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레아시스
2023-06-11 00: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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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에게 꽃을

LB7 이후의 IF로, 데이비트와 테스카틀리포카가 2부 완결 뒤 프리랜서 마술사로 지내는 세계선입니다.
데이비트가 정신적으로 어리고 가볍게 질투를 하고 있습니다. 질투 이야기라고 쓰기는 했는데 굉장히 미지근합니다. 별 기대하지 말고 읽어주세요...
일본 데이테스 원드로원라이 @Dt_od_ow 참가작입니다. '부르는 소리' 를 의식하고 썼습니다.

믹틀란에서 테스카틀리포카가 크게 다쳐서 회복에만 며칠을 쏟아부은 적이 있다. 그때 현대의학과 현대마술과 고대주술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 오컬트 공포영화 같은 상태가 된 테스카틀리포카의 침상 옆에 앉아서 했던 이야기다.

‘그거야 간단하지. 지금 이 세계에 나를 신앙하지도 경외하지도 않고 그냥 동료 취급하는 건 너 하나밖에 없어.’
미안하다.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좀 더 안정해라.’
‘이게 진짜. 너 지금 나 대화 가능한 상태 아니라고 판단했지? 도로 앉아. 안 앉아?’

여전히 창백한 얼굴이라서 별로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시키는 대로 앉았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잠시 나를 흘겨보고, 자세를 고친 뒤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목소리는 거의 평소와 비슷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흐렸다.

‘복습이다. 한 신격에게 굳이 번거롭게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소비자 클레임 담당 부서에서 클레임의 내용에 따라 접수처를 구분하는 것과 비슷하다. 담당하는 분야에 따라 호칭을 다르게 구분해두면 신자가 자신을 부르는 이름만 들어도 어떤 능력을 요구하는지 빠르게 구분할 수 있지. 너는 담당하는 분야가 많으니까 당연히 분야별로 이름을 구분하는 게 효율적이다.’
‘소비문명에 찌든 인간 같은 비유 고맙다. 아무튼 정답이다. 이름은 기본적으로는 식별명칭이지만 동시에 이름의 주인에게 타인이 기대하는 역할이기도 해. 틀랄록이나 이스칼리에게 나는 익숙한 개념이겠지. 한편, 이 세계에서 태어난 녀석들은 나를 통해 신이라는 개념을 학습했어. 범인류사의 신이라는 개념이 갖는 복합적인 상위맥락은 알지 못하지만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기들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은 존재라는 사실은 알지. 어떻게 보면 디노스 녀석들이 말하는 ‘범인류사의 신’이 재미는 없어도 제일 적절한 호명일지도 몰라.’
‘정말 대화 가능한 상태 맞나?’

기본적으로는 몸을 사리지만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면 목숨이 9개쯤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테스카틀리포카가 부상을 당하는 건 몇 주에 한 번 정도의 주기로 벌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일로는 놀라지 않게 되었지만 이번 것은 꽤 심각했다. 테스카틀리포카가 말을 건네면 또 저게 뭔가 이상한 짓에 몰두하는 거냐며 동행자 쪽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차는 카마소츠를 잠깐이나마 진짜로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식능력이 크게 떨어져 틀랄록이나 이스칼리가 이름을 불러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불렀을 때는 바로 반응했다.
보통은 마스터와 서번트 사이의 특별한 무언가로 취급하고 말겠지만 우리는 평범한 마스터와 서번트와는 조금 다른 입장이다. 애초에 테스카틀리포카를 부를 때부터 이 땅의 발언권을 빌렸고 현재 테스카틀리포카를 현실의 물리공간에 붙들어두는 마력은 대부분 이 땅에서 유래한 것이다. 의식이 있을 때는 몰라도 의식이 없을 때는 내게 크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의구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그 때는 믿었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테스카틀리포카 본인에게 그건 녀석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서 한 행동이라는 답변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내 진심이라고 믿고 있었고, 테스카틀리포카는 언제나 나의 수요에 충실하게 화답하는 존재였다.

