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완결 이후의 생존 IF. 하느님에게 꽃을(https://privatter.me/page/65bf8a683c89f) 과 같은 세계선입니다. 5월경, 미국 모처에서 탐정사무소를 경영하는 데이비트와 테스카틀리포카가 마을 아이에게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 이야기입니다.
이름이 있는 모브 캐릭터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데이비트나 테스카틀리포카와 연애 측면으로 얽히지는 않습니다.
데이테스 원드로원라이 @Dt_od_ow 참가작입니다. 주제 '축제', '고양이' 를 의식하고 썼습니다.
데이비트는 0시 30분이면 그날 분량의 백업을 한 뒤 잠들고 칼데아 시절의 버릇대로 오전 6시면 일어난다. 나는 내킬 때 자고 내킬 때 일어나지만 식사 시간은 지킨다. 그래서 데이비트가 잠드는 것과 깨어나는 것을 전부 지켜봤다가 데이비트에게 또 밤을 새웠느냐, 인간은 그런 식으로 생활하면 건강을 망친다며 혼나고는 하지만 크게 신경 쓴 적은 없다. 어젯밤에는 제시간에 잤다. 그러므로 오늘은 데이비트에게 혼나지 않아도 된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데이비트가 샤워를 하는 소리를 듣고 옷장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기척을 느낀다. 데이비트가 침대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을 때, 사이드 테이블을 손으로 더듬어 데이비트의 스마트폰을 찾아냈다. 충전 케이블을 뽑고 데이비트의 기척이 느껴지는 쪽으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지난달에 저주받은 목걸이를 파괴하기 위해 내 가호와 강화마술이 걸린 상태로 둔기로 소모당한 스마트폰 대신 새로 주문한 손때가 거의 묻지 않은 스마트폰이 내 손을 떠나갔다.
“고맙다.”
“운동 가냐?”
“그래. 오늘은 맥모닝 먹고 올 테니까 내 몫은 필요 없다.”
“패스트푸드 그만 먹으라니까.”
데이비트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암막 커튼을 걷고 나가 버렸다. 조금 뒤 도어락이 자동으로 개폐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5월 하순이고, 5시 반이면 해가 뜨기 때문에 하늘은 이미 완전히 밝아졌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아침식사 시간은 8시다. 적어도 7시 30분까지는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얕은 잠기운을 무기로 꿈과 현실 사이로 다시 뛰어들려 애썼지만 내 분투는 10분을 못 가고 실패로 끝났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자꾸 들뜨고는 한다.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요란한 죽음의 예감.
결국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에 일어나서 뺨을 양손으로 한 번 두들기고 이불을 정리한 뒤 침실을 나왔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이륜차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면서 기계적으로 야채와 방울토마토를 썬다. 요즘은 지중해식 샐러드에 빠져 있다. 데이비트는 야채와 치즈밖에 안 들어간 샐러드를 왜 먹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야채를 싫어하는 어린애 의견 같은 건 내 알 바 아니다. 샐러드에 드레싱을 붓고 토스트와 베이컨을 구워서 식탁에 태블릿PC를 세워두고 아침식사를 했다. 데이비트는 내가 식사를 하면서 업무용 메일 계정과 스마트폰의 연락 내역, 메신저까지 꼼꼼하게 체크한 뒤 〈파티셰를 잡아라〉를 한 편 보고 이를 닦고 몸단장을 하고 설거지를 끝낼 즈음에야 3층으로 올라왔다.
“또 그 샐러드? 네 마이붐은 오래가는군.”
“그런 말 하고 싶으면 일단 네 입맛의 연배를 네 외양과 비슷한 정도로 끌어올리고 와라. 아, 메일이랑 스마트폰 체크해 봤는데 새 의뢰는 없다. 네 쪽으로 온 건 없었나?”
“없었어. 하지만 의뢰인이 하나 왔다.”
“갑자기? 오늘 예약한 사람은 없었는데?”
“일반인이다. 마술과 관련 없는 사람이야.”
“?”
“2층에서 대기하라고 말해뒀다. 씻고 내려갈 테니까 네가 차라도 대접해줘.”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기 용무만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데이비트는 내 어깨를 가볍게 치고 욕실로 사라졌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니트 가디건을 꺼내서 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재의 본질이 무엇이건 간에 고용주는 저쪽이고 나는 피고용자다. 상사가 까라면 까야 한다.
나와 데이비트는 이 건물의 2층과 3층을 통째로 빌려 3층을 주거로, 2층을 사무소로 쓰고 있다. 업무공간과 일상공간의 분리라는 개념을 갖지 못한 데이비트에게 자꾸 일상을 업무의 연장으로 만들면 언젠가 번아웃이 올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결과, 데이비트는 요즘은 3층에 보고서를 들고 올라오지 않게 되었다. 좋은 현상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2층으로 내려가 사무소의 문 앞에 섰다. 문 옆에 작은 명패가 붙어 있다. A&M Detective Office. 이 마을 관공서에 낸 서류에 적힌 정식명칭은 Able&Mayday지만, 실은 데이비트가 생각한 정식명칭과 앞글자를 공유하는 단어를 적당히 넣어두었을 뿐이다. Angel&Mirror Detective Office라는 진짜 이름을 의뢰인들이 알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상쾌한 영업용 미소를 띄우고 문을 열었다.
