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레아시스
2024-05-19 01: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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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폭력은 엔터테인먼트가 되어야 한다

데이테스. 테스카틀리포카의 전투형태(2재림)와 데이비트 이야기.
테스카틀리포카의 외양에 대한 뇌내설정이 많습니다. 시간적 배경은 믹틀란 생활 초기입니다. (메히코시티가 조성된 지 한 달도 안 된 즈음입니다)
데이테스 원드로원라이 @Dt_od_ow 참가작입니다. 주제 '남자애들은 이런 거 좋아하잖냐男の子はこういうのが好きなんだろ' 를 빌렸습니다.

“약하군.”
“그런 말은 최소한 불의의 습격에 대응할 만한 상태고 열심히 싸울 여유가 있었던 사람에게 하는 게 좋지 않겠냐?”

테스카틀리포카가 아주 불만이 많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오전에 하던 일을 마치고 신전에 있는 테스카틀리포카의 개인실에 침입한 데이비트에게 불시에 오금을 공격당해 균형을 잃고 쓰러진 뒤 저항할 틈도 없이 제압당해 양팔을 뒤로 붙들리고 하반신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당한 채 바닥에 엎드린 상태였다.
인간형 적성개체를 제압할 때의 프로세스대로 체중을 실어 테스카틀리포카를 짓누르던 데이비트는 팔에서 천천히 힘을 빼고 일어섰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모든 비상상황이 종료된 뒤 사건 현장에 뒤늦게 들이닥친 경찰처럼 말을 쏟아냈다.

“아니, 평범하게 적의나 살의를 풍기면서 다가왔다면 나도 알아챘을 거라고. 확실히 자기가 하는 일이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좀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필요요소라고 진심으로 믿는 건 전사가 가져서 나쁠 것 없는 덕목이야. 그래도 그렇지 너는 진짜, 이건 보는 재미도 극복하는 재미도 하나도 없잖아.”
“그건 미안하다. 용무는 다 끝났으니 일어나.”

데이비트가 한 손을 내밀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데이비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데이비트에게 맞고 쓰러졌을 때 2미터 정도 날아가 바닥에 떨어진 선글라스를 주워 끼고 고양이 같은 느낌이 드는 모습으로 기지개를 켰다. 그러다가 허리를 툭툭 두들겼다.

“으. 이스칼리한테 인간형 적성개체 제압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예시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네. 아마 네게 격투술을 가르친 선생도 기뻐할 거야.”
“네가 성격이 나쁘다는 소릴 듣는 이유 절반 이상은 네가 입만 열면 그런 식으로 상대를 끝없이 난감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죽을래?”
“당장은 안 되고 일 년 정도 기다려라.”

테스카틀리포카는 그제야 지금의 데이비트에게 짜증을 내는 게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데이비트가 시계탑의 식객 겸 보호관찰대상 겸 학생으로 지내던 시절에 살던 방에 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만들 때 그 정보를 참고했기 때문이다) 의자를 빼 주었다. 데이비트는 의자에 앉은 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네 스테이터스는 처음 소환했을 때 봤다. 그런데 네 육체가 스테이터스에 비해 너무 약해서 신경이 쓰이더군.”
“가진 게 마력이랑 이 육체로 겪어본 게 아닌 경험밖에 없는 생후 한 달도 안 된 인간이 당연히 약하지, 멍청아. 당장 소환했을 때에 비해 폐활량도 반토막난 상태인데.”
“나, 혹시 네게 사기당한 건가?”

테스카틀리포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의 마스터가 중대한 일에도 사소한 일에도 진지하게 임하는 성품인 것 같다는 가설은 사실인 것 같다.