‘너는 마술세계에서 오컬트를 공부했고, 일반적인 인류와 다른 입장이라서 신이 실존하던 시대에 대해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 봤자 인간의 시대에 태어난 현대인이지. 너희들의 시대에 종교와 신은 소비재야. 교리나 신화가 마음에 드는 종교를 고르고, 그게 자기 세계관에 부합한다면 신앙을 바쳐줄지도 모르지만 보통은 오락거리로 소비하고 끝낼 확률이 더 높은.’
‘현대인을 싫어하나?’
‘좋아하는데? 우리 신화체계 녀석들은 거의 다 그 너희들의 학술적인 흥미 때문에 지구에 남아있어. 감사하고 있다고. 너에게도.’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찡긋했다. 꽤 매력적이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걸 음미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지 못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자, 드디어 본론으로 돌아왔다. 어쨌든 넌 그런 현대의 학술연구자 같은 방식으로 나에 대해 알았다. 나를 부른 것도 네 지식범위 내에서 여기에서 부를 수 있고 네 목적에 찬동해줄 만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틀랄록이나 치첸 이차의 주민들은 자기한테 익숙한 개념을 적용해서 너를 나의 신관 취급하지만 너는 내게 신앙을 바칠 생각 따위 없을 거다. 그래서 너는 나를 부를 때 내가 가진 권위를 가진 상위존재라는 상위맥락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 그렇지?’

긍정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런 거야. 이 세계에서 나를 보는 지성체들은 대부분 나를 경외해야 할 신이라고 생각해. 날 여기 처박은 카마소츠 녀석조차 나를 좀 덜 떨어진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너는 나를 경외해야 할 존재보다는 할 줄 아는 일이 조금 더 많고 일반적인 인간에 비해 조금 까다로운 동료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 지금 믹틀란에 내 이름을 그런 식으로 부르는 건 너밖에 없다는 얘기야. 눈 감고도 구분할 수 있어.’
‘그런가.’

테스카틀리포카는 그 나름의 선량함 때문에 (어디까지나 테스카틀리포카가 생각하기에)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충고를 일삼는 곤란한 존재지만, 오랫동안 인간을 지켜봐 왔기 때문에 인간이란 차근차근 프로세스를 밟아나가야 성장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테스카틀리포카는 내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내심 낙담하는 것을 보고도 내 물음이 근본적으로 틀렸다는 사실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사실 내 쪽도 아주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원하는 것과 비슷한 것을 받았어도 근본적으로 헛다리를 짚은 기분은 어떻게 할 수 없었으므로 조금 토라져 있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얘기는 잘 들었다만 이제 그만 말해. 빨리 나아라. 네가 없으면 곤란하다.’
‘부끄러워하기는.’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의 의미야. 가 봐라. 정보공유는 제대로 해 주고.’

테스카틀리포카는 사흘 정도 더 앓고 일어났다. 이스칼리는 순수하게 기뻐했고 틀랄록은 무표정하게 안도했다. 나는 그 둘이 안 볼 때를 노려서 테스카틀리포카의 등을 한 번 때렸다.

‘야!’
‘필드워크가 있다. 할 얘기가 있으면 저녁에 해라.’

테스카틀리포카가 등 뒤에서 뭔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무시하고 신전을 나섰다. 어쨌든 이런 짓은 믹틀란에서 나밖에 못 한다. 즐거웠다.


*


열차가 하루에 네 번밖에 안 오는 캐나다 모처의 기차역.

“아니, 넌 그런 걸 무슨 무기처럼 들고 있냐.”

내게 부탁받은 조사를 마치고 역에 돌아온 테스카틀리포카가 물었다. 나는 두 손으로 쥐고 있던 꽃다발과 테스카틀리포카를 번갈아 보았다. 역시 두 손은 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대답했다.

“보통 꽃을 보고 무기를 연상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말을 말자. 그런 건 왜 샀어? 마을 주민이랑 눈 마주치고 운명을 느끼기라도 했냐?”
“짐을 네가 가져갔으니까. 이런 작은 마을 역에서 아무 짐도 없이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어색하니까.”

역을 나왔을 때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다른 의미로 놀랐다. 테스카틀리포카를 목적지에 먼저 보낸 뒤 혼자 식사를 했지만 식사를 한 가게는 협소하고 조용해서 오랫동안 시간을 죽이며 앉아 있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 동네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어색하니 뭔가 사기 위해 잡화점 같은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쌩뚱맞게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킨 것 같은 꽃집을 발견했다.

그렇게 된 거다.”
“하여간 네 발상이란.”

옆자리를 두드렸다. 테스카틀리포카는 가방을 내려놓고 내 옆에 앉았다. 테스카틀리포카를 보지 않고 물었다.

