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제가 신의 대행자는 못 되어도, 그 길을 좇는 고행자 정도는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1.
소년의 생활은, 그가 종교에 몸 담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또래에 비해 턱없이 엄격하게 정제되어 있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성전을 읽고 묵상을 한 뒤, 교회의 앞뜰을 청소하는 것으로 그의 일과는 시작된다. 아침 식탁에서도 기도를 올리고, 등교 전에 기도를 받는다. 학교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곧바로 귀가하여 공부를 하거나 성전을 읽는다. 자기 한 시간 전에는 반드시 교리 공부를 한다. 그리고 또 기도를 한다. 잘 준비를 마친 뒤에는 마지막으로 잠들기 전의 기도를 올린다. 신앙심만이 조밀히 파고 든 생활은 고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렇듯 신앙심이 조밀히 파고 든 생활은 그에게 기쁨이 되었느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소년에게는 그를 때때로 불행하게 만드는 동거인이 있다. 혈연 관계는 아니고, 가족 관계도 아니다. 일단은 양육자와 피양육자라는 법적 관계로 묶여 있지만 그렇게까지 건조한 사이는 아니다.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가족 관계는 아니며 외출을 하면 종종 터울이 많이 지는 남매로 보이는 사이. 소년은 이 모호한 관계에 구태여 명료한 이름을 붙일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상대 쪽에서는 아무래도 뭐든 좋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니 이쪽에서만 혼자서만 관계를 정립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를 때때로 불행하게 만드는 동거인은, 소년에게 꽤 좋은 양육자였다. 그녀는 소년의 방에 항상 노크를 하고 들어왔으며 필요 이상으로 터치를 하지 않았다. 신앙심이 조밀히 파고 든 소년의 생활에 딱히 칭찬을 하지는 않았으나, 사유를 말하지 않고 외출을 했다가 귀가해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바로 그 점이 소년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 동거인은 교회에서 일하는 수녀였는데, 종교인이라는 직업의 특수함을 감안하더라도 정말 그림 같이 경건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비록 그녀가 소년을 불행하게 만들지라도 그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행복과 안전을 주는 수녀였다. 그녀가 하는 일에는 교회에 딸린 화단과 정원, 유리 온실을 관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가 화단에 물을 뿌리고 화분에 분갈이를 하는 풍경은 평범한 노동 현장 같지가 않았다. 마치 식물의 생장을 관리하기 위해 현신한 신의 대리인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역시 이 또한 소년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수녀는 소년에게 어떠한 형태로도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수녀로 인해 자주 불행했다. 그는 자신이 불행한 만큼 신앙에 매달렸다. 그가 신앙심에, 기도에 다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까닭은 제 이름과도 관련이 있었다.
이스카리옷 유다.
그 저주 받은 배신자의 이름을 자식에게 붙인 작자는 대체 누구였던가. 소년은 본 적도 없고 생사도 모르는 제 생부모를 저주했다. 이스카리오는 소년에게 저주 받은 피가 흐르고 있음을 선고하는 낙인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수녀는 이스카리오라는 이름을 듣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런가요?” 하고 한번 고개를 까딱하고 말 뿐이었다.
그건 그녀가 모든 일에 대처하는 자세였다. 아무 말도 않고 그저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런가요?” 하고 고개를 한번 까딱하면서 모호한 긍정만을 남긴다. 거기에는 어떤 확신도 없었다. 소년은 그녀의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까딱 할 때의 각도가 성모상의 각도와 겹쳐 보여서 그런 것 뿐만이 아니다. 언제나 멀찍이서 현상을 관조만 할 뿐, 관여는 않는 그 우아한 거리감이 소년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소년이 병을 앓았을 때에도 먼저 나서서 조치를 취한 적은 없었다. 그가 건조하게 병세를 보고한 뒤에야
“그런가요?”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 뿐이었다. 의사를 부르는 것, 진료를 받는 것, 간병을 하는 것 등 모든 조치는 그 뒤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그러니 소년이 이 수녀로 인해 자주 불행해지는 것, 그리고 신앙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성전을 읽고 성전을 해석하고 그것을 가슴에 머금고 사는 것. 그것은 소년에게 딱히 기쁨이 되지는 못했을 지언정 심심풀이로 할 수 있는 것 정도는 되었다.
2.
신앙심만이 조밀하게 파고든 고행의 행진 속에서 그는 새로 여가를 찾았다. 학교 공부나 교리 공부 이외에 그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것이 생겼으므로 여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건 여가보다 훨씬 더 엄숙하고 경건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것은 약 삼 개월 전의 일로 거슬러 간다. 그는 한동안 몹시 지독한 감기를 앓았다. 열이 솟구치고 땀으로 침대 시트가 흥건하게 젖고 물을 마셔도 바로 토해버릴 만큼 지독한 감기였다. 다행히도 그 무렵의 소년은 제 삶이 주님의 은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에게는 이 감기도 주님께서 내리신 시험이었다. 이 시험을 이겨내면 그 끝에 축복이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열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하얗게 탈색된 머리칼만 남았다. 그건 소년이 예상하지 못했던, 기대한 적 없었던 결과였다.
