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레아시스
2023-05-07 02: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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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프의 맛

LB7 이전 시점의 데이테스. 테스카틀리포카가 사소한 실수를 하는 이야기. 테스카틀리포카의 오른쪽 다리에 대한 개인적인 설정이 굉장히 많습니다.
일본 데이테스 원드로원라이 @Dt_od_ow 참가작입니다. 사용한 주제는 '흑요석' 입니다.

오전 7시 3분, 테스카틀리포카가 균형 잡히지 않은 발소리를 내며 내 방에 왔다. 나는 외출준비를 마치고 창가에 앉아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네모난 달걀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오. 뭐냐, 그거.”
“콘스프.”

예나 지금이나 요리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요리는 좋은 생존 수단이자 취미생활이지만 그만큼 번거롭고 복잡하며 많은 실패와 피드백이 필요하다. 나는 언제나 정신없이 지내고 있었고 식사라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찾기에는 내게 남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식사란 근본적으로는 결국 열량을 섭취하는 행위고 인체가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데는 영양균형만 맞으면 그만이다. 맛이나 즐거움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14살의 봄에 그렇게 결론내렸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나는 요즘도 NFF에서 내가 섭취할 용도의 영양제와 보존식 따위를 사들이고 있다. 테스카틀리포카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정정을 위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보급품 박스에 있었다.”
“아니, 알아. 그냥 네가 옥수수를 싫어한다고 착각하고 있었어.”
“그런가.”

테스카틀리포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스프가 조금 고인 머그컵 바닥을 스푼으로 긁었다. 뭐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믹틀란 자생종 옥수수를 처음 봤을 때 조금 놀라고 있던 나에게 성장의 곡절이 어찌 되었건 옥수수가 신의 살이며 인간을 이루는 뼈대라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 경의를 표하면서 먹으라느니 뭐니 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확실히 저 신화체계에서 옥수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자타공인으로 현대문명에 찌들었지만, 그래도 그만큼 소중한 물건이 대량양산품 보존식이 되는 건 그리 즐겁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홀로 난감해진 내가 대화를 재개할 만한 화제를 고민하는 동안 테스카틀리포카는 멋대로 내 책상에 올라앉아 노트에 뭔가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내용을 훔쳐보려다가 경직했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오른쪽 다리가 인간의 모습을 잃고 광석 특유의 예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되도록 침착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지?”

테스카틀리포카가 케찰코아틀과 함께 시팍틀리와 싸울 때 오른쪽 다리를 대가로 바쳤고, 흑요석을 오른쪽 다리 대신으로 사용하게 된 일화는 테스카틀리포카가 내 부름에 응하기 위해 스스로 인체에 갇힌 지금까지도 물리적인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지금의 테스카틀리포카의 오른쪽 다리는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인체처럼 보이지만 마술과 권능을 동원해 인류의 시각과 물리법칙을 속여 인체처럼 기능하게끔 눈속임한 것이다. 본인 가라사대, 광석에 신비를 부여해 물리법칙 속에서 위화감 없이 생물체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것보다 세계의 물리법칙을 기만해 광석을 인체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 쪽이 코스트가 덜 든다는 모양이다. 아무튼 지금 테스카틀리포카의 다리가 저 모양이 되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명명백백하다. 간밤에 뭔가 리소스를 소모할 만한 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식사를 중단하고 눈짓으로 응답책임을 요구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선선히 대답한다.

“글쎄다. 요즘 영령의 좌에서 인기 많은 관용어구로 말하자면,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야’.”
“지금 그 일의 내막을 말하는 건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나?”
“뭐 그렇지.”

테스카틀리포카는 펜을 내려놓고 다리를 꼬았다. 광석이 책상을 가볍게 긁으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이럴 때의 테스카틀리포카는 말려도 혼자서 떠들기 때문에 저지할 수 없다. 나는 저항을 포기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노래하듯 발언을 재개했다.

“나는 네게 협력하기로 결정했으니 자기 자신에게 페널티를 부여할 의무가 생겼어. 그래서 지금의 네가 제일 잘 써먹을 예지나 신탁과 관련된 능력은 쇼쇼아우키靑 녀석이 전부 가지고 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상태여도 생물체로서의 생존본능은 어찌할 수가 없어. 그래서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위험신호처럼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말이 길다, 테스카틀리포카.”
“16시에서 20시 사이에 내 신변에 좀 위험한 일이 일어날 거다. 어떤 계통일지는 나도 몰라. 위치는 대강 특정했으니까 네게 반응이 오면 이쪽으로 데리러 와라. 네 몸을 지킬 준비는 하고.”