“차 시간까지는 30분 정도 남았다. 상태는 어땠지?”
“저주 종류는 맞아.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되진 않았고, 길어야 십 년 단위야. 너는 성당교회 쪽에 손을 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나 보기엔 우리 선에서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작년 초, 인리표백은 (이런 어휘를 선택하는 것도 희극적이지만) 노움 칼데아의 분투 끝에 어찌어찌 매듭지어졌고 구성원 대부분의 일신상의 자유를 위해 진실은 어둠 속에 묻혔다. 내가 나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형태로 짠 청사진도 무위로 돌아갔다. 불운인지 행운인지 알 수 없는 우연이 겹쳐 살아남은 나는 굉장히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고 내 손에는 잔고가 크게 감소한 계좌와 네바다의 옛 집과 내장이 몇 개 없는 어느 나라의 국적도 갖지 못한 동행인이 남았다.
내 인식능력이나 파괴능력을 필요로 하는 이는 여전히 하늘의 별처럼 많았으므로 전처럼 적당히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들면 눌러앉으면 그만이었지만 인간으로서의 기능이 엉망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케어가 필요해진 동행인 쪽이 문제였다. 예전처럼 지낼 수는 없다. 깔끔하게 노움 칼데아와 이별할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 그것도 쉽지 않다. 조용히 협회의 인맥을 이용해서 신원을 위조하고 전화번호와 사무실을 마련했다. 마술적인 사건의 해명과 해결 혹은 경우에 따라 사건이 벌어진 흔적도 남지 않는 파괴를 알음알음 의뢰받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나와 동행인은 어찌어찌 일 년을 맞이하고 있었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선글라스를 고쳐 쓰면서 말했다.

“아무튼 당장은 확신하기 힘들고 경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 못해도 다음 일요일까지는. 숙소 며칠까지였지?”
“집주인한테 연락해 두마. 대신 의뢰인한테 설명은 네가 해라.”
“너 말야, 앞으로도 서비스업을 할 거면 사람 대하는 법에 좀 더 익숙해지도록 해. 사회적 기술에 뛰어난 건 나지 네가 아니야.”

믹틀란 생활을 청산한 뒤로 테스카틀리포카는 눈에 띄게 잔소리가 늘었다. 마술을 담당하는 신격은 현대의 마술사로서도 나에 비해 몇백 배는 뛰어났기 때문에 마술적인 방향에서의 지적은 매우 고마웠지만 내 라이프스타일을 지적할 때는 이래저래 난감했다. 이런 상황이라던가.

“필요한 만큼은 말하면서 지내고 있어.”
“그런 문제가 아니고. 애초에 누가 아무것도 안 들고 있으면 어색하니 꽃을 산다는 발상을 해? 네가 지금 뭐 나쁜 짓 해? 믹틀란 때처럼 지구파괴를 획책하길 해? 의뢰인의 자식을 구하려고, 마을에 남아있는 저주를 해제하러 온 거잖아.”

위화감 없이 의심받지 않고 조용히 인류사회에 숨어 사는 것을 목적으로 14년을 보내왔다. 부끄러울 일은 한 적 없지만 나와 타인의 다름이 탄로 나서 귀찮아지는 건 곤란하다. 눈길을 끌면 타인과의 인식의 차이가 드러나니까.
하지만 사실 그것도 그 생활을 3년쯤 했을 즈음에는 익숙해졌다. 유감스럽게도, 테스카틀리포카는 열차가 올 때까지 시간을 죽이기 위해 남이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진실 이야기를 하는 부류의 곤란한 인격체다.

“너 요즘은 딱히 타인을 경계하지는 않잖아. 의심을 사지 않으려는 게 아니고, 그냥 관심 없거나 잘 안 맞는 녀석이랑 용무 이상의 대화를 나누는 걸 별로 안 좋아할 뿐이잖아. 그건 조용히 숨을 의도가 아니라 저는 뭔가 목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말 걸지 말아 주세요. 그런 느낌의 축객령이지.”
“하지만 너도 인간은 대부분 그렇다고 인정했잖아. 대부분 귀찮은 거 싫어한다고.”
“네가 요즘 유치해졌으니 하는 말이지. 아니, 생후 24년이나 된 녀석이 자기 파트너가 남이랑 노는 게 맘에 안 든다고 토라져서 사람이랑 거리 두는 게 말이 되냐고.”

