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치솟은 우림과 큼지막한 나뭇잎 사이로 희미하게 햇빛이 비친다.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쉬지 않고 형태를 바꿔 간다. 이곳 믹틀란은 땅속에 만들어진 거대한 모형 정원이지만, 제 나름 태양의 역할을 하는 것은 존재한다. 조금은 더울 정도로 세상을 비추는 태양은 마치 온실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그늘에 앉아 눈을 감고 있노라면 주위를 둘러싼 자연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느낄 수 있다. 나뭇잎과 나뭇잎이 서로 스치며 만들어지는 소리, 나이아가라조차 우습게 보일 만큼 광활한 폭포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 하늘 너머에서 날짐승이 활공하며 날갯짓하는 소리, 이름 모를 짐승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리, 그 끝에 어느 한쪽이 패배하고 쓰러지는 소리. 살아남은 쪽이 승리를 선언하는 울음소리가 들린 그 다음 순간, 벽이라도 생긴 듯 생명의 합창이 멈춘다.
“…무슨 일이지.”
눈이 떠지는 건 말을 건넨 것으로부터 한 박자 뒤다. 꿈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금발에 검은 옷을 입은 그의 서번트다. 눈이 마주치자 테스카틀리포카는 여어, 하는 짧은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든다. 반대쪽 손에는 작은 유리병이 들려 있다. 병 안에서 찰랑이는 진한 갈색 액체는 아마도 직접 만든 쇼콜라틀일 것이다.
“볼 일이 있는 게 아니면 메히코를 떠나지 않는 줄 알았건만, 보기보다 한가하군.”
“오늘은 쉬는 날이라서 그래. 오셀로틀에게도 휴식은 필요하니까. 쉬고 나면 그만큼 맹훈련이지만.”
나무 밑동에 기대어 앉아있던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온 테스카틀리포카는 유리병을 가볍게 던져준 뒤 으쌰, 하는 소리와 함께 그와는 수직 방향을 보게 되는 위치에 앉았다. 이번엔 꿀을 많이 섞었다고 말해주는 것은 덤이었다.
“이런 곳에서 자는 거냐?”
“자는 게 아냐. 소리를 듣는 거지.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거야.”
“교신할 수 있다더니, 자연이 하는 말도 알아들을 수 있나?”
“소리를 듣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그 언어를 이해해야 하는 법은 없어. 그저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거지.”
헤에, 하는 감탄사를 들으며 병에서 코르크 마개를 뽑아내자 입구에서 알싸한 계피 향이 풍긴다. 병을 기울여 한 입 머금자 희미하게 느껴지는 바닐라 향에 더불어 씁쓸함이 느껴지는 뒷맛이 남는다. 여전히 쓴 건 매한가지지만 확실히 지난번보다 목 넘김이 편했다.
범인류사의 멕시코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쇼콜라틀을 맛볼 수 있다지만, 오랜 기간 영국에 거주한 그로서는 설탕을 가득 넣은 초콜릿이 더 익숙하다. 이문대에서 처음 맛본 쇼콜라틀은 초콜릿이라기보단 향신료 소스에 가까웠다는 기억은 그의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무슨 일이길래 여기까지 찾아온 거지?”
“일은 무슨. 그냥 수다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야. 이스칼리는 쉬라고 했더니 오셀로틀 마을을 살피러 가버렸고, 귀여운 여동생은 신전을 보수공사 하는 동안엔 가만히 내버려달라지 뭐야. 성실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그랬나.”
“…웬일로 맨날 하던 말을 안 하는군. 오늘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느니, 수다는 다른 녀석들이랑 하라느니, 그런 말이나 할 줄 알았는데.”
“항상 그런 건 아니야. 실제로 오늘은 아직 남은 시간에 여유가 있거든.”
“그거 잘됐네.”
수풀이 가득한 곳에서 담배를 꺼내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바람을 타고 어느새 익숙해진 담배 냄새가 그에게 전해져 왔다. 몸에 배어 있는 냄새일 것이다. 존재할 리 없는 먼 옛날의 추억이 떠오를 듯 말 듯 한 기분이었다. 괜히 몸이 나른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말재주가 없는 편이야. 네 마음에 들 만한 재밌는 얘기도 없어.”
“별을 파괴하겠다는 소리나 하는 놈이 말 한번 잘하는군. 아니면 오늘 찾아낸 유적 얘기라도 해보시든가.”
“넌 그런 것에 관심 없지 않았나?”
“그래, 그럼 이렇게 얘기하지. 유적에는 관심 없지만 네가 하는 얘기에는 관심이 있다, 이러면 됐지?”
그는 속으로 성가시게 됐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충분히 시간을 보내기 전까진 이 수다쟁이 신이 떠나주지 않을 것 같았다. 대화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마스터를 파악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믹틀란의 하루는 길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태양이 지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었다. 중천에 뜬 태양은 여전히 빛을 거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역시 버서커인 편이 낫지 않았을지 생각하는 것은 비밀로 하며, 그는 재미라곤 없는 조사 내역을 읊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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