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레아시스
2023-04-16 0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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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Beautiful

LB7 이전 시점의 데이테스. 네일을 다시 칠하는 테스카틀리포카와 데이비트가 잡담을 할 뿐인 지리멸렬한 이야기입니다. 독자설정 많음 주의.
일본 데이테스 원드로원라이 @Dt_od_ow 참가작입니다. 사용한 주제는 '손톱' 입니다.

“여, 내가 이 땅에 자리 잡은 이래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무엄한 호출이었다. 그래도 토지의 발언권을 빌려서 내가 반응할 만한 떡밥을 흔들어대는 아이디어는 꽤 마음에 들어. 그걸로 용서하도록 할까.”

‘상상했던 바와 다르다’ ─두 번째 소감.

“서번트음, 토지의 영향인가. 서번트 룰러, 검은 테스카틀리포카. 부름에 응해 현현했다. 내키는 대로 써라. 이미 벌어진 적이 있는 일은 대부분 할 수 있지만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은 할 수 없으니 참고하도록 해.”

‘생각보다 인간형 지성체에게 친화적이고, 다른 개체의 소통 시도에 호의적으로 대응한다’ ─세 번째 소감.

“그나저나 어처구니없는 야망이로군. 어떤 녀석이 이 시대에 나를 지명하나 했는데 소거법으로 내놓은 결론이었다면 납득은 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온 거냐? 질문 아니다. 추임새 같은 거야. 너 같은 내용물이 든 걸 순순히 받아줄 사회는 이 별에 존재한 적이 없으니까. 음, 듣기에는 별로였으려나. 뭐 사실이니까 너무 불만스러워하지는 마라.”

선택과 집중, 요약, 압축, 분류, 폐기로 13년간 단련된 데이비트 젬 보이드의 사고구조는 대체로 함축적이고 단순하다. 하지만 그때는 지나치게 다종다양하고 상위맥락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정보를 흡수하면서 놀랄 만큼 지리멸렬한 생각을 했고, 결국 그날 분량의 기록을 골라낼 때 몹시 애를 먹었다. 겪은 일의 본질 때문인지 남겨진 기록 또한 두서없고 지리멸렬했다. 그래도 데이비트는 뛰어난 편집자였으므로 필요한 정보 대부분을 골라 기록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날의 데이비트는 살아있는 시체 위에 걸터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인사와 자기소개를 했고, 계약조건을 제시했고, 향후의 행동방침을 알리고, 대화와 교섭을 했다. 냉혹하며 악랄한 것으로 유명한 신은 아마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릇의 구성요소로 사용한 적이 없었을 밝고 긴 금발을 흔들며 데이비트의 발언에 추임새를 넣었고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개선책을 제시하거나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어쨌든 정말 많이 말했다. 데이비트는 입을 열면 달변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입을 자주 여는 편이 아니었다. 향후 일 년 동안 할 말을 전부 몰아서 한 것 같다고 데이비트는 생각했다.
아무튼 데이비트가 수고한 보람은 있었다. 신은 데이비트의 제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락한 뒤 긴 머리를 쓸어넘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섯 번째 시대를 시작할 때 이후로 이만큼 정신없는 안건은 처음이군. 아무튼 이 시간 부로 네 일에 힘을 보태겠다. 일 년간 힘내보자고, 마스터.”
“협력에 감사한다, 검은 테스카틀리포카.”
“고지식한 것. 색깔도 나를 구성하는 요소는 맞지만 그리 중요하진 않아. 뭐가 됐건 나는 ‘연기나는 거울’ 이고, 네가 나를 지칭할 식별기호에 굳이 그걸 병기할 필요는 없다. 그냥 이름이면 된다. 시험 삼아 다시 불러 봐.”
“테스카틀리포카.”
“옳지.”

그날의 데이비트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전쟁신보다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신의 얼굴이라는 시각정보를 기묘하리만치 집요하게 기록했다. 이 기록에는 당시의 데이비트가 그것을 기억에 남기고 싶어했다는 상위맥락과 당시의 데이비트가 느낀 의아함이라는 상위맥락이 포함되어 있다.
미래의 데이비트가 그 사실에 주목하는 미래를 읽어낸 것처럼 신이 말한다.

“그보다 과제로 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다.”
“내게 가능한 범위 안쪽이라면.”
“네가 물을 줄 알았는데 네가 안 물으니 하는 말이야.”
“그건 미안하게 됐군.”

