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아들이 남자친구를 사귄게 처음이 아니라는건 아나킨 스카이워커도 잘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파드메와 아나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은 어릴적부터 매우 건강하고 자유분방했으므로, 그야말로 폭풍과도 같은 사춘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에 저항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의 저항군이라는 말도 안되는 동아리(아나킨은 그게 무슨 락 밴드 같은거냐고 물어봤지만 루크는 밝게 웃으며 아니라고 말할 뿐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에 들어간 루크는 가볍게 여러 멍청이들을 만났었고, 그 대부분이 남자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레아는 딱 한명의 불량배를 콕 찝어 저 머저리는 내것이라고 선언했다는 점이었다.
다만 아나킨은 루크가 유치원 교사가 된 뒤로 연애적 관심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럴만도 했다! 루크는 레아가 그 한명의 놈팽이와 죽도록 싸우다 기어코 결혼까지 해치워버린 난장판을 벌일 때에도 눈을 반짝이며 팝콘이나 먹었지 정작 본인은 누구도 집에 데려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던 아나킨이 길에서 바이크 헬멧을 쓴 남자와 시시덕거리는 아들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그래, 뭐.
그럴 수 있다.
아들은 이미 다 클대로 큰 성인이고, 아나킨은 파드메와 고작 스무살에 속도위반 결혼을 해버렸으니 그다지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말이야." 아나킨은 봉지에서 피망 꾸러미를 꺼내며 목소리를 내리 깔았다.
"그 놈, 바이크 헬멧도 모자라서 가죽 자켓에 가죽 장갑까지 입고 있었어."
아나킨은 냉장고 야채칸의 냉기를 느끼며 파드메를 슬쩍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평온하게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다. 며칠동안이나 계속 된 기나긴 화상 회의의 끝을 본 파드메는 오늘 남은 하루동안 절대 컴퓨터 스크린을 보지 않겠다 선언했다. 고된 나랏일에 치이며 테이블 밑으로 중지를 여러번 날리는 아내의 손에 핏줄이 돋는 것을 본 아나킨이 황급히 저녁 거리를 사오겠다고 도망쳐 나온 뒤 였다.
“날라리같은 놈일거야."
"당신도 젊었을 때 바이크도 탔고 가죽 자켓도 입고 가죽 장갑까지 다 꼈었잖아." 파드메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그냥 패션같은게 아니었어. 한 솔로처럼 처음부터 가죽 자켓을 입고 태어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니까? 양아치들이 다 그렇잖아." 아나킨이 감자를 노려보며 받아쳤다.
아나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과 애정으로 (나름) 곱게 키운 내 아이들의 애인 취향이 어쩌다 이렇게 글러먹게 변질된 것일까? 가죽 자켓의 깡패들? 이 모든 것들의 기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냉장고를 전부 정리한 아나킨이 궁시렁거렸다.
"애들이 날 닮아서 그래."
"뭐?"
갑작스레 던져진 파드메의 말에 마트에서 받은 비닐봉투를 삼각형으로 접던 아나킨의 손이 멈췄다.
"애인 취향 말이야."
파드메가 아나킨의 눈을 고요하게 마주보며 차를 한모금 마셨다.
아나킨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일단 봉투를 마저 접었다.
그리고 평화롭게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현명하고 지적인 자신의 반려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저 20대때 양아치같았어요?]
메세지 옆의 숫자 1은 금방 사라졌지만, 오비완에게 답장이 오는 일은 없었다. 존경하는 스승에게 버림받은 아나킨은 믿음직스러운 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 사이에 이 가정의 진정한 일인자, 토실한 흰 고양이 알투가 식탁에 올라와 그 더러운 성질머리로 특유의 야옹야옹인지 삐용삐용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대며 밥을 보챘다. 파드메가 알투를 쓰다듬으며 아나킨에게 눈치를 줬지만, 그의 두뇌는 이미 과부화 상태로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루크 애인이 누구냐]
최근 아들을 낳고 (그 날 아나킨과 한은 너무 목 놓아 울어서 레아에게 시끄럽다고 병실에서 쫓겨났고, 한참이 지나고서야 신생아치고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은 뚱한 얼굴의 손자를 안아볼 수 있었다. 그때까지 둘을 점잖게 혼내던 오비완마저 레아가 벤의 이름을 알려주며 대부가 되어달라고 했을 때는 속절없이 울어버려서 사제가 나란히 아소카에게 등짝을 맞았다.) 육아 휴직을 얻은 레아는 마침 한가했던 모양인지 답장은 금방 왔다.
