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모브 / 우주여행

재업 요청

도시에 길들여진 애들이 으레 그렇게 느끼듯이, 시골집이라는 건 죄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리츠는 매년 있는 가족행사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행사라고 해 봐야 거창할 것 없이 할아버지의 생신이어서 모이는 게 전부인데, 다만 그 날이 기가 막히게도 그 동네 나츠마츠리夏祭り(신령 등에 제사를 지내는 일본의 전통 의식, 혹은 본래의 축제에서 발생한 축제를 마츠리祭り라 한다. 나츠마츠리는 그 중에서도 여름에 열리는 마츠리이다)와 하루 이틀 간격으로 차이가 났다. 그래서 카게야마 가家 식구들은 거개 기왕 먼 곳까지 온 김에 거기서 아예 피서라도 즐기고 가자는 식이었다. 마츠리라고 이름은 달아두었어도 가면을 쓰고 춤을 추거나 행진을 하기는커녕 변변찮은 불꽃놀이도 겨우 하는 지경이라 별 볼일은 없었다. 카게야마들도 처음 몇 해 정도는 꼬박꼬박 마츠리에 갔는데 시간이 지나고 애들도 나이를 먹으면서 시들해졌다.

볼 것 없는 변두리 시골동네에서 피서할 것이라고는 집 뒤에 자리 잡은 도랑이 전부였다. 리츠는 무료하게 물에 발을 담그고 자꾸만 찰박거렸다. 시골집은 싫어.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내내 형은 구토를 했고 리츠는 내내 현기증이 났다. 어젯밤에 도착해 딱 하룻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도 모기에게 네 번이나 물렸다. 시끄럽고 멍청한 사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시게오는 중학교에 가서도 곱셈이랑 나눗셈을 헛갈려할 거야’ 따위이다. 시시껄렁하고 이상한 말만 지껄이는 치들의 말은 적당히 넘어가 주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먹을 들고 드잡이를 한 것이 나쁘다고 여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어느 동생이 제 형을 조롱하는 멍청이들의 말을 듣고 넘길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 기껏 저를 괴롭히는 녀석들에게 혼쭐을 내 주려 했더니 막상 형 본인은 제 옷깃을 붙잡고는 하는 말이 “그러지 마, 리츠.”

그리하여 카게야마 리츠의 열한 번째 여름은 이토록 권태롭고 비극적이다. 멀리서 리이츠으, 하고 길게 빼어 제 이름을 부르는 형의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크게 기쁘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

“리츠으······, 화났어?”

이렇게 쭈뼛거리면서 눈치를 보는 형이 얄미울 때가 있다.

“형은 왜 초능력으로 그 녀석들을 혼내 주지 않는 거야?”

바보 같아. 그래서 그 자식들이 더 바보라고 놀리는 거잖아.

숟가락을 구부렸다 펴거나 개구리를 둥둥 띄우는 바보 같은 것 말고도 더 멋진 일이 얼마든지 많은데 왜 써먹지를 못해?
사실 리츠는 여기까지 몽땅 말하고 싶었다. 그래도 고분고분히 죄 집어삼켰다. 목이 울컥하고 아팠다.

아니나 다를까 시게오는 리츠의 물음에 무슨 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헤맸다. “음······. 음······.” 느릿느릿하게 그러나 빠르게 답을 생각해내려고 땀까지 삐질삐질 흘린다. 그러면 리츠는 아까 전까지만 해도 형이 그렇게 얄궂다가도 금세 형을 곤란하게 만든 건 아닐까 하고 노심초사하면서 성급히 말을 주워 담을 수밖에 없다. “아냐 형. 말썽 피워서 미안해.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좀 바보짓을 했나봐.” 그렇게까지 말을 해 줘야 형은 비로소 웃으면서 안심하는 것이다.

시게오는 리츠에 대해 모르는 사실들이 너무 많지만 아는 것이 많다. 리츠가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짓궂은 사촌들이 싫어서 도망쳐 나온 것은 모르지만 지금 매우 지루한 상태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삼십분 뒤면 저녁식사를 하러 돌아가는 길에 그걸 감추고 털레털레 돌아갈 것을 잘 안다. 잘은 모르겠지만 리츠가 무언가를 아쉬워하거나 섭섭해 하는 것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투명한 햇살은 수면위로 매끄럽게 부서지고. 매미소리는 자꾸만 따갑게 따귀를 울리고. 등줄기는 훅훅 달아오르고. 무엇 하나 재미있는 건 없고. 그래서 시게오는 결심한다.