신은 헛기침을 했다. 신이 이번에 선택한 그릇은 내구도와 출력 면에서는 형편없지만 마술적인 소비자원으로는 이용가치가 있는 인체였다. 그래서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해서 혹사당한 성대를 평소의 상태로 되돌릴 필요가 있었다. 데이비트는 이 대화에서 자신의 대답 부분은 기록하지 않았지만 신이 말하는 부분은 대부분 기록했다.

“나는 이 육체를 만들 때 매혹이라는 요소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이유를 잘 생각해라.”

예상보다 큰 수치심, 예상한 정도의 당혹감, 예상한 것이 들어맞을 때의 달성감, 의문점. 그날의 데이비트는 의문점을 선택해 반응한다.

“그건 내게 필요한 일인가?”

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데이비트는 신을 보며 저것을 처음 보고 떠올린 개념에 대해 생각한다. 그에 부응하듯 신이 대답한다.

“그냥 충고다. 하지만 뭐, 네게는 시련이라고 해 둘까.”

‘아름답다’ ─첫 번째 소감.


*


“안녕, 형제. 신세 좀 지자.”

테스카틀리포카는 소리없이 나타났다. 발소리를 내지 않는 기벽은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본인, 아니 본신께서는 나는 재규어 전사의 왕이지 재규어 그 자체는 아니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이것은 데이비트의 귀중한 5분에 들어갈 만큼 대단한 정보는 아니었다.
오늘 데이비트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치첸이차 근방의 지도를 열다섯 번째 고치고 있었다. 그래도 데이비트는 고개를 들고 방문객의 손아귀를 확인했다. NFF 서비스의 로고가 박힌 화장용 파우치. 데이비트는 이유를 듣지 않고 책상에서 일어났다. 테스카틀리포카는 감사하는 기색도 없이 데이비트의 책상 겸 식탁을 점거했다. 데이비트는 책상에 척척 놓이는 파우치의 내용물을 본다. 네일파일, 오일, 샌딩블록, 클렌저, 충전식의 건조용 LED 램프, 베이스젤, 탑젤, 검은색 컬러젤.

“지난번에도 한 얘기지만, 손톱을 다시 만들 정도의 마력이라면 지금도 제공할 수 있어.”
“너는 야망 이외의 영역에서는 정말이지 로망이 없고.”

데이비트는 벽에 기댄 채로 테스카틀리포카를 본다. 지난 주에 운 나쁘게 오셀로틀 촌락 하나가 괴멸했다. 그래서 오늘은 메히코시티에 있는 사람 중 그런 부류의 술법에 제일 능한 테스카틀리포카가 하루 종일 발로 뛰며 메히코시티의 곳곳의 외벽에 방위용 주술문양을 그렸다. 그려넣을 자리가 없는 무른 땅에는 땅을 파고 벽돌을 묻었다. 손이 엉망이 되었다. 손톱도 엉망으로 깨졌다. 당연히 손톱을 장식하는 네일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무심한 얼굴로 네일파일로 부분부분 깨지거나 벗겨진 검은색을 갈아내기 시작한다. 오래된 나라의 양식으로 꾸며진 신전에서 데이비트의 개인실만이 콜라주한 것처럼 다른 건축양식을 사용한다. 하지만 데이비트의 주문을 받아줄 만큼 성실한 테노치티틀란은 전기조명을 싫어하기 때문에 데이비트의 방에 있는 조명은 현대적인 인테리어가 무색하게도 등잔 하나뿐이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벗겨낸 네일 조각을 등잔불 위에 뿌린다. 화학물질이 타는 매캐한 냄새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손톱에 오일을 바른다. 메히코시티의 모든 것이 테스카틀리포카의 권능을 필요로 한다. 깨진 손톱 따위를 복구하는 데 쓸 리소스는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손가락만 튕겨도 원상복구 가능한 결락을 아날로그 수단으로 복구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권능을 쓰는 것보다 NFF 서비스에 푼돈을 주고 네일용품을 구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너희들 말로 표현하자면 아이콘적인 존재거든.”

갑작스럽게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것도 테스카틀리포카의 오랜 버릇이다. 문장으로 만들어서 기록하지 않았다. 이런 기록이 많았기 때문에 익숙해졌다. 데이비트는 대답한다.