그는 그 열병의 문제로 많은 시간 동안 고뇌했다. 시험에 지지 않고 꿋꿋하게 버틴 이의 증표로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은 아닐까 하고 막연한 기대도 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홍채의 색도 점점 옅어질 때쯤에는 자신의 타고난 결함을 인정해야 했다. 이는 소년의 일생에서 가장 큰 고난의 순간이었다. 때때로 그의 동거인이자 보호자인 수녀가 그를 불행하게 할지라도 그의 삶은 대체로 신앙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세계를 관장하고 수호하는 절대적 존재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만이 이정표였다. 그 충성의 결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공들인 교리 해석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주님께서 내리신 시련으로부터 제 소명을 들었다. 그것은 자신처럼 불완전하고 불쌍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일이었다. 치밀하고 정교하고 무결한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할 조물주의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 결함품이 있었다. 소년도 그 결함품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결함품들은 제 결함을 모른 채 어리석게 살아간다. 불완전한 생물들은 제 삶이 불완전한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삶의 영락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소년은 제가 결함품이라는 걸 알았다. 그건 신께서 내리신 시험이라는 이름의 은총 덕분이었다.
신은 인간에게 이 땅 위의 모든 것을 선물했다. 모든 나무와 모든 풀뿌리와 모든 동물을. 그리고 인간은 그 선물을 받고 그것들의 이름을 붙이고 관리하는 사명을 얻었다. 불완전한 결함품인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소년은, 이제 불완전한 결함품으로 존재하는 모든 나무와 풀뿌리와 동물을 관리하는 사명을 받은 것이다.
다만 나무와 풀뿌리를 관리하는 직책은 이미 수녀가 가져갔다. 죽음의 신의 이름이기도 하면서 대지의 신의 이름이기도 한, 그 터무니없이 거대한 질량의 이름을 받고서. 그래도 동물만큼은 소년이 제 깜냥껏 관리를 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의 묵상으로 이 사명을 깨닫고 난 후, 그의 생활은 아주 약간의 활기를 얻었다.
꼬리가 잘려서 뭉툭한 고양이나 다리를 절뚝거리는 들개, 시궁창에나 있을 법한 더러운 시궁쥐는 주님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았다. 소년은 쥐덫을 놓고 주사기를 들었다. 어미도 없이 길을 헤메는 어린 들짐승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제 결함도 모른 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미물들을 긍휼히 여겼다. 그리고 제 불완전함을 일깨워 주시고, 또 한편으로는 이 결함품들을 구원하여 신의 세계를 정리정돈하는 청소부로 쓰임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3.
그녀는 마을에서 명망 높은 수녀였다. 병을 앓는 사람들은 그녀가 제 병상에서 기도를 해 주면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눈물을 흘리면서 찾아온 사람들은 그녀의 기도를 받고 웃으면서 떠났다. 꼭 사람의 일 뿐만은 아니었다. 수녀로부터 꽃의 씨앗과 모종을 받는 것을 축복과도 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종종 찾아왔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교회의 잘 관리된 유리 온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노인들이 방문했고 길짐승에게 밥을 먹이는 신관 덕분에 길짐승의 출입도 잦았다.
특히 어린애들이 자주 왔다. 집에서 애지중지 기르던 짐승이 죽으면 아이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교회로 왔다. 교회의 화단은 그 동네 집짐승의 무덤과도 같았다.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짐승의 사체를 안고 오면 수녀는 사체를 위해 기도를 했다. 아이들은 그녀가 잘 가꾼 화단의 꽃을 몇 송이 꺾어다가 화관을 만들고는 짐승의 머리나 목덜미에 장식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그들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성호를 긋고, 함께 화단에 묻었다.
갈 곳 없는, 묻을 곳 없는 작은 짐승들을 장사 지내 주는 것 정도야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라지만 소년에게는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수녀는 교회 업무와 기도, 성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화단 가꾸기로 보낸다. 그렇게 열심히 가꾼 화단을 겨우 짐승 하나가 죽었다고 헤집어 놓고 꽃까지 꺾어버린다. 잘 관리해놓은 것을 스스럼 없이 훼손하고 더럽힌다. 소년은 그것이 마뜩찮았다. 어쩌면 그렇게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어지럽힐 수 있는지.
물론 그녀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다. 생명은 언젠가 죽음이 되고 그 죽음은 또 반드시 생명으로 되돌아 온다. 아름다운 꽃 뿌리 아래에는 시체가 있고, 그 시체는 거름이 되어 다시 꽃으로 돌아간다. 그럴싸한 말은 맞지만 파리와 구더기가 그 아름다운 꽃 밑에서 들끓을 것을 생각하면 소년은 무턱대고 짜증이 났다. 기껏 열심히 화원을 가꾸어 놓고는 한다는 말은 겨우
“죽으면 모두 흙으로 돌아가고, 그 죽음은 또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정도 밖에 안 된다니.