“당연히 아니지. 애초에 이건 실사용보다 소모품으로서의 가치에 초점을 맞춰서 만든 육체인데 이걸 그대로 전투에 사용할 리가 없잖아. 개념적으로 무장한 전투형태를 따로 만들어서 사용할 생각이었어.”
그런 생각이었으면 말을 해.”
“네가 물어보지 않았잖아. 거기다 이건 네 탓도 있어. 여기로 이동할 때도 적성개체가 나타나면 너나 틀랄록이 먼저 덤비고, 이스칼리도 분위기에 휩쓸리고, 나는 전사가 싸우는 거 보면 일단 거기 집중하는 편이고.”
…….”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데이비트는 시선을 피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어느 틈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담뱃갑을 꺼내고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 절차가 하나도 없었다. 저것은 진짜 담배가 아니라 테스카틀리포카가 지금 사용하는 신체를 구성하는 파츠의 일부이며, ‘연기를 뿜는다’는 개념을 지금 사용하는 육체에 덧씌워서 ‘연기나는 거울’ 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강조함으로서 존재를 강화하고 출력을 올리는 용도라고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했었다. 데이비트가 일행 중에 어린애가 있는데 담배를 피우는 건 좋은 행동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기 때문에 대답한 것이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서 갑자기 그게 신경 쓰이게 된 이유는? 위기감이라도 느꼈냐?”
“이번에 조사 도중에 마주친 무지성 디노스가 대형종이었는데, 다리 한 개를 폭파해서 없애버려도 쫓아와서 처리하기 엄청 번거롭고 귀찮았다. 널 조사에 데려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더군.”
……. 내가 꽤 오래 살았는데 이런 식으로 무엄한 건 또 처음 보네.”
“칭찬 고맙다.”
“칭찬 아니야.”
“나도 칭찬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네가 내게 재치 있는 답을 기대하는 것 같아서.”

데이비트가 머리를 긁적였다. 진심이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담배를 문 채 팔짱을 끼고 물었다.

“오늘치 기억용량 얼마나 남았냐?”
“조사에서 생각보다 건질 게 없었어. 중요한 얘기 하나까지는 해도 된다.”
“오케이. 밖에서 얘기하자. 착지 맡긴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창문을 열었다. 믹틀란 메히코 시티에서 모시는 신 테스카틀리포카 말고 메히코 시티의 주민 테스카틀리포카가 사적으로 사용하는 개인실은 보통의 범인류사 기준으로 2층 정도 높이에 있다.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를 양손으로 안아 올렸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한쪽 다리가 더 무겁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안아 올릴 때면 전체적인 균형을 맞출 때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테스카틀리포카를 소환한 날에 기록에 넣은 사실이다.
데이비트는 충격을 완화하는 마술을 건 뒤 입 속으로 3, 2, 1을 세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태양은 데이비트가 기억하기로 한 시간 전쯤 지나갔는데 아직도 밖에서 뭔가 하고 있던 오셀로틀 몇이 데이비트와 테스카틀리포카를 돌아봤다. 테스카틀리포카가 휘파람을 불고 한 손을 흔들자 고개를 숙이고 갔다.

“빨리 배우는군.”
“지성은 있지만 그 지성의 사용처를 찾지 못했을 뿐이니까. ─호수 건드리면 틀랄록이 짜증 내니까 여긴 안 돼. 틀랄록이 주택이 더 필요하다고 해서 벌목을 좀 해서 생긴 공터가 있으니까 그리로 가자.”
“들은 적 없는 소식인데.”
“그래서 지금 보고하고 있잖냐. 마스터.”

앞장서 걷던 테스카틀리포카는 담배를 쥔 손을 데이비트 쪽으로 내밀고 재를 털어내듯 흔들었다. 데이비트는 별 말 없이 따라 걸었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업무 처리하는 방식이 대체로 이러했다.
5분 정도 걷자 스포츠 아레나 정도 넓이의 공터가 데이비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벌목을 했다길래 데이비트는 막연히 그루터기가 남아있고 지면이 고르지 않은 형태를 연상했는데 바닥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역시 도시의 정령. 애프터케어가 확실하다.
데이비트는 고르게 정리된 바닥을 부츠 바닥으로 몇 번 치면서 물었다.

“혹시 이쪽에도 건물을 지을 생각인가? 틀랄록의 영역이 꽤 늘어나겠군.”
“걔가 하고 싶으면 하겠지. ─자, 간다.”

