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테스. 사랑할수록 사랑의 대상에게 미움받는 성질을 가진 서번트와 그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마스터 이야기. 믹틀란 생활 초반과 최후반 배경입니다.
제 뇌내설정이 정말 정말 많습니다. 주의 부탁드립니다.
데이테스 원드로원라이 @Dt_od_ow 참가작입니다. 5월 4일자 주제였던 '기호嗜好', '장난감' 을 빌렸습니다. 원래 그 때 쓰기 시작했는데 제 체력 이슈로 마지막 회차까지 끝난 이제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ㅠ.ㅠ 지각 죄송합니다.
지구가 2017년 말엽에 고정된 지 1개월, 이문대 믹틀란에 불려온 도시의 정령이 일 년간 함께 일해야 할 협력자의 면면을 확인하고 처음 한 말.
그녀가 머리카락 끝까지 화가 났지만 화가 난 만큼이나 기쁨을 느꼈고, 그래서 격앙하지 않고 저 정도 반응을 하는 데 그치게끔 만든 요인을 품에 안고 있던 데이비트 젬 보이드는 이 모든 것이 딱히 자기 탓이 아닌데도 자리를 피하고 싶어졌다. 데이비트는 자신이 어지간한 돌발상황 가지고는 당황하지도 겁먹지도 않는 존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긴 역사와 신비와 신성까지 이식된 의인화된 ‘공간’의 노골적인 감정은 평생 동안 이상사태에 대처하는 법만 고민하면서 살아온 데이비트도 조금 기가 질릴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마스터의 마력을 꽤 많이 사용하고도 호흡기 하나를 대가로 바쳐야 할 만큼 공을 들여서 그녀가 화를 내는 요인을 제공한 장본인이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 하면,
“그래, 오랜만이다. 화가 나면 미래가 없는 것처럼 구는 건 여전하구나. 아름다운 메츠틀리아판.”
이렇게 말하고 끝이었다.
데이비트는 좀 전에 태어난 품 안의 소년이 아직 깨어나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인격에 대해서는 ‘어쨌든 범인류사에 원한이 깊음’ 밖에 모르지만, 깨어 있었다면 높은 확률로 지금의 데이비트 이상으로 당황했을 것 같았다.
어쨌든 도시의 정령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예의바르지만 삐딱하게 느껴지게끔 의도한 듯한 태도로 물었다.
“실언을 했습니다. 방금 전의 건 잊어 주세요. 위대한 테스카틀리포카에게 협력을 제안받았고, 그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부름에 응해 현계했습니다. 이름은… 뭐라고 대면 좋을까요?”
“진짜 이름을 대면 약점을 바로 공략당할 가능성이 너무 높으니까 신의 이름 쪽을 써라. 물의 권능이 익숙하고 편하지? 틀랄록으로 하자. 내 쪽에서도 너를 내 여동생이라고 주장하도록 하마.”
“굉장히 대강대강이군요.”
“세상사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 법이지. 너도 잘 알지 않니.”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주택 명의자를 바꾸듯 비의 신으로 명의를 갈음한 도시의 정령은 아득한 상위존재인 소환자를 스쳐 지나서 데이비트에게 다가왔다. 데이비트는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그녀에게 아직 영혼이 완전히 육체에 자리 잡지 못해서 잠들어 있는 소년을 넘겨주었다. 소년은 데이비트도 나름대로 무겁다고 느낄 만큼 잘 짜인 육체의 소유자였는데 그녀는 하얗고 가느다란 팔로도 가뿐히 소년을 안아 올렸다. 소환자는 소년의 이름을 숨겼으나 데이비트는 그의 육신의 형태를 본 순간 그의 이름을 간파했다. 아마 그것은 도시의 정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마에 선명하게 새겨진 뭔가 단단하고 무거운 것으로 맞은 것 같은 흉터.
도시의 정령은 소년을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처럼 끌어안고 데이비트를 노려보았다. 그런 얼굴로 혼잣말처럼 말했다.
