지도 않게 그런 마음을 품었다.
이래서야 마치…….
………….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