“네, 고객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인사가 돌아왔다. 접객용 소파에 10대 초반의 짧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밝은 색 티셔츠와 무릎까지 오는 블루진 재질의 스커트. 오랫동안 아껴 입은 티가 나고 깨끗하다. 불안을 참기 위해 만들어낸 무표정을 띄우고 있다. 그리고 낯익은 얼굴이다.
나는 의아해졌지만 일단 문을 닫고 물었다.
“꼬마 나오미? 네가 여긴 웬일로?”
“의뢰를 하러 왔어요.”
이 애는 나오미 캠벨이라고 한다. 근방에 사는 싱글마더의 귀한 딸로, 어머니와 단둘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길러진 어린애답지 않은 침착하고 얌전한 성품으로 근방 아이들이 어린애들 특유의 예상 불가능한 사고를 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어서 근린 주민들에게 평이 좋다. 이런 장난을 칠 성격은 아니지만 저 연배 어린애는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는 법이고, 이 애에게는 마술적인 적성이 없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래서 일단 물어보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우린 조용히 일해서 눈치 빠른 탈리아나 너희 어머니도 잘 몰랐을 텐데.”
나와 데이비트의 주요 고객들은 거의 다 마술사거나 마술사용자이기 때문에 이 사무소는 마술사로서의 공방 용도를 겸하고 있다. 멀끔하고 평범한 사무소처럼 보이지만 최소한의 보안조치는 해 두었다. 일반인이라면 이 사무소의 존재를 알게 되더라도 자연스럽게 흥미를 잃게끔 만드는 가벼운 암시를 걸어두었다. 보통 이런 베드타운에 위치한, 광고를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고 구성원들이 툭하면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는 안 팔리는 탐정사무소에 의뢰를 할 일은 없으리라. 하지만 나오미는 당당하게 이 자리에 앉아 있다. 나도 아니고 데이비트에게 이끌려서.
“원래는 야야우키 씨를 찾고 있었어요. 아침이지만, 야야우키 씨는 아침마다 나와서 고양이 밥을 주니까…”
“아, 아…그렇지.”
내가 제일 큰 애착을 가진 나왈은 재규어다. 지능과 힘만 보고 골랐더니 현명하고 뻔뻔한 녀석들답게 권속인 주제에 잊을 만하면 내게 농담을 하거나 이상한 장난을 쳤다. 그런 식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걔들이랑 말하는 방식이 비슷한 녀석들에게도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나는 고양이과 동물을 다루는 법을 잘 알기 때문에 고양이에게 신뢰받기도 쉽다. 온전한 형태로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마을의 고양이들은 이 마을에서 나의 제일 편하고 부담 없는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편하게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없는 친구들을 챙겨 주고 싶어 할 정도로는 의리 있는 인격체다.
나오미는 학교에 갈 때 우리 사무소가 있는 건물 앞을 지나간다. 그래서 내가 아침에 건물 앞에서 친구들과 떠드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앞에서 야야우키 씨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보이드 씨가 돌아와서 왜 여기 있느냐고 물어보고, 설명했더니 그럼 의뢰를 받아주겠다, 나는 탐정이라면서 데리고 올라와서.”
“그러냐? 걔답다. 들떠 있었겠군.”
“?”
“데이비트는 그런 거 좋아하거든.”
사무소를 안 팔리는 탐정사무소로 위장하자는 제안을 한 건 데이비트였다. 내 쪽은 사무소를 마련하면서 관공서에 댈 핑계가 필요해서 탐정사무소라는 이름을 빌렸다는 인식이었지만 데이비트 쪽은 아니었다. 내심 탐정이라는 직함을 동경하는 티를 냈다. 평소에는 마술세계의 해결사 같은 일을 하지만 실은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평범한 탐정 같은 일을 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필립 말로우 같은 트렌치코트를 옷장에서 발견하는 것이나 PC로 보고서를 쓰는 주제에 타자기처럼 생긴 키보드를 주문하는 걸 지켜보는 건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라서 모르는 척을 해 왔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어진 것 같다.
나는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면서 나오미의 안색을 살폈다. 어린애가 나 같은 어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사태. 어머니의 사고나 실종은 아니다. 어머니의 일이라면 경찰에 갔을 것이다. 친구도 아니다. 친구라면 이웃집 사람이나 선생님을 찾을 아이다. 그리고, 짚이는 일이 있다.
“지난번의 그 고양이 때문이냐?”