[이제야 알았어요?]
믿었던 딸에게도 배신을 당한 아나킨이었지만 그는 일단 목표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누군데]
[이름은 딘이에요]
[루크보다 연상이고]
[기계를 잘 다뤄요. 아마 일도 그쪽이던거 같던데]
[왜 내가 여태까지 몰랐지?]
[저희도 안지 얼마 안됐어요]
[한 때문에 그랬던거 같은데]
갑자기 등장한 익숙한 이름에 아나킨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울부짖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알투가 아나킨의 얼굴에 엉덩이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그는 포동포동하게 살 찐 고양이의 엉덩이를 툭툭 쳐주고 다시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한? 그 놈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 놈'이 당신 손자를 만들어낸 반쪽인건 기억하시죠?]
[딘이 보바 펫이랑 친해서 우리가 불편해할까봐 걱정 했었나봐요]
보바 펫이라면 몇년 전에 한 솔로와 피 터지게 쌈박질을 하고 사이좋게 병원에 실려갔던 한량이 아니었던가. 아나킨은 몰려드는 두통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작게 한숨을 쉰 파드메가 책을 덮고 일어나자, 밥을 직감한 알투가 기쁜듯이 삐약거리며 쫓아갔다. 그 짧은 간격 사이에 메세지가 이어서 왔다.
[물론 딘은 보바 펫과 많이 달라요!]
[진중하고 조용하고]
[좀 화려한 과거가 있던 것 같긴 하지만 저희 중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아나킨은 자신의 소중한 딸의 보는 눈이 결정한 상대가 한 솔로라는 점을 다시 상기했다. 그리고 파드메의 폭탄 발언을 곱씹었다. 정말... 정말 우리 아이들의 망한 취향의 뿌리는 아내와 나인 것인가. 그래도 나 정도면 준수한 편이 아니었나? 그는 생각난 김에 다시 오비완에게 물음표를 한가득 보냈지만 이번엔 확인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오늘이야말로 새틴이랑 코디한테 벤을 끌어안고 눈물 콧물 쏟는 사진을 풀어줘야겠다.
길어지는 아버지의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레아가 빠르게 메세지를 더 보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알고보면 사람이 괜찮아요]
[루크한테도, 자기 아들한테도 되게 잘 하구요]
[애초에 먼저 수작질을 한건 루크였다구요]
[연애상담이랍시고 저한테 푸념하던 꼴이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요?]
자기 아들. 자기 아들?
아나킨의 미간이 다시 좁혀졌다.
[자기 아들?]
[아]
[모르셨어요?]
아나킨은 그 의미심장한 문장에서 레아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딘은 루크가 가르치는 반 아이의 학부모에요.]
학부모—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해바라기 밭에서 맑은 하늘처럼 파란 눈을 곱게 접으며 웃던 어린 아들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몇년 뒤 레아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추파를 던지던 남학생의 차를 초토화 시키고 그 앞에서 똑같이 웃으며 셀카를 찍어 자신에게 보냈던 조금 덜 어린 아들의 미소도 떠올렸다. 그때 루크에게 에이스 파일럿이라는 별명이 붙었지.
그랬다. 파드메와 아나킨의 아이들은 평상시에는 천사같았지만 목표로 정한 것이 생기면 몇번이든 끈질기게 시도했고, 반드시 쟁취해야했으며, 그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들은 철저하게 파괴하는 불같은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키웠기 때문이다.
아나킨은 이제 잠자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취향의 기원은, 그저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을 아주 잘 들은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그 끝이 직접 가르치는 유치원의 학부모에게 수작을 거는 것이라는건 유감이었지만 솔직히 아나킨이 할 말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레아에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답장을 하고, 루크에게 짧게 메세지를 보냈다.
[다음번에 올때는 남자친구 데려와라]
[새 손주도 같이]
얼마 지나지 않아 걸려온 전화로 3 옥타브쯤 높아진 목소리의 아들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새된 비명을 지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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