테스카틀리포카가 한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휙 던졌다. 그게 데이비트에게 닿기 직전에 테스카틀리포카의 육체의 윤곽이 기화되어 흩어지며 실루엣이 일그러졌다. 검기도 하고 희기도 한 연기가 공터 전체를 채워 간다. 데이비트는 낯익은 마력이 영역 전체를 가득 채웠다가 인간형 지성체의 형태로 다시 환원되는 것을 모든 감각기관으로 느꼈다. 그래서 잉여마력을 이용한 연기 속에서 명백한 적의를 온몸으로 뿜는 서번트가 달려들어도 놀라지 않고 가드할 수 있었다.
동물의 발톱 형태의 클로와 강화마술을 건 데이비트의 팔이 부딪히면서 캉, 하고 금속이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생각보다 긴 클로가 데이비트의 팔 너머까지 닿아서 데이비트의 뺨에 생채기를 하나 만들었다. 아슬아슬했다.

“핫!”

웃음소리지만 웃는 기색이 없는 살면서 참으로 듣기 어려운 소리가 났다. 데이비트가 본능적으로 후퇴해 거리를 벌리자 상대는 자세를 가다듬을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따라붙었다. 그래서 데이비트는 서번트의 전투형태를 천천히 시각으로 감각할 수 없었다. 맞물리듯 다리로, 팔로, 어떤 때는 그 외의 신체로 몇 합을 주고받는 동안 데이비트는 현 상황에서는 신뢰도가 떨어지는 시각 대신 다른 감각들을 동원해 테스카틀리포카의 형상을 그려냈다. 고양이과 동물 같은 느낌을 주지만 철저하게 인간 대 인간의 전투에 특화된 움직임. 믹틀란의 가짜 별과 가짜 달이 발하는 빛을 반사하는 유리질의 직물로 감싸인 육체. 육체에 갖춰진 근육의 양과 정비례하지 않는 물리세계의 섭리를 거스르는 힘. 상대에게 공포를 줄 의도로 보이지만 실은 시선의 방향을 숨기고 전투 도중에 생기는 부산물로 시각을 방해받지 않을 용도일 가면. 일부러 덜 다듬은, 타격을 담아 공격하면 반드시 피부가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인간의 다리 형태의 광석.
그런 식으로 자신의 서번트를 ‘보는’ 데 모든 감각을 할당하는 실수를 저질렀으므로, 데이비트와 테스카틀리포카의 짧은 추격전은 공터를 가로질러 밀림까지 밀려난 데이비트가 밀림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벌목되는 처지를 면한 나무에 등을 부딪혀 코너에 몰리면서 막을 내렸다.
테스카틀리포카의 팔에 붙어 있는 클로가 데이비트의 눈앞에 내밀어졌다. 데이비트는 나무에 기대앉은 채 양손을 어깨 위로 올리면서 말했다.

“혹시, 아까 내가 ‘약하다’고 평해서 화가 났나?”
“나, 네가 정말로 한 번 죽어야 정신을 좀 차리는 거 아닐까 요새 진지하게 생각한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한숨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팔을 내렸다.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가 가면을 벗을 줄 알았는데 테스카틀리포카가 한 손으로 귀 쪽(가면에 달린 귀 말고, 테스카틀리포카의 인간체의 귀 얘기다)을 한 번 건드리자 가면의 하부가 상부로 쏙 들어가며 코와 입만 드러나게 바뀌었다. 잘 만들었다.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가 흐흥, 하고 코로 웃는 것을 열심히 보면서 말했다.

“평가를 수정하겠다. 잘 싸우는군. 하지만 동작에 군더더기가 많아. 동작이 재규어를 연상시키는 건지금의 네 전투방식은 명백하게 인간을 상대하는 방식이었으니까 나왈Nagual의 영향은 아닐 거고, 상대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취하는 건가?”
“그건 마음대로 생각해라. 재규어는 맹수 맞지만 난 기본적으로 재규어 좋아하니까.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은근 열 받네. 네 동작이 재미없는 거야. 네 인식능력이 갖는 메리트를 살리는 건 알겠지만 연출되지 않은 필요최소한의 동작에는 기능성은 있어도 보는 재미는 없단 말이야. 무도가로서의 정체성에 인생을 바친 녀석이라면 네 움직임을 보고 감탄하겠지만 요샌 그런 녀석 별로 없고. 아, 그것도 아닌가. 영령의 좌에는 많지.”

