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 외환선에선 목소리가 커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되거든."
빌리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더욱 시끄러운 조롱이 돌아왔다. 낮에 그토록 자율적으로 크기가 변하던 시각 모듈은 미동도 없었다.
"나한텐 빅대디 같은 위엄 같은 것도 없고, 누님처럼 목소리가 크지도 않고 라이터 너처럼 잘생기거나 동작 하나만으로 상대의 이목을 끄는 재주가 없거든. 그냥... 정 안될 때는 이런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빌리가 보란듯이 주먹을 흔들었다. 라이터는 그 주먹에 가속이 붙는 것을 보았다. 그 자리의 모두가 그 주먹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해도 라이터만이 제대로 볼 수 있었을,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먹에 맞은 수십 미터 높이의 기둥이 박살이 났다. 잔해가 뒤늦게 바닥과 닿아 폭발한 연기가 사그라들 때까지 약속이라도 한 듯 누구 하나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의 말을 방해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빌리의 등 뒤에 서 있는 라이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빌리가 말하는 소리는 연기의 방해를 받고도 또렷하게 귀에 꽂혔다.
"좀 야만적인 방법이지만 저 녀석들의 아우성을 넘어설 만한 데시벨의 발성 모듈은 여기선 꽤 귀해. 마지막으로 교체한 게 몇 년 전인데 다음에 교체하려면 도시까지 나가서 정비를 받아야 한다고 했거든. 도시로 가려면 입성 허가도 받아야 하고 할 일이 많아. 거기다 나까지 입성 허가를 받고 정비를 하려면 뭐, 부담이 좀 크단 거지."
라이터가 보기에 그는 루시가 카이사르의 코털을 건드렸을 때보다도 한가로워 보였다.
"아 맞다, 보면 알겠지만 라이터, 이런건 결투가 아니야. 저 녀석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가 아니라, 연합에서 동등하지 않은 지위이기 때문이지. 무패의 챔피언의 거창한 결투같은 건 같은 지위일 때나 해당이 되는 말이고..."
금속의 신체를 휘감은 연기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달빛에 비친 연기가 그려낸 몸의 곡선에서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었다. 라이터 역시도 평생 주먹을 업으로 삼았다. '무패의 챔피언'이라는 오만한 호칭의 자리에 스카우트된 만큼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 그런데, 제대로 전투 준비 자세를 취하지도 않았는데 그 모습에서 눈을 떼면 위험하다고 본능이 경고하고 있다. 분명, 자신은 그 등 뒤에 서 있는데도.
빌리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수십 명에게 검지를 까닥였다. 니가와 라는 뜻으로 통하는 전통적인 제스처였다. 그리고 그대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난 이 싸움에서 원하는 건 없어. 굳이 꼽자면 저 녀석들이 한꺼번에 덤벼줬으면 하는 거? 별빛 기사 방영 시간이 얼마 안 남았거든. 누님에게 매번 녹화해달라고 부탁했는데 한 번도 제대로 녹화된 적이 없어서 말이야!"
그 목소리는 처음과 같았고, 라이터에게만 말하고 있었지만, 라이터는 그 말이 모두에게 들렸을 거라고 확신했다.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 조무래기는 없다는 말은 용병들 사이에서는 격언이나 마찬가지다. 라이터는 그 말이 틀리는 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용병이 아니라 조직에 충성하는 조무래기들의 자기 고취용 함성을 들으며 선글라스를 눌러 썼다. 붉은 스카프가 나부낀 순간부터 그 함성이 밤의 고요로 바뀌는 데에는 2분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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