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3342文字
Public tzdy
 

테스데이/ 이카로스의 날개

소환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

“천사, 라고 해도 기독교나 대중 매체에서 말하는 그런 천사는 아니야.”

녀석은 자신의 탄생 경위에 대해 그렇게 설명했다. 학회에서 새로운 이론을 발표라도 하는 듯한 말투였다. 본인의 일임에도 지극히 객관적이고 평이한 의견. 그것이 바로, 녀석이 자신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대하는 자세일 것이다.

“발동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별다른 위험이 없는, 비교적 안전한 것들에 대한 총칭이지. 분류학적인 명칭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고른 이름이 천사라니. 누가 정한 것인지는 몰라도 참 팔자 좋은 사고방식이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에게 이롭게 돌아갈 것으로 생각하기라도 하는 건가? 아무리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한다 해도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시점에서 거기엔 누군가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천사와 악마라. 명명자의 생각이 엿보이는 지극히 단순한 분류 체계에 김이 빠질 지경이다.

데이비트 젬 보이드라는 이름도 어떤 생물의 학명을 연상시키는 작명이다. 좀 더 학술적인 방식으로 재배열하면 Angel sem void daybit가 되는 건가? 정말이지, 사람 이름 같지도 않은 이름이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에 자신들이 아는 무언가의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건 인간의 재밌는 습관이야.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해 보겠답시고 저지르는 짓이지. 이름이라는 건 단순히 부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야. 이름이 붙는 순간 구체화하지 않았던 것에 의미가 생기고, 그것의 존재 방식이 결정된다. 내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돼. 이게 너희가 보기엔 가장 이해하기 쉬운 모습이잖아? 수준에 맞춰준 거지. 그런 점에서 보면 너희가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는 그 천사가 언젠가 지구에 직접 도달하게 되는 때가 오면, 그 모습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천사의 형태와 닮아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모습이 되도록 형태를 한정 지은 건, 존재에게 이름을 부여한 인간인 거지.”
“과연 그럴까. 우선 문화권에 따라 연상하는 천사의 모습은 천차만별이지. 그나마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라면 거대한 날개일 텐데, 내가 아는 한, 최소한 그들에게 날개는 없어.”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보군.”
“대충은.”
“혹시 모르지. 지금은 우주 밖에 있어서 그럴 뿐, 그 녀석들이 지구에 도착하면 지구의 법칙을 따르게 될지도 몰라. 지구는 그런 별이니까.”
“그건 그렇군. 가능성 있는 얘기야.”
“납득이 빠른걸. 그나저나 천사라. 그렇다면 만일 그 녀석들에게 정말로 날개가 있었다면, 너한테도 날개가 생겼을 수도 있나?”
“아닐 거라고 본다. 나는 원본 인간의 형태와 동일해야 했으니, 괜한 것을 추가하지 않았겠지. 설령 날개 비슷한 것이 생겼다 해도 그게 날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도 않아. 그럴 바엔 없는 편이 낫지.”
“왜, 그대로 있는 것도 재밌지 않겠어? 날개 달린 인간이라니, 그런 건 어디 가서 돈을 내도 볼 수 없지.”
“날개라는 건 본디 비행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 장식뿐인 날개라면 오히려 있는 편이 거추장스럽지. 생긴다고 해도 없애버렸을 거야.”

그렇군. 이 녀석의 성질을 알 것 같다. 이런 성실함은 싫지 않다. 하지만 이래서는 재미가 없지. 인생이라는 건 기왕이면 더 화려하고, 더 처절해야 한다. 해가 뜨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잠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할까.

“들어봐, 형제. 네가 본질을 중시한다는 건 알겠어. 물론 본질은 중요하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돼. 하지만 형식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어. 그걸 속 빈 쭉정이로 취급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의외로 껍데기가 상징하는 바가 제법 클 때도 있지.
그렇다면 날개라는 것이 상징하는 건 뭐가 있을까? 보통은 긍정적인 것이 대부분이겠지. 하늘을 정복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꿈이었으니까. 그걸 이루게 하는 수단은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해야만 해.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양면성을 지닌 법이야. 예를 들면, 그렇지, 다른 동네 녀석들의 신화 얘기를 한 번 해볼까? 어느 부자(父子)는 바닥에 떨어진 깃털을 주워 모아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자 했고, 기어이 활공에 성공했지만, 아들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탓에 날개를 잃고 추락했지. 이때 날개가 상징하는 건 뭐라고 생각하지?”
“인간의 오만함이지. 어느 지역이건 태양은 절대 신권을 상징해. 사실관계만 따지자면 태양의 열기에 밀랍이 녹아내리면서 날개가 망가진 것이지만, 이는 신에게 도전한 것으로 인해 노여움을 산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
“그렇지. 그게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이때 잊어선 안 되는 사실이 있어. 그게 뭘 거 같지?”
“글쎄.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군.”
“그들은, 어쨌든 날았다는 거야.”

얼굴을 보니 그게 어쨌냐는 표정이다. 하여간, 낭만이라는 게 부족한 녀석이다.

“개척자라는 건 어느 시대에서든 멸시받는 법이지.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못해. 남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부정되기라도 한다는 듯이.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세상에서 발전은 일어날 수 없어. 그런 세상은 정체되고 멸망할 뿐이야. 때로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순간이 오게 되고, 경우에 따라 오만과 과신이 그 역할을 하기도 하지.
신화 얘기로 돌아가 볼까? 어쩌면 그 아들놈은 자기가 태양의 자리를 꿰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 아주 건방진 생각이야. 하지만 만약 내가 그 태양이었다면, 그 녀석이 추락한 뒤 도달하는 곳은 내 명계였을 거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네가 인간에게 아주 가혹한 시련을 요구한다는 것 정도는.”
“하, 본인은 그 시련을 통과한 주제에 잘도 말하군.”
“나에게 통과했다는 자각은 없지만 말이야.”

오만과 과신. 녀석은 그것을 능력과 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주어진 시간은 1년. 1년이 끝나는 날 보게 될 풍경이 아주 기대된다. 반대편으로 떠났던 태양은 어느덧 하늘을 밝히며 돌아오고 있다. 이문대의 지하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맞이하는 태양이다. 다시 출발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 막 새로 시작되려 하는 하루에서 우리는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것이다.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이다.

“명심해라, 데이비트. 어떻게 해서 붙여진 이름이든 지금의 넌 데이비트 젬 보이드다. 셈족이 남긴 허무의 유물로부터 태어난 최소의 하루. 그 이름을 부여받은 이상 너의 존재 방식은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야. 나 또한 인간들에게 받은 수많은 이름을 통해 지금 이 힘을 얻게 되었지.
이름이 가진 힘이라는 건 그런 거다. 하지만 그 힘에 어떤 상징을 만들어내는지는 너에게 달려있어. 사전적인 뜻 그대로 보잘것없는, 허무한 삶을 살다 가게 될지, 인간의 시야로는 다 헤아릴 수도 없는 업적을 세울지는 네가 싸움을 끝내는 순간에 비로소 결정된다. 나는 그 끝을 기대하며 기다리마.”

그러니, 최고의 종말을 보여달라고,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