“네가 맥락 없이 대화를 시작하는 건 굉장히 안 좋은 버릇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지루해 보였거든. 아무튼 말이다, 나는 메히코시티 녀석들 시점에서 보기에 굉장히 대단하고 초월적이고 믿음직한, 저 존재가 시키는 대로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믿음을 주는 개념이다. 그러니 보기 좋게 보이는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

테스카틀리포카는 기본적으로 행동력이 좋고 제멋대로에 수치심도 없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저지른다. 보는 사람은 기겁하기 십상이지만 신이므로 그것은 대체로 바른 판단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외양을 가다듬을 때면 항상 데이비트의 방에 온다. 데이비트는 그 이유를 안다.

“너는 지금도 보기는 좋아.”
“개념적인 얘기야. 내장이 세 개쯤 없어졌을 때부터 내 외양은 엉망진창이다. 벌새는 인간의 외모보다 보도블록이 벗겨진 걸 더 신경 쓸 몸이지. 이스칼리는 그런 눈썰미를 기를 만큼 나이를 먹지 못했어. 그래도 너는 매일같이 나를 보고 있으니 알지?”

물론 안다. 머릿결은 염색모처럼 버석거리고 머리카락 끝이 갈라지기도 한다. 피부는 전에 비해 거칠다. 손등이나 무릎, 등을 보면 이전에 비해 뼈마디가 도드라진다. 데이비트는 욕실 앞에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테스카틀리포카의 도드라진 등뼈를 목격한 기록을 머릿속으로 재생한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조금 고개를 숙이고 네일을 떼어낸 손톱을 클렌저로 닦아내고 베이스를 칠하기 시작한다. 브러시를 꼼꼼하게 움직이며 테스카틀리포카는 담화를 재개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전쟁에 이기건 지건 승패는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몇 번은 반드시 이길 필요가 있고, 전쟁의 승패는 결국 사기를 유지하느냐 마느냐로 갈려. 오셀로틀과 함께 전쟁을 하는 건 이스칼리고, 이 전쟁에 가호를 주는 건 이스칼리가 섬기는 신인 나다. 그 녀석들이 안심하고 죽으려면 내가 건재해야 해.”

테스카틀리포카가 잠시 말을 쉬었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옆얼굴에 눈길을 고정한 채 데이비트는 팔짱을 바꿔 끼었다.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없고 언어도 안 통하는 신이다. 오셀로틀들보다야 덜하겠지만 그건 벌새도 이스칼리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거야. 그러니 전선에서 싸우는 것으로는 부족해. 내가 줘야 하는 건 신뢰가 가는 이미지다. 신은 여전히 여유롭고 당당하고, 외양의 아름다움에 신경을 쓸 만큼 여유롭다는 이미지를 줘야 해. 그게 지금 내가 이 환기도 잘 안 되는 방에 틀어박혀야 하는 이유다.”
“그건 미안하군. 나는 적당히 구석진 방을 좋아한다.”
“너는 정말 남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못 해. 그러니 이스칼리도 벌새도 널 꺼리는 거야. 뭐 나야 이런 거 할 장소가 생겼으니 잘됐지만.”

LED 램프에 베이스를 바른 손톱을 집어넣는 테스카틀리포카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데이비트는 아름다움의 개념에 대해 생각했다. 미학적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조예가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귀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계탑에는 미인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인류의 마음으로 사고하더라도 데이비트 젬 보이드의 내용물은 우주에서 온 무언가이기 때문인지 인간 기준으로 조형미가 있는 외모라는 사실은 인지해도 그 아름다움에 전율을 느낀 적은 없다.
키리슈타리아 보다임은 빛나는 것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베릴 거트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고 길러내는 재간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의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먼 곳에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움’ 이란 지상에 존재하는 지성체의 수만큼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 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미학적인 것이 아니며, 개개인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 쪽에 있다. 데이비트는 그렇게 결론내리고 이 주제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손톱에 채워 넣듯 검은색 젤네일을 바르는 공정에 들어갔다. 데이비트는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의자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었기 때문에 소파에 앉으면 옆얼굴이 전에 비해 잘 보였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데이비트를 보지도 않고 물었다.

“내가 여기 온 날 네게 시련을 내렸었지? 그건 잘 생각하고 있나?”
“어려워.”
“호오, 기억하고 있었군.”
“네가 시련이라고 정의한 걸 잊어버릴 만큼 간이 크지는 못해.”
“네 입에서 담력 이야기를 듣다니.”