//

형. 아니야. 이것 좀 잘못 된 것 같아. 다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분명 꾸중을 들을 거야. 시게오를 올려다보는 리츠의 눈에서는 걱정이 뚝뚝 떨어진다. 대관절 생각도 못한 시게오의 대담함에 리츠는 어찌 해야 좋을지 방법을 몰랐다. 그런 리츠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시게오는 생글생글 동전지갑을 리츠의 코앞에 대고 자랑하듯이 흔들었다. “이것 봐 리츠. 무려 삼천칠백 엔이나 있어.”

형은 육학년이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시급은 무려 삼백 엔. 형은 일 년만 더 있으면 중학생이 된다. 소학교 6학년은 거의 중학생이나 다름없고, 무려 중학생이 될 예정이라서 형은 아르바이트로 받은 돈을 스스로 관리했다. 이 삼천칠백 엔은 지난 삼 주 동안 아이스크림을 사먹지 않고 여름 피서를 위해 아껴 둔 돈이라고. 리츠는 역시 형은 육학년이라 대단하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다가도 다시 걱정으로 되돌아간다. 그치만 형. 우리끼리 밖에 나오면 위험하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시게오는 리츠의 손을 잡고서 호기롭게 걸어 나간다. 리츠는 형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형이 영 못미더웠다. 키만 아주 조금 더 클 뿐이지 형은 무척 말랐고 걸음도 느리고 달리기도 못한다. 당고나 타코야끼를 먹고 나면 늘 돈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백 엔, 이백 엔을 덜 내거나 더 내거나 하는 게 일상이다.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은 아니지만 어쨌든 엄마도 아빠도 없이 혼자서 나와 버렸다. 마츠리가 열리는 시내는 할머니 댁에서 버스를 타고 자그마치 사십 분이었는데, 그마저도 리츠가 정류장에 있는 노선을 하나하나 헤아려보고서 겨우 맞추어 탄 것이었다. 그러니까, 형은 혼자서는 절대 여기 오기 못했을 거라는 거다. 그게 리츠를 조금은 기쁘게 만들면서도 조금은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리츠는, 너무 걱정이 많아.”

그렇게 말하는 형은 너무 걱정이 없는 무사태평이다.

“인상 펴, 리츠. 화난 것처럼 보여. 기분 안 좋아?”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리츠는 황급히 얼굴에 힘을 주고 웃었지만 미간만 더 구겨졌다. 열 한 살의 우울이란 이런 사소하고 가여운 것이다. 잘 보이고 싶은데. 자꾸 그러지를 못하고.

형은 리츠의 이마로 손을 가져다 댄다. 자꾸 얼굴 찡그리지 마. 리츠는 잘 생겼으니까······. 흉하게 주름이 지면 슬플 거야. 미간을 매만지는 엄지손가락이 기분이 좋았다.

······알아. 웃을게.

깍지 끼고 마주 잡은 손. 하얗고, 조금은 토실한 손. 보송한 솜털이 난 손. 미적지근한 손을 꼭 움켜잡은 손. 조그만 손 안에 뿌듯하게 들어온 손. 제 것보다 더 작고 마르고 보잘 것 없는 손 안에서 리츠는 순순히 시게오에게 끌려 다녔다. 리츠의 배가 아주 작게 꾸르륵거리며 소리를 냈는데, 시게오는 시끄러운 와중에도 그걸 기가 막히게 잘 알아챘다.