“어떻게 알았어요?”
“너희 생각하는 게 뻔하지. 없어졌어?”
“…네….”
나오미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나는 탁자 위에 핫초콜릿이 든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보통은 차를 대접하지만 불안한 어린애한테는 달콤한 것이 낫다. 어린애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핫초콜릿에 손을 가져갔다. 내가 눈웃음을 치자 조금 안심했는지 핫초콜릿을 마신다. 긴장으로 치켜올라갔던 눈꼬리가 슥 내려간다. 나는 그애의 맞은편에 앉아서 한쪽 다리를 꼬았다. 경험상 이쯤에서 본론이 나온다.
“그게요, 지난번엔 막 화내서 죄송했어요. 근데 야야우키 씨만큼 고양이한테 관심 있는 사람이…”
“늦어서 미안하다.”
사무실 문이 열렸다. 나와 나오미의 시선이 니트 조끼에 넥타이를 맨 스쿨룩 같은 복장을 한 다급하게 머리카락을 말리고 나온 남자에게 달라붙듯이 모였다. 나오미는 몰라도 내 쪽은 데이비트를 넌 왜 이런 타이밍에 들어오냐는 함의를 담아 째려보고 있었지만 데이비트는 별 신경 안 쓸 것이다. 실제로 데이비트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지?”
“그냥 평소와 마찬가지로 네가 눈치 없는 짓을 했을 뿐이야. 자, 이쪽에 앉아라.”
3인용 소파의 중앙 쪽으로 자리를 옮겨 나오미의 정면 자리를 비웠다. 내가 옆으로 빠지고 데이비트가 그애의 맞은편에 앉자 나오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버릇대로 질문받기 전에 대답했다.
“탐정은 저 녀석이야. 나는 조수 같은 거고.”
“그러니 이 녀석은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자, 그러면 사건의 정황을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어, 왜…존댓말을?”
“캠벨 씨Miss Campbell는 의뢰인이니까요.”
데이비트는 당황한 눈치인 어린애와 눈을 마주친 채 웃어 보였다. 이 녀석 정말 진심으로 탐정놀이를 할 생각이구나.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해야 했지만 데이비트의 저 태도는 불안한 상태인 어린아이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나오미는 조금 전보다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루스Ruth가 그저께부터 안 보여요. 아, 루스는 저희 집 고양이인데.”
루스는 검은색 털에 파란 눈동자의 세 살 난 암컷 고양이다. 반년 전에 주운 뒤 어머니가 허락해 주셔서 함께 살고 있다. 무심한 성격이지만 그래도 저와는 사이가 좋다고 생각한다. 가끔 현관의 고양이 문으로 나가서 마을을 산책하고 돌아오지만 항상 반나절 안에 돌아온다. 그런데 이틀째 돌아오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이 마을에서 고양이들과 제일 사이가 좋아 보이는 건 야야우키 씨다. 그러니 야야우키 씨에게 혹시 루스를 보지 못했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어젯밤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야야우키 씨를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긴장해서 너무 일찍 와 버렸다. 데이비트가 메모를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나오미가 언어가 아닌 방식으로 흘리는 정보에 집중했다. 불안감, 걱정, 죄책감, 애정, 친애, 신뢰, 부끄러움.
나오미는 20분 정도 쉴 틈도 없이 말한 뒤 거의 다 식은 핫코촐릿을 마저 마셨다. 데이비트가 물었다.
“그렇다는데. 마을의 고양이들이 모이는 스팟은 알고 있나?”
“대강은. 동네 돌아다니면서 몇 번 보기도 했고, 고양이 모이는 장소 조건이 다 비슷비슷하지.”
“조건이 있나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 정도지 일반화하기는 힘들어. 그리고 고양이는 자기 집주인이 다른 고양이 냄새 묻히고 다니면 싫어한다, 꼬마 나오미.”
“앗.”
나오미는 조금 낙담한 얼굴로 컵을 내려놓았다. 데이비트는 메모한 것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아무튼 정황설명은 잘 들었습니다. 캠벨 씨가 바라시는 건 고양이 루스를 가능한 한 빨리 찾아내는 거라고 생각해도 되겠죠?”
“네. 원래 제가 계속 찾아보고 싶었지만 내일은 학교도 가야 하고, 제가 찾을 수가 없어서…”
“알겠습니다. 이 번호로 사진 보내주시고, 혹시 루스가 좋아하거나 잘 반응하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이미 보냈는데요. 아이폰이길래 에어드랍으로…제 전화번호는 전단지에 있으니까 그걸로 등록하세요.”
나오미에게 명함을 내밀던 데이비트가 머쓱한 표정으로 자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털이 풍성한 검은색 고양이가 카메라를 보는 사진이 떠 있었다. 데이비트가 사진 속의 고양이를 머릿속에 새겨넣고 어린애가 만든 고양이의 신상명세가 적힌 고양이를 찾는 전단지를 보는 동안 나는 조금 예전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녀석, 그때는 몰랐는데 꽤 미인이었구나.