테스카틀리포카가 쿡쿡 소리내어 웃었다. 데이비트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역시 잘 모르겠다. 너와 외양이 비슷한 사람도 몇 번 봤지만 너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신성을 보고 경외나 고양감을 느끼는 인격도 아냐.”
“불경하긴.”
“하지만 너는 아름다워. 나는 그 때 분명히 너를 보고 감동받았다. 그건 확신할 수 있어.”

테스카틀리포카는 LED 램프에 넣었던 손끝을 다시 빼냈다. 광택이 나는 검은색에 등잔불이 반사되어 주황색으로 보였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데이비트를 흘낏 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클렌저로 손끝을 닦아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데이비트는 조금 실망했다. 그래도 표현하지는 않았다. 지금 데이비트가 가진 아름다움의 개념 대부분은 저 생물에게 점거당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인간의 자리를 빼앗아 앉은 인간 비스므리한 생물도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LED 램프의 불빛과 등잔불로 범벅이 된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한다.

“처음에도 설명했지만, 나는 이 육체를 만들 때 인류사가 기록한 네 데이터를 참고했다. 그래서 이 얼굴에는 네 무의식이 반영돼 있을 거야. 애초에 그릇으로 금발에 흰 피부 같은 건 염두에 둔 적도 없단 말이지. 하지만 네가 매혹적으로 느낄 요소를 넣지는 않았다.”
“신은 신자의 필요에 응하는 개념이라고 알고 있다. 내가 무의식중에 아름다운 것을 바랐을 가능성은 없나?”
“시련에 질문으로 답하지 마라, 불경한 것.”

테스카틀리포카는 탑젤 뚜껑을 열고 마무리작업에 돌입했다.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가 환기도 잘 안 되는 남의 방에서 인류가 만든 미용도구에 의지해 외모를 가다듬는 이유를 생각한다. 데이비트의 요구 때문이다. 데이비트가 요구하는 모든 것에 응하기 위해 인체를 유지하는 도구인 장기를 몇 개나 포기했기 때문에 신진대사가 무너지고 외양을 유지하는 기능이 망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트는 몇 미터만 뛰어도 멈춰서서 숨을 고르는 테스카틀리포카를 생각한다. 처음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의 아름다움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렇게 되어도 여전히 저것이 믹틀란에 처음 왔을 때처럼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도,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생각한다.

“자, 복구 끝.”

테스카틀리포카가 자랑스럽게 말끔해진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데이비트가 가볍게 박수를 치자 테스카틀리포카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 도구를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를 보지 않고 말했다.

“술은 좋아했었지. 소화기관 계통은 무사하게끔 노력해 보겠다. 그래도 정 써야만 한다면, 반드시 꼭 필요한 일에 쓰겠다고 약속하마.”
……. 저기. 혹시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 짓을 하는 게 네게 하는 무력시위라고 생각했냐?”
“설마. 나는 아군의 고통을 보면 분발하는 계통의 인격이다. 내 의욕을 고취하는 데는 도움이 돼. 그건 감사하마.”

테스카틀리포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떨며 웃기 시작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변덕스럽고 오래된 인격이다. 테스카틀리포카에 비하면 한참 어린 인격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자존심은 있는 데이비트는 이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춘 테스카틀리포카가 파우치를 챙겨서 일어섰다. 바로 문을 나서는 대신 데이비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름답고 여유로운 것처럼 보이는 전쟁신이 콧노래라도 부르는 것 같은 어조로 말했다.

“고통은 사건이 아니라 이치일 뿐이야. 거기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마라.”
“알아.”
“내일도 나는 너를 위해 선동하고, 너를 위해 부추기고, 너를 위해 무고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거다. 나는 그것 때문에 이 땅에 왔다. 기억해 둬.”

데이비트는 그 손에 테스카틀리포카가 조금 전까지 손질한 손톱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가 지금까지 해 왔고 다음날도 할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위한 허세. 나를 위한 선동. 나를 위해서 아름다운 손톱. 나를 위해서라면 또다시 엉망이 될 손톱.
데이비트는 공들여 손질한 손톱이 권능과 교환되어 뿌리째 뽑혀 나가는 순간을 생각한다. 그 순간의 테스카틀리포카의 고통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의 테스카틀리포카의 환상에서 시선을 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대답한다.

“그래.”

테스카틀리포카는 데이비트의 어깨를 툭 치고 방을 나섰다. 시련의 답을 처음부터 알고도 깨닫지 못하는 선량한 남자가 남자를 위해 아름다운 생물을 배웅했다.