두 사람은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야키소바와 가츠동을 시켰다. 어른도 없이 소학생 둘이서 쪼르르 손을 잡고 와 넉살 좋게 앉은 게 여간 대건한 구석이 없지 않아 이목이 몰렸다. 주문 할 때 야키소바는 맵지 않은 맛으로 해 달라고 말하는 걸 형이 깜빡해서 두 사람은 예정에 없이 조금 매운 야키소바를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매운 것을 전혀 먹지 못하는데도 컵에 물을 열심히 따라 마시면서 시게오는 연신 “맛있다, 맛있어” 했다. 새빨갛게 열에 달뜬 형을 보고 리츠도 손부채를 부치면서 혀를 내밀고 후 하 후 하 형을 따라했다. “맛있다, 맛있어”

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시게오는 아직도 입술이 뜨거우니 시원한 것을 먹자며 야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보이는 것마다 멈추어 서서 구경했다. 여섯 살 때부터 물리도록 보아 와서 온통 시시한 것투성이인데도 리츠는 가슴이 온통 두근거렸다. 칠칠치 못하게 아이스크림이 묻은 형의 손은 끈적끈적하다. 그런데도 꼭 잡은 손의 감촉이 아이스크림의 그것처럼 황홀하고 달하서, 거리의 무용수들의 군락을 구경하면서도 리츠는 형의 손에 대해서만 열심히 생각했다. 참견하는 어른도 없이 시끄러운 애들도 없이 집이 아닌 밖에서 형과 이렇게 오랫동안 단 둘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온 세상이 형이었다. 마지막 남은 아이스크림콘의 밑바닥을 씹어 삼키면서도 그 안이 형이었고,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도 형이었다. 땅거미가 떨어지고 거리를 채우는 불빛 안에 형이 있어서 온 골목이 형으로 반짝거렸다. 형, 이거 정말 신기해. 형이 너무 많아. 얼마나 많으냐면 내가 쉬고 있는 숨에도 온통 형이 있는 것 같아. 보는 것도 전부 형이고 듣는 것도 형이고, 숨을 쉬는 게 아니라 형을 쉬는 것 같아. 그래서 가슴팍이 아프기까지 해. 그런데도 너무 좋아. 진짜 신기하지······. 리츠는 형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

저녁으로 천백 엔이나 되는 거금을 쓰고도, 아이스크림으로 다시 이백 엔을 쓰고도 이천사백 엔이나 남았다. 턱없이 많은 돈으로 무엇을 할지 궁금해 하기도 전에 시게오는 리츠를 톡톡히 즐겁게 해 주었다.

우선 시게오는 리츠를 긴쿄스쿠이金魚掬い(얕고 넓은 수조에 들어있는 금붕어를 얇은 종이가 붙은 포이ポイ라는 도구로 건지는 놀이)를 하는 야타이屋台(주로 마츠리에 출점하는 일본식 포장마차)로 데려갔다. 주로 애들이 좋아하는 놀이이다 보니 어린애들이 많을 법 했는데, 애들은 없고 젊은 남녀 한 쌍만 있었다. 여자는 금붕어를 두 마리나 건져내고 세 마리 째에 열중하고 있었고 남자는 연신 감탄을 하며 여자의 포이ポ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시게오는 백 엔짜리 동전 두 개를 골라내어 뜰채를 받아왔다. 첫 번째는 시게오도 리츠도 당연히 낭패였다. 시게오는 그 자리에서 포이를 두어 개 더 사서 더 해보다가, 금세 종이가 찢어지니, “에이, 금붕어는 어차피 잡아도 키울 수가 없잖아. 여기서 쵸미까지 어떻게 가져 가?” 하고는 관두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깜찍하고 얄밉게 꼬리를 살랑거리는 금붕어를 보는 시게오의 눈에는 못내 미련이 남은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나 다른 쪽 골목을 기웃거리다가도 시게오는 금세 다시 되돌아왔다.

“오늘은 엄마도 아빠도 없이 우리끼리 놀러 나온 거니까 기념품을 만들자. 파는 건 많이 있으니까 좀 더 특별하게 우리만 가진 것으로 골라야 해.” 가 시게오의 지론이었다. “금붕어는 키우다가 죽을 수 있어, 만약 잡더라도 집에 데려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물풍선을 기념품으로 하자.”

그리하여 둘은 타당하게 요요츠리ヨヨ釣り(얕고 넓은 수조에 들어있는 물풍선을 얇은 종이로 만든 낚싯줄로 건지는 놀이. 물풍선은 요요처럼 손가락에 끼고 튕기며 놀 수 있다)를 하러 가게 된 것이다.