“정말, 너 같은 부류의 인간은 변하는 게 없네. 도시건 먼저 살다 죽은 인간이건 세계건 전부 이용해서 자기 욕망을 현실로 만들 생각밖에 안 하는구나.”
“당신에게는 내가 인간으로 보이나?”
“신체의 구성 성분이 특이하거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면 수도 없이 봤어. 테스카틀리포카 신이 선택하고,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면 인간이고 전사겠지. 끔찍한 일이야…. 그래도 부탁한 일은 제대로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도 긍지가 있고, 테스카틀리포카 신…아니지. 오라버니의 제안에 따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러 온 거니까.”
데이비트 젬 보이드가 평생 동안 나름의 답변을 내기 위해 노력했던 문제를 놀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해버린 도시의 정령은 데이비트가 모르는 언어로 소년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제삼자가 되어버린 데이비트는 마찬가지로 제삼자가 되어 방치당한 자기 서번트를 돌아보았다. 서번트는…담배 연기를 토하면서 소녀 형태의 공간과 되살려진 소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기분이 상해서 그에 걸맞는 페널티를 부여할 준비를 하는 것 같지도 호의를 거부당한 상처를 곱씹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연기를 토해낸 서번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조용히 웃고 있었다. 데이비트는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걸 처음 보았다. 데이비트가 가진 데이터에서 비슷한 예시를 찾자면, 아쿠타가 자기가 담당하게 된 구역에서 그녀가 영령의 좌에 있을 거라 믿었으나 실패해서 절망했던 기계장치인 연인을 찾아냈을 때 보이던 태도와 비슷했다.
그러던 서번트가 별안간 고개를 돌렸다. 데이비트와 눈이 마주치자 이렇게 묻기까지 했다.
“왜?”
데이비트는 머릿속으로 문장을 몇 개 갈겨 쓰다가 지금 이 공간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대충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니다.”
*
“너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더군.”
메히코시티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영맥에 마련한 공방. 데이비트는 지식과 초능력과 폭력을 사용하는 개인으로서는 매우 뛰어나고 위험한 자로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었으나 마술사로서 타고난 마술회로나 마력량은 아슬아슬하게 보통 판정을 받은 존재였다. 공방이 필요한 건 데이비트가 아니라 마법을 관장하는 자이면서 뛰어난 마술사용자인 테스카틀리포카 쪽이었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성격상 괜찮은 영맥을 골라서 몇 곳 더 마련해 두었을 것이 뻔했고, 데이비트의 머릿속에도 ‘테스카틀리포카가 또 공방을 만든 것 같다’ 라는 기록이 몇 건 남아 있었다. 위치는 잘 모르지만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 정도야 테스카틀리포카가 알아서 잘 했겠거니 했다.
이른 아침부터 공방에 틀어박혀 있던 테스카틀리포카는 데이비트를 보지도 않고 물었다.
“뭐가.”
“틀랄록이랑 이스칼리 말이다.”
“흐음.”
테스카틀리포카는 그제야 데이비트를 돌아보았다. 데이비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오늘은 메츠티틀란 근방에 남아있는 유적을 보러 갈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그쪽의 기상상태가 바뀌어서 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도 기억용량에 크게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뭘 하기는 해야 해서 여기에 왔다.
테스카틀리포카가 물었다.
“너 사회적 상호작용에 큰 관심 없는 것치고 남의 사회적 관계는 잘 보고 있구나?”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에 대한 기록은 아무리 많이 남겨 둬도 나쁠 것 없으니까.”
“틀랄록 걘 네가 존귀한 존재를 파괴적인 목적을 이룰 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싫고, 자길 멸망시킨 녀석들이랑 비슷한 느낌 드는 인간형 지성체에게 반감이 좀 있을 뿐이야.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형 생물체로서의 너는 딱히 싫어하지 않아. 진짜로 싫어하면 신전에 네 방 안 만들어 준다.”
“내 이야기는 그만하지. 네 이야기를 하자.”