나는 역 정문의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끝을 흐렸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나에 비해 사회적인 인격이다. 믹틀란 시절에 비해 하는 일은 평범해졌지만 주변에 인격체가 많아진 상황은 테스카틀리포카에게는 호재였다. 마술협회의 인간과 교섭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때도 상황설명을 중언부언하는 의뢰인을 상대할 때도 테스카틀리포카는 언제나 즐거워 보였다. 그게 문제였다.
지금의 테스카틀리포카는 종교나 신비와 거리가 먼 현대인이 70억 명 정도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제 테스카틀리포카는 자신을 경외하지 않는 이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나인지 다른 사람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문대 믹틀란이 끝났을 때, 내가 그 사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고 놀랐었다. 나는 테스카틀리포카와 나처럼 막역하게 대화하는 타인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주 싫지는 않다) 그래서 평소의 사회적 소통에 서투른 나답게 불친절하게 필요한 말만 하다가, 옆에서 지켜보던 사회적 대화에 능숙한 테스카틀리포카가 참지 못하고 끼어든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다시 토라진다. 그런 악순환이다.
사람을 많이 대해야 하는 직종을 선택했고 앞으로도 인류사회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는 이 사실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성공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테스카틀리포카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대답했다.

“몇 번 말했지만 나도 당황스럽게 생각해. 이런 상황은 상정한 적 없다.”
“네가 나를 불러냈고, 내가 네게 리소스 대부분을 썼고, 네게는 남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을 많이 털어놓는다는 사실로는 부족하냐?”
“응. 솔직히 말하자면 내 얼굴이 팔리지 않도록 너만 보낸 것도 조금 후회하고 있다.”
“참나, 애보기는 번거롭다니까.”

테스카틀리포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꽃다발을 쥔 채 역 밖을 응시했다. 솔직하게 말하고 보니 부끄러워져서 테스카틀리포카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내 옆에서 다리를 바꿔 꼬면서 고민하던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그 꽃을 갖고 싶어졌다. 나한테 줘.”
“? 이걸?”
“의견 내는 거냐?”
“아니, 그건 아니다. 자.”

상황에 떠밀리듯 테스카틀리포카에게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별 생각 없이 샀고, 꽃말 같은 건 잘 모르기 때문에 꽃집 주인에게 색과 모양이 마음에 드는 것을 달라고 했다. 숙소의 거실 탁자에 꽂아둘 생각이었지만 그 계획은 철회해야 할 것 같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보통은 이상하게 느껴질 옷이나 장식물을 위화감 없이 소화해내는 기묘한 특성의 소유자였고 오늘의 꽃다발도 예외가 되지는 못했다. 꽃다발을 쥔 테스카틀리포카가 휘파람을 불고 말한다.

“고맙다. 기뻐.”
“생각보다 수수한 리액션이군.”
“뭘 기대했는데?”
“아냐. 그래서 그건 어째서? 무슨 바람이 불었지?”
“네가 산 꽃이니까. 나는 남이 내게 뭔가 바치는 걸 항상 좋아하지만, 다른 녀석이 너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탐내지 않았을 거다.”
…….”
“자. 기분이 좀 나아졌나?”

테스카틀리포카가 조금 곤란한 듯 웃는다. 속내가 노골적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저런 얼굴에 대고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는 것도 좀 그렇다. 결정적으로,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하얀 프리지아, 파란 자양화, 빨간 거베라, 검은 테스카틀리포카.
열차 시간까지는 5분 정도가 남았다. 나는 최대한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요구사항이 있다. 출장 끝날 때까지 가지고 다녀. 사무실의 네 책상에 둬.”
“아니, 무슨 벌칙도 아니고.”
“싫은가?”
“아니, 그건 아니다. 보자, 그럼 보존 술식에 내구력을 올리는 술식을 더해서이렇게

성실한 테스카틀리포카는 이번 출장이 끝날 때까지 이동할 때마다 꽃다발을 들고 다녔다. 사무실에 돌아간 뒤에는 테스카틀리포카의 컴퓨터 책상의 장식물이 되었다.
꽃을 든 장발의 성인 남자와 유전적 공통점이 전혀 없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려 보이는 성인 남자라는 이상한 콤비를 곁눈질하는 눈길이 쭉 따라붙었지만, 내 기분은 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