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은 최근 사소한 것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건물이 불타고 남은 잿더미의 온도와 불꽃을 만들어낸 사람의 체온 사이에 얼마만큼 수치 차이가 있는지, 안개 저편에서 지는 석양이 고여 일렁이는 눈동자에서 가장 짙은 빛의 색상 코드는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그 외에도 그와 비슷비슷한 기묘한 의문에 이따금 정신이 끌려가곤 했다. 의문은 오래 가지 않지만, 의식할 수 있을 만큼 반복되었고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스티븐은 당사자에게 최근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재프는 의외로 흥미로운 얼굴로 들어주었다. 그는 스티븐이 말을 마치자 누가 공상 영화에 나오는 화면의 모든 부분을 분석해 수치화하는 안경 따위의 신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런 건 없다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아닐 줄 알았다면 왜 물어본 거냐고 묻자 이렇게 대꾸했다.
그런 게 아니면 이 시간에 침대에 가고 싶어지거든요.
과연 지금은 거리에는 인간과 이계인이 북적거리고 그럭저럭 따스한 햇살이 피부를 알맞게 데워주는 한낮이었다. 그들은 중심가에서도 제법 전망이 좋다는 고층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었고 둘의 체구에 비해 조금 작은 철제 가든 테이블에는 얼음이 반쯤 녹은 커피와 밀크쉐이크가 나란히 서서 재프가 몸을 흔들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웬일인지 테라스에는 두 사람뿐이었지만 겨우 그 정도 이유로 이른 점심부터 침대로 향할 정도로 굶주리진 않았다. 그래서 스티븐으로서는 지금 한 말의 어디가 재프에게 대낮부터 침대를 떠올리게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재프가 물었다.
이해 못했죠?
뭘 보고 그렇게 생각했지?
미간이 찌푸려진 각도요.
그는 양손을 들고 검지 끝으로 미간에 선을 그었다. 피부가 눌린 자국은 손이 지나가자마자 사라졌지만 스티븐은 두 손가락이 그린 꼬리가 치켜올라간 눈썹의 궤적을 보았다. 한쪽은 높고 한쪽은 비교적 낮았다.
스타페이즈 씨는 모른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대신 머리를 굴리는데, 그때 눈썹이 이만큼 올라가거든요.
스티븐이 저도 모르게 제 눈썹을 따라 그렸다. 하지만 방금 상대가 그린 것과 달리 비대칭이어도 완만한 곡선이었다.
재프는 표정이 변했는데 어떻게 알아요, 하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별로 티 안 나요.
어떻게 알지?
글쎄요. 그래도 스타페이즈 씨가 제 앞에서만 보여주는 얼굴이란 건 확실한데.
스티븐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재프는 솔직한 성격이어서 스티븐도 애써 표정을 가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재프가 두꺼운 빨대를 빼들고 스티븐을 가리켰다.
전혀 몰랐다는 얼굴.
스티븐은 서른 두 해를 같이 산 얼굴인데도 그 전혀 몰랐다는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알 수 없었다. 이번에는 되묻는 대신 얼음이 다 녹아 연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되물어보고 답을 들어도 또 전혀 몰랐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상할 것도 없죠. 저도 당신한테 궁금한 거 많았어요.
이를테면?
얼음이 나올 때 발의 상처가 몇 mm 벌어지는지.
그래서 발을 핥아보겠다고 했었나, 스티븐은 생각을 정리하는 남자의 얼굴을 보며 언제인지 모를 색다른 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마도 두 사람이 아직 자각조차 없었던 언젠가였다. 하고 싶으면 하게 해주는 편이었고, 이상한 성벽을 가졌다고 생각하면서 둥그런 은빛이 발 아래에서 오가는 것을 내려다보던 게 기억이 났다.
재프는 몇 가지를 말했다. 뺨에 난 흉터의 깊이나 문신이 그려진 피부가 다른 피부에 비해 조금이라도 부어있는지, 그와 비슷한 이런저런 의문은 최근에 생긴 게 아닌 것처럼, 재프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돈된 문장으로 흘러나왔다. 스티븐은 그 모든 물음에 해답을 준 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재프가 말을 멈췄을 때 스티븐이 조금 기다렸다가 물었다.
그 다음도 있나?
그 다음, 다음이라, 당연히 있죠.
선뜻 나온 말과 달리 재프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카페는 금연 구역이었고 그는 시가 대신인 양 두꺼운 쉐이크용 빨대를 깊이 물고 볼이 홀쭉해질 때까지 빨았다. 하얗고 달달하고 끈적한 밀크 쉐이크는 이에 닿지도 않고 목구멍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갔다. 거의 채워져 있던 컵이 바닥을 보이고, 빈 컵을 빠는 소리가 두 번쯤 났을 때 그런데요, 하고 흰 액체를 주변에 묻힌 입이 열렸다.
이 다음은…… 침대에서 말하면 안 됩니까?
스티븐은 그의 양볼이 조금 붉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뺨은 색상 코드를 찍어봐야 다른 피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겠지만, 명확히 달아올라 있었다.
어쩌면, 잿더미나 석양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궁금한 건 대강 풀린 얼굴이네요.
그건 또 무슨 얼굴인지 되물으려던 스티븐은 입가에 묻은 흰 거품을 핥고 입 안에 숨어버리는 혀를 보았다. 스티븐은 문득, 저 혀와 입술의 촉감을 알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스티븐이 손을 뻗었다. 좁은 테이블이 크게 달그락거렸다. 빈 플라스틱 컵이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두 쌍의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어떤 신호처럼 재프의 고개가 조금 오른쪽으로 기울고, 곧이어 스티븐의 얼굴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두 입술이 가볍게 맞닿았다. 두 혀가 순식간에 서로의 입안을 더듬었다. 입술 사이에 늘어진 실을 빨아먹으려 경쟁적으로 돌진해 다시 맞닿았다가, 빈 컵에 빨대를 빠는 것과 비슷한 젖은 소리를 내고 다시 떨어져나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숨어있던 귀가 보였다. 타오르는 불꽃만큼이나 뜨거웠다. 귀를 물자 재프의 몸이 한순간 뒷목을 물린 짐승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온 신경이 이쪽에 쏠려 있었다는 사실에 전율이 솟구쳤다. 그때 두 손이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오더니 흐르듯 밀어냈다.
이제 궁금한 건 다 풀린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보죠?
재프는 묘하게 웃고 있었다.
스티븐은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게, 궁금한 게 있다는 얼굴이었군.
또, 몇 분 뒤 두 사람이 한낮의 테라스가 아니라 어두운 골목이나 밀폐된 호텔에 있으리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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