얼마 전, 오셀로틀들의 거주구역을 늘리는 이야기를 할 때 오셀로틀들이 골라 온 후보지 중 한 곳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데이비트는 그 구역은 생활하기에는 편리하지만 일부 지역의 지반이 물러서 방어시설을 세우고 안정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그 전에 지성이 없는 중형종 디노스도 뚫고 들어올 수 있으니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틀랄록은 당분간은 우리 쪽에서 지켜주면 되고, 생활에 편리한 환경이라면 보다 많은 오셀로틀이 거주할 수 있으니 오셀로틀 측의 전력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쉽게 뚫리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본래 말이 많은 테스카틀리포카는 그날은 별 의견을 내지 않고 턱을 한 손으로 괸 채 자기 고용주와 자기가 고용한 피고용자의 논쟁을 즐겁게(데이비트는 눈치챘다) 관전하고만 있었다. 그 광경을 곁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이스칼리는 테스카틀리포카의 태도를 보고 결론내렸는지 조심스러운 말투로 본래 믹틀란의 선주민인 오셀로틀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쪽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발언했다. 그때까지 조용했던 테스카틀리포카는 ‘왕이 그러자는데 그럼 어쩔 수 없지 않냐’ 며 틀랄록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논쟁을 끝냈다.
새로운 거주구는 나름대로 자리를 잘 잡았지만, 지성을 잃어서 길을 잃은 디노스나 갑자기 산책을 하러 나온 초대형 흡혈거미 이외의 요인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믹틀란의 기상은 마야에게 관리되기 때문에 범인류사의 중남미 땅에 비해 천재지변의 위험은 적다. 하지만 틀랄록은 언제 천재지변이 벌어질지 모르는 범인류사 땅 기준의 도시계획에 익숙하기 때문에, 오셀로틀들이 새로운 거주구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편하게 식량을 마련할 수 있게끔 살짝 하천의 유량을 늘렸다. 문제는 틀랄록은 오셀로틀과의 의사소통에 능하지는 못했고, 그 거주구에서 제일 지반이 약한 부분 근방을 유량이 늘어난 하천이 지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고는 틀랄록이 한밤중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뛰쳐나가고 이스칼리가 신이나 크립터 대신 오셀로틀의 거주구로 달려간 뒤,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얼굴이 파랗게 질린 상태로 뒤늦게 사죄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범인류사의 중남미 땅에서 수도 없이 본 천재지변에 비하면 그리 큰 피해도 아니었고, 데이비트는 틀랄록의 비장의 수단 ─ 솔직히, 현대의 지구에서 인간형 지성체로 살면서 신전이 거대로봇으로 변신하는 걸 몇 번이나 보겠는가 ─ 이 어느 정도의 전력인지 가늠해볼 기회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고 생각했다. 테스카틀리포카도 비슷한 의견이었으므로 틀랄록을 크게 질책하진 않았다. 애초에 틀랄록은 테스카틀리포카한테 혼나는 것보다 자신의 영역에 살고 있는 생명이나 자기가 만든 거주구가 상한 사실을 더 속상하게 생각할 인격체고, 그래서 절치부심해서 서슬 퍼런 얼굴로 안전시설을 보강하고 무너진 둑을 재건하고 있었다. 문제는 차가운 복수귀인 척을 하지만 사실은 오셀로틀들을 부모처럼 아끼고, 테스카틀리포카 신을 굉장히 크게 의식하고 있는 이스칼리가 저 사고를 자기 탓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쪽에 있었다.
그 기나긴 상위맥락을 설명 없이도 유추해낸 테스카틀리포카는 빠르게 데이비트가 바라던 대답을 내놓았다.
“이스칼리는 나한테 좀 주눅들어 있고 애초에 어린 인격이잖아. 그러니 그런 종류의 문제는 부담스럽고 두려운 상대가 눈앞에서 없어지면 어느 정도는 해결이 돼. 내가 적당히 이삼일 정도 자리를 비워주면 대충 추태를 보여서 죄송하다고 사죄하고 원래대로 돌아올걸.”
“나도 그건 동의한다. 그래도 너는 이스칼리를 꽤 마음에 들어 하니까.”