나는 조금 전에 비해 침착해진 어린애에게 물었다.
“나오미. 우리 소장은 이 의뢰를 받아줄 생각인 것 같다만 그전에 몇 가지 확인하자. 네가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찾아온 이상 이건 정식 의뢰가 되었고, 의뢰비도 받을 거야. 그건 상관없냐?”
“용돈 모은 거 가져왔어요.”
“그걸로 부족하면 어떻게 할 거지?”
“오래 걸려도 갚을게요.”
“만약에 루스가 죽었거나, 죽음에 준할 만큼 안 좋은 상태가 되었어도 제대로 이행할 거냐?”
“야야우키.”
“나서지 마, 소장. 꼬마 나오미는 몰라도 나오미 캠벨 씨가 우리의 의뢰인이 됐다면 얘기가 달라져. 우리가 할 일의 범위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어. 의뢰인의 나이가 어리다는 걸로 해결할 수 없는 범주가 됐다고.”
석상처럼 조용해진 나오미를 보면서 팔짱을 끼었다. 데이비트는 나를 보며 어린아이한테 그럴 것까진 없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대견하기는 했다. 이 녀석도 많이 인간다워졌다. 2년 전이었다면 저런 말을 건네서 상대를 격앙시키고 시무룩해지는 건 내가 아니라 데이비트였을 거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드는 나오미와 표정을 지운 채 눈을 마주쳤다. 원래 내 본업은 이런 식의 미움받을 것이 분명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네. 다쳤으면 병원에 데려가면 되고, 죽었으면 힘들겠지만…그래도 루스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어요.”
“그러냐.”
어린애는 나름대로 각오를 한 표정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쳐도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반년 전의 일을 생각한다. 죽어가는 고양이를 안아 들고 신에게 화를 내는 어린애의 모습이 시냅스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그래, 인간은 언제나 이렇다. 그리고 이래야 한다.
태블릿PC로 평소 발행하는 계산서를 켜고 거기에 몇 자리 숫자를 두들겼다. 데이비트가 전단지를 볼 때 봐두었던 나오미의 전화번호로 계산서를 보냈다. 여자애가 자기 스마트폰 액정을 보는 동안 말했다.
“일단 이게 착수금이다. 보고서는 네 번호나 메일로 데이비트 녀석이 보내줄 거고, 전체적인 필요경비는 사건이 종결되면 청구하마.”
“네.”
“뭐 너무 걱정하지 마라. A&M 탐정사무소는 빠른 해결과 뒤끝 없는 수습을 세일즈포인트로 삼고 있거든. 내가 기억하기로 루스는 악운이 있는 고양이였어. 아마도 그럭저럭 잘 해결될 거야. 그렇지, 데이비트.”
“응.”
데이비트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 존댓말 안 썼다고 지적하기에는 늦었다. 데이비트의 실수를 조용히 흘려넘기고 나오미를 보며 말했다. 나오미를 처음 봤을 때부터 하려다 참은 말이었다.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잘 부탁하마. 그리고 다음부터 이런 데 올 땐 어른이랑 같이 와.”
*
“어차피 꼬마 나오미가 고양이 사진을 보여줬을 때 그 고양이가 어디 있는지 간파했지? 어디 있어?”
점심식사용 타코를 두 개째 먹던 데이비트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엔칠라다를 포크 끝으로 갈랐다. 근방에서 오래 영업한 멕시코 식당의 3인용 런치세트다. 아까 나오미에게 청구한 착수금은 이 식당의 런치세트 가격에 배달료를 추가한 정도였다. 나는 장사할 때는 성실하다. 아무리 일이라도 일반인 어린애한테 마술사들한테 생명비용이랑 예장 값을 뜯어낼 때처럼 쪼잔하게 굴지는 않는다.
데이비트는 입안에 음식을 넣은 상태로 대답했다. 원래 입안에 뭔가 있는 상태로 말하는 녀석이 아니지만 내 질문이기 때문에 서두르는 것이다. 발음이 엉망이라 보통은 못 알아듣겠지만 나는 대강 알아듣는다.
“초등학교 근처 구시가지에 불법으로 증축된 건물이 몇 곳 있지. 그 건물들 사이의 틈에 빠졌다. 조금 지치기는 했지만 무사해.”
“네 오지랖이라면 그 자리에서 고양이 사진을 보고 어디에 있는지도 얘기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평범한 탐정’ 같은 사건이 마음에 들었어?”
데이비트가 가볍게 눈을 흘겼다. 나는 얄밉게 웃었다. 데이비트는 타코를 전부 먹은 뒤에야 대답했다.
“뭐 그건 부정하지 않으마.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 애가 너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참 나한테 이상한 방향으로 관심이 많아.”
“그 애는 내게 네 이야기를 할 때 죄책감과 묘한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왜지?”