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참으로 아쉬웠는지 트리거 해피Trigger-happy가 속사하듯이 말을 쏟아내고 자문자답까지 마친 테스카틀리포카는 정말 고양이처럼 하품을 했다. 꼬리 장식이 바닥을 툭툭 쳤다. 데이비트는 잠시 거기 눈을 빼앗길 뻔했다가 빠르게 정신을 다잡고 대답했다.

“영령의 좌까지 갈 것 없이 내 눈앞에도 하나 있는 것 같은데.”
“난 언제나 폭력은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싸움질을 좋아하는 거랑 별개로 말이야.”

테스카틀리포카가 보다 짧은 클로가 달린 쪽의 손을 내밀었다. 데이비트는 선선히 테스카틀리포카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어둠에 눈이 적응한 지는 꽤 됐지만 안정된 상태로 지금의 테스카틀리포카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테스카틀리포카는 눈이 가려진 상태로도 꽤 즐거워 보였다.

“폭력은 이 별의 생물이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평생 반복해야만 하는 작업이야. 하지만 특성상 혐오감을 갖거나 질리기도 딱 좋으니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즐거운 작업이 되어야 해.”
“나를 걱정하는 건가? 나는 폭력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폭력의 필요성 또한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
“얘가 머리는 좋으면서 또 잘못 짚네.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너만의 신이 아니야. 그리고 너도 나만의 네가 아니지.”

테스카틀리포카는 몸을 살짝 틀어 데이비트가 마을 쪽을 바라보기 편하게 시야를 터 주었다. 데이비트는 그제야 공터 근처에 모여든 메히코 시티에 거주하는 오셀로틀 몇 명의 기척을 인식했다. 메히코 시티에 있는 틀랄록은 공터에 새로 지을 가옥의 구조를 체크하다가 마력농도가 상승하는 걸 느꼈는지 주어가 데이비트인지 테스카틀리포카인지 모를 욕지거리를 하고 있다. 이스칼리는 자기 방에 있지만 명명백백하게 이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의식하고 있다. 데이비트는 한 방 먹은 기분으로 수긍했다. 데이비트는 그 인식능력의 특성상 자신이 모두를 일방적으로 지켜본다고 생각하기 쉬웠지만, 데이비트가 지켜보는 그들 또한 언제나 데이비트를 보고 있다는 것을.
테스카틀리포카는 발언을 이어나간다.

“나는 네 제안을 받아들였고, 네 목적을 위해 이 사회를 조성하고 이용하는 걸 선택했어. 그럼 나는 그 녀석들을 어떻게 키울지 생각해야만 해. 사회가 생겼고 전사가 생겨난 이상 나는 그 녀석들이 행할 폭력의 방향성을 내가 생각하기에 이치에 맞는 방향으로 계도해야만 해.”
“계도.”
“너와 나는 개인이지만, 저 녀석들에게는 자기들이 폭력을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가 보여주는 시범 케이스고 우상Idol이다. 기억해 둬.”

아무래도 테스카틀리포카의 멋대로 장광설을 늘어놓고 충고하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다. 데이비트는 그답지 않게 조금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지금의 내 전투방식은 내 능력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최적해다. 너처럼 남에게 보이기를 전제한 방식으로 싸우는 건 어렵다. 노력은 해 보겠지만 그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어. 미안.”
“안다. 네게 그런 쇼맨십을 요구할 생각도 없어. 그보다 너 뭐 할 말 더 없냐? 내가 생각하기에 있어야 하는데?”
뭐가?”

테스카틀리포카는 꼬리로 바닥을 툭툭 내리쳤다. 데이비트는 어리둥절해졌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팔짱을 낀 채 데이비트를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즘 남자애들은 이런 거 좋아하지 않냐?”
“?”
“여긴 내 고향이랑 본질이 비슷해서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형태도 어느 정도 허용되고 나도 솔직히 그쪽이 편한데, 그런 상황에 내가 왜 굳이 인간형으로 전투형태를 만들었을 것 같냐? 너 때문이야, 너.”
“????????”