테스카틀리포카는 한동안 대답 없이 작업에 열중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최근 ‘새 장난감’ 취급하며 열중하던 총의 총열 부분에 도끼날과 도끼자루를 결합하고 있었다. 데이비트는 서번트가 하는 일에 거의 참견하지 않는 관대한 마스터였으나, 그때는 테스카틀리포카가 저 물건의 취급에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서번트가 취미생활용 장난감 취급에 실패해서 퇴거하는 사고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럼 영령의 좌에서 평판이 어떻게 될까, 라는 잡상에 골몰했다.
데이비트가 노움 칼데아의 영기 그래프엔 케찰코아틀이 있는 것 같던데 저런 사건이 케찰코아틀의 귀에 들어가면 정말 곤란하다는 생각을 할 즈음에 테스카틀리포카가 대답했다.
“네 사고회로는 이해하기 어려워.”
“그런 얘기 남들한테도 자주 들었다.”
“애초에 말이지, 왜 신이 인간에게 사랑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기분을 온몸으로 어필할 생각인지 테스카틀리포카는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비죽 내밀어 보였다.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잘 갈린 날붙이처럼 날카롭고 영민해 보이지만 어딘가 퇴폐적인 분위기의 미남자로 보이는데 테스카틀리포카는 저런 식으로 안면근육을 자기 맘대로 쓰기 때문에 그 외모가 빛을 보질 못했다. 물론 이건 데이비트 혼자 하는 생각이다. 상식이 있는 지성체라면 테스카틀리포카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으레 겁먹고 자리를 피하기 마련이다. 틀랄록도 그렇고 이스칼리도 그렇다.
데이비트는 한껏 침착한 척을 하며 대답했다.
“나도 딱히 그런 생각은 안 한다. 네가 그 둘을 마음에 들어 하는 티를 냈으니까 하는 얘기다.”
“그야 그만큼 오래 알고 지내면 당연히 정이 드니까 그렇지. 나도 내가 살았던 땅이나 자주 보던 녀석들이나 마음에 드는 물건에 대한 애착 정도는 느낀다고. 근데 내가 그걸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모르겠단 얘기지.”
“보는 내 마음이 편치 않다.”
“현대인이란.”
“그리고, 너 정도 되는 존재라면 내 주문에 대응할 수 있으면서도 네게 호의적인 존재를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테스카틀리포카는 공구를 내려놓고 도끼자루가 총에 잘 고정되었는지 확인하듯 몇 번 흔들었다. 그러면서 대답했다.
“아니. 그건 아니야. 사랑은 쏟은 만큼 돌아올 수도 있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야만 해. 적어도 지금은 그런 상황이 필요해.”
그러면서 데이비트에게 한 손을 흔들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비키라는 의미 같았다. 데이비트는 자리를 옮겨 창문 옆에 기대어 섰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도끼자루를 쥐고 말했다.
“내 악명이 높은 이유는?”
“안정되어 있는 상황이나 관계에 난입해서 모든 것을 망쳐 놓으니까.”
“다른 녀석들도 너만큼 간결하게 말할 줄 알면 좋겠는데. 아무튼 맞아. 내가 지향하는 건 분쟁으로 유지되는 세계의 질서야. 분쟁에 혼란은 필수적으로 필요한 장치고, 그건 내가 필사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자원이야. 엇차.”
테스카틀리포카는 매끄러운 동작으로 문 옆의 벽면을 향해 금속 덩어리를 투척했다. 도끼날은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문고리 옆에 꽂혀 들어갔다. 그 물건에서 발사된 총알과는 딴판이었다. 데이비트는 이스칼리가 처음 해 보는 사격을 제법 잘 해냈을 때 아낌없이 칭찬을 해 주었지만 혼자 남았을 때는 조금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탄피를 줍던 테스카틀리포카를 떠올렸다. 그때 데이비트는 그 자리에 없었고, 답사를 하러 갔다가 메히코 시티에 돌아오던 도중에 테스카틀리포카가 뭘 하고 있는지 훔쳐봤다가 그 광경을 우연히 목격했다. 데이비트는 이것을 꽤 오래 망설이다가 자기 기록에 남겨두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금속 덩어리를 벽에서 뽑아낸 뒤 결합이 헐거워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도끼자루 부분을 고쳐 쥐고 데이비트를 보면서 말했다.