당연히 시게오는 물풍선을 낚는 데에도 실패했다. 리츠도 형이 단번에 풍선을 낚아 올리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리츠는 이번에야말로 풍선을 기필코 낚아 보일 심산이었다. 형은 지나치게 선량하고 정직해서 초능력으로 요령껏 일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본래의 실력이 결코 훌륭한 것도 아니다. 여기서 이대로 관둔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헛되이 몇 백 엔을 쓰고 빈손으로 털레털레 돌아가야 할 테고, 리츠는 그게 싫었다.

리츠의 요요츠리 실력은 좋게 쳐봐야 다섯 번 중에 한 번을 겨우 건진다. 소용돌이나 도트 무늬, 줄무늬나 고양이 얼굴이 많아 수조가 알록달록했다. 빙글빙글 도는 물살을 타고서 물풍선도 빙글빙글 돌았다. 그걸 보고 있자니 리츠의 머리도 같이 핑핑 돌 것 같았다. 능력만 쓰면 그깟 금붕어는 열 마리 스무 마리도 잡을 수 있는데. 이렇게 약한 낚싯줄로는 물풍선을 건지지 못할 텐데. 그러면 아까 전 금붕어처럼 똑같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또 허탕만 칠 텐데······. 낚싯줄을 받아들고서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리츠는 낚싯대를 쥐고, 호흡을 가다듬고, 유심히 풍선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빠르고 조심스럽게 건져냈다. 종이가 거의 찢어질 뻔 했는데 어째 풍선이 용케도 바구니에 찰싹 달라붙듯이 들어가서 성공했다. 그런 식으로 그 다음 것도 그렇게 했다. 두 번이나 연속으로 건져내니 자신이 좀 붙은 리츠는 세 개째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낚싯줄을 조심스럽게 수조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종이는 끊어졌다. 두 사람이 사이좋게 나눠 가질 만큼만의 물풍선을 건지고 나자 더 이상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리츠는 거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얌전히 낚싯대를 반납했다. 낚싯줄을 새 것으로 받으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었지만 더는 풍선을 낚을 수 없을 것 같은 직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풍선을 바구니에 들어갈 때마다 와아 하고 환호성을 질렀던 시게오도 리츠가 더 이상 도전하지 않고 물러나는 걸 보고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확실히 형이 사 준 링고아메リンゴ飴(사과에 설탕을 녹여 굳힌 과자)는 아주 맛이 좋았다. 입에 넣자마자 단 맛이 야무지게 혀를 휘감았다. 형의 입술은 설탕이 녹아있어서 반질반질했다.

그들은 또 바쁘게 활보했다. 한 손에는 링고아메를 쥐고 남은 손은 맞잡고. 북소리를 타고서 시골 무희들의 작은 군락을 지나 가면이 잔뜩 늘어진 사격장을 넘어서까지. 길을 흐르는 샤미센 음악소리를 스치고서 군음식을 파는 트럭들의 행렬을 지나가기까지. 시골의 이름 없는 조용한 축제라고 해도 거리는 꽤 부산한 편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조근조근하거나 활기차거나, 거리 구석구석마다 반짝거리는 달콤함이 설탕 시럽처럼 흘러넘쳤다.

유카타며 게다까지 정성스럽게 갖춘 차림도 길에 가다 드물게 보였다. 그걸 유심히 보던 시게오는 싸구려 기념품을 파는 상점에 들러 부채를 하나 샀다. 올해는 유카타도 게다도 없으니 어디 한번 부채로나마 기분이라도 내 보자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리츠도 똑같은 모양의 것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러다가 형은 부채도 쥐랴 꼬치도 쥐랴 부산스럽게 굴다가 결국 셔츠를 망쳐버렸다.

공중 화장실 앞에 서서 형을 기다리며 리츠는 요요츠리에 대해 생각했다. 금붕어를 잡는 것 보다는 물풍선이 조금 더 쉽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도 물풍선은 짜고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쉽게 들어왔다. 단 두 번뿐이었지만 리츠는 안다. 꼭 물풍선이 절로 움직이는 모양새로 아주 매끄럽게 바구니에 안착하던 순간을 똑똑히 보았다. 형은 초능력을 부리는 게 서툴러서 가끔은 저도 모르게 쓸 때가 있다. 그리고 형은 절대 제 몫으로 그걸 쓰지 않는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리츠는 무척 우울해졌다. 주머니에서는 아직도 예쁘장한 풍선이 찰랑거리고 있다. 리츠는 벽에 기대어서 바지춤에 손을 찔러 넣고 풍선을 주물럭거렸다. 이유도 모르지만, 아니, 이유는 없지만 몹시 불쾌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설령 일부러 그랬다 하더라도 나쁜 마음으로 했을 리가 없지만. 그런 마음으로 했을 리가 없지만.