데이비트의 거의 항상 명확하고 거침없는 사고에 거의 처음으로 제동이 걸렸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데 뭘 그렇게 놀라냐는 듯 발언을 재개했다.

“넌 지구 출신이랑 별의 바다 출신의 경향성이 섞여 있고 인격과 육체의 연령이 좀 안 맞아도 일단은 지구인류 사회에서 자란 현대인이고 남자애잖아. 그러니 나도 요즘 유행하는 거 좌에서 이것저것 체크했다고. 지구에 흘러온 행성 최후의 생존자나, 갑옷 입고 날아다니는 군수업자나, 가면을 쓴 기병Rider이나 그러니까 역시 이런 형태가 최적해고, 네 전투의욕이나 로망을 자극하는 데도 도움이 되겠다 싶었단 말이지.”
…….”
“그렇게 큰 맘 먹고 만든 거니까 말이다, 뭔가 감상을 말해 보라고. 별로 안 멋지면 고칠 거니까.”

데이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데이비트는 나무에 등을 부딪힌 순간부터 싸움을 복기하기 시작했고, 복기 작업을 하는 내내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테스카틀리포카의 전투형태를 보느라 정신을 빼앗긴 탓이었다. 진 것도 부아가 치밀고 호기심 때문에 서번트가 걸어온 싸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지금은자기가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눈길을 빼앗기는 건 당연한 거였다고 테스카틀리포카가 스스로 말해주는 것도 전부 테스카틀리포카의 예상 범위 내에 있었던 것 같아서. 저런 흥밋거리에 홀랑 넘어간 자기가 딱히 제일 효율적인 최적해를 택한 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서. 괜히 싫었다. 데이비트는 기본적으로 관대하고 선량한 인격이었지만, 히어로 코믹스 같은 거 좋아하는 어린애 취급받은 게 싫다고 솔직하게 말할 정도의 여유를 얻을 정도로 오래 살지는 못한 인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비트 젬 보이드는 테스카틀리포카의 마스터고, 메히코 시티의 모두에게는 테스카틀리포카 신의 신관이며, A팀에서도 인정받은 젊은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대국을 볼 줄 아는 존재였으므로.

“디자인적으로는 별 이견은 없다만그 옷의 구조 말인데. 어떻게 벗지?”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었다.

“응? 물리적으로 벗는 구조는 생각 안 했는데? 이거 신화적인 요소를 인간형의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활용하려고 일부러 다리를 드러낸 거야. 어차피 마력으로 구성하는 거니까 굳이 물리적으로 벗을 필요도 없고.”

테스카틀리포카는 허리에 양손을 얹은 채 대답했다. 데이비트는 지적했다.

“너는 이게 전투형태라고 했는데, 그럼 전투 도중에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소모될 경우 본래 네가 사용하는 일상생활용 통상형태로 돌아갈 거라고 예상했다. 맞나?”
아마도?”
“그런데 그게 전투를 도무지 멈출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되지? 네 통상형태는 약해. 그 강화복에 이런저런 방어술식이 많이 들어있는 건 내가 몸으로 확인했다. 그걸 마력으로만 유지하는 건 위험해. 최악의 상황이 되어도 전투형태의 강화복만이라도 무장으로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군일리 있는 지적이야.”

테스카틀리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트는 자기 허리를 툭툭 두들기면서 말했다.

“이 이야기를 한 걸 기억해 두지. 가능한 한도 내에서 개선책을 마련해 둬라.”
“네, 네.”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를 기다리지 않고 앞장서서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스카틀리포카가 전투형태를 해제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테스카틀리포카를 훔쳐보았다.
데이비트는 날짜가 바뀌자마자 기록의 선별을 시작했다. 이 날 처음 본 테스카틀리포카의 전투형태는 데이비트의 머릿속에 남았으나 데이비트가 그 기록을 수집하면서 느낀 것은 대부분 버릴 것 카테고리로 분류되었다. 본인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 완전범죄였으나, 데이비트가 가짜 달빛과 별빛 아래에서 처음으로 느꼈던 ‘와 씨. 완전 멋있어’ 라는 감상만은 소중하게 선별되어 보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