“그게 말이야.”
반년 전 일이다. 저녁식사 재료를 사서 사무소로 돌아가던 도중 길에 쓰러져 있던 빈사 상태의 검은 고양이를 발견했다. 작은 부상은 많지만 아주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쳐 있었고 털도 엉망이고 나와 구면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대강 상위맥락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도 다른 동네에서 세력권을 빼앗기고 여기까지 도망쳐 왔으리라.
‘좋은 근성이군, 아가씨. 도망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살아만 있으면 다음 싸움을 할 수 있으니까.’
치하하는 말을 하면서 고양이의 머리를 만졌지만 고양이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숨을 쉬는 상태였고, 내가 확인해본 결과 인식능력도 멀쩡한 상태였다. 반응하지 않는 이유도 간단하게 유추할 수 있다. 고양이는 온 힘을 다해 도망친 결과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기력을 잃어버렸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생명체가 가까이 다가와도 도움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을 만큼.
고양이에게서 손을 떼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도중, 등 뒤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야야우키 씨?’
하교 도중이었는지 책가방을 멘 나오미 캠벨이었다. 나는 생김새와 하는 업무의 특성 때문에 어린애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이 애는 사무소 건물 근처의 식료품점 2층에 살고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저 애가 등교할 때쯤 사무소 앞에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나를 지켜보고는 했다. 그런 계기로 안면을 트게 되었다.
슬슬 어두워질 시간이었다. 나는 그쪽을 흘깃 돌아보며 대답했다.
‘꼬마 나오미냐. 빨리 가. 네 엄마가 걱정한다.’
‘아니, 하지만 고양이가.’
아무래도 나보다 고양이를 먼저 본 모양이다. 빠르게 다가온 나오미는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고양이에게 뭐라뭐라 말을 걸었지만 고양이는 여전히 조용했다. 나오미는 대번에 울상이 되어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죠? 얘 많이 다쳤어요? 죽는 거예요?’
‘죽지는 않았어. 하지만 뭐 그래. 이대로 두면 조금 있으면 죽겠군.’
나오미의 눈썹이 양쪽으로 처졌다. 고양이는 색색 숨을 쉴 뿐 아무 의사표현도 하지 않았다. 나오미는 하얀 얼굴로 고양이를 몇 번 더 흔들어 보다가 물었다.
‘지금이라도 병원에 데려가면 살까요?’
‘응. 큰 부상은 없으니 살겠지.’
‘…그…혹시 야야우키 씨가 일 때문에 얘를 못 맡으면 제가 맡을 수 있어요. 병원비도 반은 제가 낼게요.’
‘? 무슨 말이냐?’
‘?’
나는 의아해져서 나오미를 바라보았다. 나오미도 똑같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 그렇군.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군. 나는 아이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기로 했다.
‘들어 봐라, 나오미. 물론 손상된 생명체는 적절한 치료를 하면 대체로 회복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것도 본인에게 살아있을 의지가 있을 때의 얘기다.’
‘살아있을…의지?’
‘살아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뜻이야. 이 녀석은 말이다, 아마 살아있는 데 지쳤을 거다. 그래서 자길 도와줄 수 있는 나나 네가 이런 식으로 부르고 만져도 반응하지 않는 거야. 아마 병원에 데려가더라도 크게 바뀌지는 않을 거다. 네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는 얘기야.’
나오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졌다. 내 쪽도 답답한 상황이었다. 지치고 지쳐서 생존을 포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신으로서의 나는 이럴 때면 굉장히 곤란해진다. 나는 인격체 본인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도와달라는 말 한 마디면 바로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고양이 같은 내게 아무 도움도 바라지 않는 개체의 경우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써도 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나다.
나오미가 묻는다.
‘야야우키 씨는 그래서 얘가 바라는 대로 해줄 거예요?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죽게 놔둘 거예요?’
‘뭐 그렇지. 괜찮아. 죽음은 그냥 세상의 이치 같은 거다. 생애란 제일 화려한 싸움 뒤 다음 세계로 건너가는 여정이지. 그러니 아주 불행한 사건은…’
‘어른이…’
‘?’
‘어른이 되어 가지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신조차 놀랄 만한 음량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사고가 정지한 내가 자신을 바라보는 동안 나오미는 내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놔두면 죽는데 그걸 그대로 놔둬? 이렇게 작고 연약한 애가 죽고 싶어하면 죽으면 안 된다고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일단 살려주면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잖아! 고양이 좋아하고, 우리 엄마한테도 잘하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실망했어요!’
‘어, 어이, 나오미.’
‘시끄러! 얘는 내가 도와줄 거야!’
어린애는 내게 그렇게 일갈한 뒤 축 늘어진 고양이를 안아들고 집과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나는 약간 기가 질린 상태로 눈을 깜빡이다가 월마트 비닐봉투를 들고 사무소로 돌아갔다.