그래도.

머릿속에서 서툴고 또박또박한 글자들이 적힌다.

착하고 어리숙한 시게오는 요령이 없어서 자꾸만 금붕어를 놓쳐 버렸어요. 그렇지만 옹골지게 영민하고 요령을 잘 부리는 리츠는 아주 쉽게 물풍선을 낚았어요. 그것도 두 개 씩이나.

그러나 설령 진짜로 형이 혼자서 착한 척을 해 봐야 얻는 게 무엇일까? 일부러 나를 골탕 먹이거나 놀리려는 마음에서 나에게만 초능력을 쓴 거였다 해도 내가 형한테 화를 낼 수 있을까? 딱히 할 말이 있기는 한 걸까? 형이 만약 정말로 그런 거였다면 나는 형에게서 뭘 원하는 거지? 리츠가 리츠에게 물었고 리츠는 그에 맞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리츠가 답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옷이며 손을 마저 닦고 형이 바쁜 걸음으로 나왔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형의 물음에 리츠는 정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새하얗게 묻는 형을 보고 있으면 리츠의 머리도 덩달아 새하얗게 표백되는 것만 같다. 별 것 아냐. 리츠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같이 웃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고, 카게야마 형제들은 늘 이런 식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형이 리츠의 손을 이끄는 것으로 끝이 났다.

“삼십분만 더 있으면 아홉 시야. 미리 준비를 하자.”

아홉시가 되면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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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할 만큼 작은 강에는 잔디를 심어 그럴싸한 강변이 있다. 그 해의 나츠마츠리 마무리는 늘 여기서 불꽃놀이를 다 보고 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가만 보고 있으면, 리츠는 너무 똑똑해서 생각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내리막길을 타는 길에 시게오가 말했다.

“형이 생각하는 것만큼 자주는 아니야. 게다 그리 심각한 고민도 아닌 걸.”
“그래도 그리 심각하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는 리츠는 심각한 얼굴이니까. 얼굴을 자주 찌푸리고 있는 게 화 난 것 같기도 하고. 슬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

좀 전까지 화기애애했던 자리의 깊이만큼이나 애매한 침묵이 고인다. 리츠는 침묵이 흘러넘치기 전에 황급히 덜어내려 애를 썼다.

“그런데 형, 여기는 왜 오자고 한 거야?”

이미 많이 와서 더 이상 볼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데. 그 말은 목 아래로 삼키고 리츠는 물었다.

“리츠가 심심해 보여서.”
“언제는 생각이 너무 많아 바쁜 것처럼 보인다더니 이제는 또 심심해 보여?”
“리츠는 정말 바쁜데도 어딘가 심심해하는 것 같은 구석이 있어.”

생각이 너무 많은 건 맞아. 또 그럴 때마다 표정은 별로 좋질 않아서······. 그래서 리츠를 즐겁게 해 주고 싶었어, 라고 하면 괜찮은 대답이 되려나. 형은 머쓱하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순진하고 가여운 긴쿄스쿠이와 재빠르고 영악한 요요츠리에 대해 생각해고 있었는데. 리츠는 그런 형의 대답에 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분명 형은 착하다. 천성이 선량하고 상냥하고 다정하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 동생을 엄마도 아빠도 모르게 데려 올 만큼 배짱이 좋은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분명 리츠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츠는 자꾸만 주머니에 넣어 둔 물풍선이 너무 신경이 쓰여 주머니에서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있잖아 형, 열한 살이 이렇게나 생각이 많으면 이상한 걸까?”
“글쎄, 나는 너무 생각을 안 한다는 말을 들어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런데 형은 내가 너무 생각이 많아서 바쁘고 또 너무 생각이 많아서 심심해 보인다고 했잖아······.”