그러면서 노트를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필드워크 도중 한두 번 지나친 적이 있는 곳이었다. 내가 내 기록과 테스카틀리포카가 준 좌표를 바탕으로 위치를 가늠하는 동안 테스카틀리포카는 내내 기분이 좋은 듯 웃고 있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지금은 인간의 몸이며 나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저 안에 든 내용물은 신 그대로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즐거울 때 나도 즐거울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식은 스프를 들이켰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하품을 했다. 머그컵에 스푼을 넣고 일어서면서 물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큰일을 겪을 거라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회피할 수 없는 계통인지, 회피해서는 안 되는 계통인지 정도는 알려줬으면 좋겠다만.”
“너는 시련을 겪는 중이야. 그만큼 자세한 설명은 룰 위반이다. 이것도 나치고는 친절하게 노력한 거라는 걸 알아두도록 해.”

이 뒤 내가 설거지를 마치고 방을 나갈 때까지 테스카틀리포카는 성실하게 아무 첨언도 하지 않고 시답잖은 잡담만을 늘어놓았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오른쪽 다리는 쭉 예리한 빛을 발하며 인공태양의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


18시 29분, 제2명계선 모처의 밀림.

“늦잖아, 이 녀석아.”

자기 다리를 끌어안고 나무 밑에 앉아 있던 전투 형태의 테스카틀리포카가 한 말이다. 주변에 무지성 디노스의 시신이 널려 있다던가, 테스카틀리포카의 오른쪽 다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던가, 어디선가 피어오른 붉은색 연기가 가시성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라이플을 천천히 내리면서 말했다.

“설명해라.”
“카마소츠 녀석이 뭔가 하고 싶어 하길래 이쪽에 일 얘기를 하러 왔었지. 교섭 내용은 그냥 그랬어. 적당히 해산했고, 귀갓길에 무지성 디노스가 나타나서 위기에 처했고. 이 믹틀란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지.”
“그 교섭 내용이 지금 내가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인지 정말로 별것 없는 내용이었는지도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후자야. 그 녀석이 날 치우고 싶은 눈치기야 했는데 그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조금 맥이 빠졌지만 납득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무모한 짓이나 무의미한 짓을 꺼리지 않는 성격치고 멀쩡한 부위를 세는 편이 더 빠른 약하고 엉망으로 손상된 몸을 잘 건사하는 편이었다. 어지간한 위기는 알아서 회피하고 어지간한 위기상황도 어찌어찌 잘 넘기고 살아 돌아온다. 그런 테스카틀리포카가 회피하지 못했거나 회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위기라면 무엇이 나올지 상상이 안 가서 조금 머리가 아팠는데, 장사 때문이었다면 납득이 간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장사를 할 때는 진지하고 카마소츠가 상대일 때면 즐거워하면서 진지해진다. 회피할 수 없었겠지.
나는 라이플을 메고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다가갔다. 다리가 부서져 육체에서 떨어져 나갈 정도의 부상임에도 혈색은 좋았다. 입가에 피가 묻은 걸 보니 무지성 디노스의 심장을 먹은 모양이었다. 다리가 하나 부족한 상태로 바닥을 기어 디노스의 가슴을 후벼파는 테스카틀리포카를 생각한다. 현대를 비웃는 야생성의 구현 같은 광경이었을 것이다.
테스카틀리포카가 투덜거렸다.

“무지성 녀석들은 역시 나랑 상성이 안 좋아. 규율을 잊어버려서 그런가.”
“다리를 수복해두지 않은 데 이유가 있나?”
“오른쪽 다리는 특별해. 존재 자체에 신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복하거나 다시 연결할 때 드는 리소스가 평범한 인체에 비해 막대하다. 나 혼자서 수복했다면 무사히 메히코시티까지 돌아가기 어려웠을 거야.”
“그런가.”
“그렇지.”