나오미는 그 뒤로 등교할 때 내게 인사를 한 뒤 내 주변의 고양이들을 구경하지 않고 말없이 지나가게 되었다. 그 일 전후로 한동안 눈이 빨간 상태로 돌아다니기에 그 고양이가 죽어서 미운털이 박혔나 지레짐작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고양이는 나오미가 몇 번이나 울 정도로 사선을 넘나들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고,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의 소중한 모압 여인 며느리Ruth 같은 가족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매도한 상대한테 이번에는 도움을 청하게 됐으니 미안하고 부끄러운 거지. 대답이 됐나?”
“어린애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니 그렇지…너야 그 고양이에게 생존 의지가 없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지만 일반적인 어린애는 그런 거 모른다.”
“나도 카무플라주 정도는 신경 써. 하지만 이건 내 근간이야. 숨길 수 없고, 애초에 숨길 이유도 없고.”
포크를 내려놓고 데이비트에게 눈짓을 했다. 내 앞에 놓인 일회용 종이접시에 엔칠라다가 한 토막 남아 있었다. 그만 먹고 싶으니 네가 먹으라는 신호였다. 데이비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접시에 포크를 가져갔다. 나오미의 빨간 눈두덩과 나오미가 다니는 초등학교 근처의 증축과 개조를 반복한 결과 엉망진창으로 구성된 주택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살았다니 참 운이 좋은 아가씨야. 5월이니까,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네 축제 이야긴가?”
“기억하고 있었냐?”
“네 이름과 속성을 아는 사람이 네 제례를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심상들을 멈추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흉터가 없는 소년들. 귀하게 대접받아본 적이 없는 존재가 모두에게 받들어지는 존재가 되어 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테노치티틀란. 부서진 피리들. 제단에 누워서 올려다보는 하늘. 이스칼리.
데이비트가 물었다.
“신으로서 제례 없이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이지?”
“그야 즐거웠으니까 좀 아쉽기는 하지. 그렇지만, 사실 나는 그것보다 내가 제물을 받지 않아도 세계는 별 일 없이 돌아간다는 사실 쪽을 더 신경 쓰게 돼. 나와 내 신자들과 동료들이 헌신하지 않아도 세계의 이치가 유지된다는 건 묘한 감각이야. 책임을 방기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편안하기도 해. 물론 자기가 이전에 비해 필수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는 녀석들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예전만큼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더라도 내 이치가 남의 이치보다 옳다고 믿고 있거든.”
“네 에고는 정말 굉장하군. 나는 덕분에 이익을 봤지만.”
“뭐 그렇지. 테스카틀리포카적으로 신경 쓰이는 거라면, 내가 추앙받지 못한다는 것보다도 5월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죽지 않는 것 쪽이려나.”
“죽음을 정말 좋아하는군, 너는.”
“실례야. 이건 호오보단 버릇 같은 거야. 그 녀석들의 죽음은 내 죽음이기도 했으니까 익숙해진 거라고.”
토쉬카틀Tōxcatl의 절정에서 바쳐지는 제물들은 일 년간 나의 화신 취급을 받았다. 그즈음의 인간들은 데이비트 같은 현대인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신실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약속된 죽음 앞에서 모두가 바라는 모범적인 사고를 할 수는 없다. 쭉 경건한 마음으로 지내는 이도 있었다. 힘든 삶의 마지막 부분에서라도 마음껏 사치를 부릴 수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어째서 내가 죽어야 하느냐고 끝없이 자문하는 이도 있었다. 몇 번이나 도망치려다 실패하는 이도 있었다. 어째서 다른 신들처럼 빠르게 삶을 끝내주지도 않고 1년 동안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는 고통과 공포 속에 몰아넣는 것이냐며 나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이도 있었다.
세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이고, 희생자들은 모두 틀라위스틀람파에 가는 것을 허락받을 만큼 숭고한 일이었으므로 나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건 그들 모두를 나였던 적이 있는 존재로서 받아들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하늘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5월의 축제에서 벌어지는 죽음은 나의 죽음이기도 했다. 이제 인간의 몸에 갇혀 우주에서 온 무언가와 함께 탐정의 조수 흉내를 내며 지내는, 이제 제물을 받을 필요도 없는 고스트라이너인 내가 5월 하면 죽음을 연상하는 후유증을 남길 정도로.
구아바 맛 하리토스를 빨대로 마시면서 데이비트가 말한다.
“그래도 그 고양이가 죽는 건 곤란해. 보고서에 쓸 것도 필요하니까, 네가 아는 고양이들이 모이는 스팟을 몇 곳 안내해 다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세 곳 정도 돌면서 눈도장을 찍고 그 근처를 돌아다니는 행인들에게 이 고양이를 본 적 없느냐고 물어보면 되겠지. 그 뒤에 고양이를 찾으러 가자.”