언제나 단정하고 평범하고 형에게 미운 털 하나 박히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생각이 너무 많고 우울한 열한 살은 좀 이상하니까······. 말을 뱉고 나니 몹시 비참한 기분이 들어 리츠는 더 풀이 죽었다.
시게오는 리츠의 우울한 미간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있잖아 리츠, 나는 그럴 때면 가끔씩 우주여행을 다녀와.”
“······?”
“리츠가 아까 우주 이야기를 하길래 생각이 났어. 우주라고 해서 그렇게 거창할 것은 없어. 이부자리에 누워서 눈을 꼭 감는 거야. 안대를 끼고. 왜, 우주에서는 고글이나 헬멧 같은 걸 쓰잖아. 안대를 쓰면 약간 그런 느낌이 나서 되게 좋아. 눈을 감으면 처음에는 까맣게만 보일 것 같지. 근데 사실은 오랫동안 꽉 감고 있다 보면 천천히 하얀 빛 비슷한 게 마구 떠오르는 거 알아? 점 같은 모양이야. 나중에는 흐려졌다 선명해졌다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반복하고.”
“······.”

리츠가 여전히 고개를 푹 꺾고 운동화 코끝만 바라보자, 시게오는 대답을 받아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더 뇌까렸다.

“사실 나는 좀 다른 애들이랑 다르고 많이 이상하잖아······. 낮에 학교에서는 주변이 아무리 조용하다 해도 내 주변이 조용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항상 시끄러워. 이상한 귀신같은 것들이 자꾸 옆에서 떠들거든. 그래도 집에는 그런 것들이 없으니까, 나 혼자서 조용한 걸 즐기고 싶을 때면 우주여행을 해. 온통 까맣고 침대에는 나밖에 없고. 그렇게 있다 보면 세상이 핑글핑글 돌아가는 것 같고. 좀 거짓말 같지만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아. 세상이 멈춘 것 같으면서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그러고 나면 머릿속이 아주 개운해지고 금방 잠이 오는 거야.

리츠도 우주여행을 해 본적이 있어?

상냥한 물음을 건네는 형의 동공에 별이 지나가는 것 같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두서도 목적도 없이 혼잣말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는 형의 눈은, 그 설명처럼 서투르지만 순수하고 정직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오래 전 비디오로 보았던 우주의 모습처럼 반들반들하고 윤기 나는 검은 색. 그 안에서 별무리도 보일 것만 같았다.

그 때였다.

짜고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폭죽이 터졌다. 놀이공원의 불꽃놀이처럼 레이저 쇼도 스크린도 없이 조촐하게 불꽃만 터지는 좁은 하늘. 색색의 별들이 긴 꼬리를 끌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지루하고 감동도 없는 장면을 형은 오랫동안 좋아해왔다.

저것 봐. 하늘 예쁘지.

형의 상냥한 물음에 맞추어 리츠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꽃놀이는 항상 예쁘지. 우주를 가 본적은 없지만 아마 우주도 저렇게 생겼을 거야. 리츠는 무심코 대답하다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뱉어버린 스스로에 놀라며 황급히 이어질 말을 주워 삼켰다. 시게오는 혼자서 안절부절 못하는 리츠를 골똘히 본다. 리츠는, 정말 독특하고 똑똑해. 어쩌면 그렇게 멋지고 어른스럽고 특별한 생각들을 할 수 있는지.

“아니야.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아.”

리츠는 다급하게 받아쳤다.

평범한 열한 살이 좋다. 평범한 열한 살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게 보통이니까. 우울하거나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으니까. 형이 생각하는 평범한 열한 살은 불꽃놀이를 보면서 우주를 떠올리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형이 그렇게 여긴다면 그게 리츠의 기준이고, 항상 기준에 따르는 게 옳은 일이니까. 나는 평범해. 평범한 게 좋아······. 맥이 탁 풀리는 목소리로 리츠는 고해성사를 하듯 고백했다.

“아니. 하나도 안 평범해.”

나는 리츠가 평범하지 않아도 괜찮았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리츠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고, 리츠는 정말 멋지고 대견하고 특별하니까. 특별한 건 아주 좋은 거잖아. 시게오는 리츠의 손을 잡았다. 작고 말랑한 손가락이 서툴게 제 손가락 사이로 얽혀들었다.

“나는 리츠가 평범하지 않기를 바라.”