“나는 내 목적을 위해, 지금은 네 목적을 위해 확률을 조정하지만, 이건 세계 측에서 보면 굉장히 불공정한 행위야. 그렇기 때문에 대가가 필요해. 현대풍으로 표현하면 ‘밸런스 조정’ 이라고 하면 되려나. 나는 네 목적이 내 지향성과 합치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네 편을 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특정한 누군가의 주문을 따르는 건 룰 위반이 될 여지가 있다. 그 결론이 지금의 나다. 육체를 만들 때, 실패 확률이 조금 높게 조정해 뒀다. 성공하는 계획을 짤 확률이 높아진 만큼 우연히 실패할 확률이 올라가는 거야.”
기괴한 형태의 금속 덩어리가 데이비트를 향해 날아왔다. 데이비트는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투척된 흉기의 도끼자루 부분을 붙잡았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혀를 차며 손을 내밀었다. 데이비트는 방아쇠 부분과 총열 부분을 훑어본 뒤 말했다.
“투척용으로는 상관없겠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더 엉망이 됐어. 명중할 확률은 더 떨어질 거다.”
“뭐 어때. 이건 그냥 장난감이라고. 장난감도 들고 다니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사용처가 생겨. 무기로서 사용할 수 있으면 더 좋고.”
“그런 것치고 꽤 사격에 집착하던데.”
“내가 지향하는 최고의 인간상은 ‘자기 바람을 이룰 수 없는 걸 알더라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발버둥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는 인간’이야. 거기다 너, 남의 취미에 왈가왈부하는 성격이었냐?”
“총알 값이 아까우니까. 지금은 몰라도 어쨌든 처음에는 내 돈으로 산 거 아닌가?”
테스카틀리포카는 덜 아문 상처를 건드렸을 때처럼 입을 다물었다.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에게 금속 덩어리를 다시 쥐어주고 되물었다.
“요는, 그 두 사람에 대한 네 애착이 보답받지 못하는 건 네가 여기 내 목적을 위해 왔기 때문이라는 건가?”
“글쎄다. 나는 확률을 조정할 때 권능만을 이용할 정도로 어설픈 신은 아니야. 나는 스스로 선택해서 미움받을 짓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어. 틀랄록을 고를 때도 이스칼리를 고를 때도 심혈을 기울였다고. 내 의견에 합치하는 짓만 할 리가 없는 영혼으로.”
“내 앞에서 자랑스럽게 할 말인가?”
“자랑스러워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악의는 선의보다 믿음직하거든. 실제로 너는 선의 때문에 지구인 대다수가 그게 선행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대부분 경악하며 반대할 만한 일을 하고 있지.”
테스카틀리포카는 그치답지 않게 상쾌하게 웃었다. 데이비트는 마술적 조치가 되어 있어서 소음이 새어나가지 않는 창문 옆에 기대선 채로 테스카틀리포카가 설계하는 세계에 대해 생각했다. 운명이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유리한 전개를 허용치 않는 세계. 테스카틀리포카가 무언가를 마음에 들어하면 할수록 그 무언가는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반기를 들고 싶게끔 조정되는, 아니, 테스카틀리포카가 그렇게 조정하는 세계. 가학적이다. 하지만 데이비트는 저 행위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니까.
데이비트는 물었다.
“아무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이해했다. 그러면… 나도 네게 호의를 갖지 않는 편이 나은가?”
“이건 또 뭔… 너는 나를 놀라게 만드는 게 취미생활이냐?”
“나는 인격체로서 네가 마음에 든다. 그래도 지금 최우선 사항은 내 목적 쪽이니까. 계획이 실패할 요인은 최소한으로 해두는 게 좋지.”
테스카틀리포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데이비트가 바란 것과 다른 대답을 했다.