“완벽하군. 사실 네가 이런 일반적인 의뢰를 받으면 평소처럼 구는 사고를 칠 것 같아서 마술과 관련 없는 인간을 구분하는 암시를 걸어둔 거였는데 말이다, 네가 쭉 이 정도로 성공적인 카무플라주를 할 수 있다면 그냥 일반적인 의뢰를 같이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네게는 좋은 사회공부가 되겠지.”
“차라리 욕을 해라.”
“야, 이거 놀리는 거 아니야. 칭찬이야.”
점심을 다 먹고, 일회용 용기를 분리수거한 다음 아우터를 입고 사무소를 나왔다. 나는 몰라도 데이비트는 아우터는 항상 검은색을 고집하기 때문에 목적지를 한 곳 돌 때마다 눈에 띄게 고양이 털이 달라붙었다. 언어가 안 통하는 고양이들에게 자기들 나름의 근황 보고를 들으면서, 데이비트와 인사를 나누는 마을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좋은 현상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는 더더욱.
내가 근방 30m 안쪽에 사람이 접근하지 않게끔 결계를 치고 구시가지의 더러운 벤치에 앉아서 데이비트의 코트에 달라붙은 고양이털을 롤러로 떼는 동안 데이비트는 오면서 사온 공구로 날림공사의 결과 건물 사이를 기괴하게 메운 벽과 배관을 무자비하게 뜯어내기 시작했다. 마술로 처리하면 그만인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평범한 의뢰이니 마술을 쓰지 않고 해결하고 싶다는 욕심에 사로잡힌 모양이었다. 아니, 다 좋은데 저거 경비처리하면 의뢰인한테 청구해야 하는데. 걘 어린애라고.
나는 데이비트의 코트를 탈탈 털어서 한 손에 들고 롤러를 공구함에 도로 집어넣은 다음 데이비트에게 다가가 작업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데이비트가 벽을 뜯어내는 작업을 시작하고 5분 정도가 지나자 벽 속에서 약하게 먀웅, 먀웅 하는 소리가 났다. 내가 들어 본 적 없는 암컷 고양이가 내는 소리였다. 루스가 분명했다. 그래서 무심결에 말해 버렸다.
“진짜네.”
“그럼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나?”
“아니, 네 인식능력이야 당연히 믿지. 그거 말고.”
꼬마 나오미의 금언.
‘놔두면 죽는데 그걸 그대로 놔둬? 이렇게 작고 연약한 애가 죽고 싶어하면 죽으면 안 된다고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일단 살려주면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잖아!’
아마 그때 그 자리에 나오미가 있었건 없었건 나는 같은 결론을 냈을 것이다. 나는 미래에 루스라고 불리게 될지도 모르는 고양이의 의사를 존중해 그대로 죽게 놔두었을 것이다. 나는 신이기 때문이다.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아무 도움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 주체가 내가 바라는 끝의 끝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싸우려 애쓰는 전사로 살아갈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더라도 나는 그것을 구할 수 없다.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룰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인간인 꼬마 나오미는 고양이의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무시하고 고양이를 살렸다. 그리고 이제 고양이는 데이비트에게 애원하고 있다. 살려달라고. 더 살아있고 싶다고.
당연한 사실이다. 몇만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감동할 기회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인간의 진보와 가능성을 보고 감탄하는 것은 세계를 유지하는 이치를 떠맡을 필요가 없어진 이 시대의 신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빠루로 못을 다섯 개째 뽑아낸 데이비트가 깨끗한 오른손 손등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테스카틀리포카. 고양이 꼬리가 보인다. 조금만 있으면 꺼낼 수 있을 것 같아. 이동장 이리 다오.”
“…? 이동장?”
“?”
“젠장, 미안하다. 뭔가 잊어버렸다 했더니 그걸 까먹었어.”
데이비트가 나를 흘겨보다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새삼스러운 수치심을 느꼈다.
*
“쭉 고민했었는데.”
꼬마 나오미는 저녁식사 시간 직전에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검은색 털투성이가 된 셔츠를 입은 나를 끌어안고 울면서 감사하다고, 그 때는 심하게 말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건 네 의뢰를 받아준 우리 사무소장에게 하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애가 고양이를 보고 안심했는지 하도 심하게 울어서 그 말을 끼워 넣을 틈이 없었다. 데이비트와 함께 나오미를 달래고, 다행히 빠르게 별 고생 없이 찾아냈으니 의뢰비는 착수금과 같은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고(공구는 비품비에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정산을 한 다음 건물 밖까지 나가서 애를 배웅했다. 애는 고양이 이동장을 한 손에 들고 루스를 끌어안고 돌아갔다. 애가 자기 사는 건물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2층으로 돌아오자 데이비트가 한 말이다.
내 책상에 있던 보존마술이 걸린 꽃다발을 컴퓨터 본체 위에 올려놓고, 책상 위에 올려둔 셔츠에 롤러를 갖다 대다 말고 되물었다.