나는 리츠가 그렇게 애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보는 리츠는······. 항상 평범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 같았으니까.
예상치 못한 형의 솔직한 발언에 리츠는 기분이 묘했다. 속에서 간질간질하게 올라오는 무언가가 있다. 확실히······. 형을 둔 대다수의 소학교 5학년은 형에 대해 오랫동안 간절하게 생각하지 않지.

리츠는 생각을 많이 한다. 늘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빠져있다. 손가락을 쓰지 않고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이나 다음 주에 있을 쪽지 시험을 걱정하거나 어떻게 하면 일기 검사를 받을 때 부끄러움이 없을 만큼 적당히 평범하고 단정한 일기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것들. 그리고 그런 것들보다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형이다. 리츠는 하루의 대부분을 형에 대해 생각하면서 보낸다. 얼마나 형을 생각하는지, 얼마나 형을 끔찍이 사랑하는지 어떤 형에 대해 생각하고 형의 어떤 것을 상상하는지는 리츠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비밀이다.

이러한 모든 게 특별한 일이고 형이 원하는 게 특별한 리츠라면 그것만으로도 좋다. 리츠의 생각과 리츠의 비밀은 무척 특별하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기분이 제법 상쾌해졌다. 검은 장막 위로 번지는 스트론튬과 칼슘과 나트륨과 구리와 바륨은 우주의 탄생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여러 성단의 모습과 닮아있다. 형의 우주 같은 동공에는 별이 소나기처럼 뚝뚝 떨어진다. 문득 이 별 볼일 없고 누추한 동네가 꽤나 그럴싸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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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리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서 곯아떨어졌다. 형의 새까맣고 윤기 나는 머리칼을 보며 리츠는 형과 우주여행에 대해 생각했다.

우주로 떠나면 무엇이 좋을까. 사람들이 너무 많고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우주로 떠나면, 우주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중력도 없으니까 검은 바다에서 둥둥 떠서 멍하니 있을 수 있게 되니까. 그래서 그게 좋은 걸까. 그렇다면 리츠는 절대 우주로 가지 않을 것이다. 형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아, 형에 대한 생각이 차고 넘쳐흘러서, 차라리 형에 대한 생각에 파묻혀 죽더라도 우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우주라면 형도 없을 텐데. 그럴 거면 차라리 우주에 가지 못한 채 너무 많은 생각을 끌어안고 괴로워하는 편이 훨씬 더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형은 기어코 내가 없는 우주로 가고 마는 걸까. 형의 세상은 얼마나 시끄럽기에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한 동생을 제쳐두고서 우주로 떠나는 걸까. 내가 알지 못하는 형의 우주는 대체 무슨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떤 성단이 있고 어떤 성좌가 있기에 은밀한 휴식을 취하러 가는 걸까.

확실히 형은 은근히 얄궂은 구석이 있다. 리츠는 이제 형이 분명 요요츠리에 마법을 걸었던 게 확실하리라고 감히 장담해본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테지. 초능력을 다루는 게 서투른 형이라 자기가 물풍선에 마법을 걸었던 것도 모르겠지. 형은 이따금 불필요할 만큼 섬세하고 상냥하고, 리츠는 그게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불편하다고 티를 내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토록 어수룩하고 귀엽고 얄밉기까지 한 상냥함이라니. 「리츠도 우주여행을 해 본적이 있어?」 이렇게 물어보면서 그동안 혼자서만 매일 밤 우주로 떠난 것이다. 리츠가 없는 우주로. 리츠는 우주로 가는 방법도 모르고 밤마다 너무 많은 형의 생각으로 질식을 앓았는데.

형의 머리칼은 우주를 닮아 있다. 새까맣게 깊고 깊은 동공 안에도 우주가 있다. 제 어깨에 기대어 세상모르고 새근새근 자는 형은 지금도 어느 우주에 있을까. 어느 은하에 어느 성단에 어느 성좌에 안착해서 혼자만의 침묵을 즐기고 있을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리츠도 생각하지 않는 걸까.

만약 내가 우주여행을 한다면 그건 침대에 가만히 누워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형의 동공에 비치는 별의 개수를 헤아리는 것일 테야. 덜컹이는 버스 차창 너머로 빼곡한 별의 군락을 살피며 리츠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