“고대의 신은 몰라도 현대의 신은 신자를 선택할 수 없어. 아니지, 요즘 인간들은 맹랑해서 신자라고 부르는 데는 어폐가 있군. 너는 내 기능을 보고 나를 선택했어. 신자보다는 음, 그 개념에 가깝지. 클라이언트. 고객.”
“신비함도 미스터리어스함도 사라졌군.”
“시끄러워.”
테스카틀리포카는 눈을 흘겼다. 데이비트는 바닥에 앉은 채 눈으로 답변을 재촉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진짜 귀찮다는 표정을 짓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신탁을 내려 주었다.
“너는 꽤 내 취향인 전사지만, 요즘 세상에서 신이란 인간의 인식 다음에 존재하는 법이지. 너는 네 목적을 위해 나를 불렀고, 내게 호의를 갖건 나를 혐오하건 똑같이 나를 엉망으로 만든 끝에 완전히 소멸시키게 될 거야. 네가 내게 갖는 감정이 무엇이건 결과값은 똑같다는 얘기야.”
잘 스며드는 액체 같은 낮고 달콤한 목소리로, 데이비트가 통찰할 수는 있어도 확인할 수는 없는 미래를 훔쳐본 결과물인지 데이비트가 상상할 수도 없는 세월 동안 지구에서 지내며 얻은 통계를 도출해내는 능력의 결과물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네 호의는 내가 택한 ‘밸런스 조정’ 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항이다. 네 마음대로 해. 나는 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 결과 네가 불행해지건 행복해지건 내 알 바 아니다.”
그날 분량의 기억용량을 모조리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일에 소모해야 했으므로, 데이비트는 그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테스카틀리포카의 공방에서 잤다. 테스카틀리포카는 귀찮고 번거롭다고 짜증을 냈지만 그건 딱히 데이비트가 알 바 아니었다.
*
데이비트가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테노치티틀란이 쓰러졌다. 데이비트는 테노치티틀란이 자기 의사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노움 칼데아의 인간들을 지키며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추락하는 것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
보통의 개개인들은 데이비트가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나치게 거대한 시야로 바라보고 멋대로 피드백을 하는 행위를 ‘훔쳐본다’ 고 표현하며 싫어했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그런 행위가 맞겠지만, 데이비트는 자신이 인간보다는 피가 차가운 벌레처럼 올바른 방향을 지향하며 사고하는 존재라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죄책감 없이, 다원적이고 커다란 시야로 관찰한다. 이스칼리와 테스카틀리포카가 목적지에 도달하자마자 노움 칼데아의 인간들과 마주친다. 테스카틀리포카 대신 이스칼리가 노움 칼데아와 싸우겠다며 나선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인선은 옳았다. 이스칼리는 범인류사를 증오했다. 하지만 온정을 버릴 수 없는 개체였다. 그래서 진언했다. 제발 마음을 바꿔 달라고, 지구를 파괴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선택은 완벽했다. 그 무엇도, 테스카틀리포카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스카틀리포카는 신이므로, 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하므로.
믹틀란의 주민 모두가 테스카틀리포카가 마음에 들어하는 장난감이자 취미생활의 결과물 정도로 생각하는 금속 덩어리를 겨누고.
‘그러냐. 잘 가라.’
확률 조정의 권능을 두른 절대 빗나가지 않는 일격.
테스카틀리포카는 자신의 동정심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둘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했고, 역시 그는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하는 존재였음을, 이제 당신은 우리들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정중하게 말하는 존재임을 다시금 되새겨야만 했다. 그래서 테스카틀리포카는 고통스러워했다. 그 사실을 데이비트만이 알아챘다.
데이비트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노움 칼데아의 분전과 마리스빌리 아니무스피어의 딸의 난입도 여상하게 지켜보았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소멸 직전의 상황에 몰렸다. 어쩌면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테스카틀리포카는 조금 전과 달리 묘하게 들떠 있었다.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목적지까지 10m 남짓의 거리만을 남기고 테스카틀리포카의 마지막 전언을 듣는 동안, 데이비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테스카틀리포카를 마음에 들어해도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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