“뭘?”
“너를 살린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쭉 고민하고 있었다.”
중남미 이문대에서 믿을 수 없는 형태로 살아남은 뒤, 나와 데이비트는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노움 칼데아는 크립터나 비스트 손이라도 필요로 할 만큼 절체절명의 상황에 몰려 있었고, 일선에 설 수 있는 나와 데이비트 정도 되는 전력은 당연히 도움이 되었다. 데이비트도 나를 험하게 굴렸지만 노움 칼데아 또한 우리를 험하게 굴려먹었다.
나는 인간의 요망에 부응하는 성질의 신이기 때문에 인간이 내게 무리한 요구를 해도 별 유감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리표백 안건이 최종국면에 도달하면서 내가 온갖 무리한 요구를 받아낸 결과 홀로 퇴거할 상황에 처해도 별 유감은 느끼지 않았다. 데이비트가 붉은 날개가 있었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깨끗한 오른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을 때 역으로 의아해졌을 정도로.
나는 되물었다.
“그게 뭐? 그냥 네가 향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리소스까지 전부 다 소모해서 나를 지상에 붙들어놨을 뿐이잖아. 어차피 우린 처음부터 작전상 동맹 관계인 소환자랑 고스트라이너 정도 관계였고.”
“계약 위반이 된다.”
“무슨?”
“나는 너를 부를 때 지구의 멸망을 조건으로 걸었어. 하지만 그걸 실행하지 않았을뿐더러, 그 이후의 삶까지 네게 강요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런 걸 마음에 두고 있었나. 롤러를 밀어도 될지 알 수가 없어서 손을 멈추고 평소처럼 무표정한 데이비트와 눈을 마주쳤다. 처음에야 그랬을지 모르지만, 나는 원래 1초 사이에도 몇 번이나 행동방침을 바꾸는 존재다. 나는 데이비트에게 흥미 본위로 이끌려온 거지 데이비트가 바라던 멸망에 이끌려온 건 아니다. 그래도 저쪽에겐 마음에 둘 만한 계제였던 모양이다. 몇 년간 함께 지내면서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해도 새로운 몰이해가 생겨난다. 내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해도 이 녀석은 꾸준히 내게 이상한 죄책감을 느낀다.
“데이비트, 네게 몇 번 한 얘기지만.”
“하지만 이제 알겠어. 나는 그 때 잘 한 거다.”
“응?”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데이비트가 웃는다. 웃는 얼굴로 말을 잇는다.
“너는 인간을 잘 알면서도 인간과 다른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과 소통할 때 괴리감을 느끼고, 죽음과 친근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죽음이 없는 일상을 버거워하고, 지금 사용하는 육체에 부족한 게 많아서 굉장히 힘들겠지만.”
“아니, 아는 녀석이 그래?”
“그래도 너를 살리면 내가 즐거울 것 같으니까 살렸어. 그건 내게 있어 ‘선한 일’이었다고 확신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데이비트는 사무소 조명을 내가 있는 장소의 것만 남기고 모두 끈 다음 사무실 문을 열고 3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롤러를 쥔 채 멍청하게 말했다.
“뭐야, 그런 거였냐.”
데이비트는 아마 내게 곡절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나와 나오미 사이에 있던 일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다친 고양이를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나오미 캠벨과 틀어졌을 때부터. 어쩌면 지나가던 도중 우연히 나를 곁눈질하는 나오미 캠벨을 봤을 때부터. 어쩌면 오늘 아침에 사무소 앞에서 나오미 캠벨과 마주쳤을 때부터. 시점은 아무래도 좋다. 데이비트가 나오미 캠벨의 의뢰를 받아들인 이유. 같은 일을 했으니까. 살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개체를 이기심 때문에 살렸으니까. 닮은 존재에게 공감하는 건 인격체에게는 당연한 일이니까.
“나 참….”
아마도 나는 이 육체의 수명이 다하거나, 혹은 데이비트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때까지 쭉 이럴 것이다. 주변인들과 대화할 때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로 크고 작은 마찰을 빚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마술적인 지식이 있는 주치의의 공방에 끌려가 검사용 시약을 몇 종류나 먹고 지긋지긋한 얼굴로 거의 짠맛이 없는 식사를 할 것이다. 5월이 되면 충족되지 않을 기대감과 고양감에 시달릴 것이다. 내 의지가 아닌 데이비트의 의지 때문에.
하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다. 신성으로 산다는 건 그런 거니까. 인간의 말도 안 되는 필요에 부응하는 존재니까. 그것이 설령 결격사유 투성이인 육체를 추슬러서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의 탐정의 조수인 척을 하며 사는 것이더라도.
“좋아. 저녁은 데이비트 녀석한테 하라고 해야지.”
나는 기지개를 켠 뒤 롤러로 고양이 털을 떼어내는 작업을 재개했다. 5월 22일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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