눈이 마주쳤다. 테스카틀리포카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 입술을 겹쳤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눈을 반쯤 감고 내가 자신에게 체액을 밀어넣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디노스의 피 맛이 나는 입 안을 혀끝으로 훑으면서 죽은 무지성 디노스의 피를 핥는 테스카틀리포카의 모습을 떠올린다. 디노스는 공룡의 형태를 한 컴퓨터 같은 종족이고, 그런 그들은 지능을 잃어버린 시점에 이미 죽은 것일지도 모른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죽은 이 앞에서 드물게 얼굴을 찌푸리고 ‘얘들은 좀 재미는 없어도 통찰이 깊은 게 매력인데, 이건 혀에 대기만 해도 멍청해질 것 같다’ 며 악평을 했기 때문에 했던 생각이다. 비리고 무미건조한, 살아있지만 죽은 피의 맛.
그 생각에 열중하다 보니 테스카틀리포카가 내 가슴을 쳤다. 뻔뻔하다. 나는 눈을 가볍게 흘기며 떨어졌다. 조금 상기된 얼굴의 테스카틀리포카가 오른쪽 다리를 내게 떠넘겼다. 근방을 가득 채운 붉은 연기는 오른쪽 다리의 절단부에서 피와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기는 테스카틀리포카의 본질이니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혈액이 인체의 메커니즘대로 지혈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다. 마력이 새고 있다. 내가 제때 오지 못했다면 디노스의 심장을 먹었어도 빠르게 소모되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더 위험해졌을지도 모른다. 수수하게 위험한 상황인데 이렇게 구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테스카틀리포카가 지면에 바른 자세로 눕는 것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수복할 생각인가?”
“그럼 그걸 들고 메히코시티까지 가려고? 그거 인체와 같은 크기의 광석이야. 나는 네가 뭘 하건 대체로 별 신경 안 쓰지만, 현 상황에서 네가 그런 결정을 한다면 나와 너 모두의 안전을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
“네 신전 쪽이 그런 처리를 할 때는 더 깔끔할 테니까 하는 말이다. 뭔가 더 필요한 게 있나?”
“아냐, 너만 있으면 돼. 영창은 내가 불러주는 대로 따라하기만─”

테스카틀리포카의 눈빛이 변했다. 뒤를 돌아본 것은 거의 무조건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공기중을 가득 채운 테스카틀리포카의 마력으로도 쫓을 수 없는, 지구의 최강종의 몸을 입은 의지 없는 살의.
그렇군, 이것 때문에 테스카틀리포카의 자기방위본능이 신탁을 내렸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지성 디노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테스카틀리포카.”
“어?”
“돌아가면 사과하마.”

라이플을 쥐는 대신 손에 쥔 것을 고쳐 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쪽을 향해 쇄도하는 무지성 디노스를 향해 도약하자 이렇게 외친 걸 보면 나쁜 표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데이비트, 머리다!”

나는 침착하게 테스카틀리포카의 오른다리로 무지성 디노스의 머리를 강타했다. 마술과 권능을 두른 광석 덩어리는 디노스의 머리와 함께 또다시 요란하게 깨져 나갔다.


*


“오늘의 사고는 내 자존심과 개인적인 흥미 문제로 회피하기 힘든 사건이었어.”

다리를 수복하는 작업을 끝마친 뒤 메히코시티 신전 중심부에 누운 테스카틀리포카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멋대로 발언을 시작했다.

“아마 본래의 미래에서 너는 좀 더 늦었을 거고, 내가 최대한 몸을 온존해두지 않았거나 혼자 해결하려고 다리를 수복했을 경우 내가 파괴된다. 네가 제때 도착하더라도 뒤늦게 도착한 무지성 디노스가 변수가 된다. 틀라틀라우키赤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부 방관할 생각인 것 같고, 쇼쇼아우키는 이런 걸 신경 써 줄 정도로 친절하지 않아. 결국 이번에 일한 건 내 자기보호본능뿐이고, 그러니 그런 어중간한 형태의 경고밖에는 할 수 없었을 거야.”

테스카틀리포카는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굉장히 테스카틀리포카답지 않은 표정이다. 당연하기는 했다. 테스카틀리포카라는 존재의 근간인 오른다리가 끊어졌고 무지성 디노스를 처리할 때 꽤 많이 파괴당하기까지 했고 인간으로서도 피를 꽤 많이 흘렸다. 그래서 메히코시티에 돌아와 다리를 겨우겨우 복구한 뒤에도 테스카틀리포카는 진통제 같은 것을 맞은 것처럼 멍해 보였다.
나는 되물었다.

“네 위기가 아니라 내 위기였나?”
“뭐, 그럴지도 모르지. 지금의 너와 나는 운명공동체고 이 일은 다 끝난 사건이야. 그러니 이제 와서 책임소재를 확실히 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봐.”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 테스카틀리포카를 보았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나를 보는 대신 신전 천장을 보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뭐가.”
“너는 네 흥미와 자존심 때문에 회피할 수 없는 사고라고 했지만, 내가 아는 너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자존심 같은 것에 그리 크게 얽매이지 않는 개체다.”
“흐음.”