수녀는 무결하고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운 이 세계를 조형하는 사역자다. 또 실로 그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기껏 열심히 관리해 놓고는 짐승의 죽음 같은 하잘것 없는 것을 위해 세계를 무너뜨린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하잘것없는 것을 위해 무너뜨리곤, 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세계를 다시 쌓아 올린다. 그 손길에는 역시 망설임도 없고 평온하고 단호하다.
소년은 제가 불완전한 결함품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불완전이 없고 결함이 없는 세계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 불완전한 결함품을 취급하는 청소부로 사역하고 있음을 안다. 결함품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이면 불순물을 낳으니까, 자신이 대신해서 그것을 처리해야 함을 안다. 그런데 대체 저 여자는 뭐란 말인가. 불완전도 없고 결함도 없이 완벽한 사람이 고작 결함품을 위해 제가 지은 정갈한 세계를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 올리기를 반복한다. 너무나 쉽게. 소년은 그것이 몹시 의심스러웠다. 완전 무결이야말로 의심스럽다. 너무 완벽하다는 것이야 말로 이상하다. 신이 태초부터 그런 사람을 빚었을 리는 없는데. 그런데도 수녀는 소년의 세계에서 마치 군림하듯이 완벽하게 존재할 뿐이었다.
4.
소년은 이 수녀가 대체 어디까지 “그런가요?”라는 자세로 일관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부엌데기를 죽인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부엌데기는 교회 뒷뜰에 자주 드나드는 고양이였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면 그 고양이는 항상 어슬렁거렸다. 교회의 신관은 그 고양이를 꽤 좋아했지만 정을 주기는 싫다며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수녀 역시 그 고양이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 길렀던 고양이와 무늬가 비슷해서 생각이 난다며 가끔 밥을 주었다. 신관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서 수녀도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과 같은 자세로 ‘고양이 씨’라고 불렀다. 소년은 그 고양이를 편의상 부엌데기라고 지칭했다. 정작 한 번도 입 밖으로 소리내어 고양이를 불러본 적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 고양이는 수녀가 식물 이외에 관심을 주는 거의 유일한 생물이었다(수녀는 제 피양육인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으므로). 소년은 이 고양이의 죽음으로 감히 수녀를 시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에 없이 잔인한 방식으로 고양이를 죽였다. 그렇게까지 괴롭힐 생각은 없었는데, 수녀가 지을 표정을 상상하니까 어쩐지 몹시 불쾌해져서 손이 저절로 멋대로 움직였다. 소년의 상상 속 수녀는 여전히 석고상처럼 무심하고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성스러운 주일 아침, 소년은 수녀의 방을 정중하게 노크했다. “세레스, 뒤뜰에 고양이가 죽어 있어요. 들개의 짓인 것 같은데.” 그리고 수녀는 또
“그런가요.”
하고 고개를 끄덕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년은 앞장서서 수녀를 안내하며 그녀가 지을 표정을 필사적으로 상상했다. 그러나 쉽게 되지 않았다. 희노애락을 모두 벗어낸, 아니, 처음부터 희노애락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로 태어난 사람같아서,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거나 눈물을 보이는 얼굴을 상상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수녀는 처참하게 흩어진 짐승의 사체를 보고는 어쩔 수 없군요, 자연의 섭리가 그런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피할 수 없죠, 따위의 말을 했다. 평소에도 짐승이 죽으면 하는 말이었다. 그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아서, 소년은 손가락 끝을 살짝 떨었다. 수녀는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고 삽을 들어 화단의 흙을 헤치기 시작했다. 제법 좋아하면서 밥을 챙겨 주었던 고양이가 죽었는데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그녀를 도와 고양이의 장례를 도와 줄 의리는 없었으므로, 소년은 제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소년은 불면에 시달렸다. 결국 화장실로 도피해서 구토로 밤을 지새웠다. 저 여자는 누가 죽어도 똑같이 기도를 올리고 화단에 묻을 것이다. 쥐가 죽어도 벌레가 죽어도 사람이 죽어도 그리고 내가 죽어도. 누구에게나 자애롭고 공평한 그 수녀의 본질은 사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 오는 죽음과 진배없지 않은가. 그녀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자연의 섭리이며 생과 사의 진리이지 않은가.
죽어서 땅에 묻을 거름과, 땅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수녀의 세계는 오로지 이 두 가지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열심히 키운 꽃들도 시들면 땅에 묻어버릴 것이다. 언제나처럼 평온한 성모상의 얼굴을 하고서. 생명을 가꾸고 정원을 풍요롭게 장식하고 있지만 소년은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죽음을 배양하는 사신의 성질과 꼭 같다. 벌레도 쥐도 고양이도 사람도, 그리고 그녀의 말로는 ‘가족’이라 칭해지는 자신 조차도. 모두 그녀의 공평하고 공명정대한 화원에 피는 꽃이었다. 소년은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끔찍해서 구토로 밤을 지새웠다. 그는 한동안 교회에 사는 사신의 그림자라는 망상 병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주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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