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morrie
2026-05-10 10:33:01
2234文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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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st+zp

얼음과 눈은 닮았지만 다르다. 눈이 오는 날 세상은 유달리 조용하다.
스티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홀린듯이 창가로 걸어가 유리를 닦고 눈썹이 닿을 만큼 얼굴을 딱 붙였다. 저 아래, 멀디 먼 지상에는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여 있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 바람에 날리는 눈을 전혀 알지 못했다니. 손끝이 떨려왔다.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별 것 아니다. 사실 별 것은 아니지. 정말로. 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조용한 풍경은 흩날리는 눈의 위치만 빼면 시간이 멈춘 듯 조용했다. 고요 속에서 심장 소리가 조금씩 빨라지고 커지는 것을 느꼈다.

나가야, 하는데.”
“어디로요?”

스티븐이 뒤를 돌았을 때 온통 흰 남자가 싸늘한 겨울 바람을 걸치고 서 있었다. 열리는 것도 듣지 못했는데, 닫히는 소리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재프?”
“이런 날씨에 어딜 나가시려고요?”

재프는 허를 찔린 듯 당황하는 스티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머리를 휙휙 흔들어 눈을 털어냈다. 카펫에 떨어진 눈은 금방 히터의 온기에 녹아 물로 변했다.

“생각해 둔 곳은 없다만.”
“그럼 나가지 마세요. 오늘 같은 날은 이런 따뜻한 곳에서 그냥 있어야 해요. 오면서 눈싸움 하는 꼬맹이들도 하나도 못 봤다니까요.”
그러는 너야말로 이 날씨에 어디를 쏘다니다 온 거지?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다 됐군.”

스티븐이 알기로 오늘은 재프가 출근하는 날이 아니다. 오라고 부른 적도 없고, 올 일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무실에는 스티븐 혼자였다. 그랬어야만 했다. 재프는 민망한지 젖어서 축 가라앉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니, 사실 나가려고 했던 건 아닌데요…….”
“보나마나지. 가던 길에 퇴짜를 맞았겠군.”
“그런 셈이죠.”
“거기 비닐에 든 건? 뇌물인가?”
“아, 이거요?”

재프가 팔을 들어올렸다. 팔에 걸친 비닐 겉면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고양이처럼 조용한 걸음으로 사무실을 가로질러 그것을 책상에 턱, 내려 놓고 팔을 뺐다. 입을 벌린 비닐 안을 들여다본 스티븐이 눈을 깜박였다.

“스프?”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두 개의 포장 용기에서 히터 바람과는 다른 따뜻한 공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재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픈 사람이라도 만날 예정이었나 보군.”
“스테파니가 감기에 걸렸다고 했거든요. 사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눈이 쌓이니 람브레타가 퍼질러졌단 말이죠.”
“하긴, 이렇게 변덕스러운 날씨에는 조심하지 않으면 금방 감기에 걸리지.”
“그렇죠. 그러니까 스타페이즈 씨도 나가지 말고 사무실에 있는 게 낫죠.”

갑자기 시선이 느껴져 스티븐이 고개를 들었다. 재프는 스티븐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에 그는 스티븐과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이렇게 똑바로 쳐다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걔처럼 감기에 걸리기 싫으면요.”

재프는 두 개의 스프 그릇 중 하나를 들고 지정 좌석이나 다름없는 소파에 앉았다.
스티븐은 제 몫으로 남겨진 스프 그릇을 들었다. 옆면에 새겨진 건 오늘 열린 문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스프 가게의 로고였다. 얼굴 근육이 단번에 부드러워졌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스티븐은 턱을 괴고 스프를 두 스푼 정도 떠먹다가 그릇을 들고 재프의 건너편에 털썩 앉았다. 시소에 올라타기라도 한 것처럼 재프가 앉은 채로 펄쩍 뛰어올랐다.

“어, 어어?”
“뭐, 바보는 감기에 안 걸리니 넌 걱정 없겠군.”
“무슨 말입니까? 저도 엄청나게 걱정하는 중이라고요! 급하게 약속도 취소하고 이렇게 따뜻한 곳에 올 정도로요!”

재프는 투덜거리면서도 스티븐을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꼭 기분을 살피는 것 같은 기색에, 손에 든 그릇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알았어. 고맙군.”
무, 무무무무무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하, 하하.”

스티븐이 바라보자 재프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이 뻣뻣해진 게 보여, 스티븐은 작게 웃었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처음으로 웃는 것 같았다. 손끝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심장은 히터보다 잔잔했다.

“말 그대로야. 스프 고맙네. 심부름 시킨 셈 치고, 오늘은 같이 저녁이나 먹을까 하는데. 어때?”
“스타페이즈 씨가 사시는 거죠?”
“부하한테 얻어먹기만 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지.”
“좋은 데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내가 사는 거니 내가 정하지. 스프도 네가 정한 거잖아.”
“윽.”
“걱정 마, 네가 고기를 좋아하는 건 사무실에 출근하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까.”
“고기면 다 괜찮죠. 스타페이즈 씨가 사는 고기라면 더더욱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