대답이 대강대강이었다. 별로 진지하게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테스카틀리포카가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었다. 나도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너는 내가 네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안다. 내가 인간으로서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인격이고, 그 경향성과 내가 네게 품은 부채감은 상성이 좋지 않다는 점도 알고 있을 거다.”
…….”

테스카틀리포카가 권능을 쓸 때마다 꾸준히 보고하는 테스카틀리포카의 육체의 손상현황을 생각한다. 지금 테스카틀리포카의 소화기관이 어느 정도 길이였더라. 잘 모르겠다. 멀쩡한 기관을 세는 편이 더 빠르다는 건 안다. 나는 책임감이나 죄책감 따위에 그리 간단하게 흔들리는 인격은 아니다. 그래도 테스카틀리포카를 보면 꾸준히 생각한다. 저 육체에서 권능을 빼앗으면 일 년은 버틸까. 아니, 당장 살아 숨 쉴 수는 있을까.

“내가 네게 느끼는 죄책감이 누적된 결과 변질될 경우 내 목적에 이롭지 않고, 그건 네 목적에도 해롭기 때문에.”
…….”
“그래서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사고를 회피하지 않음으로서 내 정신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천장을 보던 테스카틀리포카가 처음으로 내 쪽을 보았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웃는 얼굴로 내 팔을 만졌다. 나는 묵묵하게 테스카틀리포카가 내 팔, 어깨, 뺨을 만지게 내버려 두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내 귓가를 만지면서 말했다.

“그렇다 치자. 그러면 너는 내가 친절의 대가로 뭘 요구할 거라고 생각하지?”
“모르겠어.”
“그러면서 그런 말을 했나?”
“말하고 싶었으니까.”
“하하.”

테스카틀리포카는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로 웃었다. 이럴 때조차 낮고 달콤한 목소리라고, 매혹을 담당하는 신격은 허명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다시 말했다.

“너희 인간들은 언제나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인간화시키는 것을 참 좋아하더구나. 내가 어떤 반응을 하건 너는 네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하겠지. 그러니 너 좋을 대로 생각해라. 이번 건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책임소재가 있는 걸로 결론 났고 이게 변할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건 기억해 둬라.”
“뭐지?”
“절체절명의 상황에 아군이 도움을 주는 경험은 신이건 인간이건 외우주생물이건 똑같이 짜릿하다는 사실.”
…….”

나는 내 손등에 눈길을 붙박고 있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내 얼굴에서 손을 떼어내고 누운 자세를 고쳤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웃음기 묻은 소리로 말했다.

“슬슬 자야겠다. 너도 좀 있으면 ‘백업’ 할 시간이지? 담요 꺼내 주고 가.”
“침대가 있는 방에서 자.”
“나한테는 이쪽이 더 편해. 잘 아는 녀석이 말이야.”

테스카틀리포카가 그러거나 말거나 테스카틀리포카가 잠들 때까지 보고 있을 생각이었지만, 틀랄록을 다시 부르겠다는 엄포에는 당할 수 없었다. 들어온 길을 거꾸로 걸어서 신전 밖으로 나왔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소모 때문에 틀랄록도 이스칼리도 자기 구역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서 뭐라 잔소리를 할 사람은 없었다. 나는 묵묵하게 밤의 믹틀란을 걸었다. 디노스도 오셀로틀도 밤에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태양이 지나간 ‘일몰’ 이 없는 도시는 서늘하고 조금 습하고 조용하다.
신전 입구까지 도착했을 때 익숙한 기척을 느꼈다. 인간형 지성체는 아니다. 몸을 긴장시킨 채 고민하다가 빠르게 정체를 깨달았다. 신전 입구에 오셀로틀들이 덜 치운, 아까 테스카틀리포카가 흘린 핏자국이 조금 남아 있었다.

…….”

문득 오늘 아침식사로 먹은 콘스프의 맛을 떠올렸다. 중요하지 않은 기억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거의 기억에 남겨두지 않았다. 뻔한 맛이었을 것이다. 기억해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순간, 그 단순한 호기심에 자꾸 마음이 갔다. 어쩌면, 위대한 테스카틀리포카는 정말로 아무 계산 없이 행동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절체절명의 상황에 도와주러 온,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움직여줄 만한 누군가를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 때문에 몸의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위대한 신도 호기심과 즐거움에 대한 충동에 그런 식으로 굴복하는데, 내가 단순한 호기심을 채우는 건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손가락을 입 안에 넣어 적시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말라붙은 핏자국에 손끝을 문질렀다.
옥수수는 신의 살점이라고 테스카틀리포카는 말했지만, 혀 끝에 댄 손가락에서 콘스프 맛이 나는 일은 없었다.
그게 이상하게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